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욕망의 불꽃

욕망의 불꽃, 밖에서 낳아온 아이들의 반란

Shain 2011. 2. 2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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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가족들 간의 유대가 유달리 끈적끈적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형제의 잘못까지 감싸주는 드라마들이 많았지만 최근엔 핏줄이 섞인 가족이 남보다 못한 상황을 묘사하는 드라마들도 많습니다. 그만큼 현대사회가 물질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곳으로 변모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남이 아닌 핏줄이기에 더욱 드러내놓고 갈등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화해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견물생심이라고 돈 앞에 장사가 없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원래 아버지 김태진(이순재)의 핏줄을 이어받은 형제들은 하나같이 무한한 욕심을 타고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욕망의 불꽃'에 등장하는 형제들은 하나같이 뜨거운 욕망을 숨겨둔 인물들입니다. 대서양 그룹을 새로 태어나게 하겠다며 형제들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김태진의 책략이 먹히기도 했지만 하나같이 '괴물'들처럼 욕심에 눈이 먼 남매들인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평생을 바람둥이로 강금화(이효춘) 여사의 속을 썩이며 살아온 태진은 '자식 농사를 잘못 지었다'고 윤나영(신은경)에게 고백합니다. 자신의 야망을 넘어서는 나영을 민재(유승호)에게서 떼어놓길 원하는 태진은 이런 저런 말을 꺼내 나영을 다스려보려 했으나 나영은 그에 넘어가기는 커녕 자신의 어머니가 자살한 비밀을 폭로하겠다며 태진을 쓰러지게 만들고 맙니다. 태진에게 드러내놓고 전쟁을 선언한 것입니다.

자식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조사하는 김태진은 윤나영의 과거를 일부분 알고 있습니다. 남애리(성현아)가 바람피운다는 사실이 더 이상 대서양 그룹 핏줄들에게 비밀이 아니듯 박덕성(이세창)과 나영의 결혼전 비밀이 밝혀지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밖에서 얻어온 자식이라고 강금화 여사의 눈총을 받던 김미진(손은서)과 김영식(김승현)은 언제 영민(조민기) 부부의 비밀을 터트릴까 궁리하고 있습니다.



대서양그룹 혼외자들의 반란

최근엔 재혼 가정도 늘고 있기 때문에 한 가정의 형제들이 친부모가 다르다는 건 그닥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한 가족과 다른 가족이 만나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일은 보기 좋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극중 김태진처럼 아이들의 어머니가 모두 다를 땐 적잖이 불편한 모습들이 연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 중 어머니가 같은 형제는 영준(조성하)과 영민 형제 뿐입니다.

과거에는 일명 '밖에서 낳아온 자식'들을 정실 부인이 거두고 그들이 갈등을 겪는 내용이 드라마의 주제가 되기도 했었지만 영식과 미진은 재벌가의 재산 앞에 핏줄의 슬픔이나 혈연의 연민 따위는 진작에 집어치운 남매들입니다. 영식이 종종 민재에게 자신은 아버지와 '친자확인소송'까지 했노라 쓸쓸하게 내뱉곤 하지만 그건 민재의 동감을 얻기 위해 꺼낸 말일 뿐입니다.

민재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곱고 사랑스럽게 자란 반면 민재의 삼촌 김영식은 김태진에게 입적된 후에도 가족이라기 보다 손님같은 태도로 태진의 집을 오고 갔습니다. 혈연들에게 상처입은 순하고 착한 사생아처럼 조용히 가족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동태를 지켜보던 막내아들이었지요. 똑같은 입장의 미진이 태진의 무릎에 앉아 백화점을 달라 조르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다정한 삼촌인듯 조카들에게 살갑게 구는 영식은 그동안 형들의 정보를 조카들로부터 얻어왔던 것입니다. 조카인 민재를 살살 구슬려 나영의 골칫거리로 만드는가 하면 누구도 몰라야할 백인기(서우)의 존재를 짐작해내기도 합니다. 지금은 병원에서 민재의 유전자 검사를 낚아채 태진이 그룹의 최종 후계자로 낙점한 민재의 위치를 뒤흔들려 하고 있습니다. 영식과 미진이 감춘 사실이 폭로되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미진은 미진대로 그저 애교만 부려 백화점을 얻어내려는 거 같더니 재산 상속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 '육탄전'까지 불사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박덕성에게 접근해 윤나영의 과거를 캐내는 일도 아무렇지 않고 남애리와 윤나영을 오가며 말을 전하는 것도 미진입니다. 민재가 출생의 비밀을 알고 고민했던 순수한 영혼이었던과 달리 미진과 영식에겐 그런 출생의 진실 따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백인기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어머니 나영 앞에서 절망하며 당당히 자신의 딸임을 밝힐 때까지 괴롭히겠노라 선언했습니다. 아닌 척하고 빳빳이 고개를 쳐들지만 인기는 평생 얼굴도 모르고 자란 부모의 존재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혈연이라는 사실이 재벌가의 자식들에게는 단순히 '수단'에 불과할 뿐이지만 인기에게는 인생 전체를 걸어야할 의미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고통

민재가 혼외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차순자(이보희)는 길러준 엄마가 따로 있는게 어떠냐며 위로하는 척 민재에게 상처를 주며 '사생아'라는 점을 누누히 강조합니다. 영민과 영준은 어머니 강금화 여사가 속끓인 세월을 알기에 미진과 영식을 형제라고도 생각하지 않는 듯 합니다. 영식에게 '형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영민의 반응은 진심일 것입니다. 강금화는 둘을 볼 때 마다 더러운 것을 본 것처럼 멀리 떼어놓으려 안달입니다.

별것 아닐 수도 있는 출생의 비밀일 뿐이지만 '밖에서 낳아온 자식들'이란 꼬리표는 한 인간의 존재를 부정하는 고통을 줍니다. 민재와 사랑에 빠진 백인기는 자신을 괴롭혀온 여자가 친엄마라는 사실도 견딜 수 없지만 딸을 애써 외면하는 친부모들에게도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박덕성과 함께 식사한 인기는 잔인하다 못해 몰인정한 박덕성의 태도를 보며 또다시 상처받게 될 것입니다.


가족이란 건 숨쉬는 공기처럼 늘 함께 있기에 편한 존재로 느껴지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어떤 고통을 받는 순간에도 안식처가 되어야할 가족이 비밀을 폭로당할까 두려워해야하는 존재로 변질되고 다툼을 하는 사이가 되어버린다면 세상은 가시밭길처럼 느껴집니다. 착한 아이 민재가 따뜻하게만 느껴지던 가족을 불편해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을 것입니다. 같은 처지라고 느껴왔던, 버림받았던 영식이 더욱 민재를 위기로 몰아간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나이어린 배우 유승호를 민재로 선정한 건 탁월한 아이디어란 생각이 듭니다. 마치 때묻지 않은 스폰지처럼 나머지 가족들의 악행이 거듭되면 될수록 상처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백인기를 무슨 일이 있어도 놓칠 수 없다고 집착하는 건 유일한 안식처이기 때문이겠죠. 그런 인기 마저 엄마의 숨겨진 딸이란 걸 알게 되면 민재는 정말 미쳐버리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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