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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이 다른 가족에게 섭섭한 마음을 갖는 일은 종종 일어날 수 있지만 그 가족을 복수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는 건 한 인간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큰 고통이 됩니다. 그래서 가족 드라마에서 '복수'란 단어가 쓰이면 그 결말이 항상 유쾌하거나 깔끔한 느낌을 주지 못합니다. 한때 아버지였거나 어머니였던 존재, 또는 형제라 불렸던 사람에게 잔인한 어떤 일을 저질러야 하다니 기분이 좋을 리 없겠죠. 그래서 가족이 갈등하는 이유는 헤어지고 서로를 아프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여야 합니다.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내마들)'의 가족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모두 모여 할머니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합니다. 이미 고인이 된 순금 할머니(윤여정)가 한 그루 나무가 되어 가족들을 보듬어 주는 듯 소나기를 피하는 모습이 부모란 죽어서도 그렇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은 존재인가 보다 싶습니다. 그릇된 길로 들어선 부모들이 제자리를 찾고 방황하던 아이가 부모를 찾고, 자식의 시작을 보아준 사람이 부모라면 부모의 끝을 보아주는 사람은 자식이라는 그 말은 정말 맞는 말인가 봅니다.
순금할머니의 마지막 순간, 어릴 때 영규도련님(정보석)을 거둬 안고 어르고 달래고 키워줬던 것처럼 봉영규에 등에 업혀 숨을 거두는 장면은 보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가슴아픈 순간이었습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함께 했던 사람들이 끝까지 아름답고 따뜻하게 서로를 생각해주는 모습이 할머니의 죽음으로 결말을 맺다니 가슴 아프지만 어쩐지 위로가 되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버림받았음을 알고 있던 영규는 엄마 보다 어머니가 더 좋았다며 눈물을 쏟습니다.
태현숙(이혜영), 최진철(송승환), 김신애(강문영)가 자신들 만을 위해 싸우고 복수하는 동안 그들의 아이들은 상처입고 마음을 다쳤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위해주는 모습으로 거듭난 건 차동주(김재원)와 장준하(남궁민)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는 부모가 아이를 길러주지만 나이들어서는 부모의 그릇된 점까지 자식이 감싸주는 것이 삶의 이치인가 봅니다.
마지막회에 등장한 봉우리(황정음)의 수화 강사는 실제로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지난회에 차동주가 봉우리에게 불러준 '좋은 사람'이란 노래처럼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은 아무리 어릴 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더라도 자신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발음하기가 힘듭니다. 입술을 읽고 상대의 말을 알아듣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극중 차동주처럼 정확하게는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사실적인 표현이 부족했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내마음이들리니'에서 '청각장애'의 의미는 중의적입니다. 실제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차동주가 자신의 뜻을 펼치기 힘든 건 장애 때문 만이 아닙니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장애가 없음에도 상대방의 진실을 눈여겨 보려하지 않고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동주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힘든게 아니라 마음이 닫혀 있어서 힘든 세상을 보게 됩니다.
마음의 청각 장애에 비하면 진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 쯤은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의 진심을 알 수 없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잘 보는 사람'이라는 동주의 가치관은 끝내 동주를 배신한 양아버지 최진철의 마음도 아들들이 다치는 걸 몰라본 어머니 태현숙의 마음도 뒤흔들어놓고야 맙니다. 모든 것을 순리대로, 상대방의 진심을 읽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복수라는 걸 알았던 현명한 동주의 마음이 지난 일까지 용서하는 진정한 복수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내마들' 주인공들의 상황은 하나같이 구구절절하지만 극중에서 가장 마음이 아픈 관계 중 하나는 봉영규와 봉마루의 부자 관계입니다. 예민하고 너무 똑똑해서 바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시달림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봉마루는 늘 봉영규를 거부하고 부정하고자 했지만 결국 세상에서 버림받고 위로가 필요할 땐 봉영규의 아들이라서 행복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세상 누구 보다 자신을 귀하게 생각해주고 밥 한끼를 차려줄 사람은 그 '바보 아빠' 말고는 없었던 것입니다.
