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란 말은 세상 그 어떤 단어 보다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에 '운명'이란 수식어를 붙이곤 하죠. 내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아이가 죽기 2주일 전으로 타임워프한 김수현(이보영)이 노력하면 할수록 일이 꼬이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미래는 막을 수 없습니다. 샛별이(김유빈)가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역시 운명의 힘으로 설명될 수 있지요. 안데르센의 동화 '어머니 이야기'의 결말도 따지고 보면 운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머니는 운명의 또다른 이름인 죽음의 신을 쫓아가지만 다른 아이들의 목숨과 장담할 수 없는 아이의 미래 사이에서 갈등하다 어쩔 수 없이 자식의 운명을 죽음의 신에게 맡겨야 했습니다.

이수정 사건이 샛별이를 살리는 실마리라는 걸 알게 된 김수현. 그러나 지독한 운명은 끈질기게 김수현을 따라다닌다.




10년전 죽은 이수정(이시원)의 엄마(이연경)는 죽음을 알아맞추는 반무당이라 했습니다. 무진 호수 부근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 현상은 무진 호수 본래의 신비인지 수정이 엄마의 능력인지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고 수정이 엄마의 생사도 불분명하지만 수정엄마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데스티니 카페에 김수현과 샛별이를 불러들였고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즉석사진도 찍어주었습니다. 딸의 죽음은 예언하지 못했다는 건 수정이 원래 죽을 운명이 아니었단 뜻일 수도 있고 수정엄마 역시 타임워프 경험자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신의 선물 14일'은 어제 방송도 수없이 많은 단서가 추가되었고 지금까지 리스트에 없던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늘어났죠. 드라마 캐릭터를 곧잘 외우곤 하는 저로서도 이미 메모리가 폭발 지경입니다. 1회, 2회의 등장인물들 만으로도 정신을 못차릴 정도고 구분이 안가는데 등장인물이 추가되다니 어쩌려고 이렇게 많은 인물들을 출연시켰나 시청자인 제가 더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거기다 김수현에게 타임워프 이야기를 건내들은 현우진이 첩자인 걸로 알려진 마당에 다시 '공개 수배'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출연까지 한다는 걸로 보아 납치극과 전화 협박이 시작될 거 같단 예감도 드는군요.

가해자 가족과 피해자 가족의 공통점은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라는 것.


그런데 1회부터 지금까지 추가된 등장인물을 자세히 살펴 보면 인물들 간에는 뚜렷한 차이점과 공통점이 보입니다. 우선 공통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니'라는 것이죠. 목적에 따라 착한 일을 했다가 나쁜 일도 합니다. 현우진(정겨운)은 협박을 받고 있고 기동찬(조승우)과 싸우던 문신남의 장갑을 불태워버리긴 했지만 김수현에겐 손대지 말라며 경고합니다. 비슷하게 장문수(오태경)의 아버지는 범죄를 두둔했지만 아들을 살리려는 부성애는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들이 가해자 가족과 피해자 가족으로 나눠진다는 것이죠.

물론 이 드라마의 핵심 가해자 집단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주요 관련자인 한지훈(김태우)는 유명 인권변호사지만 보기 보다 탐욕스러운 면이 있었고 10년전 자신이 맡았던 사건을 권력자들이 원하는대로 처리해주는 대가로 유명세를 얻은 듯합니다. 기동호 사건, 장문수 사건의 진범은 따로 있었고 피의자 이민석을 무죄로 풀어준 황민호 사건은 해결을 못했습니다. 그동안의 행보로 보아 고의로 사건을 대충 수사했거나 쇼를 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명예욕이 강한 전형적인 위선자입니다. 가끔 보여준 뻔뻔한 태도로 보아 사건을 엉성하게 처리한다고 해서 내게 피해가 올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던 것같습니다.










내 아이를 살리고 싶어 남의 아이를 죽였다?

일단 한지훈과 담합해 자식들을 덮어준 혐의가 있는 사람들은 크게 셋입니다. 김남준(강신일) 대통령과 10년 간 외국에 나가있었다는 그 아들(양주호), 황민호를 죽인 이민석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이명한(주진모), 외동아들이 자살했다는 재벌 추병우(신구)가 과거에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죠. 문제는 그때 이수정 사건을 덮어주고 범인을 기동호(정은표)로 조작했기 때문에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고 살인이 살인을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진범 차봉섭과 장문수는 또다른 범행을 저질렀고 기동호 가족의 기동찬, 이순녀(정혜선)와 기영규(바로)처럼 억울한 피해자도 발생했습니다.

한지훈은 10년전에 어떤 검사였으며 누구에게 협박받고 있는가? 빔인은 아니지만 사건의 핵심은 한지훈이다.




또 범행을 함께 저지른 공범인지 방관자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수정과 사진을 찍은 3명의 남성들 역시 불행한 삶을 산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방 공무원의 아들인 유진우(임지규)는 미쳐 정신병원에 갖힌 채 헤파이와 사탕을 떠들고 있고 테오(노민우)의 형이자 가수였던 윤재한(오민석)은 자살했습니다. 나머지 한 인물(배우 이원재라는군요)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기동찬은 그 사진 속의 한사람이 자신과 빗속에서 싸운 미지의 문신남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테오와 추병우의 대화로 보아 그들은 이수정의 죽음과 관련된 비밀을 숨기고 있었고 그 때문에 죽거나 겁을 먹고 미쳐버린 것입니다.

