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내 마음이 들리니

내마들, 헛똑똑이 보다 바보들이 좋은 이유

Shain 2011. 4. 2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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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엔 종종 사람들을 울고 웃게 만드는 '착한 바보'들이 등장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 보다 발달이 늦거나 후천적인 요인으로 '바보'라고 불리는 그 주인공들은 어리석다고 놀림을 당하고 때로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울부짖지만 드라마 안에서 가장 정직하고 순수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인물들입니다. 똑똑하고 배운 사람들 입에서 흘러나오면 거짓말같고 가식적으로 느껴지는 옳은 말도 '바보'들이 들려주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단순한 이치처럼 들립니다.

'내 마음이 들리니'의 봉우리 오빠, 전문의 자격증까지 따고 전도유망한 천재인 봉마루(남궁민), 장준하로 이름을 바꿔 태현숙(이혜영)의 최진철(송승환)을 향한 복수에 일조하는 그는 바보같지만 자신을 향한 사랑만은 누구 보다 넘치는 봉영규(정보석) 때문에 눈물이 나서 미칠 것 같습니다. 차동주(김재원)가 그의 눈물을 알아보고 놀렸을 정도로 그 똑똑한 마루를 감동시킨 것은 바보의 진심이었습니다. 봉우리(황정음)가 영규를 웃기려고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에 동주는 활짝 웃으며 기뻐합니다.


Richard Clayderman - Les Derniers Jours D'anastasia Kemsky
( 어린 시절 동주가 연주했고 차동주와 봉우리를 이어주는 바로 그 음악 )

꽃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마루의 구석구석까지 알아보는 영규는 어쩌면 타고난 천재입니다. 그의 천부적인 그림그리는 재주 때문에 어리석어질까봐 평범한 사람들같은 지능을 빼앗아버렸는지 모릅니다. 우경그룹 강이사의 딸인 강민수(고준희)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지고 싶다는 디자인, 그는 타인들을 감동시키는 재주를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 황순금(윤여정)의 봉양을 자신에게 맡길까봐 우리를 윽박지른 신애(강문영)는 똑똑하지만 영규같은 재주는 없습니다.

드라마에는 영규나 우리, 승철(이규한), 순금 할머니, 멍군(이성민) 같은 사람들은 비교도 안될 만큼 잘난 사람들이 잔뜩 존재합니다. 가질 만큼 가졌으면서 그룹을 두고 치열한 머리싸움을 하는 진철, 현숙 부부나 첩살이를 하면서도 자기가 최고인줄 아는 겉멋든 신애같은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식물원 소장의 권력을 마음껏 누리며 간이의자에서 게으름피우는 소장에게도 영규는 주눅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바보같은 그런 사람들을 '헛똑똑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웃느냐고 정신없는 차동주의 하루하루

봉우리와 마주친 후 몰래몰래 그녀를 지켜보는 차동주는 웃음이 멈출 줄 모릅니다. 원래부터 차동주는 웃음이 많고 다정한 성격이었고 청력을 상실하기 전까진 이름도 없는 낯선 봉우리에게 멜로디언을 주고 피아노를 가르쳐줄 만큼 따뜻한 아이였던 동주는 나이들고는 혼자 몰래몰래 웃기만 할뿐 피식피식 웃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습니다. 봉영규와 욕쟁이 할머니 순금, 왁자지껄 우리의 소동이 그의 눈엔 신기하기만 한 모양입니다.

예전에 자신의 집이 있던 자리를 가리키며 '화장실이 우리 집인데'라고 더듬거리도 하고 이사와서 잠도 제대로 못자는 매발톱꽃을 다독이는 봉영규. 어머니 현숙이 자신이 홀로 편히 거주할 수 있도록 지어준 식물원 안 게스트 하우스에서 남들은 모르는 비밀을 감추고 혼자 격리된 채 살고 있는 동주에게는 영규와 우리의 등장이 생활의 기쁨이자 도저히 그냥 둘 수 없는 장난감인 모양입니다.

봉영규와 봉우리 때문이 웃음이 멈추지 않는 차동주

특히 '귀에 익숙한 멜로디'를 따라 봉우리를 부르는 듯 끊어가며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장면이나 식물원에 도시락을 들고온 봉우리가 봉영규와 함께 피아노가 놓인 게스트 하우스를 엿보게 한 일은 동주의 장난기가 제대로 발휘된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피아노 소리를 우리가 잊어버렸을 리는 없겠죠. 동주가 우리가 뛰어오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있다가 그런 장난을 쳤을 거라 생각하니 활짝 웃는 모습이 개구져보이기까지 하더군요.