마루와 똑같이 바보 오빠 때문에 시달리던 삶이 싫었던 김신애 역시 자신을 공부시키고 싶어 봉영규를 아들로 받아들였다는 순금 할머니의 진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자집 도련님이었지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버림받은 영규 덕분에 자신의 학비며 생활비가 나오게 되었다는 말. 엄마가 바보같은 남의 집 도련님에게만 신경쓴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평생 이해하기 힘들던 가족의 마음을 그때서야 이해하고 눈물흘리는 사람들. 드디어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혈연이라고 해서 모두 가족인 것도 아니고 '같이' 산다고 해서 다 가족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꽃의 싹이 나고 자라날 동안 보살핌이 필요한 것처럼 자리를 옮긴 꽃을 돌볼 때 흙을 다독여주고 자리를 가려주어야하는 것처럼 가족이란 건 마음을 알아주고 진심을 알아줄 수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때로는 봉영규처럼 순금할머니처럼 꽃밭을 가꿔주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꽃바보 봉영규가 불러모은 사람들, 그렇게 같이 사는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이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봉영규 출생의 비밀이 혹시 다른 막장드라마처럼 풀리는 건 아닌지 얼굴이 똑같은 미숙씨(김여진)의 등장이 쌍둥이같은 출생의 비밀이 숨겨진 건 아닌지 많은 사람들이 한때 '복수극'으로 흐르는 이 드라마의 진행 방향을 우려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 드라마의 갈등 구조 역시 다른 드라마 못지 않게 격렬하고 극적인 면이 있습니다. 돈과 불륜이라는 코드 역시 마찬가지로 활용되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에게 감탄하며 그들의 연기에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배우 정보석의 변신, 윤여정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좋았지만 무엇 보다 순수한 얼굴과 광기 어린 얼굴을 함께 표현할 수 있는 '장준하'라는 배우를 재발견할 수 있었던 기회였기도 했고 순수한 배우 김재원의 성장된 감정 표현을 볼 수 있었던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송승환, 이혜영, 강문영, 김여진 등 그들 모두가 만든 이 '착한 드라마'의 여운은 꽤 오래 사람들에게 남아있을 것같단 생각이 듭니다.
제작비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승철 역의 연기자 이규한이 항상 치킨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던지 강민수(고준희)가 등장하는 장면에 화장품 광고, 동주와 봉우리가 사용하던 각종 전자 기기 확대컷이 자주 등장해 과도한 PPL 논란을 빚음에도 이 드라마가 동시간대 방영되는 다른 드라마들 보다 호평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가장 따뜻하고 단순한 감정, 이 시대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꽃바보 봉영규가 차려주는 밥 한끼의 의미를 되새겨봐야하는 그런 시대니까요. 내마들 연기자 여러분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내마들)'의 가족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모두 모여 할머니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합니다. 이미 고인이 된 순금 할머니(윤여정)가 한 그루 나무가 되어 가족들을 보듬어 주는 듯 소나기를 피하는 모습이 부모란 죽어서도 그렇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은 존재인가 보다 싶습니다. 그릇된 길로 들어선 부모들이 제자리를 찾고 방황하던 아이가 부모를 찾고, 자식의 시작을 보아준 사람이 부모라면 부모의 끝을 보아주는 사람은 자식이라는 그 말은 정말 맞는 말인가 봅니다.
순금할머니의 마지막 순간, 어릴 때 영규도련님(정보석)을 거둬 안고 어르고 달래고 키워줬던 것처럼 봉영규에 등에 업혀 숨을 거두는 장면은 보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가슴아픈 순간이었습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함께 했던 사람들이 끝까지 아름답고 따뜻하게 서로를 생각해주는 모습이 할머니의 죽음으로 결말을 맺다니 가슴 아프지만 어쩐지 위로가 되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버림받았음을 알고 있던 영규는 엄마 보다 어머니가 더 좋았다며 눈물을 쏟습니다.
