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문화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대한 짧은 기억

Shain 2011. 3. 2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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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자주 갈 수 없던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는 TV에서 추억의 영화를 보다 젊은 시절 이야기를 꺼내시곤 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TV에서 다양한 영화를 보여주던 시절도 아니고 한번 개봉된 영화는 최소 4년이 지나야 TV에서 볼까 말까 했던 때라 60-70년대 명작이 주로 TV를 채우곤 했지요. 그러다 보니 저 영화는 몇년전에 어디서 봤다 저 영화 개봉했을 때 저 배우 인기가 엄청났다는 등의 과거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이야기가 옛날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최고의 미녀, 세계 최고의 미인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는 것입니다. 오늘 타계해 이제 영원히 고인이 되었단 소식을 듣고 보니 영화 속에서 여신처럼 빛나던 그녀도 진정 인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세기의 주목을 받은 아름다운 여배우였지만 노년 이후의 삶은 그닥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늙어서도 봉사활동에 여념이 없었던, 역시 고인이 된 오드리 햅번과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늘 비교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다이아몬드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이 오히려 배우로서의 인생과 개인생활에 독이 되버린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영화배우로서 연기가 세계 최고란 평가를 받기 보다 '세계 최고의 미녀'란 별칭이 그녀를 오히려 더욱 힘들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그녀의 아름다운 시절을 뒤따라다니던 소문들과 '남편들'에 대한 기억 보다 정말 젊고 아름다웠던 영화 속 그녀의 모습이 더욱 떠오르는 걸 보면 고인이 되었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죽은 사람에 대해 나쁜 기억 보다 좋은 기억을 먼저 떠올리는게 인간이라고 하니까요. 저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아름다움이 빛나던 여러 영화 중에서 '자이언트'와 '클레오파트라'를 최고로 꼽습니다.

10대 시절에 데뷰해 평생 연기를 했다. 데뷰 초기의 사진들.


찾아보니 런던 출생의 32년생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42년 처음 데뷰해 2001년 경 공식적인 마지막 작품 출연을 했습니다. 평생을 드라마와 영화 등 배우 생활을 한 셈인데요. 나이 들어서 출연한 작품 중에는 85년 한국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남과 북(North and South)'가 떠오릅니다. 예전의 미모는 모두 사라진듯한 모습으로 등장해 남부 지역의 귀부인을 대변하는 마담 콘티 역할을 했습니다. 4-50년대에 출연하던 영화 속 외모와는 상당히 큰 차이였기 때문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1956년 개봉한 영화 '자이언트(Giant)'는 제임스 딘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세 편의 영화 중 한편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출연한 영화도 바로 이 영화입니다. 사실 제임스딘은 영화 보다는 TV 출연이 훨씬 더 많은 배우였지만 세계적으로 보급력이 뛰어났던 매체는 TV 드라마 보다는 영화였기에 그 세 영화 만이 한국에 잘 알려진 듯 합니다(TV 쪽 필름도 제대로 남아 있는 지 의문이지만요)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임스 딘 주연의 영화 자이언트(Gaint, 1956)

한 거대 목장의 운영주와 결혼하게 된 여주인공 레슬리(엘리자베스)는 남편을 사랑하고 따뜻한 가정을 이루지만 그 목장의 고용인 제트 링크(제임스 딘)는 한번 마음에 담은 레슬리를 평생 잊지 못합니다. 레슬리의 남편 조단 베네딕트(락 허드슨)는 수상한 분위기를 직감하고 여동생과도 관계가 있는 이 불손한 남자를 쫓아내지만 여동생이 죽으면서 남긴 유산, 불모지 덕분에 제트는 거대 석유 재벌이 됩니다.

홀로 늙어간데다 그때까지도 레슬리를 잊지 못한 제트가 그 주변을 떠돌며 레슬리와 조단의 딸을 유혹하기도 하는 등 사랑에 대한 갈증을 묘사한 이 영화는 제임스 딘의 거친 모습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미모가 빛나던 영화였습니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1963)' 역시 리차드 버튼의 안토니우스와 함께 세계적인 명작에 속하지만 후대에 와서는 '고증'의 문제로 지적을 받기도 합니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1963)


과연 클레오파트라가 푸른눈을 가진 하얀 피부의 백인이었을까? 서양의 드레스를 본뜬 듯한 어정쩡한 드레스 등이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퓨전 느낌이 납니다. '천일의 앤(Anne of the Thousand Days, 1969)'같은 영화는 튜더 왕조의 남겨진 초상화를 참고로 했지만, 당시의 많은 영화들이 정확한 고증을 하기엔 무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최고의 작품이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준 작품을 저는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 1958)'라고 생각합니다. 노련한 연기자이지만 발군의 연기력이 눈에 띄지 않던 그녀가 자신의 캐릭터를 잘 만들어낸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The Sting(1973)' 등으로 유명한 폴 뉴먼이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남편 역할을 맡았습니다. 고전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다시 감상하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 1958)


하나씩 둘 씩 영화계의 전설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들은 사라지고 영화는 남는다지만 '판타지' 속에서 영원할 것 같던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없어지는 모습은 추억도 잊혀지는 것처럼 씁쓸합니다. 워낙 오래전 배우이기에 한참을 잊고 있었다가 문득 사망 소식을 듣고 보니, 2차 세계대전 중 실종된 생떽쥐베리가 전투중 격추되어 죽었노라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전해들은 기분이네요. 아름다운 연기로 세계인을 즐겁게 해줬던 추억의 스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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