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정도전

정도전, 운명적인 위화도 회군과 거골장 이성계의 자질

Shain 2014. 3. 3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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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년은 고려의 역사를 바꾼 여러 사건이 일어난 해입니다. '정도전'에서 인상적인 악역으로 활약했던 이인임(박영규)도 그 해에 죽었으며 드라마 속에서는 묘사되지 않지만 방탕한 우왕(박진우)이 최영(서인석)의 서녀와 결혼하고도 정비와 후궁을 여럿 두어(구비삼옹주) 폭정이 극에 달했던 시기도 그때입니다. 계속 그렇게 여자만 밝히고 못나게 살았다면 든든한 고려 귀족들 특히 장인들 덕에 그럭저럭 정권을 유지했을지 모르나 아버지를 상기시키며 요동정벌을 부추킨 최영이 결과적으로 우왕의 정치 생명을 끊어놓은 해도 1388년 이지요. 고려를 지키던 기둥이던 최영도 위화도 회군 이후 1388년 목숨을 잃고 말았으니 정도전(조재현)의 표현대로라면 오백년 묵은 괴물의 심장을 찌른 해이고 고려라는 나라가 망해버린 해 입니다.

 

'욕심을 빼고 나면 왕이 될 이유가 하나도 없더라'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역시 운명?

 

드라마에서 묘사한 위화도 회군은 엄청났습니다. 최영이 우왕의 응석을 받아주느랴 원정을 따라나서지 못하고 엄청난 폭우로 군사들 중엔 낙오자가 늘어났습니다. 전라도에 왜구까지 출몰했으니 이건 뭐 이성계가 안 돌아올래야 안 돌아올 수가없습 니다. 정도전의 말대로 이성계가 하늘의 뜻이긴 뜻이었던 것일까요. 무거운 갑옷은 비에 젖으면 심신을 더욱 고달프게 합니다. 배가 고프면 전쟁이고 뭐고 딱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전쟁을 더 이상 하기 싫었던 이성계가 험한 날씨와 지휘관 부재를 틈타 홧김에 고려를 말아먹기로 작정한 것일까요?

이성계와 함께 공여군을 이끌고 요동 정벌을 떠난 조민수(김주영), 배극렴(송용태), 변안렬(송금식)의 심정도 말은 안해서 그렇지 이성계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오만 여명이 출정해도 요동 정벌은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어려운 싸움입니다. 굳이 이성계의 사불가론이 아니라도 또 명나라가 아무리 요동을 신경쓸 여력이 없어도 이기기 힘든 싸움입니다. 노장 최영이 온다고 해서 비 때문에 물이 불어난 강을 건널 수 없는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죠. 이탈자와 탈영병들을 참수하며 기강을 잡아보지만 속으론 못할 짓이라며 후회했을 것입니다.



 

드라마에서 묘사가 된 적은 없지만 이인임이 이성계와의 대립 과정에서 한때 경처 강씨(이일화)를 인질로 쓰려했던 것처럼 지방 출신 장군들에게 개경에 사는 가족은 역심을 품었을 때 협박할 수 있는 인질이나 다름없습니다. 고려 초기에는 실제로 그런 목적으로 개경에 호족의 자녀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요동정벌 출정 때에도 이방원의 아들인 이방우(강인기), 이방과(이태림)와 이지란(선동혁)의 아들 등이 잡혀있었습니다. 또 위화도 회군 과정에서 이방원(극중 안재모)이 잽싸게 이성계의 경처, 향처 가족을 모두 모아 피신시켰다는 이야기 도 유명합니다.

그만큼 군인이 명령을 어기고 군사를 돌리는 것은 역심이거나 죽겠다는 뜻 입니다. 이성계와 이성계에 동조한 장군들은 모아니면 도라는 심정이었다 이런 말이죠. 회군은 바로 역심입니다. 어제 드라마 속 상황만 봐도 그 속마음이 충분히 짐작갑니다. 글공부한 머리는 없어도 전장에서 왜구와 오랑캐를 물리치며 본능으로 전쟁을 익힌 장군들인데 얼마든지 모지리 왕과 입만 살아있는 문신들을 해치울 능력을 가진 그들이 비속에서 굴욕을 견디는 심정은 비슷했을 것입니다. 요동 정벌을 부추킨 당사자인 최영은 정작 오지 않고 우왕과 노닥거리고 비는 더럽게 내리니 다 그만 두고 싶었겠죠.

 

왕을 다독이고 정벌의 타당성을 주장한 최영은 옳았으나 결정적으로 운명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성계에게는 그들 모두가 따를 수 밖에 없는 지도력이 있었던 것같습니다. 위화도 회군 전부터 다른 장수들을 설득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반쯤 미친 우왕 보다 전장에서 함께 고생한 우군도통사 이성계의 판단에 더욱 믿음이 갔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합니다. 이성계는 두 장의 어진만 봐도 알 수 있듯 기골이 장대했던 희대의 무장입니다. 활쏘는 실력도 뛰어나 활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 노련했습니다. 드라마 '정도전'은 그런 거골장 이성계가 어떻게 문신 정도전과 운명적인 인연이 되었는지를 묘사하다 보니 그의 장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죠.

'왕이 될 욕심을 빼고 나면 왕이 될 이유가 하나도 없더라'는 이성계의 솔직한 발언. 혈통, 지략, 가치관 그중 아무것도 남들 보다 나은 것 없이 전쟁 밖에 모르는 자신이 왕이 되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냐는 반문에 정도전은 이성계가 '덕'을 갖추고 있기에 군 왕의 자질이 충분하며 '군주는 하늘이 내린다'는 발언을 합니다. 뭐 그동안 정도전이 내뱉은 '사냥개' 발언을 떠올리면 이 말은 '무식해도 좋다 - 네가 거병하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리라'는 건방진 말일 수도 있겠으나 이성계가 꿨던 여러 꿈이나 요동 정벌을 누군가 고의적으로 막는 듯한 여러 징조들은 정도전의 말에 힘을 실어줄 수 밖에 없겠죠.

위화도 회군은 곧 반역. 위화도에 간 이성계는 대업이 천명이라는 정도전의 말을 떠올린다.

 

역사 속 어떤 인물은 왕이 될 자질을 타고 났으나 힘이 없어 죽었고 어떤 인물은 힘도 지략도 타고 났으나 천운이 모자랐습니다. 끝까지 전쟁에 반대하긴 했으나 그래도 출정한 이상 어떻게든 요동 한번 가보려고 기를 쓰던 이성계는 역병이라는 난관에 부딪혀 회군을 결심할 것입니다. 정몽주(임호), 이색(박지일)을 비롯한 신진사대부들도 이성계의 회군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네네 이때까진 이성계랑 사이 좋았어요). 꿈틀거리는 이인임이 어떤 변수가 될지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과거 급제 한번 하지 못한 변방 출신 무장 이성계가 정도전을 만난 건 '운명'이긴 한 모양 입니다. 21세기가 되어도, 드라마 속에서도 역시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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