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짝패

짝패, 천둥과 귀동의 치기어린 요람기

Shain 2011. 2. 1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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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을 시청할 때 요즘은 쓰지 않는 오래된 단어들이 등장하는 걸 보며 사극이나 시대극이 세대를 아우르는 작품이 되긴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갖바치'란 단어도 그랬지만 '왈자'나 '상여집' 같은 낯선 문화를 알아듣거나 체감할 수 있는 연령층이 10대나 20대는 아닐 것입니다. 정확한 시대 고증을 거쳐 제작하면 'KBS 추노'가 그랬듯 방영 내내 한글도 해석해주는 자막과 함께 하는 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높겠죠.

'MBC 짝패'엔 이제 사라져 볼 수 없는 여러 모습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황노인(임현식) 가죽을 다듬어 말리는 모습이나 강포수(권오중)이 토끼털을 뽑아 손질하던 모습은 흔하진 않아도 종종 볼 수 있던 풍경이고, 장꼭지(이문식)의 패처럼 당당하진 않았지만 무서운 '왕초'를 중심으로 떼지어 구걸하는 모습도 종종 있었습니다. 거지패는 얻어먹지 못하면 몇끼를 굶어야할 지 몰라 필사적이고 좀 사는 집 주인은 인심 사납단 소릴 듣기 싫어 내주곤 했습니다.


상여집에 귀신이 산다며 사람들이 꺼리고 동네 아이들이 무리지어 귀신이 있나 없나 살펴 보던 풍경도 귀신 쫓는다며 각종 이상한 짓거리를 하며 위안을 얻던 아이들의 모습도 종살이하며 잘못한 것도 없이 위사람에게 허리 굽히던 풍경도 이젠 사라져 알아보는 사람이 그닥 없습니다. 상여집에 놓인 꽃상여와 단청색으로 장식된 가마 등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물품들은 사람들이 함부로 하지 않아 상여집을 철거할 때는 제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범상치 않은 네 명의 아이들은 지금 한참 요람기(搖籃期)를 지나고 있습니다. 천둥(노영학)과 달이(이선영)에겐 부모가 없고 귀동(최우식)과 동녀(전세연)에겐 어머니가 없습니다. 귀동이 철없이 동네 왈자들과 어울려 천방지축으로 떠돌고 다니는 동안 나머지 세 아이들은 어른 몫의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치기어린 행동들은 묘하게 웃음이 나고 요즘은 보기 힘든 과거의 아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천둥과 귀동의 첫 한판승부, 귀신집 사건

두 사람의 성장기 동안엔 크게 다뤄지지 않겠지만 귀동과 천둥은 언젠가는 서로 다른 입장이 될 인물입니다. 두 사람이 원하지 않아도 이미 어머니 막순(윤유선)의 욕심으로 둘은 불편한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자라난 아이들입니다. 언젠가 천둥은 막순과 귀동에게 모든 걸 빼았겼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귀동은 자신이 천시하던 천둥이 재물과 지위의 주인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행여 두 사람이 돈독한 우정을 쌓더라도 대립은 필연적입니다.

늘 어른스럽고 의젓하게 모든 일을 받아들이던 천둥의 치기가 살짝 드러난 귀신집 사건은 자신이 오래도록 공부방으로 쓰던 상여집을 양반집 개구쟁이와 왈자패들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벌인 일이기도 했습니다. 동녀에게 용감한 남아로 보이려 글방 아이들과 동네 아이들을 끌고 나타난 귀동은 비단옷에 오줌을 지리는 수모를 당해야했습니다. 귀신을 이겨보겠다며 단총까지 빌리려 했고 똥방망이를 마련했는데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습니다.

