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내 마음이 들리니

내마들, 동주 혼자만의 세계에 누굴 초대할까

Shain 2011. 4. 2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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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겐 누구나 자기 만의 공간이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 인간(人間)이기에 '사람 인과 사이 간'자를 쓰지만 남들에게 모든 것이 공개된, 혼자 만의 공간이 없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아 살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그것이 남에게는 말하지 않은 자신 만의 본심, 꿈이나 비밀일 때도 있고 때로는 남들과 함께 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일 때도 있습니다. 그 공간이 공원이든 밀실이든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든 혼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능하겠지요.

주인공 차동주(김재원)에겐 언제 어디서든 자기 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특별한 비밀이 있습니다. 동주에게는 오히려 혼자 만의 세계에 갇힌 자신의 고독이 지나쳐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게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소리를 문자로 전해주는 핸드폰도 있고 남들의 말을 못 듣는 척 위장할 수 있는 이어폰도 있고 말많은 강민수(고준희)의 입을 닫을 수 있을 만큼 차가운 척 할 수 있는 위장술도 가졌지만 늘 혼자 주변의 소리를 상상해야하는 그는 어두운 것을 싫어합니다.

무엇 보다 들키기 싫은 건 자신의 어머니 태현숙(이혜영)과 다정한 통화를 하는 장준하(남궁민)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봐야하는 점입니다. 잘난 척도 할 수 있고 못된 척도 할 수 있고 충분히 주변의 풍경과 아름다움을 느끼며 웃을 수도  있고 주변을 울리는 소리의 진동은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데 소리는 들을 수 없는 그에게 친아들처럼 어머니에게 붙임성있게 구는 준하의 존재는 소중한 형이면서도 뭔가 이질적인 존재입니다. 어머니가 어떤 목적으로 준하를 자신의 곁에 두었는지 전혀 모르는 그는 준하 때문에 또다른 '혼자 만의 세계'가 필요하겠죠.

최진철(송승환)과 김신애(강문영)의 숨겨진 아들 준하에게도 동주가 몰랐으면 싶은 자신의 공간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봉영규(정보석)와 황순금(윤여정), 봉우리(황정음)가 어울려 살던 그 다정한 공간이 미칠듯이 싫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남의 둥지에 새끼를 맡기는 뻐꾸기같은 친부모들은 봉마루라고 불리던 자신을 벌레 취급했지만 바보 영규와 욕쟁이 할머니 순금, 미숙씨(김여진)와 우리, 멍군(이성민)과 그의 아내(황영희)는 따뜻하게 사랑해주었습니다. 현숙과 동주의 가족이 된 지금 마루는 자신의 현재를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가족이 그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동주의 세계에 끈질기게 문을 두드리는 봉우리

소리가 들리지 않는 동주가 사람들에게 청각 장애를 들키지 않은 방법은 다양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 쌓였을 때는 슬쩍 웃고 넘어가며 그들의 말을 흘려 들은 척하고 강민수처럼 4차원 정신을 가진 수다스러운 여자에겐 딱 잘라 말하는 듯 일방적인 성격인 듯 무시하며 지나갑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때 마주친 택시운전기사 같은 사람에겐 강한 척 욕을 한마디 섞어 절대 자신에게 함부로 할 수 없게 합니다. 거의 매뉴얼인듯 동주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훈련받은 것 같습니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소리의 진동은 느낄 수 있는 동주, 그런 동주의 '이유있는' 쌀쌀함을 겪어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짜증내고 편안한 얼굴을 보여주는 장준하 이외에는 동주가 겹겹이 쳐둔 방어막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문을 두드리기는 커녕 우경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인 그에게 깊이 없는 호감을 보내다가 도망가기 바쁠 뿐입니다.

벚꽃을 보며 혼자 만의 세계를 즐기는 동주

비록 자신의 의붓 오빠인 봉마루와 행동하는게 비슷하다고 생각해 끈질기게 덤벼드는 것이긴 하지만 식물원 주변에서 지내는 차동주를 보고 달려드는 봉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꾸준히 동주의 마음을 자극합니다. 오빠와 겹치는 소재는 개미똥과 이어폰 뿐인데 냉정하게 등을 돌리고 사라져버리는 모습이 어쩐지 마루 오빠 같다는 우리. 동주는 이름도 없고 학교도 못 다니던 어린 시절 친구가 그녀란 걸 알아보지만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잊은척 하느냐 아는체도 하지 않습니다.

