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근초고왕

근초고왕, 2년 동안 요서 정벌?

Shain 2010. 12. 1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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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를 다룬 드라마, KBS '근초고왕'은 백제에서 쫓겨나 요서로 향하는 부여구(감우성)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가 고난을 딛고 세력을 형성한 후 백제 제 13대 어라하의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이 이후의 이야기가 되겠지요. 의붓형제들과 조정대신들이 등을 돌리고 외가인 진씨 일가들까지 부여구를 버려 그는 백제를 떠나는 즉시 죽어야하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요서에 닿기전에 그의 목숨을 제거하기 위해 부여산(김태훈)과 해건(이지훈)이 직접 동행합니다.

백제가 요서지방을 다스렸음(요서 경락설)을 기록한 책은 중국 사서(양서, 남제서)입니다. 그러나 중국 사서 기록에도 차이가 있고 해당 지역에 유물이 발견되지 않는 등 증거가 불분명해 국사학계는 백제의 요서 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이라 각종 사서를 두고 추측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죠. 이 드라마는 방영전 '환서대백제' 이야기를 꺼내어 화제를 몰고 왔습니다.


학계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는 부분이니 과감히 백제가 그곳까지 군사를 진격시켜 고구려와 맞서며 정복했다고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KBS 근초고왕'은 이 부분에 대한 해법으로 요서 지역에 흑강공 사훌의 가업인 소금장원이 있다 설정했고 근초고왕의 제 2왕후를 부여 마여왕의 후손인 위홍란(이세은)으로 설정합니다.

드라마 상에서 백제 계왕 부여준(한진희)이 왕위에 등극하자 마자 부여구가 위서로 쫓겨났으니 백제 계왕이 왕위에 등극했던 2년 동안 부여구는 요서를 최소한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행보를 보여줘야 합니다. 요서 지방의 최강자가 근초고왕 부여구의 동료이거나 부하여야 한다는 뜻이죠. 단 두 명의 호위무사 만을 데리고 백제를 더난 부여구는 2년 안에 모든 걸 해낼 수 있을까요.



13회에 처음 나타난 제 2왕후 위홍란

지금까지의 드라마 '근초고왕'은 비류왕의 지목으로 어라하의 위를 당연히 받아야할 부여구가 어떻게 요서로 다시 쫓겨나게 됐으며 고구려 고국원왕 사유(이종원)와의 원한이 깊어진 이유를 설명합니다. 부여구가 어릴 때부터 부여준의 딸 부여화(김지수)를 사랑했듯이 고국원왕 역시 부여화에게 집착했고 그 이유 때문에 백제와 고구려의 갈등이 깊어짐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죠.

근초고왕이 요서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인물이 제 2왕후 위홍란의 오빠인 위비랑(정웅인)의 존재가 되겠군요. 후에 '한산후(漢山侯)'에 봉해지며 요서군공 대도독 직위에 오르는 위사좌평이라 하니 백제의 고위직이자 왕의 최측근이 되는 인물입니다. 현재 비류왕의 위사좌평이던 둘째 왕자 부여휘(이병욱)가 왕의 위사군을 다루며 백제의 운명을 좌우했단 걸 기억하실 겁니다.


위비랑 마여왕의 종손이자 부여의 왕족이란 설정은 같은 시조를 공유함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겠으나 약간은 생뚱맞기도 합니다. 언젠가 동부여를 재건하겠다는 의지로 고구려에 원한을 갖고 있고 부여유민을 단합해 '단범회'라는 집단을 만들고 동부여를 재건하겠단 꿈을 키웁니다. 백제의 왕자를 납치해 소금장원 청하원을 얻어보고자 수적(해적)질을 하다 부여구와 처음 만납니다.

단범회의 회주인 붉은 도끼 위비랑. 빠르기는 바람과 같고, 치고 빼앗을 때는 불같이 하고, 숨을 때는 어둠 속에 잠긴듯 하다가도, 움직일 때는 벼락치듯 한다. 정웅인이 맡은 위비랑의 캐릭터는 코믹하기도 하고 진중하기도 해서 좋은 사극 캐릭터를 탄생시킬 것 같습니다.

남장을 하고 등장한 위홍란의 모습이 익살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어느새 사극에 익숙해진 배우 이세은의 모습을 부각시켜줬습니다. 오늘 방송편에선 위홍란의 남장을 부여구가 알게될 것입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근초고왕의 제 1왕후가 진씨가 될 지 부여화가 될 지 알 수 없으나 요서의 공주라 할 수 있는 위홍란의 존재는 드라마의 한쪽 아귀를 맞춰줄 짝이 되겠네요.



부여구가 2년 동안 해결해야할 일들

부여구는 백제의 분열을 원치 않는다며 비류왕을 독살했다는 자백을 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존중하던 외삼촌 진고도(김형일)와 둘째 형님 부여휘가 칼을 맞대고 싸우는 모습은 백제가 둘로 갈라진다는 뜻과 같고 어머니 진비 진사하(김도연)가 애써 자결한 의의가 없어 누명을 쓰기로 한 것입니다. 요서로 가 있는 동안 이 누명을 벗길 만한 업적을 보여야 합니다.

고구려로 간 부여화는 진연에게 제 1왕후를 납치당한 고국원왕의 유일한 왕후로 부여구가 '다시 찾으러 오겠다'고 했지만 전쟁이라도 하기전엔 곱게 찾아올 수 없는 인물입니다. 어제 방송에서 사유는 부여구와 부여화가 과거 어떤 사이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근초고왕이 왕위에 오르기전 부여화로 인한 갈등이 고조되어야 고국원왕이 백제를 침입할 충분한 근거가 생기게 됩니다.


고국원왕은 단순히 왕후 부여화가 계왕의 딸이고 근초고왕이 왕후의 옛애인이란 이유 만으로 백제를 침략하려 했을까요? 부여화를 두고 좀 더 복잡한 사건이 발생하는게 수순인듯 합니다. 계왕의 왕위 계승과 연결된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죠. 계왕과 고국원왕 사이에서 좀 더 극적인 상황이 발생해야 목숨을 걸고 고구려로 쳐들어온 이유가 설명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년이란 시간 동안 '성숙'해야한다는 점은 물론이고 부여찬(이종수)를 비롯한 해비 해소술(최명길)의 세력, 해씨 집안의 세력과도 맞설 수 있는 무력과 경제력을 갖춰서 돌아가야합니다. 짧다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근초고왕의 기반이 다져지겠죠. 근초고왕 29년의 재위 기간 중 말년이 고국원왕과의 전쟁에 치중하고 있으니 전체적으로 이 초년기 이야기의 비중을 어느 정도로 배분할 지 모르겠네요.

지금은 죽을 처지가 되어 요서로 떠나지만 2년 뒤엔 왕이 되기 위해 백제로 돌아올 것입니다. 수적 위비랑과의 만남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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