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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할아버지의 케케묵은 책들 중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본래 한학을 하시던 분이라 오래된 한자 서적도 있었고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신문물'을 익히시느냐 가져온 외국 책들도 있었고 근현대사를 다룬 시사잡지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먼지냄새 나는 그 오래된 책들 중 제가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정인숙 사건'과 '이후락 부장이 증언한 김대중 납치 사건의 진실'입니다. 두번째 기사는 분명 1987년 10월 '신동아' 기사인듯한데 정인숙 사건이 실렸던 해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정인숙과 이후락, 70년대 정치사를 이야기하자면 두 사람은 빼놓을래야 빼놓을 수가 없는 인물입니다. 바로 '요정정치'와 '밀실정치'의 대명사들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 등장하는 장철환(전광렬)은 주인공 강기태(안재욱)의 원수이기도 하지만 연예계 지망생들을 윗사람들에게 공급하는 채홍사이자 궁정동 미림팀 실장입니다.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 군인출신 국회의원으로 경호실장을 역임했던 차지철이 떠오르는 캐릭터입니다. 중정의 실세라는 점은 이후락과 비슷하고 여자들을 최종심사하는 건 차지철과 비슷하죠.
극중 기태의 여동생 강명희(신다은)가 근무하는 살롱 디자이너 피에르 유(김광규)가 미세스 윤에게 말해준 비밀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70년에 살해당한 미스정의 아버지가 누구냐는 비밀을 몰래 전해준 것입니다. 당시 정인숙이 차안에서 총격을 당해 죽자 미세스윤의 말대로 정인숙의 아이 아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정인숙과 친하던 박(박정희 내지는 박종규), 정(정일권 총리), 이(이후락), 김(김형욱) 중에서 누가 아이의 아버지냐를 두고 추측이 무성했습니다.
70년대 정치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정인숙의 아이가 아직까지 살아 있으며(68년생이니 40대 중반이겠네요) 누이동생을 죽였다는 죄로 수감생활을 했던 정인숙의 오빠 정종욱도 1989년 출소한 후 자신은 여동생을 죽이지 않았다고 입장을 바꾼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권력자의 압력으로 자백하고 수감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치권 실세와 사귀다 아이까지 낳았던 여자가 갑자기 살해당하고 범죄를 자백한 범인이 사용했다는 총은 발견 조차 못했으니 미스터리도 이런 미스터리가 없습니다.
정인숙은 본래 궁정동 연회에 불려가는 이정혜(남상미)처럼 단역으로 전전하며 영화판을 떠돌던 연예인 지망생었습니다. 선운각이란 유흥가에서 일하기도 하고 궁정동 연회에 뽑혀가기도 하면서 유창한 영어 실력과 타고난 미모로 유명인사들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당시 실세들의 연인이었던 것 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극중 피에르와 미세스 윤은 장철환 같은 사람들에게 어린 여자들을 예쁘게 입혀 내보내는 '채홍사' 실무자들인 것입니다.
솔직히 당시 정치인들이 '남자의 배꼽아래 문제는 건드리지 말라'며 야권 인사들의 여자문제를 폭로하지 않은 건 권력을 이용해 '여자'를 조달하는 자신들의 치부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권력까지 동원한 이런 환락이 한 개인의 '바람기' 차원으로 치부할 일이거나 '사생활'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강기태의 라이벌인 차수혁(이필모)은 권력의 주변인으로서 연예계와 이런 식으로 관련을 맺게 됩니다. 이정혜를 사랑하는 수혁은 권력자들로부터 정혜를 지키고 연예계의 '그림자'를 몸소 지켜보는 캐릭터가 될 것 같습니다.
극중 빛나리 쇼단의 매니저인 순애(조미령)는 가수가 되겠다는 이정혜에게 너는 재능이 없다며 말립니다. 궁정동에 정혜를 소개해준 것도 순애입니다. 전국을 떠돌며 공연을 펼치는 당시의 쇼단은 과거 '유랑극단'의 성격과도 비슷해 가는 곳 마다 텃세부리는 사람들에게 해꼬지를 당하기도 했고 여자 연예인들은 무대 위로 뛰어오르는 과격한 사람들 때문에 수모를 겪기도 합니다. 순애가 이정혜를 굳이 말리는 이유 중 하나도 그런 저런 험한 일들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인 것도 같습니다.
