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내 마음이 들리니

울보 배우 남궁민, 보석처럼 빛을 발하다

Shain 2011. 5. 22. 08:40
728x90
반응형
연기자 남궁민을 첨음 본 것은 제 기억에 故 최진실 주연의 '장미빛인생'입니다. 물론 다른 출연작품들도 매우 많았겠지만 그의 얼굴과 이름을 확실하게 기억하게 된 드라마가 그 작품이었다는 것이죠.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 만하다 죽은 언니, 바람난 남편 때문에 속이 타들어가는 그런 언니와 다르게 동생(이태란)은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대학 때부터 사랑했던 남자와 불륜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원래 자기 남자였지만 부유한 여자와 결혼한 남자 때문에 동생도 언니 만큼이나 큰 상처를 입습니다. 남궁민의 역할은 그런 이태란을 '구해주는' 왕자님같은, 따뜻한 남자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상당히 인상적인 배역으로 시청자들의 호감을 받았던 남궁민은 이어 '비열한 거리', '뷰티플 선데이' 등에 출연해 폭넓은 연기를 선보였지만 군입대 이후 잠시 시청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2002년경 데뷰해 배용준과 닮은 외모로 '리틀 배용준'이라 불리기도 했고 '대박가족'이란 드라마의 '남궁뎅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며 연기자로 성장하던 남궁민으로서는 상당히 아쉬운 시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2010년 복귀해 2011년 '내 마음이 들리니(내마들)'로 최고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그는 그동안의 공백을 말끔히 메우고 있습니다.

어제 방송분에서 최진철(송승환)은 봉마루(장준하)에게 젊은 시절의 자신을 닮았다며 자로 잰듯이 완벽하다고 합니다. '자네나 나처럼 스스로 살 길 찾아야 하는 사람들은 늘 긴장한다'는 그는 장준하가 차동주(김재원)의 그림자로서 혹은 태현숙(이혜영)의 양아들로서 최선을 다해야하는 그 상황을 알아본 것입니다. 봉마루의 캐릭터는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 서글픔을 모두 가진 순수한 캐릭터이면서도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쳐 자신의 성공을 쫓고 싶어하는 '욕심'을 가진 이중적인 캐릭터입니다. 봉마루에게 선과 악의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그중 '꽃바보' 역할을 하는 봉영규 역할의 정보석도 어떤 드라마에 출연하든 자신의 몫을 해내고야 마는, 악역이면 악역인대로 선량한 역이면 선량한대로 제대로 표현하는 배우이지만, 봉마루 즉 장준하의 캐릭터 역시 남궁민 아니고서는 해낼 수가 없는 캐릭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선량한 눈빛으로 처량하게 가족들을 바라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짓는가 하면 상처입은 강아지처럼 양어머니에게 무릎베개를 하기도 하고 누구 보다 개구지게 봉우리(황정음)과 차동주 사이에서 장난을 치는 그는 영락없이 봉마루입니다. 남궁민도 정보석처럼 그 진가가 재발견된 배우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부터 보석같았던 정보석, 뒤늦게 보석이 된 남궁민

정보석은 86년 데뷰하여 초반의 '사모곡(1987)'부터 사도세자를 연기한 '하늘아하늘아(1988)'까지 흔치 않은 깔끔한 마스크와 지적인 외모로 주연급을 도맡아 하던 배우입니다. '보고 또 보고(1998)'에서 맡았던 검사 역할이 그 동안의 정보석의 이미지를 대변해주는 역할이었습니다. 늘 비슷한 이미지의 연기를 했던 까닭에 실력이 늘어가고 주연급으로 꼭 필요한 역을 맡아도 연기력을 눈여겨 보는 사람이 오히려 줄어든게 아닌가 싶습니다. 당연히 잘 하기 때문에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어아가씨(2002)'의 범생이 바보 역할이나 '지붕 뚫 하이킥(2009)'의 소심남 역할, '신돈(2005)'의 공민왕 역할 등으로 자신의 연기 변신이 무한함을 증명하다 '자이언트(2010)'의 카리스마있는 악역으로 제 2의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이번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맡은 봉영규 역할도 그의 연기 경력으로 봐서는 엄청난 변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광기에 미쳐 정신줄을 놓는 역할을 맡은 적은 있어도 정말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을 가진 바보역을 맡은 적은 처음입니다.

