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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변명을 하자면, 이제 스스로 시들해진줄 알았던 MBC 선덕여왕에 대한 열기가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모 신문이 지적한 대로 현 시대 상황을 비유하는 날카로운 명대사들 때문인지 '종부세' 인상과 부유층의 반발이 연상되는 드라마 장면장면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시대적인 소재를 드라마에 잘 요약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것이 바로 대중문화, 드라마의 진정한 기능 아닐까?
자기 욕망을 가진 여자 미실,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미실이 악녀스러운 구석이 있긴 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그녀는 기본 자질 만은 갖춘 셈이다. 대표 귀족으로 설정된 그녀는 진보 연합을 연상시키는 철딱서니 김춘추와 신생 덕만, 알천랑의 토호세력, 가야계의 김유신을 모두 맞서야하는 운명에 처했다. 귀족인 미실에 대항해 백성을 자신의 기반으로 두겠다는 선덕여왕의 야심이 단단해질수록 미실의 최후는 가까워진다.
정식 사서 속 인물이 아닌 미실이 진평왕 23년(606), 설원랑이 미실 대신 병에 걸려 죽을 때 쯤 은퇴했을 것이고 진평왕 36년(614) 절에서 비구니로 사망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했었는데 드라마상에서 그 부분을 어찌 처리할 것인지 곧 밝혀지지 않을까 한다. 지금 분위기로는 미실 세력이 진지왕을 폐할 때 화랑과 귀족 세력을 이용했듯 원상화 칠숙과 화랑 석품을 앞세워 반란을 주도하지 않을까 한다. 과연 무엇을 명분으로 삼았을까?
삼국사기에 기록된 이찬 칠숙(柒宿)과 아찬 석품(石品)의 반란은 아주 단촐하다. 반란의 이유도 제대로 적혀 있지 않고 칠숙과 석품이 과거 어떤 신분이었는 지도 알 길이 없다. 다만 칠숙의 이찬이라는 벼슬이 진골만 오를 수 있는 관등인 것으로 보아 상당히 높은 귀족 신분이라는 것을 짐작 가능하다. 미실의 사망은 진평왕 36년경으로 추정했지만 칠숙의 난은 진평왕 53년에 일어난 일이다. 선덕여왕이 후계로 지명되었을 때 쯤으로 짐작 가능하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칠숙 석품의 난
칠숙은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왕에 가까운 신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왕의 왕위 계승을 반대할 만한 명분이 있었기에 골품제의 신라에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목을 베이고 구족을 멸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처자식이 보고 싶어 찾아왔다 죽었다는 석품의 최후도 만만치 않게 마음이 아프지만, 반란 전에 그들을 진압했다는 부분은 여왕을 반발하는 귀족들에 대한 사전 기선 제압으로도 보인다.
드라마에서 설정한대로 미실은 귀족 세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고 선덕여왕 즉위 전과 이후에 일어난 반란은 진골 세력이 선덕여왕의 세력에 도전하는 의미를 갖는다. 유능한 정치인 미실의 최후로는 이만한 도전이 없지만 자신의 수족과 명예를 다 자르는 한판 승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정치사에 대한 작가의 각종 설정들이 미실의 최후에서 빛을 발하리라. 비담은 또 어떤 인물로 거듭나게 될 것인가.
칠숙, 석품의 난을 기점으로 화랑세기에서 두각을 보이는 인물이 바로 염장이다. 진흥왕의 아들 천주공, 그리고 진지왕의 아내 지도태후가 낳은 염장은 용춘공의 형제로 화랑이 된다고 적혀 있다(바담이 용춘의 형제로 설정된 것처럼 이 부분이 드라마와 다르다). 보종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인물로도 유명한데 이 칠숙의 난을 성공적으로 진압하여 선덕여왕과 한패가 되었다.
