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짝패

짝패, 달이는 가파치 딸이 아니라 갖바치 딸

Shain 2011. 2. 1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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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한번 적은 적이 있지만 한글 중 '가파치'라는 용어는 없습니다. 다만 갖신 즉 가죽신을 지어파는 예전 직업을 일컫는 '갖바치'라는 말은 있지요. '가파치' 또는 '카파치'는 그 직업을 소리나는대로 읽어 표현한 국산 가죽 제품 브랜드라고 합니다. 고어를 현대에 되살려 예쁜 작명을 한 것은 좋은데 원어까지 잊혀지는 현상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많은 기자들이 갖바치를 가파치로 적은 탓에 의외로 많은 검색어가 '가파치'로 유입됩니다.

귀동(최우식)의 부탁대로 몇날밤을 새워 좋은 가죽으로 꽃신을 지은 달이(이선영)은 갖바치의 딸로 누구 보다 뛰어난 가죽신 장인입니다. 현감의 이중 군역 때문에 매를 맞아야 했던 붓들 아범(임대호)은 붓들(백성흠)과 함께 백정일을 합니다. 동녀(전세연)는 선비인 아버지에게 글을 배웁니다. 거지패 지식인 천둥(노영학)은 구걸하는 법과 밥빌어먹는 법을 배웁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이 선명한 사회, 노비와 이들 천민은 그런 직업군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버러지 보다 못한 존재로 대우받습니다.


꾀죄죄한 몰골로 숨어 글공부하는 천둥, 나무막대기로 성초시(강신일)의 집 앞에 천둥이 써갈긴 글귀는 '문이형도(文以形道)[각주:1]'였습니다. '도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글로서 도를 형상화한다'는 말의 뜻처럼 그는 세상을 바꾸는 참선비가 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엔 각 직업군에겐 각자 따로 할 일이 있다고 믿었지만 당시의 조선은 문사들이 탐욕에 빠져 자기 할 일을 내팽겨치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바뀌길 원하는 일부 깨어있는 젊은 선비들 조차 성초시의 명망을 이용해 보고자 할 뿐 자신들이 앞으로 나서고 싶은 뜻 따위는 애초에 없습니다. 새로온 현감(김명수) 때문에 백성들이 얻어맞고 쥐어짜이고 강포수(권오중)의 말대로 전국적으로 민란의 분위기가 팽배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상황입니다. 네 명의 주인공들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 이 상황을 맞이할까요.



각기 다른 처지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아이들

사람의 운명은 핏줄이 정하는 것인지 환경이 정하는 것인지 몰라도 그 결과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를 꼭 닮은 아들이 태어나도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라나기도 합니다. 천둥과 귀동은 양반의 핏줄이 섞인 인물들로 돈이라면 죽고 못 살고 남들 위에 군림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양반가' 출신들입니다. 지지 않으려는 성격은 어머니 막순(윤유선)에게 물려받았다 치더라도 왈자패까지 호령하는 그 성격은 이참봉에게 물려받은게 아닐까요?

혹은 부자 김진사(최종환)의 재물 때문에 부족함 없이 자라 남들에게 기죽지 않는 성격이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공부에는 뜻이 없고 무관이 되겠다 하며 성초시의 딸 동녀에게 연애 편지나 보내는 귀동은 사냥을 좋아해 갖바치, 백정, 포수들과 가깝게 지내고 그들이 이유없이 맞자 분노하여 사령들에게 호령합니다. 노비인 유모를 엄마처럼 믿고 자라 막역하게 구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천민들은 김진사댁 도령이자 현감의 조카인 귀동을 앞세워 붓들아범을 구해냅니다.

천둥은 친아버지인 김진사의 어린 시절을 쏙 빼어닯았습니다. 성초시의 기억대로라면 김진사는 어린 시절 글공부를 좋아하는 품성좋은 선비였던 모양입니다. 안동 김씨 일문들과 공모해 사간원 정언이었던 성초시를 삭탈관직시켰으나 이는 탐욕스러게 자신들의 재물과 존경받는 지위를 포기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글공부를 좋아하며 침착하고 생각이 깊은 것은 아버지를 닮았지만 천둥과 김진사는 자란 환경이 다릅니다.


달이는 여인으로서는 남다르게 사냥에 능하고 갖바치 장인으로서도 최고의 쏨씨지만 그 재능을 인정해줄 사람은 조선 천지에 아무도 없습니다. 후에 기생이 되고 거상이 된다는 달이는 귀동을 사랑하지만 현재는 그 마음을 보답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슬기롭게 자신의 능력을 펼쳐나갈 현명한 인물이 될 듯 합니다.

동녀는 성초시를 닮아 귀천없이 사람을 대하며 인정 많고 부지런하지만 반상 구분이 깨어진 세상이 올거라 생각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공손하지 못한 달이를 따끔하게 꾸짖는 동녀는 천상 양반집 딸입니다. 천둥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가며 친절히 대하지만 이는 배고픈 거지 소년에 대한 동정일 뿐 아직까진 상대를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같진 않습니다. 귀동이 달이를 스스럼없이 대하듯 동녀 역시 아직은 귀천이 없다는 생각이 몸에 익지 않아 천둥은 그저 거지일 뿐이죠.



흥미로운 이들의 관계와 거지패

귀동이 나라를 걱정하느냐 근심이 있는 듯 하다며 호감을 드러내는 달이도 성초시에게 상소문을 올리라 부추기는 선비들도 양반네에게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천민들 보다 많이 배우고 가진 자들로 세상을 바꾸자고 맘만 먹으면 바꿀 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철종 임금이 후사 없이 죽어 후일 대원군이 되는 흥선군 이하응에게도 청탁을 넣는 그들은 영웅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입만 앞선 일개 백면서생에 불과하고 천민들은 사람들을 끌어모을 지혜가 없습니다. 성초시는 오히려 그들로 인해 화를 입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녀가 주는 밥도 얻어먹지 않고 상여집에서 언손 비비며 주린 배를 얼음물로 채우는 천둥은 동녀가 원수처럼 생각하는 김진사의 아들입니다. 신분이 바뀐 탓에 동생인 줄 알아보지 못하지만 김진사의 딸 금옥(김소현)은 천둥을 사랑하게 되겠죠.


천둥과 동녀는 글로 인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동녀를 사랑한다 생각하는 귀동은 재기발랄한 달이와 오히려 통하는 구석이 많습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겠다'며 '양반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천둥은 오늘도 잔치집에서 밥얻어먹을 고민을 하지만 때때로 어머니 막순을 그리워 합니다. 걱정이라곤 배불리 먹는 거 밖에 없는 거지패들과는 한차원 다른 걱정을 안고 있습니다.

자신을 버린 막순은 천둥의 그런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얼음물에 넣은 빨래를 두들기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만 가겠지요. 어머니를 찾고 세상을 바꾸고 싶은 천둥과 천민들의 고단한 삶에 분노를 느끼는 귀동의 성장이 흥미롭습니다. 글이 고파 우는 걸인 천둥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동녀, 그림도 잘 그리고 참한 성정의 동녀가 공주병 증세를 보이는 건 의외의 설정이네요.


  1. '성학집요'에 실린 율곡 이이의 글로 '문학'에 대한 정의이기도 합니다. 원문은 '도묘무형 문이형도(道妙無形 文以形道)'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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