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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정치학, 제왕학의 고전으로 통하는 한비자의 글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실려 전하는 내용입니다.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형벌을 받으면서도 끝끝내 사학자로서의 책임을 놓지 않았다는 사마천은 한비자(韓非子)에게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해 '한비자열전'을 썼다고 합니다. 그 중 한편에 실려 있는 내용이 어제 성충(전노민)이 흥수(김유석)에게 말한 '용의 비늘을 건드리지 말라'는 부분입니다. 한자로는 역린(逆鱗)이라고 합니다.
한비자는 왕에게 건의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용을 다루는 과정에 비유해 설명합니다. 용은 본디 순한 동물이라 길들이면 사람도 올라탈 수 있지만 주의할 것은 목 근처에 길이가 한자나 되는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라 합니다. 이것을 역린이라 하는데 이것을 건드리면 그 용은 반드시 그 사람을 죽여버린다고 하지요. 요즘엔 왕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는 모두 역린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으며 그를 거스르거나 자극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제왕의 자질 중 하나는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재를 등용해 활용하는 것이지만 왕은 본디 자신 보다 뛰어난 영웅이 나타나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합니다. 자신의 권위를 위협하는 영웅이나 왕의 자질을 갖춘 영웅은 또다른 경쟁자이자 왕권을 위협하는 위험요소일 뿐입니다. 왕을 밀어내고 권력의 정점에 오를 욕심을 가진 자가 아닌 이상 왕이 충성스러운 신하로 인식하도록 처세하는 것이 신하의 의무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노련한 무왕(최종환)은 의자(조재현)에게 평범한 제왕학의 기본을 가르친 셈입니다.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현대의 정치인들도 '서열 경쟁'이라는 것을 합니다. 과거에는 전쟁에서 전공을 세우고 외교적 능력으로 나라를 평화롭게 하면 국가의 영웅이 될 수 있었지만 최근엔 '스타 정치인'들이 정당에 입성합니다. 아무리 국민적 인기를 끄는 최고의 스타라고 할 지라도 한 정당의 조직을 넘어설 수는 없는 한계를 보여주곤 합니다. 드라마 '계백' 속의 꼿꼿한 장군 계백(이서진)처럼 원칙주의자도 군율에 철저한 군인도 아니기에 더욱 정치적으로 몸을 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역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은 정치에 발담근 사람들의 기본 중 기본이 된 것이겠죠.
태자 의자의 비인 연태연(한지우)가 의자의 사랑을 독차지한 은고(송지효)를 증오하듯 의자가 자신 보다 사랑받고 전장에서 용맹하며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을 갖춘 계백을 질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무왕의 유언처럼 그를 받아들이느냐 제거하느냐 하는 부분은 제왕으로서 꼭 거쳐야할 고민이겠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백제의 흥망 보다 인간의 감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겉으로는 계백의 자신의 동생이라 계속 말을 하지만 무왕이 꿰뚫어본 것처럼 의자는 무진(차인표)을 뺏고 인생을 배앗았다는 미안한 마음에 겉으로 그 질투를 드러내지 못할 뿐입니다.
비겁한 술수까지 써서 은고의 남편이 되고 왕자를 낳았지만 의자가 내심 불안하고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계백입니다. 자신이 은고를 차지할 때 계백이란 연적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기억하고 있기에 계백 또한 자신을 그리 미워하며 다른 마음을 먹는 건 아닌지 겁이 나고 국민들이 영웅이라 입이 마르게 칭송하며 떠받드는 계백이 역모라도 일으킬까 두려워 합니다. 아버지 무왕의 말대로 은고를 빼앗아온 그 순간부터 계백은 더 이상 의형제가 아니라 의자를 위협하는 라이벌일 뿐입니다.
