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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조각을 잃어버린 고대사의 한부분 백제, 사람들은 남겨진 주변국 기록으로 당시의 백제가 어땠을 지 상상해 보곤 하지만 그들 나라도 사람이 살았던 곳이기에 비슷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볼 뿐 이것이 맞다 그르다 확실히 대답하지 못합니다. 백제는 왜 신라를 자주 공격했으며 신라는 왜 고구려가 아닌 당나라와 손을 잡았을까. 의자왕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왕이었다는데 어쩌다가 신라와 당에게 패망하고 당나라에서 죽음을 맞았는가. 현대사 만큼이나 치열하게 전개된 당시의 역사가 문득 궁금해지곤 합니다.
역사를 잘 아시는 분들은 드라마 '계백' 속의 역사가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는 걸 아실 것입니다. '실제 역사' 라는 것도 백제를 폄하한 삼국사기나 진위 여부에 말이 많은 일본서기 정도이니 드라마의 내용이 틀렸다 맞았다 그런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겠지만 어찌 보면 비참하고 어찌 보면 백제의 패망이 단순히 왕과 장수 그리고 황후의 치정극처럼 보이는 건 종종 안타깝습니다. 정말 역사와 같았느냐의 문제 보다 '은고 부인'의 요망함과 의자왕의 사랑 때문에 백제가 망한 듯 보이는 건 역시 아쉽네요.
이 드라마 '계백'은 고대사의 맥락 보다는 현대사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딱딱하고 군율 밖에 몰라 정치적으로는 늘 오해받을 행동을 하고 마는 충직한 장군과 영웅을 품어 나라를 지탱해야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위정자, 왕을 지탱하고 영웅을 움직여 나라를 강하게 해야하지만 권력에 이리저리 떠밀려야 하는 신하들, 왕의 모든 것을 품어 나라를 안정시켜야 하지만 끝내 그 하늘을 흔들고야 마는 여인.
극중 김춘추(이동규)가 백제로 와 의자왕(조재현), 계백(이서진), 은고(송지효)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으로 등장합니다. 삼국사기 기록으로는 신라의 김춘추는 백제의 공격으로 대야성이 함락당할 때(642년) 딸 고타소와 사위 품석을 잃습니다. 643년 백제가 당항성을 공격했다고 하고 고구려와 협상을 맺었다고도 하니 신라의 입장이 다급해질만도 합니다.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이 갈등하고 한강 유역을 두고 다툰 역사가 길지만 두 나라가 손잡으면 신라에게는 큰 위기입니다.
백제와 고구려는 그 은원관계가 참 재미있습니다. KBS 드라마 '근초고왕' 초반부에 묘사된 모습처럼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소서노의 도움으로 나라를 세웠으나 친아들 유리가 나타나자 왕위를 유리에게 물려주려 합니다. 소서노는 한강 유역으로 내려와 백제를 세웠습니다. 백제와 고구려 두 나라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서로 가까이 하기 힘든 이해 관계가 성립하게 됩니다. 그게 또 건국 신화에서 끝나지 않고 이후에는 백제의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게 빼앗겨 국가적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기도 하죠.
백제는 신라 진흥왕 시기에 당항성을 빼앗겼고 신라는 당항성을 통해 당나라와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왕과 의자왕은 끊임없이 신라를 공격합니다. 극중 사택황후(오연수)가 당나라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 무왕(최종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냉랭한 사이를 유지하는 것처럼 나왔지만 실제로는 한강 유역 회복과 신라를 굴복시키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당항성을 차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시 빼앗기지 않도록 신라를 잠재워야할 필요가 있었죠. 더군다나 고구려나 백제 모두 언제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상황, 예전의 원수일 지라도 잠시 손을 잡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계백은 극중에서 은고를 잊기 위해 7년 동안 전장에만 있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40개의 신라성을 빼앗고 국민 영웅으로 등극했다고 하는데 사서 기록으로는 의자왕의 활약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친히 전투를 지휘하고 명을 내리던 의자왕은 태생부터 궁안에서 편히 살던 왕자들과는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아버지와 선조들의 숙원인 한강 부근을 차지하고 옆나라 신라까지 삼키리라 생각할 수 있겠지요. 더군다나 신라는 당시 여왕이 통치하던 시대였습니다.
