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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내 연애의 모든 것'을 시청하다 보니 극중 국회의원 김수영(신하균)이 '술 먹고 짜는 거 진상이야'란 대사를 하더군요. 최근에는 드라마에서 '진상'이란 표현을 자주 볼 수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진상'이란 말을 아무 생각없이 쓰고 있습니다만 본래 이 단어는 술집에서 쓰던 표현입니다. '아빠'는 기생집에서 기둥서방 노릇을 하는 부자를 의미하는 은어였던 것처럼 '진상'도 술집에서 행패부리고 추태부리는 손님을 뜻하던 은어였습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아빠'라고 부르지 말라는 어르신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80, 90년대에는 사회적으로 비속어나 은어를 드라마에서 쓰지 않도록 권장하는 분위기도 있었고, '진상'이란 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드라마에 그 단어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요즘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같은 드라마의 캐릭터 한만희(김영란)가 '네가 말하는 말숙이가 아까 술먹고 진상부린 말숙이 맞냐'처럼 '진상'이란 표현을 쓰고 있지만 실제 그 또래는 진상이란 말보다는 '화상'이란 표현을 훨씬 많이 썼습니다.
은어는 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반영한 말이기 때문에 그 시대 속에서 해석해야지 후세의 눈으로 유추하면 전혀 엉뚱한 뜻이 나오고 맙니다. 흔히 인터넷에서 '진상'의 어원을 임금에게 물건을 '진상(進上)'하다에서 찾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시대적으로 이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건 80년대부터라고 알고 있습니다. 임금에게 뭘 진상하려고 해도 이미 일제강점기 때 사라진 왕조를 구경도 못한 세대가 더 많았단 뜻입니다. 대신 80년대까지만 해도 '상놈'이란 욕은 흔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에야 양반, 상놈이란 말을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고 상놈이 무슨 뜻인지 와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상스럽고 막된 일을 하는 사람을 '상놈'이라 비난했습니다. 신분제는 이미 오래전에 붕괴되었으나 양반, 상민 차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라 '상놈'은 굉장히 기분 나쁜 욕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술집에서 손님을 접대하던 여성들이 일부 상스런 손님들에게 '진짜 상놈'이란 욕을 줄여 자기들끼리 '진상'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높은 지위를 자랑하며 점잖은 체하는 사장님이나 고위공무원들이 어두컴컴한 술집에만 오면 온갖 추잡한 일을 하며 여성들을 괴롭히니 상놈도 그런 상놈이 없더라 뭐 그런 말입니다. 처음에는 '진상'이란 단어가 술집이나 업소를 중심으로 퍼져 '진상'이란 단어 자체를 안쓰는 추세였지만 요즘은 누구나 아는 욕이 되었습니다. 요새도 80, 90년대에 술집 깨나 드나드시던 분들은 이 말의 본뜻을 아주 잘 알고 있어 '진상'이란 표현을 들으면 움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국제적인 성추행(아마 거의 성폭행 수준이라지요) 사건을 일으킨 윤창중이나 성접대 파동으로 동영상까지 들통난 김학의 차관은 이제 공식 지정 '진상'이라 해도 될 것같습니다. 이미 많은 부분 거짓말이 밝혀지고 또 그런 엄청난 상황에서 항공 마일리지까지 적립했다는 윤창중도 어지간하지만 남들 보는 앞에서 직접 동영상에 출연한 김학의 전 차관도 굉장한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공직사회의 높으신 분이 속으로는 진상 중의 진상이었다는 사실에 많은 국민들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고 있죠.
흔히 화류계하면 사회에서 가장 무시받는 계층이라 합니다. 그 '진상'들이 공식석상에서는 점잖빼면서 그녀들에게 못할 짓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소위 '큰일하는 사람들'이 술집에서 저지르는 추태를 눈감아주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고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함부로 하는 못된 심보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술집 여성들을 괴롭혀도 그들이 공직자를 해꼬지할 수는 없을거라 믿었을테니까요.
