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짝패

짝패, 백성을 염려하는 호판이 우스운 이유

Shain 2011. 5. 1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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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MBC 홈페이지를 비롯한 드라마 '짝패' 관련 게시판에 접속해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주연배우나 캐릭터에 대한 반감, 분석이나 비난도 자주 올라오지만 조선 후기 사회에 대한 정보를 토론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습니다. '민중사극'임에도 주인공들이 어째서 '영웅'답지 못하냐 하시는 분들도 있고 왜 도적패인 '아래적(我來賊)'이 사람을 죽여야만 하느냐 즉 악행을 저질러야 하느냐 묻는 분도 있습니다. '옳은 일'을 하는 의적이란 설정이니 현대인들에게는 충분히 과격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일 것입니다.

'KBS 추노'의 송태하(오지호)가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며 그 부분과 아래적의 행동을 비교하시는 분도 보았는데 아무리 '짝패'가 현대 사회의 여러 메시지들을 담고 있는 드라마라 하지만 그 시대의 질서를 현대와 비교하기는 상당 부분 무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노비를 생명으로 여기지 않고 재산 취급하던 것처럼 '법치주의'가 정착하지 않은 시대에 죄에 대한 응징은 상당 부분 임의적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모든 제도와 법적 장치가 민중의 편이던 시대는 더더욱 아니니까요.

'민중(民衆)'의 뜻은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국민, 피지배 계급으로서의 일반 대중을 뜻합니다. 최소한 올바른 국가라면 '포퓰리즘'을 운운하기 전에최소한 민중의 시각과 입장에서 정책을 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신분제가 붕괴되고 있던 조선 사회, 그 시대의 질서는 최소한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기 보단 소수 지배 계층의 이익을 위해 다수가 수탈당하는 걸 당연시했습니다.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법과 제도, 그 질서에 민중이 대항하기 위한 방법이 '합법적' 일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부정하게 여기저기에서 끌어모은 막대한 재산, 환표를 보며 흐뭇하게 웃음짓던 호조판서의 죽음. 환표들 속에서 피흘리며 나동그라지는 그의 목숨을 빼앗는다고 조선 후기 민중들에게 '봄'은 오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달이(서현진)가 전하는 강포수(권오중)의 말처럼 조선 팔도가 백성들의 피로 물든다 해도 그들의 저항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목숨을 빼앗는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천둥(천정명)의 고민도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동녀(한지혜)의 객주에서 도망쳐 아래적이 되기로 한 만덕, 그의 말처럼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칼을 벼르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래적과 김문수가 말하는 '좌파'

종종 현대인들과 드라마 '짝패' 속 등장인물이 묘하게 겹친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어제 '좌파 포퓰리즘이 국민 오염(뉴시스 기사)'시킨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올린 모양입니다. 정확한 발언의 일부는 '한나라당이 정당의 이념과 교육을 소홀히 함으로써 선진화를 가로막는 좌파의식, 포퓰리즘이 연탄가스처럼 국가와 국민을 오염시켰다'라는 군요. 이는 다음 '대권'을 상당 부분 의식한 발언으로 한나라당이 계파를 청산하고 가치 중심으로 모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재미있게도 좌파란 용어는 요즘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인데다 '포퓰리즘'은 친서민정책을 펼치지도 않는 정치권 인사가 시장판에서 떡볶이를 집어먹는 이미지 정치를 펼칠 때 적절한 표현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모습이 드라마 속 '호조판서'와 동녀가 내뱉는 발언들과 재미있게 겹쳐집니다. 호조판서는 말 그대로 조선 후기 사회의 최고 권력층, 돈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고 동녀는 몰락한 양반이긴 하지만 신분사회의 가치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신분과 재산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습니다.

김진사(최종환)이 아래적들에게 습격당한 것을 알고 찾아온 호조판서는 귀동(이상윤)을 보며 공과에 상관없이 높은 자리로 올려주겠다 부정한 말을 하면서도 아래적들이 고위 관리를 노린다는 점에 분개합니다. 이미 여러 편 방영되는 동안 조선 팔도의 뇌물을 다 끌어모으는 자가 호조판서이며 김진사가 핵심 역할을 하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감히 더러운 돈을 받아먹은 입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아래적이 백성들에게 패악질을 해댈 것이라 우려합니다.

