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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 '조세형'과 드라마 '공주의 남자' - 어째서 큰 도둑은 못 잡나

Shain 2011. 9. 1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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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받을 것같아 미리 적자면 제목에 떡 하니 조세형을 '대도'라고 적기는 했어도 실제 그 사람을 대단한 도둑이라거나 의적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80년대의 시대적 상황이 '조세형'이란 인물을 '대도'라던가 '의적'으로 부르며 과장되게 정부를 조롱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대도'라는 표현을 썼을 뿐입니다. 요즘은 일본에서도 절도죄로 잡혀들어가고 어제 9월 9일에도 출소하자마자 절도죄가 밝혀져 다시 체포되는 등 대도라기 보다는 좀도둑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 나이가 73세인데 수감생활이 43년이라니 평생을 감옥에서 허비한 셈이죠.

의적이 주인공인 드라마 '짝패'가 방영될 때 왜 사람들이 의적에 환호하는지 포스팅한 적이 있습니다(짝패, 아래적 두령은 전설이 되어야 한다). 도둑질이 불법이고 범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도둑의 물건을 훔치는 작은 도둑들에게 사람들은 격려를 보냅니다. 적극적으로 부패한 사회에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소심한 반항이라고 할 수도 있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속시원히 악당을 해치우는 정의파 '깡패'가 주인공인 드라마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1983년 4월 19일, 탈주후 재검거된 조세형(출처: 경향신문)

조세형이 검거되었을 때 범죄 증거로 제시된 장물들은 지금 봐도 시쳇말로 '후덜덜'합니다. 경찰은 루비, 사파이어, 물방울 다이아, 당시 최고 명품이던 카르티에 시계 등 마대자루 2자루 분량을 공개합니다. 사람들은 다람쥐 보다 재빠르다던 조세형이 흉기 하나 쓰지 않고(흉기를 쓰지 않아 신사도둑이라 불림) 그 많은 보석을 훔쳤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평범한 시민들은 평생 가야 구경하기도 힘든 그 많은 보석들을 누가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해 하기 시작합니다. 당시는 수출입이 자유롭지 않던 시대였기에 밀수품이 아니고서는 그만한 보석과 명품을 갖기 힘들던 때입니다.

경찰은 물론 그 피해자들의 실명이나 신분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고가 귀금속 아리송한 출처, 1983. 4. 21)를 보면 밀수품이 분명한 장물들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 모양입니다. 다만 조세형에 앞서 영부인 이순자의 측근인, 장영자가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물방울 다이아를 자랑하다 도난당한 일이 있기에 고위 관리와 국회의원들이 도난당한 물건일 것이라는 추측이 떠돌았을 뿐입니다(실제로 몇몇 밝혀진 신분이 그랬구요).

처음 체포되었을 때는 그래도 대충 넘어갔었는데 이듬해 조세형이 탈출하자 그 문제는 다시 도마에 오릅니다. 당시 도망중이던 조세형은 사람을 해친 적도 없고 부정한 물건만을 훔친 자신에게 중형을 내리는 건 옳치 않다고 거세게 항의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83년 3월 총을 맞고 재검거된 조세형. 인질극을 잠시 벌이기도 했지만 '자수하겠다'고 항복 의사를 밝힌 그에게 경찰은 권총을 발사했고(당시 조세형이 가진 흉기는 드라이버와 톱이었고 극렬 저항하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기사 참조) 이 부분 때문에 더욱 의적처럼 여겨지게 됩니다.