유채영(손담비)과 최성원(이세창)이 합류해 빛나리 쇼단의 여수 공연은 대성공을 하는가 싶었는데 뒤늦게 쫓아온 노상택(안길강)은 자신의 소속 가수들을 빼돌린 신정구(성지루)를 가만두지 않을 기세입니다. 취객들의 테러도 이겨내고 조폭(?)들의 부름에 나이트에서 공연을 하는 최성원도 간신히 빼왔는데 전부 다 말아먹게 생겼습니다. 기획사도 없던 시절, 세븐스타 쇼단의 노상택은 가수들도 직접 관리하며 꼼꼼하게 공연을 해내는데 사기까지 치며 지방공연을 하는 신정구, 주먹구구식으로 공연을 펼치는 신정구의 공연은 늘 문제투성이입니다.
물론 지방공연이 늘 힘들거나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유채영같은 가수들에게 환호하는 사람들의 열기를 직접 느끼며 무대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하는 쇼단 공연은 힘들어도 재미있습니다. 실제 가수 남진은 자신의 전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 공연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극중 유채영처럼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단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고 합니다. 유채영처럼 특급 호텔을 요구하지 않고 단원들과 함께 낡은 여관에서 합숙하는 '인간미 있는' 모습도 보여줬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 있습니다.
그렇지만 관람 매너가 정착되어 있지 않던 그 시대에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지난주 드라마에서 묘사된대로 변두리 극장에서 공연을 하다 보면 취객들이 난동을 피우거나 시비를 걸기도 했고 지역 유지들이 여자가수들에게 추근대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공연을 방해하는 등의 에피소드도 일어납니다. 신정구 단장처럼 양아치들에게 얼마씩 떼어주고 지역유지들에게 초대권을 뿌리며 비위를 맞추는 행동이 꼭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딱히 언제부터 그런 관행이 있었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남사당패' 시절부터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었죠.
다음 예고편을 보니 지역의 깡패들이 빛나리 쇼단의 공연을 방해하기 위해 등장할 것 같더군요. 강기태와 양동철(류담)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깡패들 같기도 합니다. 가수와 영화배우들의 지방 공연이 잦았다는 1972년 6월 5일 당시 인기가수였던 나훈아는 서울시민회관에서 공연도중 무대에 난입한 괴한이 휘두른 사이다병에 깊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72바늘 꿰매는 큰 수술을 받아야했던 나훈아 사건은 당시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라이벌로 여겨지던 남진도 80년대에 칼에 찔리는 엄청난 테러를 당했고 김추자 역시 매니저에게 소주병으로 상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신정구 단장에게 쇼단 운영 방법이나 배우고 미처 치르지 못한 출연료나 뜯어내자 싶어 따라나선 강기태는 본의 아니게 타고난 주먹으로 가수와 무대 공연을 지켜주는 주먹, 보디가드의 역할을 하게 될 듯 합니다. 여자연예인은 정치인들에게 불려다니고 남자 연예인들은 깡패들에게 불려다니고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던 당시의 무대는 정말 파란만장했던 것 같습니다. 감옥에서 출소한 노상택은 장철환과 손잡을 분위기인데 보디가드로 강기태의 쇼비지니스는 언제쯤 성공하게 될까요. 아직 갈 길이 멀기는 먼 것 같습니다.
정인숙과 이후락, 70년대 정치사를 이야기하자면 두 사람은 빼놓을래야 빼놓을 수가 없는 인물입니다. 바로 '요정정치'와 '밀실정치'의 대명사들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 등장하는 장철환(전광렬)은 주인공 강기태(안재욱)의 원수이기도 하지만 연예계 지망생들을 윗사람들에게 공급하는 채홍사이자 궁정동 미림팀 실장입니다.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 군인출신 국회의원으로 경호실장을 역임했던 차지철이 떠오르는 캐릭터입니다. 중정의 실세라는 점은 이후락과 비슷하고 여자들을 최종심사하는 건 차지철과 비슷하죠.
연예인들을 윗분들에게 불러주던 미림팀 실세들.
