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계백

계백, 역모죄에도 교기와 사택황후가 살아난 이유?

Shain 2011. 9. 2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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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사료에 기록된 백제사는 매우 짧기 때문에 계백'처럼 30부가 넘는 드라마를 제작하자면 각종 사료와 유물이 다 동원되기 마련입니다. 일단 우리가 흔히 아는 삼국사기에는 의자왕자(조재현)의 어머니로 등장한 선화황후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기한 이야기와 종교이야기를 다수 적은 삼국유사대로 설정한 것일 뿐입니다. 또 무왕(최종환)이 최후까지 함께 한 아내가 사택황후(오연수)라는 건 미륵사 금제사리봉안기에서 나온 기록 때문에 유추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의자왕자와 어제 방송에서 쫓겨난 교기 왕자(진태현)의 어머니가 다르다던가 두 사람이 권력 다툼을 했다, 또 은고(송지효)가 의자왕의 왕비였다는 점 등은 무엇을 근거로 설정한 것일까요. 바로 일본서기에 기록된 내용을 기본으로 창작된 것입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공통적으로 의자왕을 부모에게 효성스러운 왕자, 즉 '해동증자(海東曾子)'로 기술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서기에는 왕이 된 의자는 '모후'가 죽자 교기와 네 여동생, 그리고 내좌평 기미 등의 귀족 40여명을 섬으로 추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무왕 때가 아닌 의자왕 때 쫓겨난 것).

그래도 아내와 아들을 추방하는 것인데 권력 앞에서 냉정한 사람들

극중에서는 사택황후를 죽이려는 의자를 계백(이서진)이 한사코 만류하는 것처럼 등장합니다. 새로운 백제를 꿈꾸게 된 계백, 성충(전노민)과 흥수(김유석)와 함께 이상적인 나라를 바라게 된 계백이 도리 때문에 죽이지 말라 하는 듯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해동증자로 불리던, 권력을 두고 형제와 다투던 의자가 남의 눈 때문에 이복동생을 죽이지 못하고 추방한 것이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처럼 장남임에도 무왕 33년에 40이 다 된 나이로 태자가 된 의자가 계모와 이복동생 때문에 힘을 못 썼다는 추정도 가능합니다.

드라마 속에선 무왕이 자신의 죽음을 위장해 사택황후를 속이는 바람에 사택씨와 귀족들은 역모죄를 뒤집어쓰고 쫓겨나게 됩니다. 각종 역사서와 드라마 속 설정이 합쳐지다 보니 무왕의 아내였던 사택황후와 그 일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록과 창작을 맞추다 보니 그런 일이 가능해졌던 것이겠지요. 또 이후에도 사택씨들은 완전히 정권에서 물러나 사료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서기에는 의자왕 때의 대좌평 사택천복이 잡혀갔단 기록도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의자왕 즉위 이후에도 같은 싸움이 반복된다

최근의 사극은 과거의 역사를 재해석하는 정통사극이라기 보다 현대사회의 여러 장면을 사극 속에 함축시키는 일종의 '현대극 타입' 사극들이 훨씬 많습니다. 고증까지 완벽한 제대로된 역사를 드라마 속에 희석시킬 수 있으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백제사같은 경우 아예 창작된 내용 만으로 드라마를 꾸며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 됩니다. 덕분에 우리는 잘 모르는 '일본서기'의 내용이 계백에 다수 활용되고 그동안 잘 몰랐던 기미나 은고 같은 인물이 드라마 속에 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은고와 계백은 사택황후가 물러나는 모습을 보고 그동안의 고통을 모두 잊은 듯 기뻐하며 새로운 백제를 꿈꿉니다. '좋은 날'이 올 거라고 기뻐하는 두 사람은 연인으로 살게될 미래를 꿈꾸는 듯하지만 은고를 어릴 때부터 사랑해왔던 의자왕은 이제 권력자가 되어 은고, 계백, 성충, 흥수를 모두 자신이 신하로 두게 되었습니다. 본래 타고난 권력지향형 인물인 은고의 야심과 백제의 왕이 되어 권력을 장악하게 된 의자의 욕심이 맞물린다면 둘의 사랑이 위태로워지고 함께 꿈꾸던 이상국가는 물거품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왕이 되는 의자가 계백과 은고를 그냥 둘까

