한국 드라마 이야기/정도전

정도전, 역성혁명을 위해 제거될 최영과 정몽주

Shain 2014. 3. 2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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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국가의 역사를 지켜보면 나라에도 생물처럼 수명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한 나라를 세우는 것도 어렵지만 그 나라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 이죠. 나라의 생존은 철저한 약육강식의 원리에 따라 결정되고 간신히 국가를 유지하는데 성공하면 인간사회 특유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왕과 신하와 백성들을 모두 만족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어느 계층에 힘이 몰리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곤 했습니다. 후삼국을 통일하며 세워진 고려 왕조는 초반기에 호족세력을 통합하는데 성공하고 안정된 권력을 유지했으나 말기에는 고착된 귀족사회의 부패가 부각될 수 밖에 없었죠.

이인임을 함께 몰아낸 최영과 이성계. 요동 정벌을 두고 두 사람의 가치관은 충돌하기 시작하는데.

 

'정도전'의 이성계(유동근)는 철저히 고려 귀족 사회의 이방인입니다. 그의 국가관은 단순하지만 명쾌합니다. 드라마 속의 이성계는 백성을 살린다는 정치인의 기본 마인드도 갖추고 있고 신진사대부들에게 허리굽히며 지략을 배울줄 아는 현명한 장수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읽히는 이성계의 행동은 해석하기에 따라 고려 귀족 사회에 편입해 권력을 한자락 나눠가지고 싶어하는 지방 호족 으로 보입니다. 향처 한씨는 완전히 잊은 듯 개경 출신 경처 강씨(극중 이일화)를 얻고 이인임(박영규), 지윤(방형주), 공양왕의 형과 사돈관계가 됩니다.

자식들과 고려 귀족을 혼인시킨 그의 '혼인 정책'은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인임이나 직계 왕족들과는 직접 혼사를 치르지 못하면서 주변 인물들과 인척이 되니 개경에 갓 입성한 그가 나눠가진 권력 역시 미미했을 것입니다. 이인임을 쳐내도 이성계에게는 최영(극중 서인석)이라는 거대한 산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역사 속의 이성계는 자신이 최고가 될 수 없는 고려의 권력자가 되는 것 보다는 새로운 나라를 세워 그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어떻게든 타산이 더 맞았을 것 입니다. 주원장처럼 나라를 세울 수 있는 능력에 굳이 망해가는 나라의 뒤치닥거리를 해줄 이유가 없었죠.


 

 

이해관계로 따져 보면 최영과 마찬가지로 정통 귀족 출신인 정몽주(임호)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 보다 고려라는 나라를 고쳐서 유지하는 것이 훨씬 유리 했다는 것입니다. 정도전(조재현)을 비롯한 상대적으로 직급이 낮은 다른 신진사대부들과는 입장이 달랐죠. 이처럼 이인임과 그의 일당이 탄핵당하지 않고 오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인임이 고려 귀족들에게 훨씬 이익이라는 판단이 있었던 것같습니다. 무엇 보다 교묘하게 이익을 배분하며 우왕(박진우)과 고려 귀족들의 지지를 얻어낸 이인임도 대단한 인물이죠. 임견미(정호근), 염흥방(김민상)과는 비교도 안되는 그릇이었던 것입니다.

지방 호족 출신인 이성계와 정도전. 정통 귀족인 정몽주. 역사의 거골장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성계의 운명.

 

그러나, 평생을 용맹한 무장으로 살아온 최영에게는 그만한 정치력이 없었습니다. 최영의 올곧음이나 영웅성과는 별개의 문제였죠. 백수최만호(白首崔萬戶)라 불릴 만큼 왜구와 오랑캐를 쳐내던 장군이라도 부패한 귀족을 다루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쟁터에서는 주군에 대한 충성, 단호한 판단력과 과감한 행동이 무엇 보다 중요하지만 정치판에서는 상대방을 잘 살펴 힘을 배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특히 요동정발을 주장하며 명나라의 도발을 전쟁으로 해결하자는 최영의 선택은 이성계와 반목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 입니다.

실제 이성계는 어떤 과정으로 조선 개국을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정도전'에서는 이성계가 고려라는 나라에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쉽게 역성혁명을 시도하지 못한 것은 정몽주에 대한 의리 때문인 것으로 묘사됩니다. 수문하시중 자리에 올라 정도전, 정몽주와 축하 술자리를 가졌던 이성계는 정몽주가 건내준 '충(忠)'이라는 글자에 정몽주의 의중을 읽게 됩니다. 고려 최고의 권력을 경계하라는 정몽주가 절대 역성혁명에 찬성할 리는 없을 것입니다. 이성계에게 최영과 정몽주는 누구 보다도 의지하는 스승이자 동료입니다. 아직까지는 정몽주, 최영에게 이성계를 묶어둘 힘이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나라를 새로 세운다고 이인임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냐. 이인임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제거될 역사 속의 사람들.

 

지금 무엇 보다 흥미로운 것은 드라마에서 이성계가 최영, 정몽주를 쳐내는 과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조민수(김주영)와 함께 위화도 회군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성계의 선택에 어떤 정당성을 부여하느냐 하는 부분 이 이 드라마의 재미를 살릴 것이라 봅니다. 더불어 포은 정몽주를 스승이라 부르는 이방원(안재모)이 스승을 살해하는 패륜을 얼마든지 저지르고도 남을 인물인듯 보이는데 이런 점 때문에 세자 간택에서 이방원이 제외되고 정도전, 이방원이 척을 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제부터 새 나라의 안정을 찾을 때까지 숙청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이인임은 유배와 함께 고려 역사에서 물러났습니다. 이로서 고려 왕조를 지탱하던 하나의 축이 무너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요동정벌과 함께 고려의 또다른 축인 최영, 정몽주도 무너질 것입니다. 두 사람은 고려를 지탱하던 축인 동시에 이성계가 역성혁명에 대한 욕망을 누를 수 있었던 버팀목 이었으니 앞으로 이성계의 야망을 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이인임의 다짐이 하륜(이광기)을 통해 실현될 날도 머지 않았으니 역시 역사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라를 새로 세워도 권력싸움은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이성계가 먼훗날 가장 후회할 일도 역사의 거골장이 되었다는 사실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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