그렇다면 술집 여성들이 뽑은 진상 직업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저기에서 풍문으로 들은 말이라 정확한 통계는 아닐지 몰라도 언론인, 정치인, 법조인, 학자를 꼽았다고 합니다. 공직자들의 성범죄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납득하기 힘든 옹호론이 나오고 불법적인 성적 향응에 '그 정도는 괜찮다'며 동조하는 분위기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닌게죠.
'진상'이란 단어는 90년대부터 널리 퍼져 이제는 '상진이 엄마'라는 새로운 은어도 탄생시켰습니다. '진상'이 술집 용어였다면 '상진이 엄마'는 주로 마트같은 곳의 블랙 컨슈머를 일컫는 말로 각종 트집과 생떼로 영업을 방해하거나 물건을 반품시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마트 직원들끼리도 '상진이 엄마왔다' 그러면 윗사람을 부르는 등 재빠르게 대처한다는 거죠. '진상'의 본질은 약자를 우습게 본다는데 있기 때문에 사회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역으로 진상 업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 무슨 '진상 시리즈'라도 엮을 생각인지 사회 여기저기에서 진상들이 판을 치고 있죠. 비행기에서 라면 끓여달라고 트집잡다 승무원을 폭행한 상무님, 호텔직원을 때린 진상 회장님, 성접대를 받은 진상 차관님에 이어 국제적인 진상으로 딱 찍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까지.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진상들이 약속이나 한듯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동안에도 남모르게 못된 짓을 해왔는데 인터넷을 비롯한 폭로 수단이 발달해 그들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단 뜻도 됩니다.
윤창중도 얼마나 피해 인턴을 얕잡아봤으면 '가이드'라고 부르며 일을 못했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한테는 사과하면서 해당 인턴에게는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또 어떻게든 일을 덮어보려는 심산으로 CCTV나 관련자 증언으로 드러날 그날의 행적을 거짓말하기도 했구요. 국제적인 무대로 활약했으니 이 사람이야말로 2013년에 구경한 진상 중에 단연코 최고의 진상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진짜 상놈'이라는 진상의 본뜻을 곱씹게 되는군요.
한편으로는 피해 인턴의 신상을 캐며 비난하고 윤창중에게 동정표(?)를 보내는 일부 사람들을 보니 반대로 우리가 '진상들의 천국'에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 모른척하고 있었는데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는 쪽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국제적인 비난을 받으면서도 도망갈 궁리를 하는 윤창중을 보니 이 사람 보다 더 대단한 진상이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문득 드네요.
* '아빠'라는 단어는 영어나 국어나 '아빠'의 어원이 될만한 단어가 있어 '아바'를 어원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느나 시대적 상황으로 보아 안정효의 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 밝힌 어원이 가장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진상'의 어원에 대해서는 김홍신의 소설 '인간시장'에서 본 기억이 있으나 정확하지 않습니다.
80, 90년대에는 사회적으로 비속어나 은어를 드라마에서 쓰지 않도록 권장하는 분위기도 있었고, '진상'이란 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드라마에 그 단어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요즘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같은 드라마의 캐릭터 한만희(김영란)가 '네가 말하는 말숙이가 아까 술먹고 진상부린 말숙이 맞냐'처럼 '진상'이란 표현을 쓰고 있지만 실제 그 또래는 진상이란 말보다는 '화상'이란 표현을 훨씬 많이 썼습니다.
'술 먹고 짜는 거 진상이야' 이제는 TV에서 흔히 들을 수 있게 된 '진상'이란 표현.
