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계백

계백, 황후가 되려 스파이가 된 은고 여자 때문에 나라가 망하다?

Shain 2011. 11. 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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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사자성어를 잘 알고 있습니다.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의 미모란 뜻인데 얼마나 미모가 뛰어나면 한 나라가 망해도 모를 만큼 빠져들 수 있을까. 경국지색은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자성어이기도 합니다. 또 실제로 '한 나라' 정도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여성에게 빠져 한 가정이 붕괴되고 기업이 무너지는 경우도 없잖아 찾아볼 수 있으니 사람들은 '여자 잘못 만나면 팔자가 꼬인다' 내지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을 쉽게 내뱉기도 합니다. '아내의 유혹'같은 TV 드라마에서도 자신의 복수를 위해 한 집안을 풍비박산내는 여자 이야기가 인기를 끌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러나 실제 '나라를 망하게 한 여자'라는 평을 받는 여자들은 대부분 꽤 오래전 인물들입니다. 은나라를 망하게 한 달기는 주왕이 '주지육림(酒池肉林)' 즉 술로 만든 호수에 고기로 만든 숲을 만들도록 한 요부 중의 요부입니다. 은나라가 기원전 천년전에 있었던 나라이니 이미 몇천년 전의 전설같은 이야기입니다. 주나라 멸망의 원인이라는 포사는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주나라 유왕의 후궁이 되었으나 웃지 않아 왕의 애를 태웠습니다. 왕은 포사를 웃게 하기 위해 거짓 봉화를 올리다 망하게 됩니다. 이 때가 기원전 770년경입니다. 하나라 매희는 훨씬 더 오래된 '경국지색'입니다.

은고는 정말 나라를 망하게 한 요부일까. 낙향한 계백은 의자왕의 부름을 받는다.

그들에 필적할 만한 '요부'는 당나라 현종의 비인 '양귀비'가 있습니다. 현종은 그녀에게 빠져 국정을 소홀히 했고 권세가들이 설치다 보니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게 됩니다. 현종과 피신가는 중에도 '인절미'를 달라고 하는 등 '무개념한' 행동을 일삼던 양귀비는 결국 왕의 친위병들에게 처형당하고 맙니다. 이외에도 중국사에서 나라를 망하게 한 여성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측천무후, 서태후 등이 있지만 여자이기전에 정치적으로 활약했던 그들을 '망국의 요부'라기엔 좀 아깝지요. 특히 측천무후는 공포정치와 국정 논단 때문에 비난을 받지만 그녀의 정치는 매우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종종 조선 왕조의 '명성황후'나 통일신라의 '진성여왕' 등이 나라를 망하게 한 여성으로 원망을 받곤 합니다. 그러나 개화기의 국제 정세는 몹시 혼란스러워 누구라도 쉽게 대처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통일신라 말기 역시 귀족들의 횡포로 나라가 어지러웠던 시기입니다. 국가를 하나의 큰 집으로 비유한다면 '대들보' 하나가 흔들린다고 해서 당장 그 집이 무너지는 건 아니지만 집의 여러 부분이 함께 흔들리면 그 국가는 무너지고 맙니다. '망국'의 책임을 어느 하나에게 돌리는 것은 당연히 합당한 일이 아니겠지요.



황후 책봉을 위해 신라 스파이를 자청하는 은고

찬란하게 빛나던 화려한 백제가 멸망한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더군다나 의자왕은 신라를 쳐 40개의 성을 뺏는 등 승승장구하며 한반도 남쪽을 차지했었고 고구려와 동맹해 신라를 위협했던 진취적인 왕이었습니다. 그런 전세가 하루 아침에 뒤집어져 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 이유를 한가지로 단정짓지 못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제 쓴 포스팅에 누군가가 댓글을 달아주신대로 왕의 측근인 '예식'이라는 자가 의자왕 가족을 당나라에 바쳤다는 설도 있지만 그 역시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여러 원인들 중 하나로 꼽히고 있을 뿐입니다.

