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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인은 과거 '애정의 조건(2004)' 출연 당시 차세대 연기자로 기대를 한몸에 받던 배우였습니다. 아버지가 혼외자로 얻어온 막내딸, 마음깊이 외로움을 느끼며 의지할 사람을 찾는 강은파의 운명은 눈물의 연속이었습니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나장수(송일국)와 결혼했지만 과거가 들통나 시어머니에게 쫓겨나고 맙니다. 아들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은 시아버지 나만득(장용)의 도움으로 시어머니 몰래 시댁에 살게 됐지만 시어머니가 집에 오면 2층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숨어야 하는 은파, 시아버지는 임신한 은파를 위해 커다란 보울에 밥과 반찬을 섞어 급하게 식사를 챙겨줍니다.
시어머니가 오면 쫓겨난다는 무서움, 임신한 아이 때문에 시도때도 없이 밀려오는 배고픔, 이 순간에도 배고픈 며느리를 위해 먹을 것을 챙겨주는 시아버지에 대한 감사, 한끼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대충 끼니를 떼워야하는 서글픔. 급하게 반찬과 뒤섞인 밥을 퍼넣던 은파는 기어코 숟가락을 놓고 끅끅 울고 맙니다. 큰소리로 울지도 못하고 참고 또 참는 울음이었습니다. 드라마 '애정의 조건'을 아는 사람들 중에는 주인공 금파(채시라) 보다 은파의 눈물을 기억하시는 분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시청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로 서러운 장면이었지요.
그때의 배우 한가인은 분명 표정이 살아 있고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배우였습니다. 그러나 '해품달'에서 보여준 사극 연기는 그녀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본인에게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연출과 각본의 미숙함으로 그녀의 캐릭터를 잘 만들지 못한 것인지(확실히 허연우를 기억상실의 바보로 만든 건 큰 실책이라 봅니다) 미숙해 보였습니다. 감정 전달을 정확히 하지 못하는 표정 연기나 상대방과 호흡이 맞지 않는 듯한 느낌, 서툰 발성은 볼 때 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나, CF 촬영을 위한 예쁜 배우가 아닌 연기를 위해 망가진 배우가 되는 순간 '애정의 조건'의 그 장면이 다시 떠오르더군요. 내 인생을 지금까지 빼앗겼다는 설움, 눈 앞에 그토록 사랑하던 연인을 두고도 괴롭혔다는 자책, 사랑했지만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과 죽지도 않았는데 땅에 묻혀 고통받았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마치 귀신인듯 혼령인듯 서글프게 통곡을 합니다. 별개의 영혼처럼 나뉘어 있던 어린 허연우(김유정)와 월(한가인)의 기억이 합쳐진 순간이고 한곳이 빈 사람처럼 멍하던 월이 본래의 허연우로 돌아온 순간입니다. 은월각의 울음소리, 그 한을 풀 시간이 되었죠.
장녹영(전미선)은 친구 아리(권영남)의 유언으로 어떻게든 허연우를 살리고자 했습니다. 달이 될 운명을 타고난 여인, 허연우의 인생은 찬란해 보였으나 그 운명을 사람의 힘으로 꺾으려 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운명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면 하늘의 힘도 필요하지만 허연우 자신의 힘도 필요한 법입니다. 원작의 월은 가족과 훤을 위해 묵묵히 액받이 무녀의 일만 열심히 했습니다. 결국 월을 어리버리 바보처럼 보이게 한 기억상실의 역할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라는 적극적인 캐릭터 설정을 위한 것이었나 봅니다.
장녹영은 연우의 처분을 두고 분노하는 설(윤승아)에게 '아가씨는 강한 사람'이라며 활인서로 가게 된 월을 내버려둡니다. 달이 '스스로 차오를 빛을 발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장녹영, 모든 것이 아가씨의 손에 달려 있다는 그녀의 말은 기억도 월 스스로 찾아야 하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본인이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월과 연우가 한 사람이 된 지금 전혀 새로운 타입의 연우가 탄생할 것이란 예고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는 이그러진 달이었다면 앞으로는 둥글게 차오른 달로 변해 환하게 빛나게 될 것이란 이야기죠.
