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문화

어른 배우가 아역의 연기를 흉내내야 할까?

Shain 2012. 2. 1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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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드라마 속 아역의 비중이 만만치 않습니다. '해를 품은 달'은 아역들 덕에 소위 '대박'이 터졌다고 하고 주말극 '신들의 만찬'은 운명이 뒤바뀐 두 여자의 이야기를 위해 박민하, 주다영, 정민아 등 베테랑 아역을 동원했습니다. '해품달'도 그렇고 '신들의 만찬'도 그렇고 주인공들의 극적 운명을 묘사하자면 어린 시절의 고생은 필수적으로 연출되어야 합니다. 아역들은 단순히 성인 연기자가 거치는 한 시기를 연기하는 엑스트라가 아니라 극중 캐릭터의 인상을 결정짓는 첫 이미지가 되기에 드라마가 성공하려면 천재 아역을 캐스팅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때로는 아역 배우들이 지나치게 연기를 잘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짝패(2011)'는 아역 배우들의 인기가 너무 좋아 주연 4인방의 연기가 묻혔다고 했고, '계백(2011)'이나 '선덕여왕(2011)'도 유사한 평을 들었습니다. 때로는 능청스럽게 감정 표현을 하고 캐릭터의 사연을 연기하는 아역 배우들 때문에 성인 연기자들이 적잖이 부담스러워한다고도 합니다. 김유정이나 박지빈 같은 아역 배우는 이미 아역의 단계를 넘어섰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습니다. 노영학이나 이현우, 남지현도 어른들을 겁먹게 만드는 대표 아역 중 하나입니다.

드라마 '짝패'의 아역 노영학과 최우식, 성인역 천정명과 이상윤.


시청자 입장에서 제일 당황스러운 것은 무엇 보다 아역들의 연기를 보다 성인 연기자의 얼굴을 보면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얼굴 성형을 한 것도 아니고 아니면 굉장한 심적 고통을 겪어 제 나이보다 한참 늙었다거나 인상이 변해버린 것도 아니고 이름은 같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란 느낌이 들면 드라마에 몰입이 되지 않습니다. 얼굴은 성형할 수 없으니 그렇다 치지만 성격 마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버리면 이건 답이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아역과 성인역이 이어지지 않으면 일단 그 드라마는 실패한 것입니다.

아역 때와 인상이 확 달라진 배우를 놓고 '어릴 때 얼굴 그대로'라는 대사라도 할라치면 보는 사람 입장에선 억지스럽단 느낌이 들기 마련이죠. 사실 최근 '해품달'을 비롯한 많은 드라마의 아역 논란이 자주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 아역 중심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들은 언제나 그 문제로 고민을 했습니다. 80년대 드라마 '간난이(1983)'는 전쟁 후에 고통받는 간난이와 영구 남매의 이야기로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당연히 제작진은 아역에서 성인연기자로 이어지는 역할을 누가 맡을지 고민했죠.

'간난이'의 아역 김수양과 김수용, 성인역 원미경과 김명덕.


제작인이 선택한 배우는 약간 얼굴이 길고 갸름한 편이었던 소년 영구와 닮은 코미디언 김명덕이었습니다. 아역 배우의 느낌을 그대로 가져가자면 얼굴이 닮아야한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물론 김명덕은 당시 꽤 인기를 끌던 코미디언이었기 때문에 아역배우의 느낌 보다는 '웃기다'는 선입견이 강해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도 많았지만 원래 연기에 능한 코미디언이었고 인기 위주가 아닌 아역 위주로 배역을 선택했다는 점은 높이 샀던 모양입니다. 맨날 보던 배우가 아닌 신선한 배우였다는 평도 만만치 않더군요.

물론 '간난이' 드라마 자체는 성인 파트로 넘어간 뒤에 예전같은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간난이'는 아역이 워낙 인기라 아역이 성인역 선발의 기준이 된 셈입니다. 요즘은 주인공들을 정해놓고 그들의 아역을 연기할 배우들을 선발하는 식이니 참신해 보입니다. 속사정이야 드라마가 워낙 인기라 성인파트를 추가로 찍었기 때문에 성인역을 아역에 맞춰 고른 것이긴 한데 아역이 성인 선발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선례가 된 셈이죠. 

