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계백

계백, 만약 고타소 대신 김춘추가 죽었더라면

Shain 2011. 10. 3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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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역사에 '가정'을 해본다는 건 아무 의미없는 일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를 고칠 수 있다면 몰라도 상상해본들 그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니라서 이미 벌어진 일을 두고 가능성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현대인들의 입씨름이고 오락거리일 뿐입니다. 백제의 윤충이 김춘추의 딸 고타소가 있던 대야성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백제는 멸망하지 않았을까? 고타소가 죽지 않았더라도 당시 당나라가 고구려를 어떻게든 무너뜨리려 기를 쓰고 있었고 백제와 신라가 역사적으로 서로를 경계하던 상황이니 역학관계상 백제의 패망은 막을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드라마 '계백'은 백제와 신라 역사상 가장 운명적인 만남일 한 김춘추(이동규)와 의자왕(조재현), 그리고 계백(이서진)의 갈등 관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백제를 망하게 한 건 김춘추가 딸을 잃었기 때문이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자왕과 김춘추가 서로 만났던 사이였는지 혹은 친척관계였는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대로 선화공주가 신라의 공주였다면 두 사람은 서로 한번쯤 얼굴을 마주할 일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신라 장군 김유신 역시 신라왕실 친인척이니 아주 불가능한 상상은 아니지요.

뿔뿔이 갈라진 세 사람과 전의를 불태우는 김춘추

계백과 의자왕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은고(송지효)는 자신을 아내로 만들기 위해 의자왕이 비열한 계책을 썼고 그 과정에서 사택씨들에게 탄압받았던 한많은 목씨 일족이 억울하게 죽었음을 알게 됩니다. 과거 사택황후(오연수)의 최측근으로 신임을 얻었던 그때처럼 은고는 일단 의자왕의 편에서 의자왕이 전쟁에 대한 판단을 그르치도록 유도합니다. 계백에게 부정하게 은고를 빼앗고 백성들이 자신 보다 계백에게 더욱 환호한다는 사실이 불편했던 의자는 결국 전쟁 중에 편협한 자신의 질투를 드러내고 맙니다.

의자왕이 정신을 잃은 사이 계백은 백제 최고의 영웅, 왕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진 대장군이 됩니다. 그리고 은고는 궁내에 태자 문제가 대두되자 연황후(한지우)의 아들을 밀어내고 자신의 아들 효를 태자로 세우고자 계백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의자왕이 어떻게 둘을 갈라놓았는지 그 비밀을 털어놓으면 계백이 자신의 손을 들어줄거라 믿었는데 은고가 자신이 가진 것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인이듯 계백은 군율에 죽고 백제를 위해 죽는 충신의 피를 가진 남자였습니다. 의자왕, 은고, 계백은 이렇게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고 백제가 곤란에 빠졌는데 김춘추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백제 패망 후에도 문제가 된 고타소와 품석

당나라 사신을 따라 백제에 들어간 김춘추가 백제 왕실을 이간질 시키다 의자왕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지만 신라 국경을 넘어 구하러 온 문근(김현성)과 죽을 각오로 따라온 김유신(박성웅)의 도움으로 무사히 신라로 넘어갑니다. 이 부분은 '삼국사기'에서 고타소가 죽은 후 고민하던 김춘추가 고구려로 갔을 때과 유사합니다. 딸을 잃고 백제에게 어떻게든 복수하려고 하던 춘추가 목숨걸고 고구려에 갔고 그를 구하러 결사대를 끌고 온 김유신의 도움을 받는 일화죠. 사서에는 김춘추가 백제의 공격을 받고 움직인 것이지만 드라마는 먼저 도발을 한 것으로 묘사된 점이 다릅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오랜 은원관계인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니 어느 쪽에서 원인을 제공했느냐는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전쟁 때문에 죽은 신라 사람이 있다면 백제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일본서기에 전하는 내용입니다만 신라에서 백제 성왕의 목을 베어 북청 계단 아래에 묻고 사람들이 밟고 다니게 했다고 합니다. 윤충과 의자왕이 김춘추의 딸 고타소와 사위 품석을 죽이고 그 유해를 묻어 시신을 욕보인 것이 과거 신라에 대한 원한 때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삼국사기에 적힌 내용은 신라를 중심으로 적혀졌으니 알 수 없는 일입니다.

MBC '선덕여왕'의 영모와 '계백'의 고타소

드라마 중에 등장한 고타소가 입고 있는 옷을 보니 과거 '선덕여왕'에서 김유신의 아내였던 영모(큐리)가 입고 있던 옷이더군요. '선덕여왕'에서는 김춘추가 보종의 딸이자 미실의 손녀인 보량과 결혼했지만 삼국유사에서는 김유신의 여동생이 김춘추와 결혼했으니 그 딸인 고타소가 외숙모의 옷을 물려입었나 봅니다. 삼국사기에서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합니다. 처남인 김유신도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묘사됩니다. 특히 문희의 경우 문무왕의 어머니로 삼국통일을 이룬 남자들을 남편, 오빠, 아들로 둔 대단한 여인입니다.

문명왕후 문희가 살아서 그 모든 영광을 누렸다면 문희의 딸인지 김춘추의 전처 소생인지 알 수 없는(화랑세기에 따르면 보량의 딸이 고타소가 되지요) 고타소는 죽음 때문에 유명해진 인물로 시신을 되찾고 또 후에 문무왕이 백제의 후손들에게 사죄를 받는 순간에도 거론되는 여성입니다. 김춘추가 몹시 사랑하던 딸 때문에 백제를 멸망시키려 마음먹고 고구려와 당나라를 오고 가고, 김유신이 백제와 전투를 치르고 백제 포로와 고타소, 품석의 유해를 교환합니다. 문무왕은 패망한 백제 왕자 부여융에게 침을 뱉으며 백제가 괘씸하게 내 누나를 죽였다고 꾸짖습니다.

신라는 백제를 치기 위해 뭉쳤는데 계백은 이들을 상대해야 한다.

비록 극중 상황이지만 의자왕이 김춘추를 죽이겠다고 나섰을 때 저절로 탄식이 나오더군요. 실제 역사에서 고타소를 죽이는 대신 김춘추를 죽였더라면 백제의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빠지진 않았을텐데 싶기도 하고 춘추가 없었다면 삼국의 판도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물론 극중 상황에서 당나라의 사신으로 온 춘추를 무리하게 암살하는게 가당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고 전쟁의 빌미가 되겠지만 신라의 다음 후계자가 될 인물이 사라졌다면 신라가 수월하게 백제에 맞서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첫부분에 적었던 것처럼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합니다. 당나라와 고구려와 기싸움을 반복하던 당시 상황 때문에라도 백제는 멸망할 수 밖에 없었을 터이고 일본서기에 기록된 요부 '은고'에 대한 묘사처럼 백제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패망의 징조를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 속 백제는 새 백제를 꿈꾸며 서로를 믿기로 했던 사람들이 반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제를 위해 살기로 한 희생의 영웅 계백, 나라 보다 귀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복수의 칼을 가는 은고, 굴욕적인 삶을 버텼지만 영웅에 대한 질투로 처신을 망치는 의자, 그들의 최후를 향한 시계는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 이 글은 드라마 '계백' 홈페이지에 동시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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