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로열패밀리

로열 패밀리, 원작은 재벌이야기 아니다

Shain 2011. 3. 10.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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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이야기라 시시한 갈등 구조가 그려질 것으로 예상되던 드라마 '로열패밀리'가 예상외로 흥미로운 이야기 구조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포진한 기대작으로 밝혀졌습니다. 대기업 JK에서 없는 인간으로 취급받으며 살던 둘째 며느리 김인숙(염정아)이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겠다며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몰래 후원하던 한지훈(지성)의 도움을 받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지금부터 김인숙은 재벌가의 새로운 후계자로 새롭게 탄생할 것입니다.

미리 시놉시스 상으로 공개된 바와 같이 K라 불리는 여인 김인숙에게는 쉽게 밝히기 힘든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양공주들의 대모에게서 자랐다는 이야기인데요(현재 로열패밀리 홈페이지는 모두 공개되었던 등장인물들의 비밀을 대폭 수정한 상태입니다). '양공주'란 표현은 상당히 거북하면서도 불쾌한 표현이라 어째서 이렇게 격한 내용을 등장시켰을까 궁금했습니다. 왜 생뚱맞게 이런 소재를 끌고 나왔냐 하는 생각을 하며 찾다 보니'원작'이 따로 있더군요.


물론 전체적인 구성과 중점을 둔 부분은 아주 다르기 때문에 드라마의 '소재'만 빌려왔다고 하는 편이 맞습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등장인물도 모두 다릅니다. '로열 패밀리'의 원작은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1977년 소설 '인간의 증명'입니다. 77년도의 시대상황과 사회 문제, 그리고 일본과 한국이라는 지역적 환경이 아예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로 보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원작엔 로맨스 구도나 재벌이 전혀 등장하지 않고 정치인이 등장합니다.

2004년 후지TV에서 제작한 드라마 '인간의 증명'은 같은 소설을 현대에 맞게 각색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 드라마 모두 공통적으로 조니 헤이워드란 이름의 한 정체불명의 '흑인'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내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일본이나 한국 모두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양공주'라는 기분나쁜 표현이 등장한 것입니다. '인간의 증명'이란 드라마의 내용 보다는 전체적인 배경을 이야기해드리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일본 역시 주일미군 문제로 고민한다

드라마 '인간의 증명'은 세가지 파트의 각기 다른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전혀 관련이 없을 듯한 세 개의 이야기가 차츰차츰 얽혀가는 것입니다. 첫번째 사건은 신원을 전혀 알 수 없는 한 흑인 청년의 죽음으로 고아원 출신의 한 형사가 전혀 단서가 없는 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형사는 냉정하고 남을 잘 믿지 못하는 성격으로 어린 시절 죽은 아버지와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두번째 사건은 상당한 미모를 가진 한 여류 수필가가 남편을 대신해 '지사 선거'에 도전합니다. 문제아 기질이 있는 아들과 딸, 정치인 남편을 둔 이 여류 수필가는 행복해 보이지만 종종 불안한 눈빛을 보입니다. 세번째 사건은 휠체어에 의지해 살며 혼자 움직이지 못하는 한 남성이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던 중 아내가 실종됩니다. 내연남을 찾아가 아내의 행방을 추궁하지만 경찰도 귀담아 듣지 않고 혼자서 해결할 길이 없어 애태웁니다.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인간임을 증명하는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서글픈 질문을 던져줍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던진 돈을 집어드는 노숙자, 그 노숙자가 준 돈으로 CD를 만드는 무명의 가수, 다리가 불편해 누구나 비웃는 남편, 이외에도 무시받으며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이 과연 '가치없는 목숨'인가 한번 더 바라보게 합니다. 놀랍게도 그들이 외면당하는 이면에는 경찰의 무관심과 무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977년 영화화된 '人間の証明'

일본엔 공식적으로 군대가 없습니다. 대신 군대 역할을 하는 자위대가 있을 뿐이고 교전권을 가진 일본 주둔 군대는 미군이 유일합니다. 한국에도 몇몇 도시에 미군 부대가 있기 때문에 그 안을 직접 들어가 구경해보신 분들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끝이 안 보이는 넓은 부지에 한국과는 전혀 다른 미국 고유의 건물들과 잔디들을 볼 수 있는 그곳은 한국 내의 미국이랄 수 있는 '특별한 곳'입니다.

일본 주둔 미군의 문제는 우리 나라도 여러 차례 몸살을 겪었던 사례들과 매우 유사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양공주'들의 집단 향락촌이 형성되는가 하면 유흥가에서 폭행이 발생하거나 시비가 붙는 경우도 있고 심각한 범죄를 일으켜 물의를 빚기도 합니다. 남편이었던 미군이 본국으로 돌아가 아이를 책임지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일본 미군 주둔지인 오키나와의 상황이 우리나라 예전 상황과 많이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2004년 후지TV에서 방영된 '인간의 증명'


95년 미군에 의한 여아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오키나와 주민들은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였고 정부와 미국은 기지 이전을 합의했지만 여전히 주일 미군기지는 오키나와에 있습니다. 이전 비용 등을 비롯한 세부적인 문제에 합의하지 못 했고 결정적으로 일본 오키나와에 대한 무관심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데 한몫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내에서도 오키나와 미군기지는 존재하고 있음에도 마치 없는 시설인 것처럼 주민들의 고통을 애써 외면하고 있단 뜻입니다.

오키나와 후텐마 비행장 주변엔 초등학교를 비롯한 주민 시설과 주택가가 빼곡이 들어차 있습니다. 기지가 운영되는 동안 미군 범죄는 꾸준히 발생되어 왔고 2008년에도 여학생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등 해마다 천건 이상의 사건 사고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소설 '인간의 증명'의 주인공들이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야하는 상황에 처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드라마 엔딩을 장식하는 비행기 소리가 의미심장하게 들리네요.



K 따위에게 정가원의 운명을 맡기다니

어제 방영된 '로열 패밀리'는 18년 동안 숨직이고 살아온 K, 김인숙이 서서히 자신의 입지를 찾아가는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엄기도(전노민)를 아저씨라 부르며 자신의 뜻대로 조정하던 K는 진숙향(오미희)과의 친분을 과시하여 공순호의 관심을 끌고 결국 공순호(김영애)에게 정가원을 위해 진숙향을 설득하란 요구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속여왔던 '천사'의 가면은 대통령 후보 부인인 진숙향을 설득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죠.


갑자기 급부상한 K에게 많은 JK 식구들이 경악하고 조현진(차예련)은 후계 싸움에서 한 수 밀리는 자신의 입지를 K를 통해 다져보고자 맘먹습니다. JK 그룹의 지주사가 될 'JK 클럽'의 사장은 점점 더 김인숙에게 유리하게 풀려가는 중이고 공순호의 자식들과 며느리들은 점점 더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로열패밀리'의 애처로운 아귀다툼을 보게 될 것이란 K의 예언은 들어맞았습니다.

원작이 조금은 지루할 정도로 캐릭터들의 비밀을 풀어가며 진지하게 진행된 반면 한국상황에 맞게 개작된 '로열패밀리'는 재벌과 사랑이야기가 잘 버무려진 훌륭한 각본으로 재탄생한 듯합니다. 비참할 정도로 무시받는 K의 상황이라던지 갈등하는 형제들의 모습은 원작에선 전혀 볼 수 없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선사하는군요. 한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의 색깔 차이가 확실히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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