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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문화 중에서도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만큼 뻔하디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도 드뭅니다. 로맨스 물이 나왔다하면 삼각관계고 사극이 나왔다 하면 과장된 영웅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기대를 갖지 않고 드라마를 봅니다만 때로는 그 전형적인 설정에 숨이 탁 하고 막히고 때로는 현대 사회가 그대로 반영된 드라마 속 이야기야 빠져들기도 합니다. 드라마 '계백'의 주인공 계백(이서진)이 아버지 무진(차인표)의 죽음으로 인해 신라에 노예로 팔려간 장면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예로 팔려가고 종으로 팔려가는 그런 장면이 이제 너무 식상하구나 하는 생각 말이죠. 전에도 한번 지적했지만 영웅형 사극엔 공통적인 공식같은게 생긴지 오래입니다. 그런식의 영웅형 구조를 완성한 건 MBC 사극 '허준'이 아닐까 싶은데 여하튼 사람들은 역사완 전혀 상관없어도 흥미로운 주인공들의 고난를 눈여겨 보기 시작합니다. 덕분에 조선의 위인이 아닌 고구려, 신라의 영웅들까지 본의 아니게 타향살이를 하고 노예살이를 하게 되었지요.
물론 그런식의 전형성은 비슷비슷한 드라마의 양산이란 단점도 있지만 한가지 좋은 점도 있습니다. 복잡하고 머리 아프게 다음 이야기를 생각해 보지 않아도 금방 다음 장면을 알 수 있고 다음 이야기의 복선이랄까 징조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진(차인표)의 죽음으로 노예로 팔려나가게 된 계백(이서진)은 아무 말도 않고 마치 한마리 이리처럼 버티고만 있습니다. 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실력에 비해 변방으로만 떠도는 김유신(박성웅)이 그의 범상치 않음을 알아봤지만 김유신의 얼굴에 밥풀을 내뱉는 계백은 유신이 제시한 것 따윈 관심이 없습니다.
의자(조재현)도 마찬가지로 살아남기 위해 호색한 역할을 하며 내신좌평의 첩과도 놀아납니다. 은고(송지효)와 몰래 내통하며 사택황후(오연수)의 뒤를 칠 궁리를 하는 그는 생명의 은인이자 가족이나 다름없는 무진을 자기 손으로 죽였습니다. 살아남아 복수하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그의 심신은 점점 더 지쳐가기만 합니다. 계백의 노예생활, 의자의 미친척하는 비겁한 삶의 자세 그 두가지가 주인공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리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타고나게 머리가 비상하고 운동신경이 좋았던 계백이 노예 중에서도 전투에 참여하는 노예가 된 것은 틀림없이 앞으로 장군으로서 지략을 펼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극중 신라의 김유신도 실전에 강하고 지략이 뛰어나지만 신라도 나름 화랑과 귀족들의 알력이 상당해서 겉멋이 든 장수들이 많습니다. 노예로 직접 전투에 뛰어든 경험을 가진 계백은 최고의 집중력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날 방법을 귀신같이 찾아낼 것입니다. 이후 오천명의 군사 만으로 신라를 대적할 힘이 길러진다고 할 수 있겠죠.
반면 자신의 속셈을 꿰뚫고 있는 사택황후의 눈을 피해 호색한인듯 미친 사람인듯 반쪽짜리 왕자 취급을 당하는 의자는 요리조리 빠져나가 목숨은 구하지만 지칠대로 지친 비굴한 심정을 은고에게 털어놓는 것으로 보아 이후에도 비겁하게 살아남은삶의 기억은 끝끝내 그를 괴롭힐 것이 분명합니다. 사택황후를 살렸다는 명분을 얻기 위해 무모하게 덤빈 무진을 죽여야했고 자기 입으로 '너는 내 동생'이라며 다독였던 계백까지 죽는 걸 보게 된 의자입니다.