계백과의 사랑이 어찌 되든 사택황후가 그랬든 은고 역시 다른 남자를 사랑하면서 왕의 아내가 됩니다. 일본서기나 삼국사기의 기록을 읽어보면 지금까지 묘사된 드라마 속 내용, 즉 선화황후의 아들인 장남 의자왕자가 권력자 계모의 눈치를 보며 동생 교기와 권력을 다투는 양상이 의자가 왕이 된 후에도 유사하게 반복되게 됩니다. 지금까지 이름이 기록된 의자왕의 아들만 모두 여섯인데 태자로 알려진 부여융이나 한때 태자였던 것으로 짐작되는 부여효, 또 부여풍, 부여용, 부여태 등의 아들들은 의자왕 말기 때 후계를 두고 경쟁한 것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17회 방영분에서 의자왕주의 아내 연태연(한지우)은 의자의 첫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극중에서는 귀족 실세인 연문진(임현식)을 끌어들이기 위해 의자왕자가 작전을 짜서 억지 결혼을 한 것으로 꾸몄지만 당시 백제엔 대성팔족이라는 쟁쟁한 귀족 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에 왕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귀족 가문들과 정략적인 혼인을 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즉 여러 부인들이 있고 그 사이에서 아주 많은 자녀를 두었다고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덕분에 교기와 의자가 반목하듯 어머니가 다른 의자의 아들들이 경쟁한다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사택황후와 유사한 성격을 가진 은고, 그녀의 선택은?

특히 연태연이 낳은 아들이라면 의자의 장남으로 알려진 부여융일 것인데 만약 은고가 의자의 아내가 되어(대부인이라 불리는 것으로 보아 연태연이 아닌 은고가 황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들을 낳는다면 당연히 부여융의 동생으로서 교기처럼 형의 태자 자리를 노리게 될 것입니다. 은고는 권력의 속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택황후와 비슷한 성격을 갖춘 여성이고 권력을 움켜쥐어야 아이의 안전과 사랑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할 타입입니다. 연태연은 안 그래도 의자의 사랑을 받는 은고를 미워할텐데 아들들까지 대립한다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보일 수 밖에 없겠지요.

한때 백제 황실의 약자로서 또 왕이 되길 꿈꾸는 후계자로서 성충과 흥수가 꾸린 까막재를 본 의자는 새로운 나라의 가능성을 보며 크게 기뻐했고 함께 이루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은고를 차지하고 싶고, 원치 않아도 책임져야 하는 귀족들과의 알력 다툼을 조율해야하는 의자가 성충과 흥수의 이상향을, 계백이 바라는 백제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질 수는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아버지 무왕처럼 왕의 자리를 지키기 만도 벅찬 상황이 올 수도 있겠지요. 더군다나 권력을 쥐려는 은고가 남처럼 느껴지고 계백이 멀어진다면 이성을 잃고 미쳐갈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제서야 한숨을 돌린 세 주인공의 미래, 희생의 영웅 계백에게는 아직도 참고 견뎌야할 일들이 아주 많이 남은 것 같습니다. 사택황후가 몰락하며 위제단의 두령이었던 귀운(안길강)도 죽고 은고의 은인이었던 영묘(최란)도 죽었습니다. 무진의 희생으로 삶을 얻었던 의자처럼 그들은 타인의 죽음을 밟고 일어서 새 나라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사택황후와 무왕이 대립하듯 은고와 의자왕이 대립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될 계백이 잠시 잠깐 웃었다고 한들 그게 끝은 아닐 것입니다. 원하든 원치않든 역사대로 흘러갈 그들의 운명, 그들의 갈등이 어느 부분에서 불꽃을 피울지 지켜볼 일입니다.


* 이 글은 드라마 '계백' 홈페이지에 동시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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