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욕망의 불꽃

욕망의 불꽃, 대기업 후계자의 자질은?

Shain 2011. 2. 21.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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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자신이 낳은 아이도 실수로 뒤바뀌면 알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직접 낳은 친어머니도 그렇다는데 열달 동안 배에 품어보지 않은 아버지는 더욱 알아볼 길이 없어 '남의 아들 같다'는 말에 흔들리는 지도 모릅니다. 갓 태어나 손가락 하나도 잘 구분가지 않는 신생아들을 보며 아버지들은 아이의 아주 작은 특징 하나에도 '나를 닮았다'며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드라마 '욕망의 불꽃' 주인공 김영민(조민기)은 아들 민재(유승호)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 처음에는 협잡군 송진호(박찬환)의 말에 흔들렸지만 나중에는 민재의 친엄마 양인숙(엄수정)이 오기로 내뱉은 말이 결정타가 됐습니다. 친아들로 키웠던 민재가 아들이 아닐 수도 있단 생각에 늘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이제는 떳떳치 못한 유전자 검사 과정 때문에 친아들인 민재를 남이라고 믿게 됐습니다.


양인숙의 아이를 빼앗아 자신의 아이로 입양한 윤나영(신은경), 그녀와 영민을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는 친아들 민재의 존재였고 그만큼 나영에게 민재는 세상 전부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서양 그룹을 차지하기 위해서도 재벌가 며느리로 남아 있기 위해서도 민재는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민재가 친아들이 아님이 밝혀진 이상 두 사람은 부부라기 보단 동업자 의식으로 맺어진 좀 더 냉정한 부부 관계가 되버렸습니다.

김태진(이순재) 회장의 속은 점점 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그는 약한 아들은 절대 거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말을 잘 따르는 아들일수록 더욱 거칠고 고집스럽게 괴롭히는게 김태진입니다. 후계자로 누굴 지목했는지 밝히지 않은 채 아들 며느리들이 갈등하게 내버려 둡니다. 특별히 한 아들을 밀어주기 보다 일을 방해하거나 부부 사이를 벌여놓는 등 힘들게 할 뿐입니다. 그가 바라는 진정한 후계자는 어떤 조건을 갖고 있을까요.



자식 아닌 살모사 새끼를 키우는 김태진

김태진 회장의 진짜 의중은 종종 자식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드러나곤 합니다. '친엄마가 다르다'는 건 살다 보면 아무일도 아니라며 민재를 위로하는 김태진는 다정한 할아버지 같지만 그런 위기를 겪음으로서 민재가 더욱 단단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셋째 아들 영민을 어릴 때 미국으로 보내버린 것도 민재를 미국에 홀로 두고 오도록 부추긴 것도 사자가 벼랑에서 자식을 떨어트리는 것과 비슷한 훈육방식이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김태진은 나영의 언니 정숙(김희정) 보다 나영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고 했습니다.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겠다 달려드는 나영의 욕심 가득한 성격이 좋았다고 합니다. 돈없는 철공소집 딸로 태어나 험한 세상에 익숙해진 윤나영이 재벌가를 모두 삼켜버릴 욕심, 야망까지 가지고 있으니 자신의 아들들과 며느리 남애리(성현아)를 모두 상대할 수 있는 적격의 인물로 판단한 것입니다.

나영에게 이제 네 할 일이 다 끝났으니 떠나라는 김태진 회장의 말은 영민과 나영 부부가 어떻게 자신을 이겨내는 지 두고 보려 했던 발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윤나영과 김영민이 자신 몰래 대서양 그룹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고 끝내 자신을 회장 자리에서 몰아내려 한다는 걸 짐작한 태진이 아들이 자신의 그룹을 스스로 얻어갈 수 있도록 전투력을 고취시킨 것입니다.


그는 자신처럼 쫓겨난 나이든 임원들을 기생집으로 불러 영준(조성하)과 함께 폭탄주를 먹이며 격려합니다. 우리가 함께 키워온 그룹을 이제는 떠나야할 때라 말하는 태진은 진작에 그들을 내치고 싶었습니다. 차마 자신의 손으로는 나가라고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 윤상훈(이호재)의 희생을 바탕으로 밑바닥에서 시작해 일궈낸 대서양 그룹은 남장군(조경환) 집안의 경영권 도전도 문제지만 태진의 손으론 어찌할 수 없는 부실함이 있었습니다.

'살모사 새끼는 제 어미를 먹고 큰다'는 태진의 말은 민재를 대서양 후계자로 강하게 키우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이 영민에게 밀려날 것임을 알고 내뱉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부자간의 정도 무시한 씁쓸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태진은 물러나라는 영민의 말을 듣고 이제 해야할 것을 다 했다는 듯 냉정한 아들의 모습에 흡족하게 웃습니다. 물러터진 자식들 사이에서 진정한 후계자가 탄생한 것입니다.

처음엔 독한 아내에게 끌려다니는 유약한 재벌 2세의 모습으로 등장했던 영민은 놀랄 만큼 큰 변화를 보이며 아내 윤나영 보다 훨씬 더 지독하게 경영권 승계를 위해 싸웁니다. 민재가 친아들이 아니라 알게 된 후 구토를 할만큼 큰 충격을 받았음에도 독한 소주 한잔에 '너는 내 아들'이라며 위로하는 영민은 이미 예전의 영민이 아닙니다. 가족 간의 정도 맺고 끊음이 정확하고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그의 모습이야 말로 태진이 바라던 후계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온 배우, 신은경

문득 배우 신은경의 얼굴을 본 지 꽤 오래 되었다고 생각하고 보니 데뷰가 1988년이더군요. 1973년생으로 중고등학생 때 데뷰한 셈인데 당시 출연작들이 녹록치 않습니다. 귀여운 이미지의 고교생 배우로 시작해 성인 연기자로 거듭나고 X세대의 상징인 짧은 머리 여성으로 인기를 끕니다. 특히 '종합병원' 출연 당시 유지했던 보이쉬한 이미지는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남은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조폭 마누라'는 신은경이 아니면 도저히 연기할 수 없다 싶을 정도로 무뚝뚝하고 박력있는 멋진 조폭 두목 역할이었습니다. 가위 한자루로 조폭계를 평정한 '형님'이 알고 보면 여성이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공무원과 결혼해 억지로 가정을 꾸린다는 설정은 상당히 코믹하면서도 아슬아슬했습니다. 신은경의 등뒤에 있었던 용문신을 아직도 기억하시는 분이 많다고 하더군요.


극중 윤나영처럼 실제로도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온 배우 신은경, 다작을 한 만큼 연기력의 성장도 놀라워 이제는 어떤 역할을 맡겨도 해낼 수 있는 베테랑 연기자가 된 듯 합니다. 우연히 찾았던 데뷰 시기의 풋풋한 사진은 이제 정말 과거라고 해야할 듯 하네요. 딸 역할을 맡은 서우 또래 배우들에게 주연급을 물려줄 때가 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지만, 아직은 한참 더 주연급으로 활약해야할 듯 합니다.

50부작으로 예정된 'MBC 욕망의 불꽃'은 40회 방영이 끝난 상태로 앞으로 5주 정도 방영 일정이 남았습니다. 민재의 할아버지 김태진 앞에서 '민재와의 약속을 지키겠다' 선언한 백인기(서우)는 윤나영에게 미국으로 떠나겠다고도 약속한 상태입니다. 백인기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 백인기와 나영의 대립은 더욱 극단적으로 치닫게 될 듯합니다. 신은경씨의 눈물은 당분간은 마르지 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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