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 대한 범죄를 보면 마치 내 일처럼 가슴이 아픈 경우가 많습니다. 옛어른들의 표현대로 생떼같은 자식을 잃은 아픔을 비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에 한마디씩 던지곤 합니다. 그 때문에 '애가 왜 그 시간에 밖에 있었나' 내지는 '그러게 왜 낯선 사람을 따라갔어'같은 속모르는 말로 피해 가족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고들 하지요. 때로는 이런 안타까움이 아닌 말그대로 피해자가 잘못했다는 식의 '피해자 과실론'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동범죄니까 그나마 최대한 표현을 조심하는 것이지 성범죄였다면 피해자에 대한 조롱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아동 성범죄인 나주사건만 봐도 피해 가족에 대한 비난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신의 선물' 샛별이는 어쩌다가 민폐 샛별도 모자라 '암'이라는 지독한 별명을 얻게 됐을까.




'신의 선물'에 등장하는 샛별이(김유빈)는 죽을 운명으로 설정된 아동 캐릭터입니다. 엄마 김수현(이보영)이 타임워프하기 전 샛별이는 정체불명의 유괴범에게 납치되어 물에 빠져 죽었고 수현은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호수에 몸을 던졌습니다. 드라마의 전체 이야기는 아이가 죽기 14일 전으로 돌아온 수현이 함께 타임워프한 기동찬(조승우)과 함께 아이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내용이죠. 그러나 다수의 시청자들이 보기에 곧 죽을 운명이라는 샛별이와 운명과 싸우는 수연이 불쌍해 보이기는 커녕 짜증을 유발한다고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엄마 김수현이 비난받는 이유는 '네가 죽어야 내 딸이 산다' 내지는 '지금 나가면 죽어요'같은 말로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말로 정보를 유출해 사건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간다는데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청자 역시 아이가 죽을까봐 패닉이 된 김수현에게 동조하며 그 심정에 동감했죠. 그러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도 부족할 판에 아이를 남에게 맏기고 말도 없이 혼자 사라지고 납치를 당하는 등 비이성적인 행동만 일삼으니까 '민폐엄마'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불쌍했는데 점점 더 밉상이 되어가는 두 모녀. 오죽하면 별명이 민폐가 됐을까.


샛별이는 한술 더 뜹니다. 일부에서는 '혐오 샛별' 내지는 '암샛별'같은 닉네임이 생겼을 정도입니다. 지켜보고 있는 시청자는 귀여운 샛별이가 죽을까봐 애가 타는데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샛별이 캐릭터는 비행기 안에서 알러지가 있는 호두 아이스크림을 엄마가 자는 사이 퍼먹고 비쥬얼락 그룹 '빠순이질'을 하다 못해 가수의 차에 몰래 타고 한밤중에 락가수 집에 무단침입하기도 합니다. 도대체 아홉살 짜리가 폭우가 몰아치는 날 밤에 어떻게 콘서트장에 갈 생각을 했으며 택시비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애가 어딜 그렇게 나다니는지 보는 사람이 더 안타깝죠.







샛별이는 그 또래의 흔한 아홉살 여자아이

샛별이 캐릭터를 비난하는 이유의 대다수는 '내 아이가 그랬다면?'이라는 공감의 심정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사방에서 유괴하려고 노리고 있는 아이가 통제받지 않고 제멋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샛별엄마처럼 아이를 잡고 엉덩이를 두들겨 패는 등 똑같이 야단을 쳤겠죠. 거기까지는 엄마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샛별이가 비난받는 이유의 반은 샛별이의 캐릭터가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어긋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즉 '피해받는 약자는 순수한 이미지여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죠.

요즘 어린아이들은 과거에 비해 지식면에서 훨씬 성숙합니다. TV는 물론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어릴 때부터 다루기 때문에 접할수 있는 정보의 양은 어른들과 비슷한데 발달단계상 두뇌는 아직까지 미성숙한 상태죠. 정신적 성숙은 두말 할 것 없습니다. 그 때문에 지나치게 산만하고 판단력이 흐리거나 자칫 위험한 선택을 하기 쉬운 경향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농담삼아 하는 말 중에 '미운 네 살' 내지는 '죽이고 싶은 일곱살'이란 표현이 있을까요. 그만큼 가장 통제하기 힘든 연령대가 10살 미만의 어린아이들이고 샛별이는 어른 표현으로 '머리가 굵어'지기 시작하는 9살이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은 의외로 많은 부분에서 판단을 흐린다. 당할만 해서 당했다는 가해자 중심주의.