역사를 빗댄 미실과 선덕여왕의 정치적 대결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미실은 진정 '신라'를 위한다는 대의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자신의 기준에서 최선을 다 했고 스스로의 부정한 무리들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러나 정치계로 입문한 선덕여왕 역시 사심으로 가득찬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무리로 섞어놓게 된다. 왕이 될 욕심을 가진 김춘추와 가야계의 부흥을 꿈꾸는 월야 등이 그들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욕심많은 염장의 합류이다.
용춘의 형제이던 염장은 선덕에게 붙어 칠숙의 난을 다스리고 발탁되었다. 화랑세기 기록에 의하면 여왕이 즉위하자 김유신과 김춘추에게 재물을 대주고 관직에 올랐으며 사적인 치부를 쌓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염장의 집을 수망택(水望宅)이라고 불렀는데 금이 들어가는 모습이 홍수와 같단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령이 좋아 화랑들을 잘 다스리고 김유신, 보종을 비롯한 화랑 친구들과 잘 어울린 모양이다. 비담의 짝으로 설정된 염종이 그 역할을 대신할 듯 하다.
즉위를 앞둔 마지막 난관, 미실의 대항을 기점으로 선덕도 하나의 세력으로 신라에 들어설 것이다. 과연 칠숙과 석품의 난이 어떻게 묘사될 것인지 기대되는 바가 크다. 설원랑 혹은 세종은 미실을 대신해 오늘밤 죽음을 맞을지도 모른다. 오늘밤 시청할 수 있는 분량일지 알 수 없지만 미실의 대범하고 장렬한 최후를 기대해본다. 과연 미실새주는 김춘추와 덕만공주의 자극 받아 최후엔 어떤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인가.
최근 받은 충격으로 자신의 최후를 준비하느냐 바쁜 미실 새주. 신라의 실질적인 권력자.
자기 욕망을 가진 여자 미실,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미실이 악녀스러운 구석이 있긴 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그녀는 기본 자질 만은 갖춘 셈이다. 대표 귀족으로 설정된 그녀는 진보 연합을 연상시키는 철딱서니 김춘추와 신생 덕만, 알천랑의 토호세력, 가야계의 김유신을 모두 맞서야하는 운명에 처했다. 귀족인 미실에 대항해 백성을 자신의 기반으로 두겠다는 선덕여왕의 야심이 단단해질수록 미실의 최후는 가까워진다.
정식 사서 속 인물이 아닌 미실이 진평왕 23년(606), 설원랑이 미실 대신 병에 걸려 죽을 때 쯤 은퇴했을 것이고 진평왕 36년(614) 절에서 비구니로 사망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했었는데 드라마상에서 그 부분을 어찌 처리할 것인지 곧 밝혀지지 않을까 한다. 지금 분위기로는 미실 세력이 진지왕을 폐할 때 화랑과 귀족 세력을 이용했듯 원상화 칠숙과 화랑 석품을 앞세워 반란을 주도하지 않을까 한다. 과연 무엇을 명분으로 삼았을까?
칠숙 석품의 난리 일어날 동안 설원랑은 미실을 대신해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삼국사기에 기록된 이찬 칠숙(柒宿)과 아찬 석품(石品)의 반란은 아주 단촐하다. 반란의 이유도 제대로 적혀 있지 않고 칠숙과 석품이 과거 어떤 신분이었는 지도 알 길이 없다. 다만 칠숙의 이찬이라는 벼슬이 진골만 오를 수 있는 관등인 것으로 보아 상당히 높은 귀족 신분이라는 것을 짐작 가능하다. 미실의 사망은 진평왕 36년경으로 추정했지만 칠숙의 난은 진평왕 53년에 일어난 일이다. 선덕여왕이 후계로 지명되었을 때 쯤으로 짐작 가능하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칠숙 석품의 난
53년(631) 봄 2월에 흰 개가 궁궐 담장에 올라갔다. 여름 5월에 이찬 칠숙(柒宿)과 아찬 석품(石品)이 반란을 꾀하였다. 왕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칠숙을 붙잡아 동시(東市)에서 목베고 아울러 구족(九族)을 멸하였다. 아찬 석품은 도망하여 백제 국경에 이르렀다가 처와 자식을 보고싶은 생각에 낮에는 숨어 있고 밤에는 걸어 총산(叢山)에까지 돌아와, 한 나무꾼을 만나 옷을 벗고 해어진 나무꾼의 옷으로 갈아입고 나무를 지고서 몰래 집에 이르렀다가 잡혀 처형되었다.