만덕을 오래동안 하인으로 부려온 동녀 역시 마찬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깨달은 것이 있어 아래적의 일원이 되겠다는 만덕을 붙잡고 '아래적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한낱 도적떼'라며 만덕의 반응을 동학군같은 궤변을 늘어놓는다 나무랍니다. 기생이 될 뻔했던 일 말고는 세상 고생했던 적없는 어린 아가씨가 험한 세월을 살아온 만덕에게 세상의 질서와 이치를 따지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지만 짓밟히던 민중의 거센 반발을 미신 취급하고 역적 취급하는 모습도 '같잖은' 노릇입니다. 신분의 차이만 아니라면 만덕이 동녀의 인생 스승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텐데 말입니다.

김문수가 말하는 '좌파 포퓰리즘'에 대한 태도와 동녀와 호조판서의 '아래적'에 대한 태도는 시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유사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시선으로 백성들의 입장과 주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세상의 잣대를 세워두고 그 이외의 주장은 모두 이단시하고 배척하고 죽이려드는 공통점 말입니다. 김문수의 발언 속에 등장한 '한나라당의 가치를 전파시킬 열혈 전사'란 그들의 입장에 동조하고 그들의 목적을 실현시킬 공포교(공형진)같은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 아닐까 싶어 끔찍스럽기도 합니다.

짝패의 주인공 천둥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민중의 모습을 보았길래 포도청의 짝패 귀동을 두고도 탐관오리에게 칼을 겨누는 아래적의 수령이 되었을까요. 현대적 관점에서 관리를 암살하는 아래적에게 어떤 단죄를 내릴 수 있을 지 알 수 없지만(현대의 기준으로는 도적패가 바르지 않기 때문에) 분명한 건 그의 시선이 민중의 시선이고 백성의 염원이란 점입니다. '우매한' 백성들이 도적떼 아래적의 편을 드는 것을 비웃을게 아니라 '어리석은' 백성들이 그런 호조판서나 김진사의 안위를 걱정한다는 걸 비웃어야 할 일입니다.



귀동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김진사가 천둥과 혈연이면서도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 귀동과 천둥의 운명을 바꿔놓은 막순(윤유선)도 쇠돌(정인기)도 김진사도 귀동도 동녀도 그 사실에 경악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뒤바뀌어도 어긋나서는 안될 질서는 반상의 질서가 아니라 천륜이라는 것, 그점에는 모두들 동의하고 있습니다. 귀동은 천둥이 자신을 속이고 아래적이 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아버지 김진사가 체면을 위해 조선달(정찬)을 죽이고 양반의 핏줄을 잇겠다며 천둥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합니다. '더러운 핏줄, 더러운 가문'이라는 어린 시절의 느낌은 정확히 드러맞았습니다.

등장인물 중에서 아래적을 비난할 권리를 가진 단 한사람이 있다면 바로 귀동입니다. 그는 포도대장, 종사관, 공포교와는 다르게 올바른 포교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고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온정을 베풀었습니다. 세상을 바꾸긴 바꾸게 썩은 물을 뒤엎기 보다는 그 썩은 물을 정화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믿는게 귀동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귀동은 기른정 보다 핏줄을 우선시하는 아버지, 우정을 버린 친구 때문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김진사의 모든 혜택을 버리고 차라리 고향으로 돌아가 서당이나 하자는 동녀의 제안, 상단을 꾸릴 때도 현실적이더니 귀동의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게 된 동녀의 선택도 상당히 현실적입니다. 귀동이 이제 와 김씨 집안의 장자라는 자신의 지위가 아깝거나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양반가의 자제, 그 신분이 남주기 아깝다거나 친어미인 막순이 싫은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귀동은 능히 '안동 김씨'라는 이름을 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만 지금은 어떻게든 천둥과 김진사의 비극을 막아야하고 아래적이라는 도적을 막아야합니다.

'이젠 짝패도 아니다'며 모진 말을 내뱉는 귀동이 아래적을 필사적으로 잡을 동기를 갖게 된 시점, 그의 선택이 천둥과 다른이들의 운명을 결정짓지 않을까 합니다. 썩은 관리가 백성들을 비웃는 웃기는 세상에 귀동은 계속 해서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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