허연우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리가 연우의 미래를 알아보았듯 허연우와 이훤(김수현)은 한쌍의 해와 달이 되어 강녕전과 교태전을 차지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또다른 해의 운명을 갖고 태어난 양명(정일우)과 달의 자질은 없으나 달이 될 운명을 타고난 보경(김민서), 그리고 인간의 권력을 손에 쥐고자 흑주술을 마다하지 않는 대왕대비 윤씨(김영애), 외척 윤대형(김응수), 사랑을 위해서라면 철없는 짓도 마다하지 않은 민화공주(남보라)의 방해로 운명의 실이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성조(안내상) 조차 그들이 가족이란 이유로 이그러진 운명을 바꿔놓지 못했습니다.
월이 온양에서 한양으로 오자마자 월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일식처럼 달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뜻의 신비로운 징조입니다. 또한 연우의 기억이 돌아올 때 즈음 은월각의 울음소리가 대왕대비를 놀라게 하고 보경을 겁먹게 만들었습니다. 운명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니 죄지은 자들은 각오하라는 경고입니다. 은월각의 울음이 아리의 소리인지 아니면 그동안 잃어버렸던 허연우의 기억이 은월각과 공명한 것인지 그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무시무시한 공포와 동시에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이미 운명이 준비되었다면 그 안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건 월의 몫입니다.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이란 말로 관상감 나대길(김명국)을 놀래킨 월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리라 마음먹은 듯합니다. 거기다 이훤에게 살을 날려 중전과의 합방을 방해한 혜각도사(김익태)와 대왕대비 윤씨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장녹영이 움직인다면 쉽지는 않아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훤 역시 홍규태(윤희석)을 시켜 허연우의 죽음을 조사하니 언젠가는 월이 살아있는 허연우 임을 알게 될 것이고 교태전의 안주인은 바뀔 수 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작에서의 월은 무적에 올라 있지만 신기도 없고 양반가 규수이기에 신분을 되찾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드라마 속 월은 고신을 당해 상해를 입고 죄인 신분으로 활인서까지 쫓겨났으니 그 무고가 증명되고 신분이 회복되더라도 중전 간택의 조건에는 어긋나네요. 극적인 연출을 위해 그리 설정한 것이겠지만 역시 아무리 '사극'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이 드라마를 봐도 가끔씩 뜨악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진짜 사극'이라면 꽤 곤란한 설정 아닌가 싶은데 말입니다.
월의 얼굴을 보며 아리를 떠올린 윤대형이나 은월각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 대왕대비나 은월각을 지날 때 마다 울음소리를 듣고 공포에 질리는 보경, 어린 시절 흑주술 장면을 떠올리며 악몽에 시달리는 민화공주가 허연우 앞에 엎드려 죄를 비는 날이 오게 될까요. 은월각에서 잠들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며 대성통곡하는 월의 모습은 악인들에 대한 단죄가 꼭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천벌입니다. 감히 중전이 될 여인의 운명을 가로막은 죄, 하늘이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장녹영은 분명 그 울음소리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겠죠.
아내가 될 연우에게 내려준 '해를 품은 달'. 그 봉잠이 연우의 손에 정당하게 쥐어질 날은 언제일까요. 혼령받이로 은월각에 갇힌 월의 정체를 윤대형이 제일 먼저 눈치챌지도 모릅니다. 양명군 역시 월이 허연우란 사실을 아는 것도 같지만 월이 벌을 받아 쫓겨가는 순간에도 운(송재희)에게 말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위기에서 허연우 스스로 헤쳐나와야 답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개인적으로 아직은 조금 부족하지만 '애정의 조건'에서 보여준 한가인의 감정이 되살아난 건 참 다행이라 봅니다.
* 오늘 연판장이 발행되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http://skinwith.tistory.com/ 를 방문해주세요.
시어머니가 오면 쫓겨난다는 무서움, 임신한 아이 때문에 시도때도 없이 밀려오는 배고픔, 이 순간에도 배고픈 며느리를 위해 먹을 것을 챙겨주는 시아버지에 대한 감사, 한끼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대충 끼니를 떼워야하는 서글픔. 급하게 반찬과 뒤섞인 밥을 퍼넣던 은파는 기어코 숟가락을 놓고 끅끅 울고 맙니다. 큰소리로 울지도 못하고 참고 또 참는 울음이었습니다. 드라마 '애정의 조건'을 아는 사람들 중에는 주인공 금파(채시라) 보다 은파의 눈물을 기억하시는 분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시청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로 서러운 장면이었지요.