보통 드라마에서 연출하는 피해 아동이 순수하고 얌전한 모습인 것에 비해 실제 길에서 마주치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한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말을 함부로 하고 까불까불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켜주고 싶은 모습이기 보단 어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을 만큼 짓궂은 아이들이 그 또래들이죠. '신의 선물' 샛별이는 스네이크라는 비쥬얼락 그룹 광팬이라는 게 좀 의아하긴 하지만 팬클럽에서 본 정보를 그대로 따라했다는 점에서 그 또래 어린아이들과 별다를 것없는 대책없는 아이죠. 문제는 그런 모습이 우리가 흔히 아는 피해자의 모습과 다르다는데서 발생합니다.

포털의 많은 의견을 읽어보면 샛별이가 하는 행동을 보면 도저히 동정심이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린아이가 콘서트나 가면서 저렇게 싸돌아 다니니까 사고를 당하지 내지는 샛별이가 죽어도 불쌍할 것같지않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그들의 주장에는 약자면 약자답게 행동하라는 일종의 강요가 내포되어 있는 듯합니다.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뭐 이런 이야기죠. 그리고 이런 관점은 묘하게 여러 여성들을 살해한 드라마 속 차봉섭(강성진)의 여성혐오 범죄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이를 낙태하거나 고아원에 버린 여성들은 죽어도 싸다는 주장에는 의외로 동조하는 사람이 많을테니 말입니다.

기동호에게 함부로 말하던 이수정 역시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에선 벗어나 있는 인물. 무엇을 위한 설정인가.




이외에도 '신의 선물'의 이수정(이시원) 역시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과는 벗어나 있습니다. 기동찬의 첫사랑이고 살인 사건 피해자라는 면에서 많은 시청자들은 순수하고 가련한 이미지의 10대 여성을 상상했으나 이수정은 한밤중에 연인과 데이트하러 나가고 기동찬의 형 기동호(정은표)에게 혐오를 표시하며 동네 청년들을 다 홀리고 다니는 이미지의 여성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이미지의 여성이 성범죄 피해 대상이 되었을 때 사람들의 입에선 '그럴만 했다' 내지는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는 건 뻔하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죠.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는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묘사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순수하거나 아무 죄가 없다는 입장이 강조되기 때문에 '신의 선물' 영규(바로) 엄마인 미미 같은 여성이 주인공이 된다면 동정받기 힘들 것입니다. 요즘은 왕따를 당한 아이나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밝고 긍정적으로 묘사되면 오히려 시청자 쪽에서 고정관념에 맞지 않아 이상하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가해자의 행동은 관심 밖이면서 피해자의 행동은 하나부터 열까지 분석하는 사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 남자와 왜 친하게 지냈냐, 평소에 좀 조신하게 살지,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간다 등등 말이죠.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오히려 범죄자들에게 핑계를 주는 것은 아닌지. 샛별이는 평범한 아이일 뿐이다.


8회에 등장한 이민석이란 인물은 진범으로 추정되지만 든든한 배경 덕에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피해아동의 부모가 '내 새끼 살려내'라며 매달리자 '그러니까 네 새끼 관리를 잘 했어야지'라고 오히려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입니다. 세상에 사람을 죽여도 되는 정당한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에 대해 '죽어도 싸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는 점에 놀라곤 합니다. 뿌리깊게 자리잡은 '피해자 과실론'을 뽑아낼 때도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우리가 '신의 선물' 샛별이를 비난하는 이유의 반은 안타까움이 아니라 범행의 이유를 피해자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태도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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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헤미안
    2014.04.08 09:53 신고

    그렇군요...음...
    정말 이 나라는 가해자 지상주의인 나라인가 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가해자가 그냥 미친거죠.
    샛별이는 그 또래의 아이일 뿐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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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8 10:26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예전에 미성년자 범죄 기사에서
      대책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기는 커녕...
      피해자 모욕과 신상 파헤치기가 너무 심해서
      기사 내려달라고 난리쳤던 기억이 나네요
      드라마든 현실이든 약자를 조롱의 대상으로 여기는 문화가 가끔 울컥하게 합니다

  2. 서서
    2014.04.15 20:12 신고

    안타까운 세상이죠..
    가해자는 떳떳하게 세상에 드러내고 살지만
    피해자가 오히려 숨어 사는 현실..

    가해자가 잘못한 것인데 사람들은 왜 가해자를 탓하기는 커녕
    피해자의 행실 타령을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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