데뷰 초기의 모습들, 세번째 사진이 영화 '나쁜 남자'의 단역 시절

반면 남궁민은 데뷰가 주연급이 아닌 조연급으로 그를 눈여겨 보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배용준을 닮은 인상좋은 신인배우로 인식되고 화제를 끌곤 했지요. 출연작품수도 경력에 비해 많은 편이 아니라 영화 출연작은 세 편 정도입니다. 드라마에서 주연급으로 활약한 것도 총 다섯편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2004)'에서 맡은 역은 사채하는 재벌집 아들 안진국 역으로 시선을 끌기도 했지만 역시나 단박에 인기를 끌어모은 건 '장미빛인생(2005)'이겠네요.

거의 10년 가까운 그의 연기 생활 동안 '남궁민'하면 떠오를 주연급 대표작이 없지 않나 싶었는데 이번 드라마 '내마들'로 걸출한 대표작을 갖추게 된 듯합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같은 서글픈 눈동자가 매력적인 역할, 폭발할 듯한 마음을 이성으로 누르고 또 누르지만 언젠가 자기도 모르게 터져버리는 슬픔, '내마들'에서 가장 가여운 봉마루의 역할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드물지 않나 싶습니다.

'남궁민'하면 또 떠오르는 기억이 '울보'란 것인데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습니다. 찾아보니 2005년경 '해피투게더'란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의 일입니다. 초등학생 때 워낙 자주 눈물을 쏟아 친구들이 그리 불렀다는데 남자 배우치고는 언제라도 톡 하고 터질 것같은 감성을 아주 잘 표현한다 싶었는데 어릴 때부터 특별히 감성과 표현력이 뛰어난 배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원래 연기란 것이 '기억의 재현'이란 측면이 강해 눈물도 자주 흘려본 사람이 훨씬 더 실감나게 흘릴 수 있다고 하지요.



마루를 범죄자로 만들 수도 있는 태현숙

처음으로 생긴 어머니를 빼앗아간 최진철, 그에게 복수하겠다는 봉마루(장준하)는 진철과 김신애(강문영)가 자신의 친부모란 사실은 죽어도 모르고 있습니다.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차동주의 앞길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친절과 자신들의 사이를 이간질시키려하는 김신애가 부모란 사실을 알게 되면 안 그래도 비극적인 그의 인생이 점점 더 슬픔의 도가니가 되겠지요. 친어머니는 자신을 버렸고 봉영규의 아내였던 계모 미숙씨(김여진)은 너무 빨리 죽어버렸고 엄마처럼 믿고 의지했던 태현숙은 봉마루를 범죄자로 만들어도 상관없단 입장입니다.


피 한방울 안 섞였지만 자신을 유일하게 사랑해준 아버지 봉영규, 그의 잠든 얼굴을 지켜 보며 '이렇게 생겼구나' 혼잣말을 하는 마루는 너무나 외로워 보입니다. 양어머니 현숙과 동주, 자신에 대한 일을 포기하지 못하고 가족에 대한 정을 속으로만 삼켜야하는 '진짜 바보' 봉마루. 고미숙이 아닌 '미숙씨'와 꼭 닮은 나미숙(김여진)이 등장해 새로운 전개를 예상해볼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유일하게 어릴 적 자신을 쫓아다니던 봉우리의 마음이 동주를 향하고 있단 걸 알게 됐음에도 우리에게 끌리는 건 아무도 자신 만을 바라봐주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양엄마 현숙은 동주만 보고 동주는 우리만 보고 우리는 동주 밖에 모릅니다.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아이 마루가 우리를 사랑하고 질투하는 마음은 그렇게 복잡한 거겠죠. 아름다운 보석같은 연기자, 남궁민이 최근 이 드라마를 찍으며 급격한 체중 감량이 있었다고 하는데 봉마루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미지 출처, 참고기사 :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