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해를 품은 달

해를품은달, 망가진 캐릭터의 밸런스 탐정놀이할 때가 아니다

Shain 2012. 2. 2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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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방영된 '해를 품은 달'은 전반적으로 지루했다는 평이 다수더군요. 지난주 은월각에서 과거를 기억해내고 사람이 달라진 월(한가인)에 대한 기대감에 좀 더 속도감있는 전개를 원한 시청자들이 많았던 것같습니다. 기억을 찾은 연우가 설(윤승아)과 함께 자신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캐기 시작한다는 내용 이외엔 별다른 부분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보경(김민서)이 연우의 얼굴을 보고 놀라긴 했습니다만 그 내용은 아무래도 오늘 방영될 장면이니까요. 지난주부터 화제가 된 연장설을 염두에 둔 듯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분량을 늘리는게 아니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갑자기 죽어야 했던 월에겐 자신에게 얽인 미스터리가 궁금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자빈 책봉을 앞두고 무병도 아닌 원인모를 병에 걸렸던 것, 아버지 허영재(선우재덕)가 자신을 편히 죽게 하려 탕약을 먹인 것, 무덤에서 자신을 꺼내준 사람이 대왕대비 윤씨(김영애)의 총애들 받던 국무 장녹영(전미선)이었다는 점 등 이훤(김수현)이 허연우의 죽음을 괴이하게 여겼던 것처럼 당사자 연우 역시 숨겨진 음모를 파헤치려 합니다. 활인서에서 지내던 연우는 이런 탐정놀이를 통해 자신이 병에 걸리던 날 밤 민화공주(남보라)가 찾아왔던 사실을 알게 됩니다.

기억을 되찾은 허연우는 자신의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시청자는 첫회부터 지금까지 연우의 죽음을 계속 지켜본 입장입니다. 민화공주와 대비 윤씨, 윤대형(김응수), 보경은 죽음을 사주한 사실을 본인들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장녹영, 혜각도사(김익태)는 모든 전말을 알고 있습니다. 연우가 비밀을 캐기 위해 설을 보내는 모습은 이훤이 운(송재림)을 시켜 주변인물을 조사시키는 과정 보다 흥미가 덜하기 마련입니다. 같은 사건을 두 팀으로 나누어 조사시키는 모습도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게 사실이구요. 장녹영이 월을 액받이 무녀로 들였다는 등(월을 액받이로 들여보낸 건 나대길(김명국)입니다) 설정의 오류 때문에 더욱 그런듯 합니다.

더군다나 방영 15회가 되도록 월과 이훤 사이의 로맨스는 그닥 큰 진척을 보였다고 보기 힘듭니다. 이훤이 월을 보며 연우를 떠올리고 서로 애틋해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 기간이 짧았고, 중전과의 합방 문제로 갈등하다 월을 활인서로 쫓아낸 것이 전부입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헤매다가 시간이 가버린 것입니다. 이 드라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훤과 허연우의 로맨스, 즉 애절한 사랑은 짧고 추리극은 길어지니 원성이 자자할 수 밖에요. 젊고 잘 생긴 왕의 사랑을 보고 싶어한 시청자들로서는 속이 탈 수 밖에 없습니다.



전반적으로 일그러진 캐릭터 간의 밸런스

소설 '해를 품은 달'은 이훤과 허연우의 사랑을 중점적으로 그리기 때문에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가 분량이 적었습니다. 서장자 양명군의 방황이나 사랑도 짧게 그 분위기만 묘사한 경향이 있고 상대적으로 서자인 운의 월에 대한 사랑이 인상적이었지만 이 부분은 드라마로 옮겨지면서 사라졌습니다. 이훤의 아내였던 중전 윤씨는 이름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존재감이 거의 없는 캐릭터로 이훤을 감히 사랑한다거나 흠모하지도 못했습니다. 궁궐살이가 버거워 힘들어했고 결국엔 자결하고 마는 슬픈 운명의 캐릭터였죠.

그런 캐릭터 간의 비율을 드라마로 옮겨놓고 보니 캐릭터가 전반적으로 엉성해진 느낌입니다. 소설 속의 양명군과 달리 드라마 '해품달'의 양명군(정일우)은 또다른 해의 운명을 타고난 존재입니다. 국무의 눈으로 보아서는 이훤과 동급의 운명을 가진 비운의 해입니다. 중전 윤씨 역시 보경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이훤을 자신 만의 남자로 두고자 악행도 마다하지 않는 적극적인 캐릭터로 변신했습니다. 그녀 역시 달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합니다. 월과 이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캐릭터 비율이 네 명의 주인공에게 거의 비등하게 분할된 것입니다.