태현숙(이혜영), 최진철(송승환), 김신애(강문영)가 자신들 만을 위해 싸우고 복수하는 동안 그들의 아이들은 상처입고 마음을 다쳤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위해주는 모습으로 거듭난 건 차동주(김재원)와 장준하(남궁민)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는 부모가 아이를 길러주지만 나이들어서는 부모의 그릇된 점까지 자식이 감싸주는 것이 삶의 이치인가 봅니다.
그렇게 같이 사는 사람들이 바로 가족
마지막회에 등장한 봉우리(황정음)의 수화 강사는 실제로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지난회에 차동주가 봉우리에게 불러준 '좋은 사람'이란 노래처럼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은 아무리 어릴 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더라도 자신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발음하기가 힘듭니다. 입술을 읽고 상대의 말을 알아듣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극중 차동주처럼 정확하게는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사실적인 표현이 부족했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내마음이들리니'에서 '청각장애'의 의미는 중의적입니다. 실제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차동주가 자신의 뜻을 펼치기 힘든 건 장애 때문 만이 아닙니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장애가 없음에도 상대방의 진실을 눈여겨 보려하지 않고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동주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힘든게 아니라 마음이 닫혀 있어서 힘든 세상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상처를 준 아들들 외에는 기댈 곳 없는 진철의 후회
'내마들' 주인공들의 상황은 하나같이 구구절절하지만 극중에서 가장 마음이 아픈 관계 중 하나는 봉영규와 봉마루의 부자 관계입니다. 예민하고 너무 똑똑해서 바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시달림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봉마루는 늘 봉영규를 거부하고 부정하고자 했지만 결국 세상에서 버림받고 위로가 필요할 땐 봉영규의 아들이라서 행복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세상 누구 보다 자신을 귀하게 생각해주고 밥 한끼를 차려줄 사람은 그 '바보 아빠' 말고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서야 진짜 가족이 생긴 봉마루의 평화
혈연이라고 해서 모두 가족인 것도 아니고 '같이' 산다고 해서 다 가족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꽃의 싹이 나고 자라날 동안 보살핌이 필요한 것처럼 자리를 옮긴 꽃을 돌볼 때 흙을 다독여주고 자리를 가려주어야하는 것처럼 가족이란 건 마음을 알아주고 진심을 알아줄 수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때로는 봉영규처럼 순금할머니처럼 꽃밭을 가꿔주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꽃바보 봉영규가 불러모은 사람들, 그렇게 같이 사는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착한 드라마가 필요한 시대
이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봉영규 출생의 비밀이 혹시 다른 막장드라마처럼 풀리는 건 아닌지 얼굴이 똑같은 미숙씨(김여진)의 등장이 쌍둥이같은 출생의 비밀이 숨겨진 건 아닌지 많은 사람들이 한때 '복수극'으로 흐르는 이 드라마의 진행 방향을 우려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 드라마의 갈등 구조 역시 다른 드라마 못지 않게 격렬하고 극적인 면이 있습니다. 돈과 불륜이라는 코드 역시 마찬가지로 활용되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에게 감탄하며 그들의 연기에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어머니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는 가족들, 가슴이 먹먹한 마지막 장면
제작비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승철 역의 연기자 이규한이 항상 치킨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던지 강민수(고준희)가 등장하는 장면에 화장품 광고, 동주와 봉우리가 사용하던 각종 전자 기기 확대컷이 자주 등장해 과도한 PPL 논란을 빚음에도 이 드라마가 동시간대 방영되는 다른 드라마들 보다 호평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가장 따뜻하고 단순한 감정, 이 시대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꽃바보 봉영규가 차려주는 밥 한끼의 의미를 되새겨봐야하는 그런 시대니까요. 내마들 연기자 여러분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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