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믿어지지 않지만 - 작년 2014년 8월 1일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레 찾아온 이별에 당시에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같습니다. 바쁜 장례 절차로 눈코뜰새 없이 바빴고 수목장을 치르기로 결정해 허겁지겁 선산의 적당한 나무를 찾느냐 분주히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멍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어째서 장례식에 많은 사람이 모이고 시끄럽게 식사를 대접하는지 알 것도 같더군요. 장례라는 건 정말 복잡한 절차였습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정신줄을 놓지 않고 어떻게든 해야할 일을 하려면 가족 외의 다른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수의에 묶여 관속으로 들어가는 어머니를 보며 '우리 엄마 답답한 거 싫어하시는데'라며 몇번씩 중얼거린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그때까진 어머니를 잃었다는 현실이 그리 와닿지 않았던 것같기도 합니다. 기약없는 시간이지만 언젠가는 엄마를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잠깐 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머니가 떠났다는 걸 마음 속으로 계속 부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장례 절차를 치르면서도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죠. 장례를 치른 다음 며칠 동안은 가족들로 소란해서 혼자 울 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없다는 현실은 끊임없이 깨달아야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면 언제나처럼 어머니가 계실 것같고 점심 먹을 때가 되면 뭐 해먹자고 부를 것같고 밤에는 창문 잘 닫고 잠금장치 확인하라고 한번씩 말씀하실 것같은 어머니의 존재감 - 장례 이후 두어달 동안은 멀쩡하게 평소처럼 하던 일을 했지만 - 하루에도 몇번씩 엄마가 이 시간에 어딜 갔나 하는 생각에 현관 밖을 멍하게 쳐다보게 되더군요.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떠나신 그 길을 말입니다.


물론 어머니의 부재 이후 제가 해야할 일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집안 곳곳에 방치되어 있던 물건들을 치우고 청소하고 가끔은 아버지의 일을 도와야 했습니다. 유난히 반찬투정이 심하신 아버지와 갈등하며 밥을 차려드리는 일은 전혀 쉽지 않았고 삶고 두들기고 햇빛에 말려야하는 빨래삶기는 번거로웠습니다. 엄마가 평소에 이렇게나 많은 일을 했구나 느낄 새도 없이 그 시간은 그냥 흘러 갔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머니가 떠나신 길을 바라보며 하는 일 없이 앉아있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가더군요. 그런데 그렇게 어머니가 가신 방향을 바라보던 또 하나의 식구가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집의 늙은 개였죠.


시골 외딴 집은 큰 개를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딴 집은 평소에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낯선 사람에게 무방비하게 노출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큰 개들은 멀리서 낯선 사람이 다가 오면 짖어서 알려주기도 하고 가끔씩 집 주변으로 접근하는 야생동물들을 경계하기도 합니다. 하얗고 덩치가 제법 크던 그 개는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 그런 목적으로 같이 살게 된 식구였습니다. 나이도 열살, 늙었다면 늙은 개였지만 늘 기운이 넘쳐서 늙었다는 티는 별로 나지 않았죠. 점점 마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저는 그 개가 나처럼 어머니가 떠나신 그 방향을 넋놓고 쳐다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말귀는 알아듣지만 말도 안 통하는 개에게 도대체 어떻게 어머니의 죽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도 잠시 - 그 개에게 밥을 챙겨주는 식구는 어머니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나 제가 번갈아 사료를 챙겨먹이고 물을 갈아주곤 했으니 그 개에게 밥을 챙겨주던 사람이 궁금했던 건 아닐 겁니다. 그 녀석은 제가 주는 간식과 밥을 잘 받아먹었고 애교도 잘 부렸고 더위에 말랐던 몸은 적당히 살이 붙었습니다. 어느새 밥을 챙겨주고 마당에 앉아서 그 녀석과 길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가끔은 우리 집을 염탐하는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기도 하고 택배나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인사도 하면서 그렇게 여름이 가더군요. 그때까진 그래서 그 녀석도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괜찮은 게 아니었습니다. 늦가을이 되어 이제는 겨울이 오겠구나 싶었던 어떤 날 그 개는 갑자기 쓰러져 누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사료를 먹지 않길래 걱정되어 나가 보니 이미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고 한 시간 거리의 동물병원이 모두 문을 닫은 시간이라 죽이라도 먹이려 챙겨 나갔더니 눈빛은 이미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디가 아픈 걸까. 이리저리 알아보다 다시 나가 보니 그 녀석은 죽어 있었습니다. 이 야속한 녀석은 마지막 순간에 제가 가져다 준 죽과 물을 조금 먹었던 모양이더군요. 그때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예전에 어머니 아버지가 일주일 동안 해외 여행을 갔을 때 이 녀석은 다른 식구들이 챙겨준 사료도 안 받아먹던 놈이란 기억이 말입니다.