출처 : 네이트 한국학
삼국사기에 기록된 대로라면 이찬이란 벼슬은 진골에게만 가능하다. 칠숙은 신분이 높은 귀족이었다. 드라마상 미실에게 충성하지만, 연인인 소화를 두고 어떻게 떠나갈 것인가.
칠숙은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왕에 가까운 신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왕의 왕위 계승을 반대할 만한 명분이 있었기에 골품제의 신라에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목을 베이고 구족을 멸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처자식이 보고 싶어 찾아왔다 죽었다는 석품의 최후도 만만치 않게 마음이 아프지만, 반란 전에 그들을 진압했다는 부분은 여왕을 반발하는 귀족들에 대한 사전 기선 제압으로도 보인다.
드라마에서 설정한대로 미실은 귀족 세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고 선덕여왕 즉위 전과 이후에 일어난 반란은 진골 세력이 선덕여왕의 세력에 도전하는 의미를 갖는다. 유능한 정치인 미실의 최후로는 이만한 도전이 없지만 자신의 수족과 명예를 다 자르는 한판 승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정치사에 대한 작가의 각종 설정들이 미실의 최후에서 빛을 발하리라. 비담은 또 어떤 인물로 거듭나게 될 것인가.
처자식을 보러왔다 잡혀죽은 것으로 기록된 석품.
칠숙, 석품의 난을 기점으로 화랑세기에서 두각을 보이는 인물이 바로 염장이다. 진흥왕의 아들 천주공, 그리고 진지왕의 아내 지도태후가 낳은 염장은 용춘공의 형제로 화랑이 된다고 적혀 있다(바담이 용춘의 형제로 설정된 것처럼 이 부분이 드라마와 다르다). 보종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인물로도 유명한데 이 칠숙의 난을 성공적으로 진압하여 선덕여왕과 한패가 되었다.
역사를 빗댄 미실과 선덕여왕의 정치적 대결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미실은 진정 '신라'를 위한다는 대의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자신의 기준에서 최선을 다 했고 스스로의 부정한 무리들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러나 정치계로 입문한 선덕여왕 역시 사심으로 가득찬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무리로 섞어놓게 된다. 왕이 될 욕심을 가진 김춘추와 가야계의 부흥을 꿈꾸는 월야 등이 그들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욕심많은 염장의 합류이다.
선덕여왕의 발목을 잡을 욕심많은 염종은 이번 미실의 난으로 공을 세운다.
용춘의 형제이던 염장은 선덕에게 붙어 칠숙의 난을 다스리고 발탁되었다. 화랑세기 기록에 의하면 여왕이 즉위하자 김유신과 김춘추에게 재물을 대주고 관직에 올랐으며 사적인 치부를 쌓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염장의 집을 수망택(水望宅)이라고 불렀는데 금이 들어가는 모습이 홍수와 같단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령이 좋아 화랑들을 잘 다스리고 김유신, 보종을 비롯한 화랑 친구들과 잘 어울린 모양이다. 비담의 짝으로 설정된 염종이 그 역할을 대신할 듯 하다.
즉위를 앞둔 마지막 난관, 미실의 대항을 기점으로 선덕도 하나의 세력으로 신라에 들어설 것이다. 과연 칠숙과 석품의 난이 어떻게 묘사될 것인지 기대되는 바가 크다. 설원랑 혹은 세종은 미실을 대신해 오늘밤 죽음을 맞을지도 모른다. 오늘밤 시청할 수 있는 분량일지 알 수 없지만 미실의 대범하고 장렬한 최후를 기대해본다. 과연 미실새주는 김춘추와 덕만공주의 자극 받아 최후엔 어떤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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