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문화

데니스는 통화 중, 익명성을 고민하다

Shain 2011. 1. 1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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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빅뱅이론(Bing Bang Theory)'의 사슴눈 쉘든(짐 파슨스)은 괴짜에 너드로 함께 어울리는 주인공들 말고는 친구가 거의 없습니다. 자신의 친엄마 조차 인정한 그의 특이함이지만 쉘든은 종종 자신에게도 '친구가 150명' 이상 있다고 강력하게 우기곤 합니다. 바로 페이스북 이웃이 자신의 친구라는 것이죠. 그들 중 만나본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엔 당연히 침묵하는 쉘든.

물론 페이스북 친구가 친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죠. 최근엔 자주 쓰지 못하지만 저 역시 '트위터' 팔로잉은 천명이 넘었습니다. '미투데이'라는 서비스에도 제법 많은 '미친'이 있었고 한때 한국사회를 강타했던 '싸이월드' 이웃은 인터넷의 유행을 바꿔놓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PC 통신이 대중화되고 인터넷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인터넷 이웃의 개념을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데니스는 통화 중(Denise Calls Up, 1995)'의 트레일러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화를 붙잡고 모든 일을 해결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번도 만나거나 모임을 갖지 않습니다. '데니스는 통화 중(Denise Calls Up, 1995)'을 처음 봤을 때는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을지언정 잘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그러나 '전화'라는 도구를 '인터넷'으로 바꿔놓고 보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됩니다.

사람은 원래 얼굴을 마주 하고 의사소통을 하던 존재들이지만 문화가 만들어진 이래 인간은 계속해서 소통을 보조하는 수단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종이가 없던 시절에도 편지를 주고 받기 위한 수단을 궁리했고 전화가 생기기 전에도 보다 빨리 '대화'를 전달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이제는 핸드폰과 인터넷, 화상 전화 등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디에라도 연락할 수 있는 시대가 됐죠.



엉뚱한 관계를 보여주는 영화

주인공 데니스는 아이를 갖고 싶지만 시간이 바빠 정자 은행을 통해 임신을 하고 그 아이의 아빠 마틴의 정보를 몰래 알아내 전화합니다. 마틴은 얼굴도 한번 못 본 여자가 내 아이를 가졌다고 하는 말에 당황하지만 차음 계속해서 전화하고 아이에 대해 묻는 데니스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되죠. 결국 친구들에게 내 아이가 곧 태어난다고 자랑할 정도로 기뻐하게 됩니다.

마틴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 함께 해주겠노라 말하며 줄곧 전화통화를 주고 받습니다. 마틴에게는 제리라는 또다른 친구가 있는데 이 제리는 프랭크의 친구 게일에게 바바라라는 여자를 소개받습니다. 게일은 린다에게 프랭크의 친구 게일이 바바라와 어울릴 것 같다 제안했고 전혀 만날 일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은 만나보지 못하고 전화통화 만으로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게일은 결국 전화기를 든 채 린다와 통화하다 교통사고로 죽고 맙니다. 전화를 통해 연결된 주인공들은 모두 슬퍼하며 장례식에 참석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장례식에는 모두 참석하겠다던 사람들은 오지 않고 게일과 실제 같이 살았던 적이 있던 프랭크만 참석합니다. 한편 데니스는 전화기를 붙잡은 상태로 힘겹게 아이를 낳고 다자통화를 통해 전화로 친구들에게 격려를 받습니다.


마침내 의사가 전화통화를 하던 친구들에게 '딸이 태어났음'을 알려주고 프랭크는 모두 신년파티를 하자고 하지만 유모차를 밀고 나타난 데니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전화로 열렬히 사랑했던 제리와 바바라는 낯선 사람처럼 지나쳐 가버리고 마틴은 데니스와 함께 사라지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 내내 시끄럽게 떠들과 왁자지껄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사라져 버리죠.

독립영화로 출발한 이 코미디 영화는 제작비가 단 60만불로 제작 기간도 23일 밖에 되지 않았다는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할 샬웬 감독의 데뷰작인 이 영화는 전화거는 내용 이외에는 별 이야기가 없지만 주인공들의 재미있는 수다가 영화를 볼만하게 만들어줍니다. 부유한 뉴요커들이라 그런지 핸드폰을 사용하고 무척 두꺼운 구형 노트북도 참 신기하게 보이네요.



익명성 어떻게 받아들일까

영화 주인공들의 직업이나 인간관계는 딱히 드러나는게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민망한 통화 내용이 들려도 별로 개의치 않는 것으로 보이는 그들은 혼자 사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대신 '너무 바빠서' 만나지도 못하고 파티에도 가지 못한다는 그들의 말은 '언제 한번 식사라도 하자'라는 흔한 빈말과 닮아 있습니다. 그들은 겉도는 관계에 익숙한 현대인들인 것입니다.

전화로 사랑을 나누고 정자은행으로 아이를 갖는다는 건 직접적이고 부담스러운 관계를 포기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프랭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얼굴을 맞대는 관계를 결국엔 포기하고 맙니다. 극중 바바라는 제리의 사진을 팩스로 받아봅니다. 10년이 훨씬 지난 요즘엔 화상전화라는 수단도 있고 메신저가 있으니 훨씬 더 가까운 관계가 가능했을까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이 '익명성'의 문제를 딱히 진지하게 고민하기 보다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을 누리고 인간성이 결여될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하자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기는 합니다. 각자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어떤 방법으로 인간관계를 이어가느냐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라 할 수 있겠죠. 그럼에도 영화에서 제시하는 '겉도는 관계'에 대한 의문은 한번쯤 고민해야할 부분 아닌가 싶습니다.

평소 '온라인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최근 네티즌들의 항의로 해운대 화재의 책임을 물을 뻔 했던 미화원들이 풀려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노원구 여대생의 사망 사건을 재수사할 것이라고 합니다. 익명성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득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합니다. 인류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사용한지 고작 2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식의 문화로 발전시킬지 새로운 도전과 실험의 영역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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