봉영규가 그린 그림을 300만원을 주고 몰래 사들이며 웃는 장면, 봉영규가 이젠 자신의 그림이 그냥 그림이 아니라 작품이라며 '큰소리'내며 크레파스를 쥐고 그리는 장면 등 우울한 차동주의 일상은 갑자기 활짝 피어난 식물원의 봄꽃들처럼 밝고 개운해지기만 합니다. 어린 시절의 봉마루처럼 냉정하고 차갑게 주변을 응시하던 동주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는 정말 웃는 얼굴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헛똑똑이들과 짐이 될까 싶어 홀로 몰래 눈물흘리는 할머니

태현숙은 자기 몰래 진철이 '준하'를 불러들였단 소식을 듣고 불안해서 어쩔 줄 모릅니다. 준하에게 우경그룹 전회장인 동주 외할아버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알려준 현숙은 동주를 우경 화장품의 대표로 내세운 후 준하를 시켜 경영을 보조시키고 진철에 대한 '복수'를 진행하도록 착착 준비하고 있습니다. 진철이 만약이라도 핏줄의 당김 때문에 어린 시절 한번 밖에 보지 못한 마루를 알아본다면 현숙의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갑니다. 일부러 치밀하게 입양까지 시킨 현숙도 마루에게 큰 상처를 줄 인물입니다.

극중 신애는 자신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기 싫어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은' 노인네란 소리를 해서 순금 할머니는 자신이 어린 손녀와 모자란 자식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에 홀로 눈물짓습니다. 어떻게든 우리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 애쓰는 할머니는 세상의 잘난 사람들에게 상처입은 여린 영혼입니다. 동주 역시 너무나도 사랑했던 아버지 진철과 복수하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냉정한 얼굴에 상처입은 여린 아이였을 뿐입니다. 사랑스러운 그들의 헛똑똑이들에 대한 반란, 어쩐지 흙으로 이불을 덮어주듯 다독여주고 싶어집니다.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마루

식물원에서 말린 국화차를 병원에 들고가 장준하와 담당의사에게 전해준 봉우리, 그녀가 버스를 놓치자 뒤따라온 준하는 우리를 집으로 데려다주게 됩니다. 살림살이가 궁색할 리 없는 의사들에게 국화차 한봉지의 가치가 큰 것은 아니겠지만 봉우리는 그런 작은 선물 하나도 타인을 보살펴줄 마음의 여유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어린 시절 가난을 겪어본 준하는 우리가 그 국화차 하나를 주려 어떤 노력을 했을 지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한끼한끼 굶어가며 따뜻한 '마루의 밥'을 한공기씩 퍼두던 영규같은 마음입니다.

자동차 외판 일을 하느냐 여기저기 굽신굽신 허리를 굽히고 아버지가 혹시 사고치지 않나 돌보러 식물원에 들러 일을 거들고 도시락 배달해주고 술마시고 정신줄 놓은 할머니 챙기고 우유배달하고 신문배달하고 치킨 배달까지 해야하는 봉우리의 삶. 핏줄이 섞인 가족이라도 그녀처럼 살기는 힘들지요. 그녀를 움직이는 유일한 원동력은 죽은 엄마 미숙씨(김여진)이 꼭 아빠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던 유언입니다.

착한 꽃들이 시들지 않도록 힘내라 봉영규

꽃에 둘러싸인 꿈을 꾸는 순금 할머니, 치매에 걸려 정신을 놓는 일이 잦아질수록 꽃그림 값으로 병원비를 해결하는 건 점점 더 빠듯해질 것입니다. 정성을 주고 다독여주어야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자그마한 식물들. 아침마다 밥을 짓고 식물원에서 꽃이 잠을 잘 자도록 돌보는 영규는 이제 그림도 그려야 하는데 꿈을 꾸는 순금 할머니 꽃이 시들지 않으려면 더욱 더 따뜻하게 보살펴야할 것 같습니다. 마루, 마루의 눈물이 진실을 고백하게 만들고 할머니와 영규에게 양분과 자그만한 빛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참, 극중 차동주가 연주한 곡은 Les Derniers Jours D'anastasia Kemsky(아나스타샤 킴스키 최후의 나날)이란 곡으로리차드 클라이더만의 연주로 유명한 곡입니다. 러시아의 어린 아나스타샤 공주는 혁명이 일어나기전 어떤 일상을 보냈을까요. 차동주와 무척 잘 어울리는 연주같습니다. 동주와 마루, 우리의 최후 행복은 착한 바보 봉영규에게 부탁해야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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