세상에 무서울 것 없이 자란 귀동은 요즘 '하룻 강아지 범 만난 꼴'입니다. 자신을 따르며 총쏘는 법도 알려주던 달이는 하루 아침에 사나운 암호랑이가 되어 총을 들고 덤비고 동녀는 덜 자란 꼬맹이 보듯 자신을 대합니다. 이번엔 동네 거지아이 천둥에게 귀신집에서 톡톡히 혼이 납니다. 마치 여염집 아이들이 닭서리하다 사나운 주인집 개에게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모양새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면 동녀가 자신을 다시 볼거라 생각하며 낄낄거리던 귀동, 동녀는 상여집에 천둥이 공부하러 자리잡은 걸 알기에 발빠르게 귀동의 장난질을 천둥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속깊은 대화를 나눌수록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두 사람은 사개물림된 가구처럼 딱 들어맞는 한쌍입니다. 양반이랍시며 큰소리치는 귀동이 갖바치 딸 달이에게 찍소리 못하고 당하는 모습도 또다른 커플탄생을 예고하고 있지요.

김운경 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캐릭터 묘사는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SBS 아테나'를 제치고 14.2%의 시청률을 기록한 '짝패'는 한명한명 섬세하게 묘사된 캐릭터로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귀동에게 총을 들이댈만큼 강단있지만 장사 수완이 좋아 마님(임채원)과 금옥(김수현)의 비위를 맞추는 달이의 모습은 눈물짓던 어제와는 달라 매력적이네요.

천둥과 귀동의 첫 한판은 결국 천둥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한편 올곧은 선비로 민란을 막고 싶은 성초시(강신일)의 어릴적 동무 김진사(최종환)는 천둥과 귀동처럼 쉽게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습니다. 백성을 살피고 올바른 정치를 원하지만 반상의 법도를 뒤집고 싶진 않은 성초시는 한계를 가진 그 시대 양반입니다. 김진사가 본성은 못되지 않은데 탐욕스럽게 매관매직하는 양반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서로를 비난하는 두 사람은 짝패를 지은게 아니라 짝패를 가른 죽마고우들입니다.



짝패가 될 귀동과 천둥의 운명

성초시와 김진사는 이미 한방향으로 자신들의 생각이 굳어진 사람들입니다. 반면 천둥을 비롯한 네 아이들은 지금부터 무슨 일을 겪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지게 됩니다. 무릇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어놓는다고 합니다. 금옥이 경계하거나 편견을 가지는 법 없이 천둥을 칭찬하는 것도 아직은 양반가의 질서에 익숙치 않은 어린아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느 곳으로 튈 지 모르는 움추린 개구리처럼 활기 넘치는 귀동과 천둥은 운명을 바꿔놓을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듯 합니다. 천둥을 불편해하는 막순으로 인해 쇠돌(정인기)은 천둥이 천둥을 데려가려 들 것이고 천둥은 곧 거지패를 떠나 다른 곳에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아이를 죽을 때까지 두들겨 패는 무서운 장꼭지에게 천둥을 빼내는게 쉽지 만은 않겠죠.


먹물든 양반가의 선비들은 의로운 뜻을 가지고 있어도 제도를 뒤집는다는게 쉽지 않으니 경거망동하지 않겠다며 발을 빼고 강포수는 민란을 일으키고 싶어도 세력도 없고 어찌할 방법도 모릅니다. 무지렁이 황노인(임현식)은 뺐으면 뺐는대로 때리면 때리는대로 모든 고초를 겪어도 참고 견디며 붓들 아범(임대호)는 억울해 분통이 터져도 대항할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 취급 못받는 막순과 쇠돌은 말할 것도 없지요.

왕가의 파락호를 자처하는 홍선군 이하응이 날개를 펴려 하던 시절, 시대는 한치앞을 알 수 없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철종조 극심했던 민란으로 많은 지역의 질서가 바뀔 것이고, 조선조 최대 권세를 자랑하던 안동 김씨도 곧 그 세력을 거둘 것입니다. 대원군이 된 이하응은 천둥과 귀동에게 또다른 시대를 예고하겠지요. 다음주부터는 꽃거지 천둥이 아니라 조금 단정해진 천둥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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