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짝패

짝패, 아래적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Shain 2011. 5. 2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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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80년대 의적 '조세형' 이야기를 포스팅한 적이 있지만('아래적 두령은 전설이 되어야 한다'를 참고하세요), 의적이 나타났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부패하고 정의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총, 칼같은 위험한 흉기를 쓰지 않고 드라이버같은 기기로 부정하게 모은 보석들을 탈취한 조세형, 그 돈의 일부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기행을 했다는 그의 모습을 사람들이 '의적'이라 부른 건 그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썩은 나라를 풍자하는 가장 적절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많은 언론이 '국민이 어리석다'며 훈계를 했다는 건 안 봐도 뻔한 일이지요. 의적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 역사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탐관오리들이 설치고 백성들의 수탈이 심해질수록 그들 '부자'의 돈을 털어가는 도둑들은 의적이 되었습니다. '백성이 굶는다'는 기록이 남은, 어려운 시기에는 어김없이 의적들이 나타났습니다.

본디 굶다 굶다 지치면 소작농이 되고 그러다 돈을 못 갚으면 노비가 되고 그마저 못해 비참한 생활을 면치 못하면 동냥아치가 되고 그것도 못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도둑질을 하게 됩니다. 탐관오리의 경호원 노릇이나 하는 포도청은 유난히 양반네들의 재산을 지키는데 철두철미했던 것인지 사기꾼 보다 도둑에 대한 처벌이 더욱 극악했다고 합니다(참고, 짝패, 악명높은 조선 후기 '포도청' 재현).

조선 후기에는 참다 참다 못한 민중이 뭉쳐 동학혁명을 꿈꾸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 했지만 조선 초기나 중기의 민중은 그리 힘겹게 살던 도둑들이 뭉치고 두령을 두어 '의적'이 되었습니다. 장길산, 홍길동, 임꺽정 등 그들의 실제 행적과 기록, 백성의 평가가 다 다른 건 민중이 그들을 '좋은 말'로 입소문을 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민심이고 천심이었던 것이지요. 포도청 사람들은 단순히 도적떼라 그들을 폄하하지만 왜 도둑이 되고 호패를 버렸는지 따져보면 그는 그들의 탓이 아닙니다.

왜 백성은 의적을 꿈꾸고 그들을 전설로 만들길 원하는가. 마지막회를 앞둔 드라마 '짝패'는 31회의 긴 여정 동안 가상의 의적 '아래적(我來賊, 조선 후기의 진짜 아래적은 그냥 도둑입니다)'의 두령이 되어가는 주인공 천둥(천정명)과 그와 출생이 뒤바뀐 포도청 포교 귀동(이상윤)의 이야기를 대비시키며 그런 민중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울고 웃고 나쁜 짓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래적'으로 귀결되어 가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의적'이 비웃음을 당했던 것처럼 소소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의 감정은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백성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조정에서 시키는대로 '아래적'을 때려잡으면 된다고 믿었고, 그들에게 동요하면 자신들의 생계가 막힌다고 생각했으며 새로운 세상 따위는 오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상위 1%가 소수이듯 자신들을 수탈하는 탐관오리의 숫자는 기껏해야 민중들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데 그들을 위해 나라를 바꿔야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아래적을 음지에서 양지로

사람들은 세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할 기관을 경찰, 군대 같은 것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정말로 그런 기관들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만큼 혼탁하고 질서 유지를 강경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니 진정한 평화가 오고 나면 절대 축소되거나 없어져야할 기관, 그런 기관들의 영향력이 없어지기 위해서 노력해야하는 그런 기관이란 뜻입니다. '아래적'과 같은 의적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중을 위한 나라가 오면 사라져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자기 밖에 모르던 못되먹은 거지패 장꼭지(이문식)가 점점 더 깨달아가듯 의적들은 그랬습니다. 노인이고 아이고 여자고 남자고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찾았고 늙어 걸어다닐 기운이라도 있으면 그들의 일원이 되고자 했습니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 동학군과 의적의 뒤를 쫓은 백성들은 어리석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영원히 의적이고자 하는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함께 살기 위해 도둑임을 자처한 것입니다.

드라마 '짝패'에서 눈여겨 볼 것은 아래적의 적이라 여겼던 사람들 조차 아래적의 취지에 동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장꼭지가 아들 도갑의 죽음으로 각정하고 눈뜨게 되었고 천둥과 귀동의 출생을 바꾼 악녀 막순(윤유선)이 양반가의 찌거기와 돈을 탐내다 결국 덴년의 종문서를 스스로 태우게 되었고 용마골의 백성들을 민란으로 몰고 가고 붓들아범(임대호)를 때려 죽게 만든 현감(김명수)이 아내 삼월(이지수)와 함께 하며 떡장수로 거듭났습니다.

그리고 결국 탐관오리의 핵심에 있던 안동김씨, 더러운 집안 더러운 핏줄의 총아인 김진사, 호조참의이자 조정 뇌물의 총책임자인 김재익이 아래적이 된 아들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아래적 두령으로 패두들을 이끌고 김재익을 죽여야 하는 천둥 역시 달이(서현진)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김진사 때문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건 결국 그 탐관오리들, 공포교(공형진)이나 진득(임성규)같은 인물도 함께 끌고 가야한다는 뜻이 됩니다.

조선 후기, 국가에 반기를 드는 방법은 의적이 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아래적'들은 꼭 필요한 존재들이지만 '도둑'의 모양을 갖출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아래적'은 산속으로 숨어들 필요도 없고 몰래 칩거할 필요도 없는 일반 국민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장 바닥에서 사과를 팔고 떡을 팔고 술한잔 하며 넋두리를 하던 평범한 백성들이 '아래적의 마음'에 동의하듯 그러고자 한다면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아래적'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도 '아래적'은 언젠가 '이상적으로' 사라져야할 존재들입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이상은 그렇게 국가와 권력에 대항하는 존재들, 포도대장이나 포교들이 없애려 하는 존재들이 없어도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누군가 '현대 사회의 아래적은 트위터리안'이란 트위터 글을 본 것도 같은데 사람들이 살아나가고 권력과 부정부패가 존재하는 한 아래적은 그 모습을 바꿀 뿐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 마지막회를 맞는 드라마 '짝패'의 결말은 아마도 관군들의 추적으로 위험해진 천둥을 귀동과 김진사가 희생을 감수하고 필사적으로 구해내는 내용이 아닐까 합니다. 쇠돌(정인기)가 큰년(서이숙)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는게 영 두 사람이 죽음을 맞이할 것 같기두 하구요. 동녀(한지혜)가 서당을 만들고 백성들이 아래적을 기억하듯 그렇게 아래적은 영원히 사는 전설이 될 것입니다.

현대 사회의 우리들은 그들 아래적을 단순히 전설로 만들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수
단으로 바꾸어야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시대의 아래적은 과연 누구입니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화두를 꺼내준, 사실적인 민중 묘사에 탁월한 감각을 가진 이 시대 유일한 서민 작가 김운경. 생각할수록 시대에 메시지를 전하는 드라마가 아쉬운 요즘입니다. 지난주 모친상을 당했다고 들었는데, 그 와중에도 민중사극 '짝패'를 써주신 김운경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 극중에서 큰년 역할을 맡으셨던 배우 서이숙님께서 방명록에 글을 쓰신 거 같은데(확실치는 않습니다) 제가 답장을 드릴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본인이 맞으시다면 비밀 댓글이라도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방문해 주신 것만으로도 상당히 영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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