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근초고왕

근초고왕, 고국원왕은 사이코였을까

Shain 2010. 12. 1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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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부여구(감우성)은 쫓겨난 왕자였기에 백제의 어라하가 되겠다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해본 적이 없는 변방의 인물이었습니다. 왕자로서 그만한 야망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냐고 반문했지만 형들을 거스르고 싶지도 않았던 거죠. 그런 그가 변한건 생전 처음 부정을 보여준 아버지 비류왕(윤승원)의 눈물 때문입니다. '백제가 너를 필요로 한다'니 얼마나 근사한 명분입니까.

역사 속 반란이나 쿠데타를 관찰해 보면 소위 영웅이란 인물들의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말만으로는 국민에게 설득력을 얻을 수 없습니다. 대놓고 나라를 얻어 입신양명하겠노라 선언하는게 공감하기 쉬울 정도입니다. 많은 문학작품과 영화들이 그 영웅들이 꼭 대권을 차지해야했던 이유를 놓고 시나리오를 씁니다. 어떤 성장과정을 거쳐야 이 영웅의 권력이 정당화될 지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백제를 부강하게 만든 근초고왕 부여구의  '삼국사기' 기록은 이런 영웅담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비류왕의 둘째 아들로 왕위에 올랐으니 첫째 왕자와 왕위를 겨뤘겠구나 짐작할 수 있고 계왕이 2년 만에 단명했으니 계왕과도 모종의 대립을 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극중 부여찬(이종수)으로 불리며 태자라 설정된 첫째 왕자는 아예 이름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실제 소금장수였다 기록된 왕은 고구려의 미천왕입니다.

KBS '근초고왕'은 계속 해서 부여구에게 왕위를 이어야할 동기를 부여합니다. 아버지는 암살당하고 어머니 진비(김도연)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결하고, 할아버지 흑강공 사훌(서인석)은 손자를 살리기 위해 부여준(한진희) 앞에 머리를 찧어가며 조아립니다. 연인은 고구려왕 사유(이종원)의 연인이 되어 멀리 떠나갔고 형제들이 모두 등을 돌렸습니다. 더군다나 외가인 진씨들 마저 등을 돌렸으니 사회적 명망도 땅에 떨어져버렸네요.


고국원왕의 인생은 자체가 드라마

살기 위해 백제의 분열을 막기 위해 진고도(김형일)와 진승(안재모), 진정(김효원) 앞에서 내가 비류왕을 죽였노라 자백한 근초고왕의 고난은 모두 창작이지만 고국원왕 사유(쇠)의 인생은 그 자체가 드라마입니다. 딱히 영웅이 되기 위한 창작도 필요도 없이 그 과정만 그려도 극적이란 생각이 드는군요(물론 소금장수를 하다 왕위에 오른 미천왕의 인생엔 못 미치지만요).

미천왕 15년에 태자가 됐고 미천왕이 즉위 32년 만에 별세하자 왕위에 오릅니다. 미천왕이 평민으로 왕위에 올라 낙랑과 대방을 점령하며 바쁘고 고된 나날을 살았다면 고국원왕은 그 뒷처리를 하느냐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각종 성을 보수하고 평양성을 증축하는 등 국경선을 지키고 적대적인 연나라와의 외교도 신경써야 했죠.

339년에 연나라의 모용황은 고구려를 침입해 고구려를 크게 대파하고 돌아가는 길의 미천왕의 시신을 파헤쳐 가져가고 고국원왕의 어머니와 아내를 인질로 잡아갑니다. 고국원왕은 이 모든 치욕을 감당하며 피끓는 심정으로 나라를 다스립니다. 이후 아우의 나라로 예를 갖추고 조공한 후 아버지 미천왕의 시신은 되찾았지만 여전히 어머니와 왕후는 볼모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계왕의 등극이 344년이니 부여화와 혼인한 건 왕후가 잡혀간지 5년 뒤쯤으로 설정되겠군요. 극중 고국원왕은 소수림왕 구부의 어머니이자 연나라에 잡혀 있다는 제 1왕후를 언급하며 구부에게 제 2왕후 부여화(김지수)를 어머니라 부르지 말라 합니다. 제 1왕후의 존재는 사랑하는 사람은 아닐 지 모르지만 수치의 상징이자 고국원왕이 고구려를 부강하게 키워야할 이유가 되었겠죠. 기록에 의하면 355년에 간청해 모후 주씨를 되돌아오게 했다고 합니다.

결국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무릎을 꿇었던 진연은 370년 전진에게 패하고 고국원왕의 복수도 끝이 납니다. 자신의 손으로 연나라를 물리치고 북방으로 나아갈 꿈을 꾸었을 고국원왕은 사실 후반기에 자신을 애먹인 백제 보다는 진연에게 훨씬 더 많이 쏠려 있지 않을까 싶네요. 집권 말기엔 드라마처럼 백제의 근초고왕과 계속 대립하다 근초고왕에게 화살로 죽습니다. 결국 그의 아들과 손자들이 백제를 정복함으로서 복수에 성공하지요.



참고 인내하는 고국원왕은 사이코?

고구려를 위해서라면 비겁하고 비열한 짓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극중 고국원왕의 캐릭터는 극중에서 아직까지 이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부여화에게 한눈에 반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진연 보다 백제에 더 비중을 두는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왕후의 자리가 10년 이상 비어있었으니 부여화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죠. 제 1왕후처럼 다시 빼았기고 싶지 않기에 자존심을 세우며 집착하는 것일 겁니다.

고구려는 위에서는 진연이 아래에서는 백제와 신라가 압박하는 등 미천왕의 전쟁으로 넓어진 땅을 지키기 위해 버티는 왕이 필요했습니다. 다음주에 등장할 동부여 왕족의 후손이라는 위비랑(정웅인)은 부여를 재건하기 위해 고구려를 적대시하는 요서 쪽의 인물이죠. 위비랑의 동생인 위홍란(이세은)이 바로 근초고왕의 제 2왕후가 되는 여성입니다. 고구려에겐 또다른 적이 등장한 셈이네요.


진연에게 당한 수모를 참고 견딘 고국원왕의 운명은 사이코이기 보다는 '비운의 영웅'에 가깝습니다. 첫눈에 반한 부여화를 옆에 두고 제 1왕후로 세우기 보단 진연에 잡혀간 아들의 어머니 제 1왕후를 반드시 되찾아와야 합니다. 그런 그를 가로막는 근초고왕과의 대립구도는 적절하지만 근초고왕의 인생 대부분이 창작인 것에 비하면 역사가 선명한 인물이라 어쩐지 더 점수를 주고 싶기도 합니다.

이건 아무래도 드라마 속 '만들어진 영웅'에 대한 반발이겠지요. KBS의 삼국 영웅 시리즈는 백제는 근초고왕,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신라는 김춘추를 선정했다고 합니다. 김춘추에 비해선 광개토대왕이나 근초고왕에 대한 사료가 부족한 편이라 한 인물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선 적으로 선정된 다른 인물의 악역은 어쩔 수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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