드라마의 김춘추가 적극적으로 은고와 의자, 계백의 갈등을 부추키는 건 과장된 설정이지만 백제의 약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파고 들어가 백제가 더 이상 신라를 공격하지 못하게 나아가서는 신라가 한반도를 제패할 수 있도록 김춘추는 궁리하고 또 궁리했을 것입니다.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워지자 고구려로 당으로 도와달라 부탁하러 가게 된 것이겠지요. 남다른 자질을 가졌다던 백제의 의자왕이 그런 외세를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드라마도 그 부분을 반영할 것 같구요.
극중에서도 춘추의 이간질을 파악한 의자왕은 더욱 꼿꼿한 계백을 감싸안고 당항성의 반을 내어주겠다는 김춘추와 협상을 하는 척 정치적으로 응대합니다. 신녀 천단향(이태경)에게 상의한대로 그는 계백의 영웅성을 고구려 연개소문과 비교해 의심하고 질투하기도 하지만 왕은 빛나는 별이 아니라 별을 품는 하늘이라는 말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죠. 계백의 연인을 빼앗고 백제를 위해 희생한 계백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의자, 그런 그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질투를 느낄 때마다 은고와 성충(전노민), 흥수(김유석) 등이 다잡아줍니다.
그렇게 균형을 맞추며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고 백제라는 나라의 새 이상을 위해 꿈꾸던 그들. 한때 사택씨 일가를 무너트리기 위해 노력하던 그들의 연합은 숨겨왔던 비밀이 드러나며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의자왕이 은고를 차지하기 위해 목씨 일가의 비리를 무왕에게 고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임자(이한위)가 잡아온 태학 학사의 폭로로 은고는 목씨들을 모두 도륙한 것이 의자왕 본인임을 알게 됩니다. 애초에 은고가 사택씨들을 멸하려 하던 이유가 무엇인데 은고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듯 합니다. 또다른 사택황후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당항성을 요충지로 생각하고 삼국이 노렸던 역사적 배경이 있듯이 '망국의 요부 은고'가 의자왕에게 적의를 품고 권력을 움켜쥐기로 한 이유가 생겼습니다. 은고는 장자로 왕위를 세우고자 했던 의자의 뜻과 반대해 연씨황후(한지우)의 아들이 태자로 책봉되는 일을 무슨 일이 있어도 막으려할 것입니다. 영웅을 품어야할 백제의 하늘 의자왕이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비겁한 술수를 썼으니 하늘은 이미 그때부터 무너진 것인지. 하긴 현대사건 고대사건 인간의 오욕칠정이 역사를 바꿔놓는 건 매한가지인가 봅니다.
* 이 글은 드라마 '계백' 홈페이지에 동시게재됩니다.
역사를 잘 아시는 분들은 드라마 '계백' 속의 역사가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는 걸 아실 것입니다. '실제 역사' 라는 것도 백제를 폄하한 삼국사기나 진위 여부에 말이 많은 일본서기 정도이니 드라마의 내용이 틀렸다 맞았다 그런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겠지만 어찌 보면 비참하고 어찌 보면 백제의 패망이 단순히 왕과 장수 그리고 황후의 치정극처럼 보이는 건 종종 안타깝습니다. 정말 역사와 같았느냐의 문제 보다 '은고 부인'의 요망함과 의자왕의 사랑 때문에 백제가 망한 듯 보이는 건 역시 아쉽네요.
