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옛날처럼 태어난 곳에서 죽 살아가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국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태어나긴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국적은 미국인 사람들도 많지요. 그런데 타고난 인종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정서적인 국적은 쉽게 바뀌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미국에 오래 살아도 한국 정서를 가진 재미교포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 혼자 산다'의 파비앙은 그런 점에서 참 신기한 프랑스인이죠. '필요없는 물건은 제게 버려달라'는 식의 한국식 유머도 곧잘 하고 꼼꼼한 음식 솜씨나 알뜰한 살림살이는 딱 한국 자취생입니다. 파비앙에게는 한국인 자취생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공감 포인트가 있습니다. 김광규가 그 또래 혼자남의 대표적인 모습이라면 파비앙은 그 또래 자취생의 표본이라 할 수 있죠.

국적도 나이도 다른 김광규와 파비앙. 두 사람이 서로에게 공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 혼자 산다'의 김광규는 1967년생이고 파비앙은 1987년생입니다. 두 사람의 나이차이가 딱 20살이니 파비앙과 김광규는 국적 차이만 있는게 아니라 적잖이 세대차이도 느낄 법한 무지개 회원들이죠. 그러나 이사를 앞두고 파비앙을 불러 쓰지 않는 살림살이를 나눠주는 자취 선배 김광규와 김광규가 나눠준 물건들을 득템 상자에 넣어 카트로 끌고가는 파비앙의 모습은 정서적으로 많은 공감한 사이처럼 느껴졌습니다. 국적과 나이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주부 본능이 그들을 더욱 가깝게 한 것같더군요. 전현무의 집에서 요리하던 파비앙 하루이틀 갈고 닦은 솜씨가 아니었죠.

사실 지난번에 파비앙의 중고 TV 구매과정을 보고 프랑스 사람들의 합리적인 구매 경향을 떠올렸습니다만 그것도 프랑스 사람들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필요하다고 바로바로 사지 않고 장기적인 구매계획을 세웠다는 말도 놀라웠고 남들 다 가진 TV를 갖췄으니 살 건 다 샀다는 식의 태도도 참 기특했습니다. 많은 연예인들이 유명해지기도 전에 품위유비지 운운하며 사치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모델 파비앙의 알뜰함이 더욱 다가왔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생활력이 강한지 보면볼수록 착실하고 부지런한 자취생 파비앙입니다.





김광규도 밥도 손수 지어먹고 청소도 하는 등 나름 살림을 잘하기는 하지만 허전한 마음을 홈쇼핑으로 달래느냐 집에 불필요한 물건이 좀(많이?) 있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전세대란 때문에 좀더 작은 집으로 이사가야하는 김광규가 이사 비용 견적을 내고 홈쇼핑에서 충동구매했다는, 한번도 써보지 않는 프라이팬을 꺼내놓는 장면은 참 웃기더군요. 집에서 요리를 직접 해보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사놓고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파비앙이라면 아까워서 못샀을테지만 경제적 여유도 연령대도 다르니까 같은 '주부 본능'이 이런 식으로 차이가 나는 거겠죠.

'주부 9단'들의 살림살이 나누기 과정도 남달랐습니다. 연예인이라고 풍족하게 쓰지도 못하고 그동안 없는 돈 쪼개서 사모은 옷들을 안 입으니까 나눠주고는 싶은데 평소에 입는 옷을 주자니 아깝거나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자면 김광규는 연예인치고 옷이 적은 편이죠. 세일할 때 사고 안입은 삼각 팬티에 파비앙에게는 기장이 너무 짧은 정장, 입고 다니기는 힘든 요란한 무늬의 셔츠와 단추없는 오천원짜리 청바지를 건내주는 김광규. 그러나 파비앙이 원하는 것은 눈이 동그래질 만큼 비싼 아이템은 아니었습니다. 김광규가 20년 전 입던 대학교 학생회 티셔츠를 스타일이 멋있다며 가져가는 파비앙의 모습도 참 따뜻해 보였죠.

처음 만났을 땐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사이였는데 살림을 나누며 형성된 주부 본능의 공감대.


고기 구워먹는 프라이팬과 뚜껑이 넓고 깊숙한 프라이팬, 정작 홈쇼핑으로 구매한 김광규는 쓰지 않지만 파비앙은 일부러 돈주고 사기엔 아까운 아이템들이었겠죠. 말그대로 주부 본능 자취생의 '득템'입니다. 살림바보 전현무와는 달리 김치전을 구우며 얼음물을 넣으면 더 바싹해진다는 파비앙의 조언과 능숙하게 김치전을 굽는 김광규에겐 그 짧은 시간에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김광규는 프랑스 사람이 막걸리가 당기고 비오는 날 이사가면 좋은 일 많이 생긴다는 프랑스 사람의 한국적 발언에 신기해하다가도 한국에 처음 와서 사기 당하고 출연료도 못 받았다는 파비앙의 말에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낍니다.

자신이 느낀 솔직한 감정을 상대방이 기분나쁘지 않게 전하는 파비앙과 타국에 건너온 이방인 청년이 자신과 똑같이 험한 일을 겪었다는 사실(어떻게 둘 다 소속사가 출연료 떼먹고 사라지나요)에 돌봐줘야겠다는 감정을 느끼는 김광규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뭐 나이와 국적과 외모만 다르지 혼자 살면서 스스로를 챙겨야했던 외로움과 막막한 연예계 생활을 맨몸으로 시작했다는 험난함에서는 두 사람 모두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외국인이 자기 집에 있다는 사실에 잘 적응하지 못하던 김광규가 한국 젊은이들처럼 과일을 사오고 지리도 잘 아는 모습에 친근감을 느끼더니 이내 말이 잘 통하는 사이가 됩니다.

똑같일을 겪은 자취 후배를 보며 떠올린 과거. 시청자 역시 두 사람의 공감을 보며 동질감을 느낀다.




외지에서 올라와 혼자 도시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한번쯤 선배(?) 자취생에게 그릇이나 가전제품같은 작은 것들을 얻어쓴 경험이 있을 겁니다. 정신적인 휴식이 필요한 이정의 제주 생활이나 너무 바빠서 집에서 잠만 자야하는 전현무, 소소한 일상을 풍경으로 만들길 즐기는 김민준도 좋지만 그런 생활은 초보 자취생에겐 머나먼 꿈이고 현실은 벅찬 집안일과 살림살이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집은 좁기만 합니다. 외국에서 온 파비앙이 현실 자취생의 모습을 보여줄 거라곤 방송전엔 상상도 못했고 이제는 적당히 자리잡은 연예인 김광규도 그 점에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제 두 사람이 보여준 의외의 공감이 시청자들에게도 현실적으로 와닿는 건 그런 동질감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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