부모님은 워낙 덩치가 크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이 녀석을 동물 병원이나 다른 가족들에게 맡길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가까운 곳의 식구들이 먹을 걸 챙겨주기로 했습니다. 그 개는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도 식구들을 알아볼 정도로 영리했고 식구들이 주는 밥은 경계하지 않고 먹었습니다. 그랬던 녀석이 어머니가 집을 비우자 속으로 전전긍긍했던 것입니다. 동물에게 같이 살던 사람의 부재를 설명할 방법 따윈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보이지 않자 그 녀석은 그 고통을 참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사실을 마음 속으로 부정하고 싶었던 저는 그 개의 죽음에 장례식 때 보다 더 큰소리로 울고야 말았습니다. 이제 다시 어머니를 볼 수 없다는 걸 그 녀석의 죽음과 함께 인정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 녀석이 죽었다는 걸 알고 아버지가 그러시더군요. 원래 똑똑한 개들은 주인이 죽으면 따라 죽는다고 말입니다. 재작년에 작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 집에서 키우던 개가 한달 만에 죽더랍니다. 10년 동안 함께 지내던 어머니의 죽음을 견딜 수 없었던, 애가 끓었을 그 녀석의 마음에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네가 사람 보다 낫다는 말이 나오더군요. 혹시 '죽음'의 의미를 조금만 설명해줄 수 있었더라면 그 녀석은 슬픔을 견뎌냈을까요? 저는 그럴 것같지 않습니다. 그 녀석과 달리 어머니의 죽음을 애써 부정했던 이유는 정말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면 참을 수 없을 것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정하지 않으면 언젠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나이들어 죽을 순간이 다가오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걸까. 인간은 이렇게 잔꾀가 많은 동물이라 지고 갈 수 없는 슬픔을 외면하기도 하지만 그 녀석은 3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어머니를 기다리다 결국 죽어버렸습니다. 그 녀석은 죽어서 엄마를 따라 그 길로 갔을까요?


그 또래 어머니들이 그러셨듯 우리 어머니도 고생 참 많이 하셨습니다. 드세고 말 함부로 하는 시어머니와 어쩔 수 없는 옛날 사람인 아버지. 딸을 많이 낳았다는 죄 아닌 죄로 제사까지 지내느냐 몸을 쉴 틈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다잡기가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어머니와 같이 먹던 음식, 같이 갔던 곳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아직 못해드린게 더 많은데 너무 일찍 세상을 등져버린 어머니가 안타깝기만 합니다. 오늘도 작년 그날처럼 바람한점 없는 쨍쨍한 날입니다. 오늘도 하릴없이 마당을 서성일 것 같네요. 하염없이 바라보고 바라봐도 그 길을 걸어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게 살아있는 자식의 몫인가 봅니다. 일년이 지났어도 보내 드리기 싫은 어머니 - 많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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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hminami
    2016.12.15 00:15 신고

    무심코읽다가
    가슴이먹먹 눈물이 나더이다.
    저도 10살되는 애완견있는데~
    내가없음 문밖만 바라본다해서
    누군가 먼저간다는거
    남은사람의 그리움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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