어린 시절 선화황후(신은정)의 비참한 자결을 직접 목도한 것도 창자가 끊기는 것같은 고통이었을텐데 가족같은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어나가도 자신은 살아남아야 한다니 이 보다 비참한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어머니의 유언대로 아버지 무왕(최종환)은 정치판에 놀아나는 무력한 왕이라 믿을 수도 없고 믿어서도 안됩니다. 복수의 칼날을 갈고 닦아 왕위에 오르는 그날까지 참고 또 참아야하지만 단 한번도 스스로를 위해 움직여본 적 없는 의자의 행복은 멀고 먼듯합니다.
사실 이 드라마 '계백'의 주인공들 중에는 뜻대로 살아나간 거침없는 인물형이 아무도 없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사택황후는 무진을 끔찍히도 사랑했지만 그 남자와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이 몹시도 다르다는 점에 연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무진은 꼭 필요하면 살생도 가능하다하는 사택금영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사택황후는 무진이 죽어서야 무진의 발에 버선을 신겨줄 수 있었습니다. 무왕과 사택황후의 정략혼이 둘의 사랑을 희생시켰듯 연문진(임현식)의 딸 태연(한지우)과 결혼하는 의자도 종종 사랑하는 사람 마저 마음 아프게 해야할 운명입니다.
계백 역시 아버지를 위해 복수를 꿈꾸고 있습니다. 당장은 의자왕자가 제 1의 목표가 될 수 밖에 없겠지요. 또 계백의 아내는 은고가 아니라 은고의 호위무사인 남장 여인 초영(효민)입니다. 세 사람 모두 결국엔 사택씨들에게 원한을 가진 인물들로 자신들의 복수를 위해 많은 걸 포기하지만 그로 인해 서로에게 줄 상처도 많은 사람들입니다. 어릴 때는 내가 살아야한다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물까지 외면했지만 이후에는 그 모든 것들이 의자왕이 져야할 짐이 되버리겠죠.
최근 의자왕이 절대 폭군이 아니었으며 왕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는, 과거와는 다른 평가가 자주 나오지만 드라마는 아무래도 '폭군'에 폭군처럼 연회를 즐겼다는 의자의 캐릭터를 포기하지도 않을 듯합니다. 지금은 단지 미친 척, 망나니인 척 하지만 평생 쌓아둔 죄책감이나 괴로움이 어떻게 폭발할 지 모르는 일이죠. 무진을 칼로 찌르고 사택황후를 바라보는 의자, 실실대며 웃는 의자의 모습이 마치 정신줄을 놓아버린 미래 의자왕의 모습인듯 위태하기만 합니다.
내신좌평의 첩과 사통해 교기(진태현)와 연문진의 혼사를 알아낸 의자는 은고와 합의해 어떻게든 그 결혼을 파탄내려 합니다. 밖으로 바보에 광인처럼 보이는 의자를 움직이고 모든 작전을 함께 해주는 여성은 은고가 유일하지만 의자는 이제부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략혼에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의뭉스럽게 연문진 앞에 서서 당신딸 태연과 내가 밤마다 사통했노라 떠벌리는 의자는 짐짓 무왕의 '서동요'를 흉내내며 능청스럽게 굽니다. 물론 노련한 연문진이 그딴 소문이나 작전에 속아넘어가리라 생각한 건 아니었겠죠.
중요한 건 왕자 의자의 가능성을 인정해준 첫번째 지지 세력이 생겼다는 것, 그것도 사택씨를 이어 두번째로 잘 나가는 귀족가문이란 점입니다. 무왕과 사택황후의 관계가 삐걱거렸듯 의자왕자와 연태연의 관계도 불안불안하지만 일단 야합에는 성공했습니다. 왕위 승계를 위한 첫번째 발판을 마련한 셈이지요. 무왕은 게다가 신라와의 전쟁에서 교기와 의자를 선봉에 세우게 하고 공을 세운 왕자는 동명제의 초헌관으로 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자신을 원수로 생각하는 계백과 마주칠 의자의 운명도 운명이지만 자신을 죽이겠다 마음먹은 교기의 음모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지도 궁금한 부분입니다. 어린 시절엔 아슬아슬한 생존의 줄타기면 충분했지만 이제는 직접 목숨을 지켜야하고 지지 세력을 얻어야하는 의자 왕자. 은고와 사택황후의 인연도 점점 더 가까워지고, 세 사람의 진정한 정치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두 사람의 멋진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 이 글은 드라마 '계백' 홈페이지에 동시게재됩니다.