화장을 지운 한가인의 연기가 훨씬 낫군요.
그러나, CF 촬영을 위한 예쁜 배우가 아닌 연기를 위해 망가진 배우가 되는 순간 '애정의 조건'의 그 장면이 다시 떠오르더군요. 내 인생을 지금까지 빼앗겼다는 설움, 눈 앞에 그토록 사랑하던 연인을 두고도 괴롭혔다는 자책, 사랑했지만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과 죽지도 않았는데 땅에 묻혀 고통받았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마치 귀신인듯 혼령인듯 서글프게 통곡을 합니다. 별개의 영혼처럼 나뉘어 있던 어린 허연우(김유정)와 월(한가인)의 기억이 합쳐진 순간이고 한곳이 빈 사람처럼 멍하던 월이 본래의 허연우로 돌아온 순간입니다. 은월각의 울음소리, 그 한을 풀 시간이 되었죠.
일식과 함께 돌아온 달의 기억 그 신비로움
장녹영(전미선)은 친구 아리(권영남)의 유언으로 어떻게든 허연우를 살리고자 했습니다. 달이 될 운명을 타고난 여인, 허연우의 인생은 찬란해 보였으나 그 운명을 사람의 힘으로 꺾으려 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운명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면 하늘의 힘도 필요하지만 허연우 자신의 힘도 필요한 법입니다. 원작의 월은 가족과 훤을 위해 묵묵히 액받이 무녀의 일만 열심히 했습니다. 결국 월을 어리버리 바보처럼 보이게 한 기억상실의 역할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라는 적극적인 캐릭터 설정을 위한 것이었나 봅니다.
장녹영은 연우의 처분을 두고 분노하는 설(윤승아)에게 '아가씨는 강한 사람'이라며 활인서로 가게 된 월을 내버려둡니다. 달이 '스스로 차오를 빛을 발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장녹영, 모든 것이 아가씨의 손에 달려 있다는 그녀의 말은 기억도 월 스스로 찾아야 하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본인이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월과 연우가 한 사람이 된 지금 전혀 새로운 타입의 연우가 탄생할 것이란 예고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는 이그러진 달이었다면 앞으로는 둥글게 차오른 달로 변해 환하게 빛나게 될 것이란 이야기죠.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운명 힘.
월이 온양에서 한양으로 오자마자 월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일식처럼 달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뜻의 신비로운 징조입니다. 또한 연우의 기억이 돌아올 때 즈음 은월각의 울음소리가 대왕대비를 놀라게 하고 보경을 겁먹게 만들었습니다. 운명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니 죄지은 자들은 각오하라는 경고입니다. 은월각의 울음이 아리의 소리인지 아니면 그동안 잃어버렸던 허연우의 기억이 은월각과 공명한 것인지 그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무시무시한 공포와 동시에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일식과 함께 되돌아온 달의 기억, 허연우를 만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작에서의 월은 무적에 올라 있지만 신기도 없고 양반가 규수이기에 신분을 되찾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드라마 속 월은 고신을 당해 상해를 입고 죄인 신분으로 활인서까지 쫓겨났으니 그 무고가 증명되고 신분이 회복되더라도 중전 간택의 조건에는 어긋나네요. 극적인 연출을 위해 그리 설정한 것이겠지만 역시 아무리 '사극'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이 드라마를 봐도 가끔씩 뜨악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진짜 사극'이라면 꽤 곤란한 설정 아닌가 싶은데 말입니다.
다시 태어난 허연우, 죽음의 비밀을 눈치챈 이훤.
아내가 될 연우에게 내려준 '해를 품은 달'. 그 봉잠이 연우의 손에 정당하게 쥐어질 날은 언제일까요. 혼령받이로 은월각에 갇힌 월의 정체를 윤대형이 제일 먼저 눈치챌지도 모릅니다. 양명군 역시 월이 허연우란 사실을 아는 것도 같지만 월이 벌을 받아 쫓겨가는 순간에도 운(송재희)에게 말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위기에서 허연우 스스로 헤쳐나와야 답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개인적으로 아직은 조금 부족하지만 '애정의 조건'에서 보여준 한가인의 감정이 되살아난 건 참 다행이라 봅니다.
* 오늘 연판장이 발행되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http://skinwith.tistory.com/ 를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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