원작과 비중이 달라지면서 가장 망가진 두 캐릭터.

정해진 분량의 이야기를 연장하면 '지루하다'는 약점이 생기는 것처럼 캐릭터 역시 역할이 확대되면 유사한 문제점이 생기게 됩니다. 양명군은 원작에 없던 월과의 재회 장면 또 데이트 장면을 넣다 보니 양명군 자체가 난해한 인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가끔씩 연우와 꼭 닮은 허염(송재희)을 찾아가 연우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할 정도로 큰 사랑의 상처를 입은 양명군이 별다른 과정없이 월에게 푹 빠져 한낱 천한 무녀를 위해 종친으로서의 지위까지 버리려 합니다. 이훤이 월에게 움직이는 마음 때문에 고민했던 것과는 큰 차이입니다.

중전 역시 그런 점이 없잖아 있지만 그나마 중전의 감정선은 질투에 미쳐 불안해 하는 캐릭터라 이해가 가는 면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달리 지략에 능하지 않고 왕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모습은 애처롭게 보일 정도니 역할을 늘려도 그나마 나은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민화공주 쪽도 원작에서 죄책감을 모르고 허염의 팬클럽만 하던 캐릭터에서 시어머니 신씨(양미경)를 볼 때 마다 괴로워하는 캐릭터로 발전해 설득력이 있습니다. 어제는 시아버지 허영재가 자신 때문에 자결했단 사실까지 알았으니 반전까지 예상해볼 수 있는 캐릭터로 변신했습니다.

연우를 만난 중전 보경 과연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가장 망가진 캐릭터는 누가 뭐래도 허연우입니다. 국무에게도 반말을 하는 노비 설이 자신에게는 깍듯하게 존대를 하고 양반네처럼 대접함에도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고 기억을 신기라고 착각한 '둔함'은 총기로 주변 사람들을 감탄시키던 연우의 캐릭터를 붕괴시켜 버립니다. 특히 어린 시절엔 신씨 부인을 '어머니'라 부르며 꼬박꼬박 존대를 하던 연우가 기억이 돌아오자 마자 '엄마'란 표현을 쓰는 건 상당한 괴리감이 느껴지게 하더군요. 사극 속의 허연우가 현대극의 허연우로 변신하면서 캐릭터의 연속성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남은 5회 동안 숨겨왔던 과거가 밝혀지고 연우는 이훤과 자신의 힘으로(한동안 활인서에서 '대장금2'를 찍을 기세지만) 중전 자리에 돌아와야 합니다. 그 과정을 설득력있게 그리려면 두 사람의 탐정놀이 보다 주변 인물들의 감정 변화가 큰 몫을 해야합니다. 게다가 원작 보다 양명과 보경의 캐릭터가 늘어난 만큼 두 사람의 해피엔딩(이거 이렇게 높은 시청률인데 새드엔딩 할 수 있을까요)이 성공하려면 둘의 조력이 필연적입니다. 양명이나 보경이 최악의 악당이 되어 마지막 장애물 역할을 하거나 둘중 하나가 양보해야 한단 뜻입니다.

분량이 늘어난 만큼 두 캐릭터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드라마 초반에 자주 발견된 '옥에티' 문제도 그렇지만 거액을 투자한 드라마치고는 여기저기서 결점이 많이 발견되는게 '해품달'의 가장 큰 약점인가 싶기도 합니다. 한가인의 연기력 논란은 본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드라마를 잘 조율하지 못한 제작자의 책임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윤대형의 심복인 심산(서현철)의 개그가 때때로 생뚱맞은 것처럼 말입니다. 한가인은 이번회부터는 사극톤으로 연기하지 않고 현대극 발성을 하던데 본인은 상당히 편안해 보여도 전체적으론 다들 사극 발성을 하고 있어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조금 더 꼼꼼한 준비과정을 보여줄 수는 없었던 걸까요.

중전 보경이 연우와 닮은 월을 만났습니다. 양명이나 이훤과는 다르게 감이 빠른 중전이라면 금새 월의 정체를 눈치챌 수도 있습니다. 양명 역시 '해우석(解憂石)'을 기억해낸 월을 보며 혹시나 하며 의심하기 시작합니다(아니면 이미 같은 사람인 걸 알고 있는데 기억이 돌아왔다고 생각한 건가요). 두 반동인물이 입체적 캐릭터로 변신하면 드라마가 훨씬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15회에 방영되었어야 할 내용은 지지부진한 추리극이 아니라 양명과 보경의 반격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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