아름답게 휘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음지으며 혼자 만의 세계에 빠진 차동주. 그에겐 소리로 접하는 세상이 아닌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가장 큰 행복을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밤에 불을 켜두고 자면 눈을 혹사시켜서 자주 두통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듣지 못하는 동주에게 볼 수 있다는 것,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런 그에게 '오자미'를 등에 던지며 '혼자만의 세계'의 문을 두드린 봉우리. 영규에게 미숙씨가 그랬듯 동주가 혼자 품어야했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될 지도 모릅니다.

한편 장준하, 옛날의 봉마루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영규와 할머니, 우리의 모습을 보며 감동하고 따뜻한 정을 느꼈던 옛날처럼 지금도 남들 앞에서는 모르는 체 밋밋한 표정을 짓지만 15년 이상을 자신을 찾는데 허비한 가족들에게 일말의 미안함과 애틋함을 느낀 준하 역시 자신의 마음 속 비밀을 제일 먼저 봉우리에게 들킬 지도 모릅니다. 어릴 적 '작은 미숙씨'로 불리던 우리가 도시락과 오빠란 말에 몰래 흐뭇해하던 봉마루의 기분을 제일 먼저 눈치챘듯 말입니다.

앞에서도 사람들은 누구나 혼자만의 비밀, 혼자 만의 세계가 필요합니다. 반면 그 세계에 자신을 사랑해주는 다른 누군가가 비집고 들어오길 간절히 원할 때도 있습니다. 봉우리가 타인들처럼 '1초 만에 포기한다'며 홀로 투털거리는 차동주의 마음 속에는 봉우리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와 아빠 만으론 부족했던 봉마루의 냉정한 10대 시절, 그 시절에 따뜻한 도시락을 싸준 새어머니의 애정, 여동생의 잔소리가 마루에 마음 속에 스며든 것처럼 말이니다. 차동주는 다시 봉우리를 향한 문을 열어줄 수 있을까요.



순금 할머니의 치매는 점점 더 위중해지고

봉마루는 고민하던 어린 시절 보다 현숙, 동주와 함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마루의 죄책감을 부풀리고 있는 일 중 하나가 친할머니인 순금의 치매입니다. 뻐꾸기 부모인 신애가 자신의 어머니라 해서 제대로 모실 리 없고 자신 역시 봉양할 의무를 저버려 그들을 돌보는 책임은 고스란히 봉우리의 몫입니다. 모든 걸 내팽겨치고 홀로 행복해보려 했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 만은 않을 것입니다.

치매란 질명은 낫는 질병이 아니라 현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질병이라 합니다. 노화와 퇴화에 따른 그 질병으로 순금 할머니는 곧 과거와 현재를 헷갈려하고 출생의 비밀을 낱낱이 고해 바칠지도 모릅니다. 밖에서 길을 잃거나 사고가 날 가능성도 높아지겠죠. 만에 하나 '어떤 일'이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봉마루의 자책감은 훨씬 더 커져버릴 것입니다. 현숙과 진철 사이에서 자신이 어떤 운명에 처할 지도 모르는데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가 상처를 입게 됩니다.

순금할머니와 멍군네 가족, 영철이 드라마의 숨통을 틔워주는 웃음보 역할을 해주는 가운데 어제 방송분에서는 '마이 프린세스'를 보셨다면 익숙한 인물들이 세 사람 등장했습니다. 가짜 봉마루 역할을 한 '백봉기'와 대통령, 홍상궁이 한자리에 등장하니 웃음이 터져 나오더군요. 심각한 진철과 현숙네의 분위기에 비해 감초 연기자들이 함께하는 우리네 집은 늘 눈물바다이면서도 밝고 즐겁습니다.

신애는 자신의 어머니를 제외한 두 존재, 영규와 봉우리가 지긋지긋하게 싫은 모양입니다. 깍쟁이처럼 이익을 따지고 자기 새끼도 남에게 맡겨 키운 이 여자는 늘 피한방울 안 섞인 봉우리에게 가족이 아니니 떠나라고 윽박지릅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찾고 싶어하는 핏줄 봉마루가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신애도 진철도 아닌 현숙, 동주, 영규, 우리 같은 남들 뿐이잖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동주 만큼이나 큰 상처를 입은 준하, 그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고 밝게 웃는 모습을 보게 해줄 사람도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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