노예로 팔려가고 종으로 팔려가는 그런 장면이 이제 너무 식상하구나 하는 생각 말이죠. 전에도 한번 지적했지만 영웅형 사극엔 공통적인 공식같은게 생긴지 오래입니다. 그런식의 영웅형 구조를 완성한 건 MBC 사극 '허준'이 아닐까 싶은데 여하튼 사람들은 역사완 전혀 상관없어도 흥미로운 주인공들의 고난를 눈여겨 보기 시작합니다. 덕분에 조선의 위인이 아닌 고구려, 신라의 영웅들까지 본의 아니게 타향살이를 하고 노예살이를 하게 되었지요.
물론 그런식의 전형성은 비슷비슷한 드라마의 양산이란 단점도 있지만 한가지 좋은 점도 있습니다. 복잡하고 머리 아프게 다음 이야기를 생각해 보지 않아도 금방 다음 장면을 알 수 있고 다음 이야기의 복선이랄까 징조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진(차인표)의 죽음으로 노예로 팔려나가게 된 계백(이서진)은 아무 말도 않고 마치 한마리 이리처럼 버티고만 있습니다. 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실력에 비해 변방으로만 떠도는 김유신(박성웅)이 그의 범상치 않음을 알아봤지만 김유신의 얼굴에 밥풀을 내뱉는 계백은 유신이 제시한 것 따윈 관심이 없습니다.
의자(조재현)도 마찬가지로 살아남기 위해 호색한 역할을 하며 내신좌평의 첩과도 놀아납니다. 은고(송지효)와 몰래 내통하며 사택황후(오연수)의 뒤를 칠 궁리를 하는 그는 생명의 은인이자 가족이나 다름없는 무진을 자기 손으로 죽였습니다. 살아남아 복수하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그의 심신은 점점 더 지쳐가기만 합니다. 계백의 노예생활, 의자의 미친척하는 비겁한 삶의 자세 그 두가지가 주인공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리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의자를 원수로 여기는 계백, 미치기 직전의 의자
타고나게 머리가 비상하고 운동신경이 좋았던 계백이 노예 중에서도 전투에 참여하는 노예가 된 것은 틀림없이 앞으로 장군으로서 지략을 펼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극중 신라의 김유신도 실전에 강하고 지략이 뛰어나지만 신라도 나름 화랑과 귀족들의 알력이 상당해서 겉멋이 든 장수들이 많습니다. 노예로 직접 전투에 뛰어든 경험을 가진 계백은 최고의 집중력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날 방법을 귀신같이 찾아낼 것입니다. 이후 오천명의 군사 만으로 신라를 대적할 힘이 길러진다고 할 수 있겠죠.
반면 자신의 속셈을 꿰뚫고 있는 사택황후의 눈을 피해 호색한인듯 미친 사람인듯 반쪽짜리 왕자 취급을 당하는 의자는 요리조리 빠져나가 목숨은 구하지만 지칠대로 지친 비굴한 심정을 은고에게 털어놓는 것으로 보아 이후에도 비겁하게 살아남은삶의 기억은 끝끝내 그를 괴롭힐 것이 분명합니다. 사택황후를 살렸다는 명분을 얻기 위해 무모하게 덤빈 무진을 죽여야했고 자기 입으로 '너는 내 동생'이라며 다독였던 계백까지 죽는 걸 보게 된 의자입니다.
어린 시절 선화황후(신은정)의 비참한 자결을 직접 목도한 것도 창자가 끊기는 것같은 고통이었을텐데 가족같은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어나가도 자신은 살아남아야 한다니 이 보다 비참한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어머니의 유언대로 아버지 무왕(최종환)은 정치판에 놀아나는 무력한 왕이라 믿을 수도 없고 믿어서도 안됩니다. 복수의 칼날을 갈고 닦아 왕위에 오르는 그날까지 참고 또 참아야하지만 단 한번도 스스로를 위해 움직여본 적 없는 의자의 행복은 멀고 먼듯합니다.
