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칠곡계모사건, 분노 보다는 아동학대 대책에 집중할 때

Shain 2014. 4. 1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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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자주 폭행하던 아이가 복막염으로 죽자 아이의 언니에게 살인 누명을 뒤집어 씌우다니 - 최근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는 '칠곡 계모 살인 사건'의 내막을 찾아보다 작년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게 되었습니다. 2013년 11월 30일 방송된 919회의 제목은 '검은 집 - 아홉 살 소원이의 이상한 죽음'이었습니다. 링크를 누르면 지금도 해당 방송을 다시보기할 수 있습니다. 옛날부터 나이드신 어른들은 어린아이가 부모 보다 일찍 죽었을 때 저 아이가 일찍 죽을 팔자라며 부모를 위로하곤 하지만 시사프로그램에 가명으로 등장한 소원이는 일찍 죽을 운명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비명횡사한 것이고 소원이가 당한 일은 어디까지나 살인이란 범죄일 뿐이죠.

안전한 곳으로 가고 싶었던 아이는 왜 탈출하지 못했나? 지금이야 말로 대책을 세울 때.




오랫동안 고모 내외가 키워오던 소리, 소원(가명) 자매를 친아버지와 함께 살게 했던 건 계모가 친어머니 못지 않게 아이들을 위해 준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고마운 마음에 고모 부부는 집도 주고 냉장고를 비롯한 가구도 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계모가 앞뒤다른 사이코패스로 아이들을 위하는 척 하면서 죽도록 때리고 학대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동생 소원이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썼던, 또다른 학대 피해자인 언니 소리가 거짓 증언을 하던 시기였기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최근 추가로 밝혀진 내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처음에는 관련 기관의 무능을 탓했는데 속사정을 보니 아동센터나 학교, 이웃 등에서 아이들에게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담당 교사는 몇번 신고를 했고 가정방문도 했습니다. 불쌍하게도 아이 본인이 직접 신고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관계기관과 경찰은 멍자국은 있지만 아이와 부모가 다친 것일 뿐 폭행은 아니라며 부인하고 아이를 폭행하는 걸 직접 목격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에 한발 물러섰습니다. 현행법상 아이가 학대당하고 있다는 심증이 있어도 관계 법령상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원이가 죽고 아이들의 아버지는 고모의 돈으로 적립한 적금을 찾으려 시도했고 가해자인 계모는 주민들을 속여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모으는가 하면 소리에게도 계모를 석방해달라는 탄원서를 쓰게 했습니다. 폭력에 길들여진 소리는 동생을 자신이 죽였다는 자발적인 증언으로 계모를 돕는가 하면 자신의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정신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최근 친아버지와 격리되고 보호시설로 옮기면서 그간의 사실을 진술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를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는 말에 소름이 돋더군요.

소리는 왜 소원이를 죽였다고 거짓말할 수 밖에 없었는가? 보호받고 싶은 소리의 선택.


인터넷은 지금 아이 아빠와 계모를 사형시키란 여론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아이가진 부모가 아니라도 사회적 약자인 어린아이를 무자비하게 폭행한 부모의 범죄가 경악스럽게 다가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 마다 아이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이런 사회구조가 신물나도록 싫습니다. 의붓자식에게 소금을 먹여 죽인 '울산 계모 살인사건' 때도 그랬듯이 아동 범죄가 발생할 때 마다 죽이라는 여론만 빗발치고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여론의 눈치를 보며 형식적으로 강력한 형벌을 구형하는 것으로 사건이 종료되고 그만입니다.

아동학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최소한 신고가 들어왔을 때 부모와 아이를 강제 격리할 수 있는 권리가 담당자에게 있어야 합니다. 경찰의 권리와는 별개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고유 권한이 인정되어야한다는 것이죠. 또 친권과 양육권을 가져올 권리가 있는 친어머니에게는 왜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냐는 아이 엄마의 호소에서 알 수 있듯 아동보호기관에서 경찰을 비롯한 관련 기관에 아이의 상황을 조사할 수 있는 권리도 주어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아동 보호 체계는 국가가 학대받는 아이들을 책임지기 싫어서 최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배제하는 구조입니다. 충분한 예산도 없는 상황이라죠.

형사고발까지 진행한 교사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아동기관은 왜 부모와 강제 격리할 수 없었나?




과거에도 아동학대는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이지 않아서 계모가 아니라도 폭행당하는 아이들은 많았습니다. 경찰은 당연히 가정폭력에 개입하지 않았고 눈 앞에서 아이를 폭행해도 아이를 떼어놓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친권, 양육권 문제도 문제지만 그 아이를 부모와 격리한다고 쳐도 아이를 맡기고 보호할 시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찰도 아이를 책임질 수 없어서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다시 가해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칠곡 사건의 계모를 사형시켜도 아동범죄를 최우선으로 정책을 개선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구조되지 못할 것입니다. 계모에 대한 분노 여론이 아동학대 방지와 아동보호 관련 제도 개선으로 어서 빨리 옮겨가지 않으면 또다른 아이들이 무관심 속에서 죽어갈 것입니다. 몇번이나 구조 요청을 했지만 묵살당할 수 밖에 없었던 지금 상황, 아이의 아버지는 폭행을 항의하는 교사에게 오히려 교육청에 신고할 것이라 협했다고 합니다. 센터 쪽에서도 보호시설 때문에 쉽게 격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죠. 담임교사는 작년 7월 형사고발까지 진행했으니 분명 최선을 다 했습니다.

사이코패스 부모에게 태어나는 건 아이의 운이지만 아동 범죄 대책은 얼마든지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인터뷰를 시도하던 아이 아버지는 계속해서 취재진을 피했습니다. 그때는 거짓 자백을 했던 큰딸 아이가 부모와 격리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아이 아버지는 고모 부부가 아이를 데려가려 해도 반대했습니다. 비정상적인 아버지와 계모를 만난 것은 자매의 불운이었지만 보호기관이 개입했다면 아이는 얼마든지 살 수 있었습니다. 학대받는 아이들을 살리고 싶다면 계모를 처벌하는 일 보다 아동학대 관련법과 보호시설의 자원을 확보하는 일이 훨씬 시급합니다. 지금은 오히려 언론의 피해 아동 취재 열기 때문에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수준이라는데 어서 빨리 언론의 관심이 제도 개선에 집중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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