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유나의 거리

유나의 거리, 마지막회가 끝나도 궁금할 그 사람들 이야기

Shain 2014. 11. 11. 11:28
728x90
반응형

개인적으로 어떤 드라마든 마지막회는 번외편 또는 보너스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뒷이야기가 궁금한 시청자들을 위한, 일종의 팬서비스랄까요. 전체 드라마의 완성도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고 굳이 알려줘야할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지만 유난히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한국 시청자들을 위해 추가된 장면들이라 이런 말입니다. '유나의 거리' 주인공인 유나(김옥빈)의 의붓아버지(한갑수)가 창만(이희준)을 불러 사회적 기업을 만들겠다고 제안하는 장면은 어쩌면 사람은 가난하든 모자라든 못됐든 함께 어울려 살아야한다는 작가의 바람이자 팍팍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판타지를 덧붙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유나가 바닥식구를 떠나지않고 인간적인 유대를 이어가듯이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살길 바라는 마음인거죠.


다세대주택 문간방을 떠나게 된 장노인. 장노인이 숨겨둔 돈과 통장은 깍쟁이같던 홍여사를 울리고야 만다.


이렇게 좋아했던 드라마 JTBC '유나의 거리'가 마지막회를 맞고 보니 캐릭터 한사람 한사람의 사연들이 유독 눈에 밟히고 떠나보내기 싫은 마음이 듭니다. 양로원으로 떠나는 장노인(정종운)의 모습을 보며 다세대 주택 사람들이 남몰래 눈물을 훔쳤듯 '유나의 거리'를 떠나보내기 아쉬운 팬들도 꽤 많은 것같습니다. 성질부리며 창만을 부려먹던 만보(이문식)가 장노인을 떠나보내며 울먹이고 늘 이속만 차리고 깍쟁이같던 홍여사(김희정)가 장노인이 숨겨둔 돈을 찾아낸 후 펑펑 우는 모습은 사람이 늘 못된 것만도 아니고 늘 착한 것만도 아니라는 간단한 깨달음을 전해줍니다.


공중파에서 보는 흔한 드라마에서 그들은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조폭 출신으로 피붙이 하나 없이 혼자 살게 된 장노인의 사연이나 배운 거 없이 조폭이 되어 말년에 콜라텍 사장으로 성공한 만보의 사연, 호스티스 출신으로 동생들을 먹여살리고 검사로 성공시키고 만보의 후처로 들어온 홍여사의 지난 이야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공감이 가지 않을 것이고 감동을 주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나의 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재미없다는 이유로 흔한 드라마들이 생략했던, 조연 캐릭터의 서사(敍事)가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도시의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닙니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 하나하나의 사연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술한잔 마시면 내가 살아온 삶이 한편의 드라마고 소설이라며 한탄하는 어르신의 주사처럼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사연이 있고 드라마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주인공이나 잘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홀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사연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죠. 어떤 면에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기엔 너무나 지치고 바쁜 현대인들이기도 합니다.


'유나의 거리'가 가진 최고의 장점은 가볍게 스쳐지나던 거리의 캐릭터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탄생시켰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엄마와 헤어진 소매치기 유나의 사연 만큼이나 꽃뱀으로 생계를 꾸리던 미선(서유정), 마약 중독자인 사장 부인 헤숙(김은수)과 야반도주했던 페인트공 변칠복(김영웅)의 이야기도 드라마틱합니다. 한때 조폭 두목과 부하들로 인연을 쌓은 장노인과 만보, 밴댕이(윤용현), 독사(홍석연)의 인연도 결코 평범하진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범죄자들'이라 부르며 하찮게 여기던 사람들에게도 드라마가 있고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정신없는 노인네가 꽁꽁 숨겨놨던 돈을 놓고갔지 뭐냐


'유나의 거리'에는 짧게 등장하는 캐릭터는 있어도 하찮은 조연은 없습니다. 유명 장물아비였다가 이제는 남수(강신효)를 마음잡고 살게 하려는 고물상할아범(기정수)의 애틋한 마음이나 남자친구가 성실히 살길 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엄마 병원비 때문에 지갑을 터는 윤지(하은설), 아무 생각없이 지갑을 털다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찬미(김윤주), 소매치기 아내 양순(오나라)과 결혼해 노래방을 운영하는 봉달호(안내상), 미선의 물주 곽사장(최범호)을 가로챘던 진미(주민경)가 미선을 찾아온 사연은 흔한 사랑타령이 아닌데도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못된 곽사장이 응징을 당할까 저절로 궁금해지곤 하죠.