80년대 방영된 '조선왕조오백년' 세조와 정희왕후, 권람과 한명회

당시 시민들 중에는 조세형에게 총을 발사한 것이 '물방울 다이아'의 주인을 함구하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냐며 항의한 사람도 있었다고 하는데 흉기 조차 쓰지 않으며 사회 비리층의 보석들을 훔치고 다니는 조세형이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듯합니다. 전두환 집권기였던 제 5공화국,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것까진 좋았는데 그 권력의 그늘에서 부정부패는 더욱 심해지고 권력자들의 돈모으기는 더욱 노골적이 되어갑니다. 언론에서 아무리 감추려 해도 국민들은 부동산 투기 등으로 드러나는 특권층의 비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대도 조세형' 보다 더 많은 돈을 '훔친' 진짜 큰 도둑이 누구냐 하는 문제는 국회에서까지 거론되었지만 다이아의 주인은 사람들 앞에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머리좋은 도둑으로 사람들의 호감까지 얻을 줄 알았던 이 사람이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아주 정확하게 읽었다는 것도 확실하고 그만큼 당시엔 신군부의 힘을 등에 없고 부정한 돈을 긁어모으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정말 도둑을 의적으로 생각한게 아니라 조세형을 칭송하는 방법으로 비리층을 비난한 것입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수양대군(김영철)은 잔인하게 학살을 자행합니다. 드라마에서 묘사된 계유정난의 밤에 죽어간 시신들이 너무도 리얼해서 맞아 죽은 신하들과 김종서(이순재)의 한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이 드라마가 참으로 마음에 드는 것은 권력을 잡기 위해 자행된 소위 '작은 희생'이라 부르는 살인이 얼마나 지독한지 직접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80년대 MBC에서 방영된 사극 '조선왕조오백년' 시리즈의 수양대군은 쿠데타를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구국의 영웅'이었습니다.

80년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이 완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승자였던 세조와 권람, 한명회 등의 입장에서 드라마가 기술된 점 등은 어쩔 수 없는 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 군부 정권의 눈치를 본 묘사였다는 점도 인정해야할 문제입니다(실제로 압력이 있었음이 공개되기도 했구요). 수양대군의 무력 쿠데타와 당시 대한민국을 장악하곤 했던 군부의 행적은 놀랄 만큼 일치했으니 역사 속 모델을 조금 더 아름답게 칭송할 필요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살에 이어진 권력장악, 그 뒤에 이어진 부정부패까지 놀랍도록 유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 수양대군과 한명회, 신숙주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정당함을 역설하기 위해 업적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양대군의 경우 '태평성대'를 이뤘다는 말을 듣기 위해 많은 제도를 도입했고 신군부는 올림픽을 유치하는 등 경제 성장이 이뤄졌음을 강조하며 입이 마르게 공을 치하합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맞는지 함께 쿠데타를 도모했던 무리들이 특권을 장악해 엄청난 재산과 권력을 형성하는 점까지도 같습니다. 세조 이후 특권층이 된 한명회 등의 공신들은 세습 가능한 공신전과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는 면책 특권까지 누리며 재물을 쌓아갑니다.

조세형의 물방울 다이아 도난 사건이 고위층의 부정부패를 상징했듯 세조 시기에 '홍길동'이 등장해 연산군 때까지 활약합니다. 큰 도둑을 조롱하는 작은 도둑이 백성들의 호응을 얻습니다. 수양대군의 공신들이 백성들을 착취하는 당대의 골치거리였듯 현대사회에서도 5공시절의 인사들이 여전히 비리나 부정축재로 구설에 오릅니다. 물론 드라마 '공주의 남자'가 이런 시대적 상황을 비꼬고 싶었던 것은 아닐테고 기본적으로 사랑이야기를 그린 로맨스물입니다만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수양대군의 권력형 행보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같네요.

어찌 되었든 조세형은 그냥 도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의 많은 백성들이 의적이 나타났단 소문만 들리면 그들을 환영하고 숨겨주었다는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갈 것도 같습니다. 그런 작은 도둑 보다 더 큰 도둑이 권력을 잡고 활개치고 있다는 걸 아는데 그런 큰 도둑의 재물을 훔쳐주는 작은 도둑이 백성들의 비위를 잘 맞춰 준 것이겠지요. 위정자는 자고로 사람들의 이런 심정을 잘 알아야 하는 법인데 물가는 점점 오르고 먼저 나서 도둑질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같으니 참 한심한 노릇입니다. 그래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랬다고 명절 연휴 행복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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