진상은 술집에서 쓰던 은어
요즘에야 양반, 상놈이란 말을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고 상놈이 무슨 뜻인지 와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상스럽고 막된 일을 하는 사람을 '상놈'이라 비난했습니다. 신분제는 이미 오래전에 붕괴되었으나 양반, 상민 차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라 '상놈'은 굉장히 기분 나쁜 욕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술집에서 손님을 접대하던 여성들이 일부 상스런 손님들에게 '진짜 상놈'이란 욕을 줄여 자기들끼리 '진상'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높은 지위를 자랑하며 점잖은 체하는 사장님이나 고위공무원들이 어두컴컴한 술집에만 오면 온갖 추잡한 일을 하며 여성들을 괴롭히니 상놈도 그런 상놈이 없더라 뭐 그런 말입니다. 처음에는 '진상'이란 단어가 술집이나 업소를 중심으로 퍼져 '진상'이란 단어 자체를 안쓰는 추세였지만 요즘은 누구나 아는 욕이 되었습니다. 요새도 80, 90년대에 술집 깨나 드나드시던 분들은 이 말의 본뜻을 아주 잘 알고 있어 '진상'이란 표현을 들으면 움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분을 가르키던 말인 '상놈'이 보고 배운 것없는 막된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버렸다.
흔히 화류계하면 사회에서 가장 무시받는 계층이라 합니다. 그 '진상'들이 공식석상에서는 점잖빼면서 그녀들에게 못할 짓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소위 '큰일하는 사람들'이 술집에서 저지르는 추태를 눈감아주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고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함부로 하는 못된 심보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술집 여성들을 괴롭혀도 그들이 공직자를 해꼬지할 수는 없을거라 믿었을테니까요.
그렇다면 술집 여성들이 뽑은 진상 직업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저기에서 풍문으로 들은 말이라 정확한 통계는 아닐지 몰라도 언론인, 정치인, 법조인, 학자를 꼽았다고 합니다. 공직자들의 성범죄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납득하기 힘든 옹호론이 나오고 불법적인 성적 향응에 '그 정도는 괜찮다'며 동조하는 분위기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닌게죠.
2013년, 진상들의 천국이 되다
'진상'이란 단어는 90년대부터 널리 퍼져 이제는 '상진이 엄마'라는 새로운 은어도 탄생시켰습니다. '진상'이 술집 용어였다면 '상진이 엄마'는 주로 마트같은 곳의 블랙 컨슈머를 일컫는 말로 각종 트집과 생떼로 영업을 방해하거나 물건을 반품시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마트 직원들끼리도 '상진이 엄마왔다' 그러면 윗사람을 부르는 등 재빠르게 대처한다는 거죠. '진상'의 본질은 약자를 우습게 본다는데 있기 때문에 사회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역으로 진상 업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 무슨 '진상 시리즈'라도 엮을 생각인지 사회 여기저기에서 진상들이 판을 치고 있죠. 비행기에서 라면 끓여달라고 트집잡다 승무원을 폭행한 상무님, 호텔직원을 때린 진상 회장님, 성접대를 받은 진상 차관님에 이어 국제적인 진상으로 딱 찍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까지.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진상들이 약속이나 한듯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동안에도 남모르게 못된 짓을 해왔는데 인터넷을 비롯한 폭로 수단이 발달해 그들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단 뜻도 됩니다.
진상들의 천국이 된 대한민국. 피해 인턴과 국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한편으로는 피해 인턴의 신상을 캐며 비난하고 윤창중에게 동정표(?)를 보내는 일부 사람들을 보니 반대로 우리가 '진상들의 천국'에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 모른척하고 있었는데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는 쪽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국제적인 비난을 받으면서도 도망갈 궁리를 하는 윤창중을 보니 이 사람 보다 더 대단한 진상이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문득 드네요.
* '아빠'라는 단어는 영어나 국어나 '아빠'의 어원이 될만한 단어가 있어 '아바'를 어원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느나 시대적 상황으로 보아 안정효의 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 밝힌 어원이 가장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진상'의 어원에 대해서는 김홍신의 소설 '인간시장'에서 본 기억이 있으나 정확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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