'미생'같은 직장인 드라마가 아닌 이상 요즘 제작되는 드라마 속 캐릭터는 현실감이 없다고들 합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도 아니고 그들의 행동에 공감이 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유나의 거리' 캐릭터 역시 소매치기나 조폭이라는 면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캐릭터고 요즘은 다세대 주택에서 오손도손 모여 사는 사람들도 드문 시대긴 합니다만 착한 남자 창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그들의 이야기는 묘하게 현실감이 있습니다. 그들의 직업은 유별나도 그들이 내뱉는 대사나 티격태격하며 갈등하는 모습은 현실에서 탄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착한 남자 창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공감가는 이야기.


자살로 죽어버린 세입자의 의자를 얻어 대문 앞에 앉아 하는 일없이 거리를 바라보는 노인네와 여행에서 사들고 온 젓갈을 이웃에 사는 독거노인에게 건내주는 여자, 폐지를 얻기 위해 2시간 길을 걸어오는 할머니와 폐지값 10원을 깎으려 아웅다웅하는 고물상 주인, 편의점 앞에서 소주 한잔을 하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일용직 노동자와 월급 200에도 부자가 됐다고 느끼는 월세방 남자, 매달 나오는 자원봉사자와 기초생활 수급비를 기다리는 독거노인의 낡아빠진 살림살이, 빚지고 도망간 가게 주인에게 월급을 떼인 청년, 말하는 것 마다 밉쌀맞고 눈치없는 이웃집 노총각 등. 어디서 한번쯤 들어본 현실 속 이야기에 때론 웃고 때론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홍여사가 장노인 방에서 찾은 돈은 지난 17회에서 콜라텍에서 춤추다 쓰러져서 응급실로 실려갈 때 창만이에게 말해줬던 그 돈일 것입니다. 머리맡 쪽 장판에 숨겨놓았다는 현금 200만원과 통장을 결국 홍여사가 발견한 것입니다. 까맣게 잊고 있던 그 돈이 이렇게 나타날 줄 누가 알았을까요. 장노인을 우리가 모실 수는 없다며 딱 잘라 말하던 홍여사가 그렇게 펑펑 울 줄 누가 알았을까요.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장노인이 지갑 속에 숨겨둔 가짜 비아그라처럼 늘그막에 의지할 유일한 자금이자 목돈인 그 돈을 만복네에 주려 일부러 남겨둔 것일까요 아니면 기억을 지워버렸을까요.


드라마가 끝나도 궁금할 것같은 그들의 사연과 뒷이야기.


초등학교 때 친하던 친구가 멀리 전학가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고 가끔씩 먹을 거 챙겨주던 이웃집 사람이 이사가면 요즘은 뭐하는지 궁금하고 가끔 술한잔하던 동네 친구가 안 보이면 어디갔는지 묻고 싶은 것처럼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마치 현실 속의 이웃처럼 친근감이 들고 가깝게 느껴집니다. 마지막회가 끝나도 장노인은 양로원에서 잘 살고 있는지 유나는 윤지나 찬미, 남수가 딴생각 못하도록 잘 챙겨줄려는지, 창만이는 봉달호와 함께 열심히 소매치기들을 설득하고 다니는지 참 보고 싶을 거 같아요. 지금까지 본 드라마 중에 이렇게 조연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한 드라마가 있었나 싶습니다. 오늘밤 방송된 마지막회가 두고두고 생각이 날 것같습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