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9시 35분쯤 '뉴스룸' 손석희 앵커가 신해철씨의 사망 소식을 속보로 전해주더군요. 이미 그보다 이른 시간에 인터넷으로 이미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읽었지만 손석희 앵커가 전해주는 그의 사망소식은 옛 기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손석희 앵커가 MBC에서 '100분 토론'을 진행하던 그때 400회 특집 방송에 신해철씨가 출연했습니다. 맞습니다. 그 사람은 음악인으로서는 드물게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는, 그런 열정을 가진 뮤지션이었죠. 덤덤하게 사망소식을 전하던 손석희 앵커도 한때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자주 마주쳤던 그의 죽음을 두고 많은 생각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마왕 신해철이 남긴 흔적이 어디 한두가지던가요.
생각해 보면 꽤 오래 마왕을 봤습니다. 굳이 88년 데뷰 무대였던 대학가요제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의 음악은 줄곧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시대의 대세였다는 서태지 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라디오나 시디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음악에 위로 받았고 라디오 DJ를 하며 들려준 목소리에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곤 했습니다. 마왕이라는 별명을 얻기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할 때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들려준 뉴트롤스의 'Adagio'는 여전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중 하나입니다.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노래들. 어린 시절에 웅얼거리며 따라불렀던, 신해철의 솔로 앨범에 담긴 노래들도 좋았지만 신선했던 넥스트 시절의 음악도 사랑했습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OST는 또 어떻구요. 잠깐이지만 연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유투브에는 마왕의 옛날 노래들을 찾아듣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노래 마다 담겨있는 많은 추모의 글들 - 그의 노래가 있어서 한 시대가 행복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감사하고 있고 저 역시 그들 중의 하나입니다. 마왕이라는 뮤지션이 이렇게 금방 떠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넥스트 시절 앨범에 담긴 'The Dreamer'를 좋아했습니다. 시디에 담아놓고 여러번 반복해서 듣던 노래죠. 다소 우울하고 절망적이면서도 마왕이 늘 말하던 '꿈'에 대한 열정이 넘쳐나던 노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 7월 21일에 비정상회담에 출연해서도 신해철은 꿈에 대해서 이야기했죠. 한때 음반을 내기 위해 모든 걸 다 걸었던 그 시절, 돈도 없이 꿈만 쫓는다는게 어떤건지 직접 경험했던 마왕은 아직 젊은 외국인 청년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았을 것입니다. '꿈'의 의미도 열정도 말입니다. 음악이라는 꿈은 마왕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목표였을 것입니다.
팬들은 그를 마왕이라 했고 교주라 불렀습니다. 마왕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런 음악인 신해철이 노무현 대통령 지지 연설을 하고 지지 광고를 찍었을 때도 이건 신해철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음악은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신해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행동에 동의했기에 그를 더욱 인정하고 가까이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그를 술병에 빠지게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날카로움이 번득이던 그를 '큐트한 아저씨'로 변신시킨 세월을 원망할 뿐이었죠.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스스로를 '큐트한 아저씨'라 부르는, 이제는 많이 둥글둥글해진 마왕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나이먹는 그의 음악도 계속 해서 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나이든 신해철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히든싱어'나 '속사정 쌀롱'에서 자칭 아저씨의 입담을 보고 싶었죠. 그런데 그의 팬이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고 시간에 지쳐가는 동안 마왕은 떠나버리고 말았네요. 가장 아쉬운 것은 늙어가는 그를 더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도 마왕이 노래하던 꿈과 열정은 영원히 그 이미지 그대로 남아 있으리란 것입니다.
지금 SNS와 유투브, 인터넷 포털은 신해철의 과거 행적들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한때 마왕이 그랬다나요. 99년에 발표한 '민물장어의 꿈'이 자신의 장례식 때 흘러나올 곡이라고. 그 앨범을 낼 때 굉장히 힘들어 했다는 이야길 기억합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정말 슬픈 음악이고 처절한 가사인데 이 노래에 위로가 되는 걸 보면 역시 마왕의 노래가 가진 힘은 위대한 것같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은 얻었으려나요. 그가 죽은 마당에 따뜻한 독설가나 천재 뮤지션이란 수식어 보단 그의 노래 한곡이 신해철을 더욱 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퇴임하고, 서거했던 그 시대에 그랬습니다. 그를 지지했던 연예인이나 호감을 표시했던 연예인들은 대부분 튕겨나가듯 방송에서 퇴출되곤 했습니다. 그들을 전문적으로 욕하는 SNS 계정도 있었습니다. 날카로운 독설가가 큐트한 아저씨로 변신하는 동안 우리 시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꿈을 쫓고 진심을 내보이면 무자비한 상처를 입는 시대입니다. 모든 걸 무디게 만드는 이 시대, 관심을 가지면 상처받는 이 시대, 그 누구 보다 용감하게 음악이라는 꿈을 쫓았고 시대를 공감했던 그에게 정말 감사했습니다.
지금도 말할 수 없는 나의 꿈과 비밀과 나이먹는 만큼 늘어가는 생채기를 그의 음악에 위로받던 시절이 있었고 요즘도 종종 그의 음악을 꺼내 들으며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감정을 느낍니다. 오늘 밤에는 마왕의 팬들이 마왕의 음악을 들으며 상심을 달래고 유투브에 댓글을 달며 당신을 추억합니다. 병원에 누워있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 그래도 돌아올 줄 알았어요. 다시 노래할 줄 알았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버렸네요. '설레이는 소년'처럼 음악을 만나 '민물장어의 꿈'을 꾸던 영원한 마왕.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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