'어느 어머니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의 온실로 간 어머니는 그곳의 꽃이 사람의 생명이란 걸 알게 됩니다. 죽음의 신이 자신의 아이꽃을 뽑으려 할 때 다른 아이의 꽃을 꺾어버리겠다고 하면 자신의 아이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어머니는 죽음의 신을 그렇게 협박했습니다. '신의 선물'의 가해자들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다른 아이들의 꽃을 꺾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억울하게 아이잃은 부모들도 가만 있을리 없습니다. 피해자의 부모도 아이를 위해 피투성이가 되고 머리카락과 눈을 내어주며 고통을 견디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피해자 가족에게 얼마나 잔인한지 온몸으로 느끼며 아이의 죽음을 밝히고 있는 셈이죠.

자신의 아이들을 살렸지만 그 대신 다른 무고한 아이들이 죽었다면? 가해자 가족의 비밀.


1회에 등장해 한지훈에게 토마토를 던진 어머니(조시내)와 그 남편(최민철)은 사형제도 반대로 태도가 확 달라진 한지훈에게 실망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민석의 무죄 판결에 한지훈이 가담했다는 걸 알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황민호의 아버지(최민철)가 네메시스 문신을 그리고 여러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했다면 샛별이를 유괴한 이유도 직접적인 복수 때문이라기 보다 진실을 밝히라고 한지훈을 압박하기 위한 용도였을 가능성이 크죠. 사형 집행이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지훈을 이용해 모종의 목적을 달성한 가해자 쪽도 차봉섭이 가지고 있던 무진살인 사건 피해자 유품을 한지훈을 통해 회수하려 했을 것입니다.

확실한 건 이수정 사건을 덮기 위해 기를 쓰며 기동호 사형을 추진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아무래도 이명한 쪽) 이수정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한지훈과 관련자들의 비리를 폭로하고 사형제를 반대하는 입장(추병우 쪽)도 있다는 것입니다. 타임워프 전 추병우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은 이유도 어떻게든 사형을 집행하려는 정부 측에 반발하고 진실을 폭로하려다 벌어진 일일 수도 있습니다. 기동찬과 싸운 문신을 한 남자가 둘 중 누구의 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황민호의 아버지라면 둘 중 어느 편을 들어도 이상할게 없습니다. 사형 집행을 위해 이용당하든 진실을 알리기 위해 고생하는 쪽이든 그 역시 '어느 어머니'같은 부모입니다.

사진속 3명은 진실에 침묵한 공범일까. 이수정 사건의 진실을 은폐한 대가는 행복하지 않았다.


이수정 사건으로 시작된 여러 부모들의 비극. 타임워프 전에는 그 모든 비극이 샛별이의 죽음으로 끝났습니다. 그 많은 부모들 중에 하필 수정이 엄마가 김수현을 만나 예언의 사진을 건내주고 김수현, 기동찬 만이 타임워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관련이 깊은 인물들이자 이수정 사건을 꼭 파헤쳐야 하는 당사자들이기 때문이겠죠. 샛별이가 마치 이수정의 환생인 듯 태어난 것도 그런 운명의 힘일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샛별이의 죽음 뿐인 줄 알았는데 시작은 이수정 사건이었고 그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더 많은 피해자 가족이 생겼습니다.

장문수의 아버지가 자수한 과정이 동정을 얻은 것처럼 세상 사람들은 부모의 사랑을 관대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게 충분한 권력과 힘이 있다면 내가 부모라도 자식을 덮어주고 보겠다는 부모가 더 많을 것입니다. 어떤 모성애는 내 자식 살리자고 남의 자식 죽이는 일인데도 '부모니까'라는 말로 용서하곤 합니다. 기영규가 고급 빌라에서 쫓겨나고 뺨을 맞고 무시당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죠. 현실 속에서도 왕따 사건 가해자 가족이 피해자 가족을 괴롭히는 일이 번번이 일어납니다. 회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더 늘어나는 피해자 가족과 타임워프가 필요한 부모들의 고통은 사회 현실을 떠올리게 할 만큼 섬뜩하더군요.

불의를 눈감는 사람들과 부모라는 이름의 욕심이 낳은 불행. 불편한 사회의 진실을 보여주는 '신의 선물'.


죽음의 신이 상징하는대로 운명은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반무당이라는 수정엄마도 예측하지 못한 이수정 도는 샛별이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수명이 다한 죽음이 아니라 예정에 없는 죽음을 의미하죠. 결국 사람들 사이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샛별이는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샛별이를 위협하는 그 남자는 피해자 가족 중 하나일 것이고(혹시 황민호 아버지?) 이번엔 한지훈을 겁주기 위해 찾아왔기 때문에 커튼을 찢고 가구를 부수고 가려다 샛별이와 만나 그런 상황이 된게 아닌가 싶더군요. 이수정 사건의 진실은 언제쯤 완전히 밝혀질까. 그 과정에 샛별이의 운명이 달려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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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3 10:24 신고

    직접적인 살인범만이 아니라 간접적인 살인도 가능함을....
    그렇게 생각하면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겠어요. 드라마 잘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