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욕망의 불꽃

욕망의 불꽃, 백인기는 김태진의 히든카드?

Shain 2011. 2. 20.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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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욕망의 불꽃'을 처음 봤을 때 단연 눈에 띈 건 출연자들을 둘러싼 PPL입니다. 부유층의 일상생활을 묘사하기에 자본이 넉넉치 않았던지 집안 여기저기를 채운 가구나 식기. 자동차, 의복, 전자기기, 그리고 백화점, 골프장이나 울산 세트장 등이 협찬을 통해 등장한 것이더군요. 그 고급스러운 물품들을 보고 처음 느낀 건 생각 보다 '부유해 보이지 않는구나'하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지나치게 자주 등장하는 자동차 사고씬이나 핸드폰 사용장면 등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광고인지 드라마인지 알 수 없다 싶어 거부감이 들기까지 합니다. 어떤 장면에서도 화장을 지우지 않고 등장하는 윤나영(신은경)은 잠자리에서도 인조눈썹을 붙이고 진한 마스카라를 한 채 촬영을 하곤 했죠. 주연 여배우의 민낯을 허락하지 않는 모종의 약속이 있거나 다음 촬영 일정 때문에 지울 수 없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최근 20.5%로 주말드라마 시청률 1위를 차지한 '욕망의 불꽃'은 정글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대서양가의 형제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온순하고 착하기만 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이젠 180도 인격이 달라진 김영민(조민기)은 점잖고 다정다감한 형 영준(조성하)과 날마다 대립하고 자신을 늘 가혹한 시험에 들게 하는 아버지 김태진(이순재)에게 반항합니다.

민재를 자신에게 넘기고 윤나영은 미국에 보내버리라는 아버지 태진의 공격, 김영민은 대서양 그룹이라는 마지막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도 아버지를 이겨야 합니다. 늘 고개를 빳빳이 쳐든 독사처럼 누구를 물어뜯을까 노리던 나영이 이제는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미운오리새끼처럼 날개를 움추리고 있습니다. 화장기없는 얼굴로 남편을 독려하는 얼굴은 어쩐지 낯설기만 합니다. 실제로는 자기것이 안닌 PPL 물품처럼 껍데기뿐인 재벌가 며느리 자리란 그런건가 봅니다.



웃는 얼굴에 본심을 감춘 김태진

민재(유승호)를 위해 백인기(서우)를 만난 김태진은 호의를 품은 듯 예쁘다고 칭찬만 해줍니다. 민재는 오늘 따라 점잖게 차려입은 인기가 김태진의 마음에 든 것같아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지 못합니다. 반면 인기는 태진이 손주의 할아버지로서 무심히 던지는 말들, 부모에 대한 질문이나 '험하게 살았다'는 과거 이야기에 순간순간 긴장하며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으로 식사를 합니다.

'재벌 회장하고 밥 처음 같이 먹어 봤냐'는 김태진은 '볼수록 귀엽고 이쁘다'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지만 인기는 그 말의 본뜻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기획사의 요구대로 고위층 접대자리에 불려갔던 백인기가 식사하는 것 보다 더한 일을 하지 않았냐고 묻는 간접적인 공격인 것입니다. 능구렁이 김태진이 후계자로 고려중인 손주의 애인. 그 뒷조사를 하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관심이 많았다'는 말은 완벽하게 조사했다는 뜻이었겠죠.

윤나영에 의해 대중에게 잘 알려진 스캔들, 백인기의 '섹스 비디오'는 평생을 따라다닐 수치이자 멍에입니다. 기획사의 강압에 의해 성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지만 재벌가의 사람들과 어울린 것도 드러나면 민재의 앞길을 방해할 추문입니다. 인기가 민재와 결혼하자면 어쩔 수 없이 넘어야할 최초의 관문, 인기는 가슴 콕콕 찌르는 듯한 가슴아픈 순간을 민재 모르게 버텨내는 것입니다.


백인기는 김태진 회장의 속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민재의 호감을 사면서도 인기를 떼어놓을 궁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술 더 떠서 민재에게 인기를 '누나'라고 부르라 하고 인기를 빤히 쳐다 보는 김태진은 윤나영과 백인기의 비밀까지 알고 있는 듯합니다. 아무리 살모사 새끼처럼 엄마에게 복수하려던 인기라도 그 순간 만큼은 뜨끔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혹시 이 노인네가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워집니다.

께름칙한 김태진의 눈빛이 소름끼쳤다고 나영에게 털어놓는 인기, 김태진은 민재를 키우고 김영민을 안정시키는데 나영을 이용했듯이 민재를 안심시키는데 백인기를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결혼을 허락해주는 척해야 민재가 꼭두각시가 됩니다. 모녀는 뱀같은 김태진의 의중을 꿰뚫고 있고 그 부분에 동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태진은 이미 인기가 나영의 딸인 걸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태진은 두 사람이 남매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나영을 떠나게 하려면 인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붙잡아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민재가 성인이 된 이상 나영은 이미 남이나 다름없는 며느리이고 민재가 대서양을 물려받을 때까지 떠나 있으라 했지만 그건 버리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악을 쓰며 자신을 공격해올 것이 분명하니 나영을 잠재울 김태진의 히든 카드는 백인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숨겨진 자식이야기는 누구?

김영민은 민재가 송진호(박찬환)와 양인숙(엄수정)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닐까 의심했기에 송진호의 머리카락을 들고 유전자 검사 결과를 의뢰했지만 그 과정에서 오해한 의료진은 민재가 영민의 아들이 맞다고 확답해줍니다. 그 검사 결과 때문에 민재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한 영민은 20년이 넘게 키워온 아들을 잃었단 생각에 구토를 일으킵니다.  영민은 친아들을 괴롭히는 아빠가 될 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한편 태진은 친구 이야기라며 남의 아이인지도 모르고 키워온 부부 이야길 꺼냅니다. 이 이야기는 묘하게 나영과 정숙(김희정) 자매와 태진의 친구였던 윤상훈(이호재)의 이야기와 맞물립니다. 바람둥이 태진은 시골아낙네를 사랑했고 그게 나영의 어머니였다고 했습니다. 나영은 신기하게도 태진과 끝없이 재산을 욕심내는 부분이 많이 닮았습니다. 남의 아이를 키운 건 박회장이 아니라 윤상훈의 이야기였을까요.


살모사 새끼가 어미를 먹고 자라듯이 자신을 치고 올라오는 자식 만 인정하겠다는 김태진 회장. 자수성가한 재벌회장답게보기 드문 배짱을 가진 인물인 건 확실하지만 그의 뱀같은 야심은 자식들을 괴물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의 기세라면 김영민은 최후의 순간 아버지를 무너트리고야 말 것입니다.

처음부터 재벌가의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모를까 눈앞에 있는 것을 포기하기는 힘들겠죠. 모든 것을 가지고자하는 욕심, 그 욕심을 버리라 하는 건 교과서적인 충고에 불과할 것입니다. 자신을 괴롭히고 불태울 야심인줄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그 사람들의 괴로움이 이제 절정에 이르고 있네요. '사랑은 늘 도망가'라는 OST의 가사가 애절하게 느껴지는 건 누군가는 그 불꽃에 사그라들 운명이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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