사실 이 드라마 '계백'의 주인공들 중에는 뜻대로 살아나간 거침없는 인물형이 아무도 없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사택황후는 무진을 끔찍히도 사랑했지만 그 남자와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이 몹시도 다르다는 점에 연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무진은 꼭 필요하면 살생도 가능하다하는 사택금영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사택황후는 무진이 죽어서야 무진의 발에 버선을 신겨줄 수 있었습니다. 무왕과 사택황후의 정략혼이 둘의 사랑을 희생시켰듯 연문진(임현식)의 딸 태연(한지우)과 결혼하는 의자도 종종 사랑하는 사람 마저 마음 아프게 해야할 운명입니다.
계백 역시 아버지를 위해 복수를 꿈꾸고 있습니다. 당장은 의자왕자가 제 1의 목표가 될 수 밖에 없겠지요. 또 계백의 아내는 은고가 아니라 은고의 호위무사인 남장 여인 초영(효민)입니다. 세 사람 모두 결국엔 사택씨들에게 원한을 가진 인물들로 자신들의 복수를 위해 많은 걸 포기하지만 그로 인해 서로에게 줄 상처도 많은 사람들입니다. 어릴 때는 내가 살아야한다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물까지 외면했지만 이후에는 그 모든 것들이 의자왕이 져야할 짐이 되버리겠죠.
최근 의자왕이 절대 폭군이 아니었으며 왕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는, 과거와는 다른 평가가 자주 나오지만 드라마는 아무래도 '폭군'에 폭군처럼 연회를 즐겼다는 의자의 캐릭터를 포기하지도 않을 듯합니다. 지금은 단지 미친 척, 망나니인 척 하지만 평생 쌓아둔 죄책감이나 괴로움이 어떻게 폭발할 지 모르는 일이죠. 무진을 칼로 찌르고 사택황후를 바라보는 의자, 실실대며 웃는 의자의 모습이 마치 정신줄을 놓아버린 미래 의자왕의 모습인듯 위태하기만 합니다.
결혼을 통해 첫번째 지지자를 얻어낸 의자
내신좌평의 첩과 사통해 교기(진태현)와 연문진의 혼사를 알아낸 의자는 은고와 합의해 어떻게든 그 결혼을 파탄내려 합니다. 밖으로 바보에 광인처럼 보이는 의자를 움직이고 모든 작전을 함께 해주는 여성은 은고가 유일하지만 의자는 이제부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략혼에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의뭉스럽게 연문진 앞에 서서 당신딸 태연과 내가 밤마다 사통했노라 떠벌리는 의자는 짐짓 무왕의 '서동요'를 흉내내며 능청스럽게 굽니다. 물론 노련한 연문진이 그딴 소문이나 작전에 속아넘어가리라 생각한 건 아니었겠죠.
중요한 건 왕자 의자의 가능성을 인정해준 첫번째 지지 세력이 생겼다는 것, 그것도 사택씨를 이어 두번째로 잘 나가는 귀족가문이란 점입니다. 무왕과 사택황후의 관계가 삐걱거렸듯 의자왕자와 연태연의 관계도 불안불안하지만 일단 야합에는 성공했습니다. 왕위 승계를 위한 첫번째 발판을 마련한 셈이지요. 무왕은 게다가 신라와의 전쟁에서 교기와 의자를 선봉에 세우게 하고 공을 세운 왕자는 동명제의 초헌관으로 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자신을 원수로 생각하는 계백과 마주칠 의자의 운명도 운명이지만 자신을 죽이겠다 마음먹은 교기의 음모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지도 궁금한 부분입니다. 어린 시절엔 아슬아슬한 생존의 줄타기면 충분했지만 이제는 직접 목숨을 지켜야하고 지지 세력을 얻어야하는 의자 왕자. 은고와 사택황후의 인연도 점점 더 가까워지고, 세 사람의 진정한 정치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두 사람의 멋진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 이 글은 드라마 '계백' 홈페이지에 동시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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