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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인간적으로 이 남자의 고통 너무나 공감된다

Shain 2011. 12. 1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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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란 작가가 펼쳐놓은 가상의 배경과 캐릭터에 몰입해서 즐기는 이야기로 얼마나 설득력있게 그 구조를 짜놓았느냐가 완성도를 결정합니다. 시청자들은 작가가 꾸며놓은 판타지에 도무지 몰입할 수 없을 때 드라마가 '현실성이 없다'던가 '공감할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또는 극중 인물이 겪는 경험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동떨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일 지 모릅니다. 드라마의 '극적 재미'란 이렇게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있을 때 성립되는 판타지입니다.

의학물이 다수 등장하고 한 인간으로서 의사가 겪는 이야기들을 드라마로 옮긴 경우가 많지만 시청자로서 극중 그들의 삶이 완전히 이해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종합병원이 배경인 경우 '계급적'이다 싶을 정도로 서열을 강조하고 선배 말에 칼같이 복종하는 그들의 문화가 다소 갑갑하게 보이기도 하고 명색이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임에도 기계를 고치듯(물론 외과의사는 기술자라는 표현까지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급하게 회진을 도는 그들 문화도 생소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또 수술 장면을 재현한 경우 수술실에서 머리카락을 밀어 제거하는 모습(이 드라마 '브레인'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왔습니다)은 직접 수술을 받아본 사람들에게 의문이 들법한 장면입니다. 대개 환자의 모발이 수술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제거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장면이 '사실적'으로 느껴지지 않기도 합니다. 드라마에 집중해서 그 이야기에 빠져들다가도 그런 한 장면 때문에 시쳇말로 '김이 샌다'고도 하죠.

드라마 '브레인'의 단점을 하나 꼽자면 전문적 내용이 등장하는 의학물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멜로'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이강훈(신하균), 윤지혜(최정원), 서준석(조동혁), 장유진(김수현)의 사각관계도 그렇지만, 마치 흔한 연애 드라마들에서 커플 만들기에 몰입하듯 수간호사 홍은숙(임지은)과 조대식(심형탁)의 러브라인, 전공의 이봉구(권세인)와 이강훈의 동생 이가영(김가은)의 풋풋한 사랑을 끼워넣은 것은 이 드라마의 최대 단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들의 욕망과 갈등, 속물이 아닌 척 하면서도 최고의 속물들인 쟁쟁한 의사들, 그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이강훈의 고통이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는 점은 이 드라마의 장점 중의 장점입니다. 연기자 신하균의 서글프면서도 깊은 눈빛이 배역을 더욱 잘 살리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그의 절절한 고통과 괴로움은 큰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마치 어디에선가 한번쯤은 겪었을 법한 그런 고통, 강한 척 거친 척 그 고통을 이겨내는 그의 슬픔이 잔잔하게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어머니 때문에 자존심을 굽히는 이강훈

드라마는 주인공 이강훈의 과거를 정확하게 조명하지 않고 필요한 장면 마다 하나씩 삽입하는 식으로 처리하기에 과연 김상철(정진영) 교수와 이강훈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고 이강훈의 아버지와 어머니(송옥숙)가 어떤 관계였는지 정확히 보여주진 않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김신우(전무송) 교수의 수술이었지만 젋은 의사 김상철이 대신 수술을 했고 그 과정에서 이강훈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이지만 김상철은 종종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긴 해도 그 '과거'가 무엇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또 이강훈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확히 밝혀진 적이 없어도 하영이가 네 친동생이란 고백을 한 어머니의 말로 보아 어머니 역시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도망쳐야할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을 부끄러워하진 않아도 동료들에게 약점 잡히기 싫고, 또 자신을 버리고 사라졌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완전히 지우지 못해 어머니를 외면하던 강훈은 어머니가 뇌암에 걸렸단 사실과 여동생의 비밀을 듣고 나서 '원수'로 여겼던 김상철에게 어머니를 살려달라 애원합니다.

이강훈이 교수가 되려는 이유와 이들은 무슨 관계가.

이강훈에겐 현재 한가지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왜 꼭 의대 교수가 되려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선배 의사(홍일권)의 말대로 사립 병원에서 훌륭한 솜씨로 돈을 긁어모을 수도 있었고 자신에게 목매는 장유진을 발판삼아 병원에 압력을 넣을 수도 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대신 더럽고 치사한 고재학(이성민)의 논문을 대필해줘서라도 천하대 의대 교수가 되려 합니다. 서준석처럼 뒷배경도 없고 돈도 없는 그에게 유일한 방법은 아부와 복종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만약 이강훈의 목적이 돈이었다면 처음부터 천하대 의대에 그렇게 집착할 까닭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의대 교수가 되려한 이유는 아무래도 의사로서 최고 권위자가 되고 싶기 때문인 듯합니다. 또 그런 권위자가 되려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이 있겠죠. 법정에서라도 아버지의 죽음을 밝힐 기회가 오면 자신이 직접 의료 과실을 증명할 생각이라도 있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으로 미워하며 멀리 했던 어머니 마저 잃을 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이 교수 자리도 포기한 그를 김상철에게 무릎꿇게 한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채빛 때문에 병원에서 망신당해도 서준석에게 어머니가 파출부라는 걸 들켜도 이강훈은 기죽지 않습니다. 그에겐 의사로서의 실력과 능력 만이 최고의 자부심이고 누구 보다 뇌수술에 자신있습니다. 실력 만 있다고 해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은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준석같은 가식적이고 속물스러운 존재들에게 마지막 자존심까지 굽힐 수는 없습니다. 그에게 현실은 그렇게 추운 겨울날 얇은 옷입고 버티는 고행같은 것입니다.

극중 윤지혜가 이층에서 자신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등돌려 마주 보지 못하는 강훈에게 '윤지혜'라는 존재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꿈같은 존재입니다. 너무나 퍼석퍼석하고 팍팍하기만 한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정신적인 휴식처이지만 윤지혜에게 안주하면 이 남자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 듯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장유진은 달래주면서도 지혜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내지 않는 냉정함은 그 때문이겠지요. 복수도 성공도 사랑도 원망도 모두 공감이 가는 캐릭터 이강훈, 신하균이 그 배역을 멋지게 소화하고 있기에 더욱 빛나는 캐릭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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