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기본적으로 판타지이지만 가끔 섬뜩할 정도로 사실감이 드는 묘사로 시청자를 놀라게 합니다. 드라마 속 인물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극단적인 인물이고 그를 둘러싼 환경도 비현실적이지만 그 캐릭터의 특징이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쓰리데이즈'의 대통령 이동휘(손현주)를 보면서 지금은 고인이 된 특정인물을 떠올린 분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동휘가 국제적인 무기거래상 팔콘의 컨설턴트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되는 모습은 많은 평범한 변호사에서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인권변호사로 변한 과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꼼꼼히 따지고 들면 북풍을 조작하고 사람을 죽게 하는 과정이 특정인물과 많이 거리가 멉니다.
사실 첫방송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가졌던 의문이 있습니다. 국제적 규모의 군수업체들이 얼마나 지독한지는 굳이 음모론이 아니라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이동휘는 '팔콘의 개'로 일하며 계획한 양진리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김도진(최원영) 무리와 결별했지만 군수업체들은 전세계 많은 나라에서 참사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죠. 한기준(이대연)처럼 교수이자 국정원 직원으로, 원치 않는 일을 해야할 입장도 아닌 이동휘가 더러운 군수업체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때문에 혹시나 겉으로는 양진리 주민들의 죽음을 계기로 분노한 것처럼 보이는 이동휘가 한기준과 한태경(박유천) 무리들을 이용해 절대악으로 묘사되는 김도진, 민현기(남명렬), 권재연(정원중), 변태훈 등을 밀어내고 절대적인 일인자가 되려는 내용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뭐 당장은 양진리 사건이 폭로되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암살을 비롯한 탄핵 같은 것들이 대통령에게 유리한 일들이 아니기에 팔콘사에서 풀려난 그 순간 진짜 국민의 대통령이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추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입니다.
아무리 김도진 일당이 제거된다고 한들 정치인으로서 심각한 타격이 될 수 밖에 없는 손해들이니까요. 가장 최악의 상황으론 양진리 사건 연루자들의 입을 모두 막아버리기 위해 김도진과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이런 식의 시나리오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진행되기엔 무리가 있을 것같고 차라리 이동휘가 팔콘을 버릴 수 밖에 없는 결정적 사건이 있었기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보는 수 밖에 없을 것 합니다. 대충 환멸을 느꼈다는 식의 대사가 있었지만 군수업체가 그런 곳인 줄 모르고 일을 한 것은 아닐테니 말입니다.
대통령이 양진리 사건의 진실을 폭로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잃게 된 것은 대한민국의 절대 권력과 동료들의 목숨입니다. 재신 호텔에 모였던 다섯명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절대권력자들 입니다. 경제계 거물인 재벌 총수 김도진, 정치인의 우두머리인 여당 대표 민현기, 군사력의 핵심인 참모총장 권재연과 대한민국 정보의 총책임자인 국정원장 변태훈까지. 그들이 함께 작당을 하면 없는 죄도 만들어낼 수 있고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데 이미 팔콘의 개 노릇을 한 적이 있는 이동휘 따위가 무서울리 없습니다. 국민의 절대지지를 얻은 대통령이라도 끌어내릴 수 있는 권력입니다.
게다가 이동휘의 자리를 대신할 인물은 대한민국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정치의 목적은 이상도 신념도 아닌 정권이라고 했던가요? 한때 이동휘의 정치적 동지로 이동휘의 비서실장으로 일하던 신규진(윤제문)은 어떻게든 정권 만은 유지하겠다는 생각으로 권재연을 살해합니다. 처음부터 이동휘와 신규진의 목적이 달랐던 것도 있지만 이동휘는 국민에게는 빚을 져도 같은 정당의 신규진에게는 빚을 진 것이 없다는 태도입니다. 신규진은 김도진을 찾아가 직접 협상하고 이동휘의 자리를 자기 것으로 예약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최고의 권력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합니다. 그때까지는 권력자의 개가 되어 참고 견디면 된다고 생각하고 모든 걸 가졌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한 민국의 절대권력자들은 '개'를 길들이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만 해내면 권력과 자유라는 먹이를 줄 것이라 유혹하지만 권력의 도움으로 힘을 얻은 사람은 그 힘을 발판으로 올라서기는 커녕 또다시 그 힘에 발목이 잡혀 노예가 되고 맙니다. 김도진 역시 세계적인 권력의 개라는 생각이 들죠.
이동휘가 제거되면 신규진이라는 개가 다시 길들여질 것이고 되돌리겠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발을 뺄 수 없게 되버립니다. 신규진은 자신이 김도진의 협력자로, 당당한 동업자로 스스로 그들의 비공식모임인 5인위원회에 입성했다고 생각하겠지만 힘을 얻기 위해 권력과 타협한 사람은 또다시 권력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운명 입니다. 그들의 일원이 되어 기득권이 되면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또 자신으로 인해 파괴될 것들이 안타까워서라도 공범자가 되고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절대권력이 그들의 단단한 아성을 지켜온 비결이죠.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아마 이동휘 역시 처음에는 한기준이나 암살을 시도한 함봉수(장현성)처럼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팔콘이 아무리 무서운 곳이라도 돈을 벌면 나머지는 모두 눈감고 모른척하자고 했겠죠. 그러나 한기준이 리철규(장동직) 소좌의 폭로로 자신이 북한에 건낸 돈이 남한 사람을 죽인 목숨값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뒷조사를 시작했듯 이동휘에게도 어느 순간 죄책감과 동시에 책임감이 생겼을 것입니다. 돈의 유용함을 알게 된 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 거듭나게 된 것처럼 권력의 단맛에 길들여졌던 권력자가 진실을 파헤치는 투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 입니다. 그 계기를 준 인물이 한기준이었을까요?
처음부터 권력과 야합해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좋겠지만 세상에는 권력과 타협해 더러운 때를 숨기고 가는 사람이 뒤돌아서서 제자리로 돌리려는 사람 보다 더욱 많습니다.비록 죄를 지었더라도 입다물고 사는 권력자 보다는 되돌리려는 사람이 낫다는 이야기죠.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변심할지 모르는 리철규 소좌의 움직임이나 액션신이나 추격신, 미스터리와 음모도 흥미롭습니다만 딱 한마디로 꼬집어 정의내릴 수 없는, 이상하게 현실에서 본 것같은 친근감이 느껴지는 대통령 이동휘에게 시선이 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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