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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앞에서는 천하의 손석희도 깍쟁이가 된다

Shain 2014. 12. 1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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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이 되면 JTBC '뉴스룸'에 유명인사들이 출연한다. 호세 카레라스, 제이슨 므라즈같은 외국 뮤지션들부터 서태지, 한석규, 염정아같은 한국 연예인들까지 - 손석희 앵커의 인터뷰는 끊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출연하는 멤버도 의외지만 기존의 인터뷰에서 볼 수 없는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된다는 것이 재미있다. 어제 출연한 배우 김혜자도 그랬다. 배우 한석규도 '선배님'이라 깍듯하게 부르는 손석희를 김혜자는 '깍쟁이'로 만들었다. 김혜자와 손석희야 말로 '국민'이라는 수식어에 가장 알맞는 사람들이지만 '국민 엄마'라는 호칭이 좋지 않다는 김혜자는 '국민 앵커'를 손아래 막내동생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고 있었다. 평소에 단정한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도 인터뷰를 진행하는 손석희 앵커가 어제는 장난꾸러기처럼 보였을 정도니까.


손석희 앵커의 '모르겠다'는 대답에 '진짜 깍쟁이 같아'라고 발언하는 김혜자. 천하의 손석희도 김혜자 앞에서는 깍쟁이였다,


사람들 마다 배우 김혜자를 기억하는 장면이 다를 것이다. 80년대에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전원일기(1980)'의 어머니 역할을 기억할 것이고 '전원일기'를 잘 알지 못하는 젊은 세대는 배우 원빈과 함께 찍은 영화 '마더(2009)'를 기억할 것이다. 손석희 앵커는 배우 김혜자를 보며 무하마드 알리를 떠올렸다.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였던 무하마드 알리가 한국을 방한했을 때 - 손석희 앵커가 80년대라고 했지만 무려 1976년의 일이다 - MBC에서 알리의 도착을 중계하고 스튜디오에 알리를 출연시켰다. 손석희는 알리에 대한 김혜자의 반응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여배우들처럼 시끄럽지 굴지 않던 김혜자의 모습이 인상에 남았던 모양이다.


나는 '주연이 아니면 잘 출연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김혜자를 새롭게 봤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읽으면 주인공 아니면 출연하지 않는다는 탑스타의 똥고집(?)같기도 한 이 발언은 읽으면 읽을 수록 정말 괜찮은, 배우의 자존심이 담긴 발언이었다. 연극 무대 출신으로 소년 역할부터 사나운 할머니 역할까지 해내는 김혜자는 연기 폭이 꽤 넓은 배우 중 하나지만 시청자들이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머니'에 국한된 경우가 많았다. 90년대 이후 TV 속 어머니 역할은 대개 주인공의 역할을 보조하기 위한 병풍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캐릭터의 정체성도 감정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주인공의 결혼을 무조건 반대하는 역할을 했던 시절이다.











물론 위의 발언은 한 드라마나 영화의 조연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가니?' 아니면 '왔니?' 정도가 고작인 어머니 역 보다 캐릭터가 선명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일 뿐 - 조연을 하더라도 '배우의 매력 포인트를 잘 끌어내는' 감독과는 작품을 같이 하겠다는 그의 자존심이 너무나 멋지게 다가왔던 것이다. 60대 여배우 중(지금은 70대이지만) 누군가 한 사람은 이 정도의 자존심을 지켜줘도 괜찮은 것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지금도 소녀처럼 세상을 받아들이는 김혜자라면 그런 출연원칙이 꽤 어울린다.


여배우라면 일정한 삶의 패턴이 있기 마련이다. 젊을 때는 온 국민이 기억하는 스타로 떠받들어지다가 중년이 지나면 슬슬 조연급으로 밀려나고 나이들면 시청자에게 잊혀질까봐 두려워하는 배우들이 더 많다. 때로는 악독한 시어머니 역할이나 인자한 어머니 역할로 이미지가 고정되어 다른 역을 맡을래도 맡을 수가 없는 상황도 생긴다. 그러나 배우 김혜자는 기자들에게 자신을 '어머니'라는 수식어로 고정하지 말아달라 부탁하고 지금도 여전히 겹치기 출연을 하지 않고 여름에는 촬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납득이 가지 않는 역할은 허락하지 않는다. '머더'의 주인공 역할을 위해 감독이 5년을 설득했다는 이야기는 진짜 배우의 자존심이 뭔지 확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배우의 원칙을 고집하는 김혜자의 자세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왔다.


최근에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영화에서는 개를 키우는 '마귀할멈'같은 할머니 역을 맡은 모양인데 얼마전 김헤자는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모노 드라마를 공연한 적이 있다. 백혈병에 걸린 10세 소년 오스카를 비롯해 다양한 역할을 혼자 소화해낸 그녀에게 다양한 역할을 맡을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 '전원일기' 이후 계속해서 비슷한 역할로 TV 출연을 강행했더라면 이런 얼굴을 볼 수는 없지 않았을까? 어제 인터뷰를 보니 누군가는 아집이라 폄하했던 그녀의 자존심이 친근하고 고마웠다.


토론에서는 그 어떤 기센 패널에게도 거침없던 손석희가 그런 김혜자 앞에서 무장해제가 된 모습이다. 내 기억으로는 김혜자가 대본에 있는 내용 그대로 인터뷰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고 했다. '영화가 이상하면 홍보할 수 없다'느니 손석희를 보며 '되게 깍쟁이인데 나한테는 안 그러시니까' 재미있다는 발언은 아마도 준비된 내용이 아니라 인터뷰 중에 즉흥적으로 나온 말이리라. 연륜없는 앵커라면 '깍쟁이'라는 말에 당황스러웠을 법도 한데 손석희 앵커는 금새 인터뷰를 주도하던 입장이 아니라 누나와 대화하는 막내동생의 자세로 김혜자를 다시 이끌어간다. 손석희 앵커에게 '깍쟁이'라는 말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는 배우도 처음인 것같다.


'제가 왜 깍쟁이입니까' 배우 김혜자의 깍쟁이 발언은 꽤 오래 기억될 듯하다.


김혜자는 '소녀같다'는 말이 칭찬이 아닌 것같다고 했지만 생각해보면 배우는 다양한 역할을 받아들이기 위해 감성을 갈고 갈아야 한다. 나이들어서도 버리지 않은 순수한 면이 연기의 기본 베이스가 된다는 것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오스카'라는 소년 역할을 해내는 배우가 세상에 그리 많겠는가. 좋은 배우에게는 좋은 자질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연기를 고수하기 위한 고집도 필수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집스런 여배우의 자존심이 평범한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는데 그의 미소는 손석희 앵커 뿐만 아니라 시청자도 설득한다. 저 정도의 여배우라면 그런 자존심을 지켜도 괜찮다고 납득이 되는 것이다.


JTBC '뉴스룸'에서는 늘 흘려들을 수 없는 심각한 기사들이 올라온다. 정치, 경제, 사건사고 등 하나도 허투루 들을만한 내용이 없다. 1시간 내내 딱딱한 얼굴로 뉴스를 지켜보다 2부의 인터뷰 코너에서는 흐뭇하게 웃곤 한다. 다소 엉뚱하고 다소 수다스러웠던 손석희 앵커와 배우 김혜자와의 인터뷰는 정말 오랫동안 기억이 날 것같다. 흔치 않은 여배우와 흔치 않은 앵커의 만남도 특별한데 그 인터뷰의 내용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제가 왜 깍쟁이입니까?'라고 반문하는 손석희 앵커의 모습이 한동안 여러 시청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것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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