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추리극의 범인은 보통 1, 2회에 등장한다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이야기의 한 축인줄만 알고 있었던 장면 뒤에는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비밀이 숨겨져있곤 하죠.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사형제도를 반대했던 미스터 저스티스 한지훈(김태우)은 응큼한 야망을 숨긴 속물이었고 한지훈에 맞서 사형집행을 주장하던 김남준(강신일) 대통령 후보의 친구 이명한(주진모)은 대통령 당선을 위해 살인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한 무서운 악마였습니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기억이 끊기는 기동찬(조승우)은 기동호(정은표)가 이수정(이시원)을 안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꾼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기동찬이 잠든 샛별이(김유빈)를 안고 물속에 들어가는 장면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 시청자들은 틀림없이 주인공들과 같은 장면을 본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가끔은 등장인물들의 상상이었고 가끔은 전후사정이 생략된 장면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시청자들은 속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타임워프해서 샛별이가 죽기 14일 전으로 돌아온 김수현(이보영)과 기동찬은 많은 사실을 바꿨습니다. 이번에는 샛별이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확실히 드러났고 샛별이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기동찬은 다시 한번 샛별이를 안고 무진 저수지에 갑니다.
결국 샛별이는 살았지만 기동찬은 죽습니다. '신의 선물' 결말을 보고 시청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물에 뛰어드는 장면이 없었으니 동찬이 죽은게 아니라고도 했고 기동찬 역시 이명한이 꾸민 음모의 피해자인데 죽는 것은 너무 억울한 것은 아니냐는 말도 나왔습니다. 김수현의 등장으로 모든 음모가 까발려졌는데 왜 꼭 기동찬이 죽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기동찬의 선택은 1회에서 이수정 엄마(이연경)가 이야기한 '운명'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아무리 애써도 막을 수 없는 '운명'이 있다는 이야기죠.
타임워프 이후 김수현과 기동찬은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샛별이가 손가락을 베일까봐 막았는데 샛별이는 다른 방식으로 다쳤고 타임워프 전처럼 김수현이 때린게 아닌데도 영규(바로)가 가지고 다니던 카메라는 깨졌습니다. 차봉섭(강성진)이야 죽이려고 노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죽는 것이 이해가 가지만 손가락을 베이는 것이나 카메라가 깨지는 일은 누군가 의도한 일도 아니고 그럴 이유가 없는 일인데 일어났죠. 김신유가 찍힌 오래된 사진은 이번에도 샛별이 손에 들어왔습니다. 운명은 끈질기게 따라붙습니다.
터기동찬은 무진저수지에서 타임워프 전의 기억이 떠오른 것과 동시에 그 순간 단추를 잡아떼는 샛별이가 살아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타임워프 전에도 샛별이의 유품 중 기동찬의 단추가 발견되었습니다. 동찬을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이명한과 영부인 박지영(예수정)이 음모를 꾸미지 않아도 기동찬이 살아있는 한 샛별이의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 한다'는 건 공존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운명을 말하는 것었고 기동찬은 단추처럼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운명을 바꾸려면 기동찬이 죽어야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모든 죄를 떠안고 대통령 자리에서 하야하는 김남준, 엄마(박혜숙)과 함께 샛별이의 손을 잡고 무진 저수지를 바라보는 김수현, 기동호가 감옥에서 풀려나자 환하게 웃으며 달려가는 이순녀(정혜선)와 영규. 아마도 마지막 장면은 기동찬이 마지막에 꿈을 꾼 것일 수도 있고 기동찬이 죽고 난 후 꼬였던 운명의 매듭이 풀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김수현에게는 딸의 생명을 살리는 '신의 선물'이 된 셈이고 기동찬에게는 샛별이를 죽인 자신의 죄를 되갚는 '신의 선물'인 셈입니다.
때문에 기동찬을 응원하던 시청자들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결말을 선물하고 가게 되었지만 말입니다.전체적으로 지나치게 기억해둬야할 복선과 등장인물이 많고 단서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신의 선물 14일'은 불친절한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곤 했습니다. 마지막 장면 역시 시청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모성애'입니다. 내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거는 지독한 모성애와 내 아이를 살리기 위해 남의 아이를 죽이는 이기적인 모성애의 대립. 아동범죄를 소리높여 비난하면서도 정작 아이를 꼭 도와줘야할 순간에는 외면하는 현대사회의 냉정함. 그 사람들의 욕심과 운명이 모두 모이면 아이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됩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할 이유가 있고 특히나 어린이는 더더욱 보호받아야 한다'는 김수현의 외침은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마주치는 현실은 그렇지가 않죠. 말 잘 듣는 아이와 공부 잘 하는 아이 이외에는 모두 관심 밖이고 아이가 너무 나댄다며 아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납치된 아이를 애타게 찾는 부모를 보면서도 부모가 간수를 못해서 그렇다고 비난합니다. 혼자 있는 아이를 아무도 돕지 않습니다. 문신남 황경수(최민철)나 김수현은 그런 상처를 아는 부모들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묘사하는 상황이 아이 때문에 불안한 우리 나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같아서 종종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리 부모라고는 해도 영부인(예수정)이나 문신남, 김수현의 행동이 모두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죠. 그들은 '어머니 이야기' 속 어머니들처럼 내 아이를 위해 희생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유괴하고 죽이려던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신남은 부모이기에 생명을 위협받으면서도 샛별이를 도망치게 했습니다. 어머니 혼자 아이를 살리려 싸울 때 모두 방관자가 되거나 더욱 괴롭힙니다. 드라마 속 많은 어른이 내 욕심과 아이 사이에서 욕심을 선택할 때 어떤 어른은 자기 목숨을 내놓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지만 피해자인 기동찬은 달랐습니다. 결국 기동찬의 마지막 선택은 목숨까지 내놓는, 어른들의 '희생'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사실 '신의 선물'은 지금도 검색이 몰려들어올 정도로 화제성 높고 조승우, 이보영이라는 배우의 저력이 드러난 드라마입니다만 시청률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컨텐츠파워지수 1위를 차지했지만 경제적으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수치입니다. 장르물의 가능성과 한국 드라마의 발전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작품이지만 안타깝게도 시청률 수치만 보면 한국 TV 시청자들은 아직까지 대중성높고 편안한 드라마를 선호한다는 걸 결과적으로 증명한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말을 두고 의견이 분분해도 실험적인 면, 참신함 그리고 한드의 고질병인 멜로가 없었다는 점에서는 가산점을 주고 싶은 드라마입니다. 그동안 재미있게 시청했고, 생방송 드라마 촬영으로 고생했을 제작진의 뚝심을 칭찬해주고 싶네요.
'한국 드라마 이야기 > 한국 드라마 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텔킹, 아모네 차재완의 비극 어디까지 눈치챘나? (0) | 2014.07.06 |
---|---|
진짜 '개과천선'이 필요한 곳은 어디일까 (4) | 2014.06.26 |
신의 선물, 샛별이를 살릴 사람은 문신남이 아닐까 (1) | 2014.04.22 |
신의 선물, 대통령 손녀를 잡은 김수현 실망스러웠던 이유 (0) | 2014.04.16 |
신의 선물, 네메시스 문신남과 샛별이 엄마 김수현의 공통점 (2) | 2014.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