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진 드라마 '근초고왕' 홈페이지엔 그리 많은 글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제 4월 9일부터 오늘 4월 10일까지 평소 주말에 올라오던 것보다 3-4배 많은 항의글이 올라오는 대소동이 있었습니다. 제 블로그 역시 하룻밤 새 만명 가까운 검색어 유입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DC '근초고왕' 갤러리는 방송 이후 작가를 성토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근구수왕의 어머니'가 누구냐는 문제 때문입니다.
국사가 필수과목도 아니고 역사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요즘이라지만 '사극' 팬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퓨전사극의 범람을 우려하기도 하고 고증이 잘못 되었다며 냉철한 한마디를 남기기도 하는 팬들. KBS 사극이 추구해 왔던 정통사극엔 고정팬들이 있습니다. KBS에서 방영된 모든 사극의 방향에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저 역시 그 분야를 존중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한쪽에서 극적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퓨전사극을 만든다면 누군가는 정통을 추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현재 방영중인 '근초고왕'처럼 역사의 반 이상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나머지 반을 창작해야하는 사극은 시작부터 왜곡 시비에 시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고분에서 고증된 복식이 일본식이란 평가를 받기도 하고 근초고왕의 주변인물과 '고난'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극중 등장인물의 반이상이 가상 인물이란 건 이 드라마의 최대 약점이자 '편리함'이 되버립니다.
내용의 반이 창작된 사극이란 걸 감안해 시청자들이 작가의 상상력을 존중한다 쳐도 기본 줄거리와 설정 만큼은 사서대로 처리하길 기대하게 됩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중국의 '양서' 등이 아무리 왜곡많은 사서이고 재해석이 필요한 역사라곤 하지만 기본적인 틀은 존중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것입니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내용을 토대로 근초고왕의 다음 왕인 근구수왕이 홍란(이세은)의 아들이 아닌 부여화(김지수)의 아들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자 시청자들의 반응이 격해졌습니다.
부여화의 아들이 근구수왕이 되느냐?
전에도 자주 포스팅했듯 위홍란의 아들이냐 부여화의 아들이냐를 두고 많은 분들이 설왕설래했습니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진씨가의 왕후가 낳은 아들이 근구수왕이 되고 그의 아내는 진고도의 딸인 아이부인이 된다고 했습니다(사서의 기록은 장인, 외삼촌 등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근구수왕이 진고도의 조카도 사위도 될 수 있는 상황). 홍란이 진씨가의 딸로 입양되고 진고도의 딸 '아이'와 태중 혼약을 하여 많은 사람들이 홍란의 아들이 왕이 된다 생각한 것입니다.
부여화의 아들을 '근구수왕'으로 삼자면 걸리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철천지 원수인 진씨의 딸과 위례궁 부여화의 아들과 혼인한다는 것도 이상한 상황이고 고이왕통인 부여화의 아들이 '구수왕'의 이름을 이어받는다는 것도 황당한 부분입니다. 구수왕의 장자 사반왕이 고이왕의 손에 죽는데 하필 그 이름을 이어받는다니 이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아이가 왕위에 올랐을 때 부흥하는 성씨가 진씨라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이죠.
아직까지 아이들의 이름도 지어지지 않았는데 이런 논란이 불거진건 KBS 홈페이지의 미리보기 때문입니다. 미리보기에는 해건(이지훈)의 계략으로 부여화의 아이는 죽은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부여구(감우성)과 부여화가 '구수'의 죽음 때문에 슬퍼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이 '구수'라는 이름이 근구수왕의 이름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을마흘과 단단이가 아이를 안고 도망쳐 이 아이는 철광산에서 '쇠꼽'이란 이름으로 자라게 됩니다.
'삼왕자의 난'으로 부여민(안신우)과 부여문(황동주) 형제가 죽고 부여찬(이종수)까지 죽었는데 위례궁 식솔들인 석라해(최지나), 해여울(김보미) 등이 당당하게 근초고왕에게 항의하는 장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평입니다. 삼족을 멸하는 형벌에 처해도 마땅한 것이 반란이며 왕족을 죽게 하고 왕후를 욕보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했는데 살려달라 애원해도 모자라다는 것이죠.
애초에 왕의 차남이라 적혀 있음에도 넷째 왕자로 설정하는 등 전체적인 '창작'의 편리함을 지나치게 자주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드라마 '근초고왕'. 결국은 이 파동으로 인해 아직 방영되지도 않은 후반부 내용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것 같습니다. 일부 시청자들은 작가의 뜻 맞추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맞다', '틀렸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역사 문제에 대한 고민은 이미 물건너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용의 눈물'을 연출한 김재형 PD 별세
4월 10일 오전 별세한 김재형 PD는 우리 나라 사극에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원로 중 한분입니다. 일명 '사극의 대부'로 수많은 인기작을 배출한 그의 작품 중엔 '용의 눈물'과 '여인천하' 등이 있습니다. 1936년생인 그가 연출한 작품이 총 248편이 된다고 하니 놀라운 일입니다. 조선왕조를 주로 묘사한 김재형 PD의 인기 드라마 역시 '근초고왕'처럼 일부 왜곡 시비에 시달리기도 하고 '여인천하'에서는 정난정(강수연)의 역량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정난정의 죽음을 사약이 도착하기 전 독약으로 자살한 게 아니고 물에 빠져 죽는 것으로 묘사하는 등 일부분은 기록과 조금 다르게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경빈을 비롯한 빈들 소생의 세자 경연, 창빈이 죽지도 않았는데 '빈'으로 묘사된 점 등도 실제 사건과는 다르지만 드라마의 전체적인 맥락은 사료가 풍부했던 조선시대인 만큼 실록이나 야사 등을 이용해 재미있게 재구성된 편입니다.