성인 캐릭터 '비담'의 특징을 잘 잡아낸 아역 박지빈.


때로는 성인 연기자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아역을 투입해 연기를 살리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선덕여왕(2009)'의 초반부엔 주요 연기자들의 아역이 시선을 끌었지만 중간부터 출연한 비담(김남길)의 아역 박지빈은 순수하지만 광기어린 어린 비담역을 캐릭터 그대로 잘 소화해 냈습니다. 아역이 성인 연기자의 연기를 받아들인 케이스라고 할까요. 박지빈이 보통이 넘는 표현력을 갖춘 아역이라 가능했던 일 같습니다.

1999년 방송된 드라마 '국희' 역시 아역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어린 국희역의 박지미와 어린 신영역의 김초연은 드라마 시청률을 30%까지 끌어올린 일등공신으로 평가받으며 아역 열풍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 아이들의 성인역을 물려받은 김혜수와 정선경은 자신들이 오히려 조연이 될까 걱정하는 처지가 됩니다. 특히 한 토크쇼에서 순식간에 눈물을 흘리는, 말 그대로 어른 뺨치는 연기력을 선보인 박지미와 그 성인역 김혜수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아역과 성인역을 너무 안 어울리게 뽑은 건 아니냐 말들이 많았죠.

드라마 '국희'의 성인역 김혜수와 아역 박지미.


조각같은 미인에 여자치고 장신이던 김혜수에 비해 까무잡잡한 피부에 키도 신영이 보다 작았던 박지미는 확실히 이미지 차이가 너무 컸습니다. 김혜수는 이 부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촬영장에서 연기하는 박지미를 따라다니며 웃는 모습을 흉내내는 연습을 합니다. 박지미는 고개를 살짝 들고 입꼬리를 양쪽 뺨쪽으로 한껏 올리는 시원한 웃음을 짓곤 했는데 김혜수는 그 웃는 모습을 따라하고 서글서글하게 대화하는 등 어린 국희의 캐릭터를 이어받으려 노력합니다.

기억에 김혜수가 그런식으로 미소를 지은 건 그때가 처음 아니었나 싶습니다. 예쁘게 보이길 포기한 김혜수는 성인 출연 내내 면셔츠와 긴 바지, 고무줄로 질끈 묶은 머리와 단순한 머리핀으로 분장하고 고운 옷 한번 입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국희라는 캐릭터를 그대로 연출하기 위해 꾸준히 그런 외모를 유지한 것입니다. '섹시한 김혜수'와는 전혀 동떨어진 연기자 김혜수의 모습이었습니다.

'해를 품은 달'의 민화공주 역 진지희와 남보라. 조금 만 더 흉내를?


하여튼 드라마 '국희'는 다른 멜로물들과는 다르게 당차게 운명에 맞서던 한 여성 기업가 이야기가 흥미로웠던 드라마고 김혜수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인기를 유지하는데 성공합니다. 아역에서 성인역으로 넘어가는 부분을 걱정했던 사람들의 우려를 이겨내고 '국희'를 자신의 캐릭터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해품달'에서 옷고름 물고 상상 속의 허염(송재희)과 상상신을 펼치는 민화공주(남보라)를 보니까 어릴적 민화공주였던 진지희가 떠오르더군요. 여러모로 남보라가 진지희 흉내를 낸 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아역과 성인역이 매치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올 때마다 두 배우의 얼굴이 완전히 같지 않은 한 완벽한 '싱크로'는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입장이고 또 '간난이'의 김명덕처럼 늘 닮은 사람을 고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선덕여왕'의 박지빈과 김남길처럼 서로의 캐릭터를 완전히 이해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인 연기자들이 아역들의 캐릭터 특징을 집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보고 작가도 그런 설정으로 캐릭터의 연결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줄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때로는 아역이 연기의 기준이 되야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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