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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만만세, 악당 한정수의 천벌 통쾌하지 않은 이유

Shain 2011. 12. 1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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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서로 사랑하고 한 침대를 쓰고 부대끼고 살던 부부가 아무리 헤어졌다 한들 서로를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노력해서 참고 다스리는 사람은 있을 지언정 쉽게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보니 아무래도 미련이 남고 뒷탈이 남는 법입니다. 이혼한 부부가 서로를 '쿨하게 대한다'는 것은 마주칠 때 마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타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감정을 자제한다는 뜻일 뿐 둘 사이의 해묵은 앙금까지 모두 없애버렸단 뜻은 아닐 것입니다.

'애정만만세'의 주인공 강재미(이보영)와 한정수(진이한)는 한정수의 불륜으로 헤어져 남남이 되었지만 이혼하고 완전히 사람이 변한 한정수는 계속 강재미의 발목을 잡습니다. 채희수(한여름)라는 어린 여자와 결혼해 사기이혼까지 했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었는데 강재미의 죽집을 뺏고 아이템을 훔쳐가고 사사건건 협박을 할 때 마다 강재미는 과연 저 사람이 내가 사랑했던 그 남자가 맞는지 싶어 후회하고 괴로워합니다.

강재미는  한정수 때문에 한동안 연하남 변동우(이태성)의 사랑 마저 거부했지만 이젠 두 사람은 죽고 못사는 커플입니다. 물론 강재미의 아버지 강형도(천호진)와 어머니인 오정희(배종옥), 그리고 변동우의 누나인 변주리(변정수)의 삼각관계가 강재미의 방해물이 될 것이고, 동우와 주리가 친남매가 아니란 비밀이 폭로되도 강형도의 딸인 세라(박하영)와의 관계 때문에 둘의 결혼엔 장애가 많습니다. 이런 드라마의 특징상 그래도 둘의 결혼은 가능할 것같단 전망이 지배적이긴 하지만요.

한편 악당 한정수에게 천벌이 내려졌습니다. 죽어도 자기 아이가 아니라 우기던 채희수의 아들은 한정수의 아이였고 사기에 빠져 돌보지 않았던 채희수는 아이를 낳고 죽습니다. 한몫 챙겨 도망가겠다는 꿈을 꾸던 한정수는 전재산을 잃은 것도 모자라 아내까지 잃고 말았습니다. 부부란 원래 서로를 돌보며 함께 노력해가는 존재이니 자기 밖에 모르던 한정수에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착한 사람에게는 행복을 악당에게는 벌을, 전형적인 권선징악 결말인데 어쩐지 이런 결과가 통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남의 가정을 빼앗은 채희수에게 죽음이?

워낙  한정수가 징그럽고 뻔뻔한 캐릭터라 포털사이트 '애정만만세' 관련 기사엔 몇가지 한정수에 대한 악담이 가끔 올라오곤 했었습니다. 저 못된 녀석은 재산을 말아먹고 어린 아내한테 버림받고 아이는 낳자 마자 죽는데 알고 보니 그 아이는 한정수 아이고 뭐 이런식으로 모든 걸 다 잃는 '천벌'을 받으란 내용의 댓글이었죠. 진이한이 연기를 잘해서 그런 반응을 얻은 것인지 못된 캐릭터에 대한 당연한 응징인 까닭인지 공감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한정수는 전부인 강재미에게도 좋은 남편이 아니었지만 새 아내 채희수에게도 좋은 남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사랑한다며 죽이 맞아 강재미를 함께 괴롭힐 때는 언제고 채희수의 비밀이 한개씩 드러날 때 마다 한정수는 밑바닥을 드러냅니다. 채희수가 호주에서 동거하던 남자 상민의 존재를 알게 되고 채희수가 가진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되자 아예 배 속의 아기를 남의 아들 취급하며 현실에서 도망치려 합니다.

아이를 가진 채희수는 초반에는 가정을 지키겠단 욕심에 강재미에게 못된 말을 많이 했어도 아이가 커갈수록 불안해져 한정수에게 강재미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자고 애원합니다. 재미를 괴롭힐수록 아이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고 한정수가 허황된 것에 미쳐 가정을 소홀히 한다는 점이 너무도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채희수가 강재미에게 남편을 빼앗을 때 꿈꾸던 삶은 함께 가꾸고 노력하는 부부생활이었지 깡패들처럼 남의 것이나 빼앗고 해꼬지하는 그런 생활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써니박(문희경)의 주장으로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된 한정수는 이제까지 자신이 한 짓이 무엇이었나 똑똑히 깨닫게 됩니다. 불임 검사를 했던 의사는 분명 자연임신의 확률이 희박한 건 아니라고 말했지만 불륜과 이혼의 책임을 모두 채희수에게 돌리기 위해 끝까지 자신의 아이가 아닐거라고 믿었습니다. 남들처럼 아이 태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남편으로서 책임을 다 했다면 일 어나지 않았을 불행, 스스로 모든 불운을 자초하고 사랑하던 희수까지 잃었으니 스스로 발등을 찍은 셈입니다.

죽은 아내 채희수와 채희수의 조폭 오빠 채희철(위양호)가 못된 짓을 하긴 했어도 채희수의 죽음 만큼은 한정수의 책임이 너무도 큽니다. 배려받아야할 시기에 아내 보다 얼토당토않은 복수를 하겠다고 날뛰던 한정수, 병원에 가야할 시간에도 사기꾼에게 빠져 시간을 허비한 그 남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처지입니다. 써니박이 아이 아빠가 다를 지도 모른다며 불안하고 강재미가 죽집 사업의 위협이 되었다는 건 아주 경미한 '양념'에 불과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주범은 누가 뭐래도 한정수인 것입니다.

사실 가정을 파탄내고 남의 것을 탐내던 두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천벌은 둘의 아이가 죽는 것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옛어른들 말에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으니 아이가 유산되면 두고두고 둘에게 가장 잔인한 형벌이 될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이 드라마는 아이가 죽는 끔찍함 보다 아이 엄마가 죽는 서글픔 쪽을 선택했습니다. 뉘우치고 후회하고 죽은 채희수 보다 한정수에겐 '죽을 수 없는 이유', 자식이 생긴 셈입니다.

재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긴 해도 전혀 믿음직하지 않은 남편 한정수, 그런 남편에게 아이를 두고 가야하는 채희수는 죽는 순간까지 두려웠을 것입니다. 아이를 두고 죽어야하는 엄마의 심정은 극중 이야기라도 정말 측은합니다. 그러나 한정수는 자식이 생겼다는 이유로 개과천선해서 아이를 데리고 살아야하는 책임이 생겼습니다. '천벌'에 크고 작은 경중이 있는 건 아니라지만 재미와는 사기 이혼하고 채희수는 죽음으로 몰고간 한 남자에겐 어쨌든 자식 때문에 기회가 생긴 셈이죠. 극중 캐릭터의 안쓰러운 죽음 때문인지 조금은 불공평한 천벌이 아닌가 싶어 시원하지만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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