우리 나라 최초의 TV 사극 '국토만리(1964)'의 연출자이기도 한 김재형. 정통 사극의 원형을 만들어냈다는게 그의 업적이기는 하나 조선왕조실록이 완역되지 않은 시절의 드라마 연출은 많은 부분 야사에 의존하기도 했기에 현대에 와서 지적받는 부분도 종종 있습니다(실록의 완역은 80-9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왜곡이란 지적을 종종 받기는 하지만 그의 연출과 '근초고왕'의 논란은 많은 부분 다른 것 같습니다.
'여인천하'의 등장인물들은 개연성에서는 조금 황당하단 평가를 받아도 사서에 없는 허구의 인물이 많지 않습니다(김정은, 박상민이 맡은 역은 제외). 큰 역할을 하는 듯이 그려진 갖바치나 매향과 관련된 이야기는 100% 창작된 내용이지만 그들은 일단 사서나 야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허구의 인물들이라 해도 사서의 내용에 영향을 끼치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의 갈등과 감정선을 고조시키는 역할이 대부분이죠.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누적된 불만 폭발
현재의 상황을 두고 시청자들은 많은 이야길 나누고 있습니다. 부여화 아들의 이름이 '구수'로 적힌 것은 오타일 것이다 또는 근구수왕의 이름이 '구수'란 법은 없다 '수'여야 한다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고 구수가 진홍란의 양자가 되어 왕위를 이을 것이란 주장까지 등장한 상황입니다. 이미 위홍란의 아들은 '부여근'이라는 시놉시스가 있었기 때문에 홍란의 아들은 분명 아니라는 확신을 가진 분도 계십니다.
오늘 방영분에선 두고(정흥채)가 '막고해(莫古解)'라는 이름을 받습니다. 아지카이는 드디어 '아직기(阿直岐)'란 이름을 받았습니다. 막고해는 아시다시피 근구수왕이 왕자 시절 사유(이종원)과 전투를 벌일 때 옆에서 전진을 만류한 장군입니다. 복구검(한정수)은 목라근자(木羅斤資)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위홍란이 '진홍란'이 되어 끼워 맞춰진 것처럼 창작된 인물이 '사서' 속의 인물로 변신하는 방법은 바로 '이름바꾸기'를 통해서 였습니다. '삼국사기'에 근초고왕이 즉이 이후 이름을 바꾸었단 구절을 활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 그래도 사서 속 인물들의 웅장한 서사 보다 궁중 암투에 할당된 내용이 너무 많다는 지적을 받아온 드라마 '근초고왕'. 결국 최종회를 14회 가량 남겨놓은 지금에도 위례궁과 요서출신, 진씨의 갈등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고 있습니다. 고구려와의 전쟁이나 요서 영토 확장, 일본과의 외교 등은 아직까지 속시원히 진행되지 않은 상황인데 허구의 인물인 부여화와 그 식솔들이 백제를 휘저어 놓는다며 성토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석라해의 아들 부여광을 왕위에 올리겠다 다짐한 상황이니 그들의 내분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방영되지 않은' 내용을 두고 왈가왈부한다는 게 좀 이른 감은 없잖아 있습니다. 아들이 구수로 살아 있다 해도 그 아들이 칠지도를 제작하는 장인이 되지 말란 법이 없고 홍란의 아들에게도 아직 기회는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리 큰 반발이 일어났다는 점(사극을 시청하다 이 정도로 큰 반발이 일어난 건 제 기억에 아주 드문 일입니다). 제작진은 유념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여화 때문에 고구려와 전쟁이 일어난다고 했었는데 그건 어찌 처리할 지 모르겠네요.
'사극'을 시청하면서 '사서'에 쓰인 내용을 그대로 묘사할 지 예상할 수 없다니 이런 반응이 있을 만도 합니다. 반 이상이 창작되었기 때문에 더욱 기본 틀은 '상식'대로 유지하라는 시청자들의 지적. 한번 더 재고해 주세요. 오랫동안 사극을 즐길 수 있게 해주신 김재형 PD의 명복을 빕니다.
* 본문중 근수구왕이라고 오타가 난 것을 근구수왕으로 정정합니다. '근수구왕의 어머니'로 검색해 오시는 분들에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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