백제를 찾은 김춘추, 서로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한 은고와 계백
극중 김춘추(이동규)가 백제로 와 의자왕(조재현), 계백(이서진), 은고(송지효)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으로 등장합니다. 삼국사기 기록으로는 신라의 김춘추는 백제의 공격으로 대야성이 함락당할 때(642년) 딸 고타소와 사위 품석을 잃습니다. 643년 백제가 당항성을 공격했다고 하고 고구려와 협상을 맺었다고도 하니 신라의 입장이 다급해질만도 합니다.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이 갈등하고 한강 유역을 두고 다툰 역사가 길지만 두 나라가 손잡으면 신라에게는 큰 위기입니다.
신라의 위기 상황 그리고 은고의 분노
백제와 고구려는 그 은원관계가 참 재미있습니다. KBS 드라마 '근초고왕' 초반부에 묘사된 모습처럼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소서노의 도움으로 나라를 세웠으나 친아들 유리가 나타나자 왕위를 유리에게 물려주려 합니다. 소서노는 한강 유역으로 내려와 백제를 세웠습니다. 백제와 고구려 두 나라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서로 가까이 하기 힘든 이해 관계가 성립하게 됩니다. 그게 또 건국 신화에서 끝나지 않고 이후에는 백제의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게 빼앗겨 국가적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기도 하죠.
백제는 신라 진흥왕 시기에 당항성을 빼앗겼고 신라는 당항성을 통해 당나라와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왕과 의자왕은 끊임없이 신라를 공격합니다. 극중 사택황후(오연수)가 당나라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 무왕(최종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냉랭한 사이를 유지하는 것처럼 나왔지만 실제로는 한강 유역 회복과 신라를 굴복시키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당항성을 차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시 빼앗기지 않도록 신라를 잠재워야할 필요가 있었죠. 더군다나 고구려나 백제 모두 언제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상황, 예전의 원수일 지라도 잠시 손을 잡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당항성까지 치고 올라가며 초영을 고구려로 보내는 계백
드라마의 김춘추가 적극적으로 은고와 의자, 계백의 갈등을 부추키는 건 과장된 설정이지만 백제의 약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파고 들어가 백제가 더 이상 신라를 공격하지 못하게 나아가서는 신라가 한반도를 제패할 수 있도록 김춘추는 궁리하고 또 궁리했을 것입니다.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워지자 고구려로 당으로 도와달라 부탁하러 가게 된 것이겠지요. 남다른 자질을 가졌다던 백제의 의자왕이 그런 외세를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드라마도 그 부분을 반영할 것 같구요.
극중에서도 춘추의 이간질을 파악한 의자왕은 더욱 꼿꼿한 계백을 감싸안고 당항성의 반을 내어주겠다는 김춘추와 협상을 하는 척 정치적으로 응대합니다. 신녀 천단향(이태경)에게 상의한대로 그는 계백의 영웅성을 고구려 연개소문과 비교해 의심하고 질투하기도 하지만 왕은 빛나는 별이 아니라 별을 품는 하늘이라는 말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죠. 계백의 연인을 빼앗고 백제를 위해 희생한 계백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의자, 그런 그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질투를 느낄 때마다 은고와 성충(전노민), 흥수(김유석) 등이 다잡아줍니다.
모든 비밀을 알고 폭발한 은고의 분노 의자는 계백과의 사이를 여전히 질투한다
당항성을 요충지로 생각하고 삼국이 노렸던 역사적 배경이 있듯이 '망국의 요부 은고'가 의자왕에게 적의를 품고 권력을 움켜쥐기로 한 이유가 생겼습니다. 은고는 장자로 왕위를 세우고자 했던 의자의 뜻과 반대해 연씨황후(한지우)의 아들이 태자로 책봉되는 일을 무슨 일이 있어도 막으려할 것입니다. 영웅을 품어야할 백제의 하늘 의자왕이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비겁한 술수를 썼으니 하늘은 이미 그때부터 무너진 것인지. 하긴 현대사건 고대사건 인간의 오욕칠정이 역사를 바꿔놓는 건 매한가지인가 봅니다.
* 이 글은 드라마 '계백' 홈페이지에 동시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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