남아있는 기록으로 짐작할 수있는 것은 백제의 군사수가 갑작스레 줄어들었고(당나라와의 전투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살아남고자 하는 귀족들 일부가 크게 동요하여 항복하거나 스파이짓을 했으며 왕자들과 왕족들이 그 혼란의 와중에 우왕좌왕했다는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상실했다고 보는 편이 옳은 것 같습니다. 태자가 바뀌기도 하고 왕자 중 하나가 스스로를 왕이라 하기도 하는 등, 망하는 나라들이 흔히 보이는 '리더십 부재'가 백제에도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의자왕과 계백의 술자리에 참석한 은고는 고의적으로 정보를 빼돌린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패망하기 전 의자왕은 서자 41명에게 좌평직을 주고 식읍을 내렸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기록을 근거로 의자왕이 여색을 밝혔고 낙화암에서 삼천궁녀가 떨어져 죽었다는 말을 했던 것같습니다. 실제로도 삼국사기에 꽤 많은 왕자들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궁금한 건 초기 통치시 정치적으로 꽤 '해동증자'라는 평가를 받던 의자왕이 여자를 밝혀 아들을 많이 두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대부분은 드라마 속 의자가 연문진(임현식)의 딸 연태연(한지우)와 결혼했듯 왕권 강화라는 정치적인 이유로 맺어진 혼인의 결과들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백제 귀족들과의 정략적인 혼인이었다면 그만큼 백제 귀족들의 세력이 강성했다는 뜻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치 고려 초기 왕건이 다수의 호족들과 정략혼을 했던 것처럼 일단 혼인으로 귀족들을 다스렸다 쳐도 언젠가는 그들은 드라마 초기에 등장했던 사택씨들처럼 왕에게 반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습니다.

드라마 '계백'에서 백제가 쇠락해가는 과정은 일단 계백(이서진)의 영웅성을 시기한 의자왕(조재현)이 그를 국경선이 아닌 변방으로 내쫓았기 대문에 시작됩니다. 정치적으로 유능했고 통치에 내실을 기한 의자왕이지만 국경선을 경계할 장군이 없던 의자는 결국 허리를 굽히고 계백을 다시 부르게 됩니다. 극중 백제의 상황은 황후 은고(송지효)가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있음에도 당나라로부터 황후로 인정받지 못했고 신라는 김유신(박성웅)과 김춘추(이동규)는 호시탐탐 백제의 빈틈을 노리고 있던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당대의 영웅이 모두 겨루게 된 시점. 백제의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란데.

어떻게든 황후가 되고 싶었던 은고는 임자(이한위)와 조미압을 시켜 김춘추와 내통하고 연개소문과 계백의 움직임을 신라에 전하고 맙니다. 그들로 인해 계백의 부하 대수(고윤후), 용수(장희웅) 등은 군사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의자왕이라는 백제의 하늘이자 백제의 대들보가 흔들린 것도 모자라 황후가 권력욕에 미쳐 백제를 뒤흔들어버린 것입니다. 은고는 더우기 자신의 부정을 알게된 흥수(김유석)과 성충(전노민)도 사서에 적힌 것처럼 제거해버릴 수 있는 무서운 여인으로 돌변할 것입니다.

'은고'의 역할은 단순히 망국의 요부에서 끝나지 않을 거라 봅니다. 그녀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동요하는 권력자들의 전형을 보여줄 것으로 생각됩니다. 황후 자리에 연연해 신라와 내통할 만큼 썩은 귀족 권력들의 내분도 국가가 멸망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여자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기 보다 권력에 눈이 먼 크고작은 세력들의 균형이 한번에 깨지면서 둑이 무너지듯 한번에 붕괴하는 게 국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충성스런 영웅 계백처럼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는 동안 권력 때문에 허튼 짓을 하는 사람들은 요즘도 많으니까요.

* 이 글은 드라마 '계백' 홈페이지에 동시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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