이상적인 국가를 꿈꾸는 성충, 흥수의 이념대로라면 왕은 충분히 그런 계백을 품어 나라의 인재로 삼고 높이 올려 주어야 정상이지만 급진 개혁파 흥수의 불만처럼 또 계백이 미움 받을까 걱정하는 온건파 성충의 염려처럼 오히려 의자는 점점 더 계백을 멀게만 느낄 뿐입니다. 흥수의 말처럼 차라리 무시할 수 없는 영웅이 되어 의자가 백성의 반발이 무서워 처치하지 못하는 그런 인물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계백의 위치는 위태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전공을 치하하러 찾아온 의자의 술까지 거부하는 계백의 수하들, 군령을 엄히 하고자 술을 금하기에 부디 술을 내리지 말아달라 청하는 그들의 고지식함은 한 나라 왕인 의자의 자존심을 건드립니다. 아무리 군대의 기강이 중요하다 한들 술잔을 친히 내린 왕의 체면이 있는데 일개 시덕 대수(고윤후), 용수(장희웅)가 계백의 명이 더 중요하다며 거절한 것입니다. 계백이란 장군이 무엇이기에 하늘 아래 유일한 백제의 주인이라 치부하는 의자를 천하의 졸렬한 필부로 만드는지.
계백은 자신의 억울한 마음, 은고를 빼앗기고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극복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의자와 은고가 후회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계백의 말에 의자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합니다. 당항성까지 치겠다는 백제 영웅 계백, 의자는 아무래도 백제를 위한 마음 보다 한 인간의 벗어날 수 없는 질투로 모든 일을 그르칠 것이 분명합니다. 거기다가 아직 계백을 잊지 못한 은고가 모든 음모의 전말을 알게 되면 '삼국사기'나 '일본서기'에 씌여진대로 폭주하게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은고는 처음부터 팜므파탈의 캐릭이 아니었고 의자를 정치적 동반자로 여기며 함께할 것을 약속했으며 사택씨들을 제거하기 위해 온몸을 바친 배포가 큰 여인이었습니다. 계백과 의자, 그리고 은고와 성충, 흥수의 큰 뜻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 지 설명하자면 세 사람의 삼각관계가 필수입니다만 어쩐지 의자왕이 그런식으로 망가져가는 모습은 안타깝기도 합니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사서에서 사치스러운 태자궁을 짓고 태자가 부여융에서 부여효로 교체되는 등 백제가 혼란에 빠졌던 이유를 드라마는 의자왕의 계백에 대한 인간적 질투를 그 원인으로 잡은 듯합니다.
역린을 건드리면 목숨을 잃는다고 했는데 성충과 흥수는 분명 그런식으로 죽임을 당할 운명입니다. 그러나 백제가 사랑하는 영웅 계백은 어떻게 신라와의 결전까지 정치적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까요. 하필이면 계백이 가장 사랑했던 여자와 의자왕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백제가 계백이 건드린 의자왕의 역린, 용의 비늘이라는 점에서 계백의 비극은 더욱 극적인 모습을 띄는 것 같습니다. 정치적인 야심은 없어도 누구 보다 청렴하고 뛰어난 능력을 갖춘 장수 계백, 의자왕은 당항성을 차지하겠다는 그의 포부를 잠시라도 품어줄 수 있을 왕일지 기대해 봅니다.
* 이 글은 드라마 '계백' 홈페이지에 동시게재됩니다.
한비자는 왕에게 건의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용을 다루는 과정에 비유해 설명합니다. 용은 본디 순한 동물이라 길들이면 사람도 올라탈 수 있지만 주의할 것은 목 근처에 길이가 한자나 되는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라 합니다. 이것을 역린이라 하는데 이것을 건드리면 그 용은 반드시 그 사람을 죽여버린다고 하지요. 요즘엔 왕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는 모두 역린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으며 그를 거스르거나 자극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흥수는 계백의 전공을 치하하고 은고와 성충은 대책을 마련한다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현대의 정치인들도 '서열 경쟁'이라는 것을 합니다. 과거에는 전쟁에서 전공을 세우고 외교적 능력으로 나라를 평화롭게 하면 국가의 영웅이 될 수 있었지만 최근엔 '스타 정치인'들이 정당에 입성합니다. 아무리 국민적 인기를 끄는 최고의 스타라고 할 지라도 한 정당의 조직을 넘어설 수는 없는 한계를 보여주곤 합니다. 드라마 '계백' 속의 꼿꼿한 장군 계백(이서진)처럼 원칙주의자도 군율에 철저한 군인도 아니기에 더욱 정치적으로 몸을 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역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은 정치에 발담근 사람들의 기본 중 기본이 된 것이겠죠.