70년대 정치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정인숙의 아이가 아직까지 살아 있으며(68년생이니 40대 중반이겠네요) 누이동생을 죽였다는 죄로 수감생활을 했던 정인숙의 오빠 정종욱도 1989년 출소한 후 자신은 여동생을 죽이지 않았다고 입장을 바꾼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권력자의 압력으로 자백하고 수감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치권 실세와 사귀다 아이까지 낳았던 여자가 갑자기 살해당하고 범죄를 자백한 범인이 사용했다는 총은 발견 조차 못했으니 미스터리도 이런 미스터리가 없습니다.
궁정동 안가에 여자를 대주는 미세스 윤과 옷을 대주는 피에르 유.
솔직히 당시 정치인들이 '남자의 배꼽아래 문제는 건드리지 말라'며 야권 인사들의 여자문제를 폭로하지 않은 건 권력을 이용해 '여자'를 조달하는 자신들의 치부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권력까지 동원한 이런 환락이 한 개인의 '바람기' 차원으로 치부할 일이거나 '사생활'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강기태의 라이벌인 차수혁(이필모)은 권력의 주변인으로서 연예계와 이런 식으로 관련을 맺게 됩니다. 이정혜를 사랑하는 수혁은 권력자들로부터 정혜를 지키고 연예계의 '그림자'를 몸소 지켜보는 캐릭터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도 유명한 72년 나훈아 테러 사건
극중 빛나리 쇼단의 매니저인 순애(조미령)는 가수가 되겠다는 이정혜에게 너는 재능이 없다며 말립니다. 궁정동에 정혜를 소개해준 것도 순애입니다. 전국을 떠돌며 공연을 펼치는 당시의 쇼단은 과거 '유랑극단'의 성격과도 비슷해 가는 곳 마다 텃세부리는 사람들에게 해꼬지를 당하기도 했고 여자 연예인들은 무대 위로 뛰어오르는 과격한 사람들 때문에 수모를 겪기도 합니다. 순애가 이정혜를 굳이 말리는 이유 중 하나도 그런 저런 험한 일들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인 것도 같습니다.
유채영(손담비)과 최성원(이세창)이 합류해 빛나리 쇼단의 여수 공연은 대성공을 하는가 싶었는데 뒤늦게 쫓아온 노상택(안길강)은 자신의 소속 가수들을 빼돌린 신정구(성지루)를 가만두지 않을 기세입니다. 취객들의 테러도 이겨내고 조폭(?)들의 부름에 나이트에서 공연을 하는 최성원도 간신히 빼왔는데 전부 다 말아먹게 생겼습니다. 기획사도 없던 시절, 세븐스타 쇼단의 노상택은 가수들도 직접 관리하며 꼼꼼하게 공연을 해내는데 사기까지 치며 지방공연을 하는 신정구, 주먹구구식으로 공연을 펼치는 신정구의 공연은 늘 문제투성이입니다.
이정혜의 홍보차에 뛰어든 깡패들과 형님들에게 불려간 최성원.
그렇지만 관람 매너가 정착되어 있지 않던 그 시대에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지난주 드라마에서 묘사된대로 변두리 극장에서 공연을 하다 보면 취객들이 난동을 피우거나 시비를 걸기도 했고 지역 유지들이 여자가수들에게 추근대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공연을 방해하는 등의 에피소드도 일어납니다. 신정구 단장처럼 양아치들에게 얼마씩 떼어주고 지역유지들에게 초대권을 뿌리며 비위를 맞추는 행동이 꼭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딱히 언제부터 그런 관행이 있었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남사당패' 시절부터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었죠.
낡은 버스에 올라 함께 공연하러 가는 유채영. 강기태의 역할은 보디가드?
신정구 단장에게 쇼단 운영 방법이나 배우고 미처 치르지 못한 출연료나 뜯어내자 싶어 따라나선 강기태는 본의 아니게 타고난 주먹으로 가수와 무대 공연을 지켜주는 주먹, 보디가드의 역할을 하게 될 듯 합니다. 여자연예인은 정치인들에게 불려다니고 남자 연예인들은 깡패들에게 불려다니고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던 당시의 무대는 정말 파란만장했던 것 같습니다. 감옥에서 출소한 노상택은 장철환과 손잡을 분위기인데 보디가드로 강기태의 쇼비지니스는 언제쯤 성공하게 될까요. 아직 갈 길이 멀기는 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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