왕의 자질을 갖춘 영웅, 왕은 어찌할 것이냐
태자 의자의 비인 연태연(한지우)가 의자의 사랑을 독차지한 은고(송지효)를 증오하듯 의자가 자신 보다 사랑받고 전장에서 용맹하며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을 갖춘 계백을 질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무왕의 유언처럼 그를 받아들이느냐 제거하느냐 하는 부분은 제왕으로서 꼭 거쳐야할 고민이겠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백제의 흥망 보다 인간의 감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겉으로는 계백의 자신의 동생이라 계속 말을 하지만 무왕이 꿰뚫어본 것처럼 의자는 무진(차인표)을 뺏고 인생을 배앗았다는 미안한 마음에 겉으로 그 질투를 드러내지 못할 뿐입니다.
비겁한 술수까지 써서 은고의 남편이 되고 왕자를 낳았지만 의자가 내심 불안하고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계백입니다. 자신이 은고를 차지할 때 계백이란 연적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기억하고 있기에 계백 또한 자신을 그리 미워하며 다른 마음을 먹는 건 아닌지 겁이 나고 국민들이 영웅이라 입이 마르게 칭송하며 떠받드는 계백이 역모라도 일으킬까 두려워 합니다. 아버지 무왕의 말대로 은고를 빼앗아온 그 순간부터 계백은 더 이상 의형제가 아니라 의자를 위협하는 라이벌일 뿐입니다.
제왕의 자질을 가진 계백을 경계하라던 아버지 무왕의 유언
특히나 전공을 치하하러 찾아온 의자의 술까지 거부하는 계백의 수하들, 군령을 엄히 하고자 술을 금하기에 부디 술을 내리지 말아달라 청하는 그들의 고지식함은 한 나라 왕인 의자의 자존심을 건드립니다. 아무리 군대의 기강이 중요하다 한들 술잔을 친히 내린 왕의 체면이 있는데 일개 시덕 대수(고윤후), 용수(장희웅)가 계백의 명이 더 중요하다며 거절한 것입니다. 계백이란 장군이 무엇이기에 하늘 아래 유일한 백제의 주인이라 치부하는 의자를 천하의 졸렬한 필부로 만드는지.
계백은 자신의 억울한 마음, 은고를 빼앗기고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극복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의자와 은고가 후회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계백의 말에 의자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합니다. 당항성까지 치겠다는 백제 영웅 계백, 의자는 아무래도 백제를 위한 마음 보다 한 인간의 벗어날 수 없는 질투로 모든 일을 그르칠 것이 분명합니다. 거기다가 아직 계백을 잊지 못한 은고가 모든 음모의 전말을 알게 되면 '삼국사기'나 '일본서기'에 씌여진대로 폭주하게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의자는 '영웅 계백'을 어디까지 거둬줄 수 있는가
역린을 건드리면 목숨을 잃는다고 했는데 성충과 흥수는 분명 그런식으로 죽임을 당할 운명입니다. 그러나 백제가 사랑하는 영웅 계백은 어떻게 신라와의 결전까지 정치적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까요. 하필이면 계백이 가장 사랑했던 여자와 의자왕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백제가 계백이 건드린 의자왕의 역린, 용의 비늘이라는 점에서 계백의 비극은 더욱 극적인 모습을 띄는 것 같습니다. 정치적인 야심은 없어도 누구 보다 청렴하고 뛰어난 능력을 갖춘 장수 계백, 의자왕은 당항성을 차지하겠다는 그의 포부를 잠시라도 품어줄 수 있을 왕일지 기대해 봅니다.
* 이 글은 드라마 '계백' 홈페이지에 동시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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