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70년대 교도소 풍경이 잘 묘사된 강기태의 옥살이

Shain 2012. 3. 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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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세계 어딜 가든 탈옥 사건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신창원을 마지막으로 최근에는 뜸해진 편입니다. 1994년 개봉한 영화 '쇼생크 탈출'은 누명을 쓰고 투옥되자 숟가락으로 땅을 파내어 굴을 뚫고 탈출에 성공한 죄수 이야기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땅굴 탈옥은 의외로 흔한 방법인데 작년에도 아프가니스탄의 한 교도소에서 탈레반이 파낸 320m 길이의 땅굴을 통해 수백명의 죄수가 탈옥했다는 기사가 났고(파는데 5개월이나 걸렸답니다), 2년전에는 네덜란드에서 숟가락으로 굴을 파서 탈옥했다는 기사도 등장했습니다.

70년대에도 세계적으로 땅굴로 탈옥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많습니다. 71년 우루과이의에서 백여섯명의 정치범들이 40여미터의 땅굴을 파고 탈옥했다 30명이 도로 잡혀왔고 75년에는 멕시코에서 9명의 죄수들이 땅굴을 파고 하수구를 통해 탈출(영화와 가장 비슷해 보이지요), 76년에는 멕시코시티 형무소에 있던 마약사범이 80미터의 땅굴을 뚫고 탈출합니다. 같은 1976년에는 미국 샌 쿠엔틴 교도소(San Quentin, 몇몇 문학작품에서도 거론된 악명높은 교도소)에서는 3명의 기결수들이 너비 1m, 길이 22m 규모의 땅굴을 파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숟가락이 아닌 곡괭이와 삽으로 작업을 하다 발각된 이 사람들은 18m만 더 팠으면 성공할 수 있었는데 탈옥에 실패한 이유는 '소문'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권력자와 중정과 정치검사의 합작. 구치소에 수감된 강기태.

그 이외에도 '돌아오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탈옥해 어머니를 만나고 여섯시간만에 돌아온 미국의 죄수(73년), 몸에 로션을 바르고 좁은 틈 사이로 탈옥하려던 죄수와 자신이 사랑하던 죄수를 탈옥시킨 여간수, 멕시코에서 일어난 헬기 탈옥 사건, 폭동을 일으켜 탈옥한 죄수들, 창문을 타고 탈옥한 사람 등 감옥에 갖힌 죄수들은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이용해 밖으로 나오곤 했습니다. 탈옥한다고 상황이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닌데 탈옥의 유혹은 끊을 수가 없나 봅니다. 작년 미국에서는 70년에 탈옥한 죄수가 잡히는가 하면 75년에 탈옥했던 죄수도 36년만에 잡혀 도망가봤자 별수 없다는 진리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빛과 그림자'의 강기태(안재욱)는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되자 탈옥을 시도하는 조태수(김뢰하)에게 동조하게 됩니다. 조폭 두목 조태수야 그렇다치지만 강기태에게 탈옥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장철환(전광렬), 차수혁(이필모)에게 한방 먹은 김부장(김병기)이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공개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강기태가 정말 탈옥하게 될까 궁금한 부분입니다. 그건 그렇고 조태수의 탈옥은 어디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일까요. 드라마 속 교도소는 실제 70년대에 발생했던 몇가지 사건과 유사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간수들과 타협하면 편해지는 교도소 생활

예전부터 교도관들이 교도소 안으로 몇가지 금지 물품을 들여준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교도관이 왕년에 한가닥하던 조폭 두목 김태촌이 감옥 안에 핸드폰, 현금, 담배 등을 이용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작년에도 교도관과 경찰관이 살인 혐의로 투옥된 폭력배에게  휴대전화를 반입시킨 혐의로 처분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폭력배는 감옥 안에서 조직원들을 시켜 폭력을 청부했습니다. 경찰관과 교도관이 그 대가로 꽤 많은 뇌물을 받았다는 건 말 안해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구요. 조폭 두목은 감옥 안에서도 특별한 사람이냐며 비아냥대던 기사들이 종종 실리곤 했습니다.

요즘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데 70년대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드라마 속 풍경처럼 조태수같은 조폭 우두머리들이 노상택(안길강)과 자기 수하들을 불러 닭고기를 뜯어먹고 강기태를 폭행하고 담배(드라마이니 담배 피우는 장면은 묘사를 못하겠군요)를 피우곤 했다는 기사가 70년대에도 종종 실리곤 했습니다. 90년대까지도 교도소를 불시 단속하면 재소자들 사이에서 담배가 발견되고 몇몇 교도관은 재소자들에게 담배를 비롯한 몇가지 물품 장사를 해 큰 돈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때는 핸드폰이 없었던 대신 교도소 내 전화를 이용하게 해주는 등의 '편의'를 제공했다고도 합니다.

구치소에서 만난 진짜 조폭 조태수는 교도관을 잘 다룬다.

당시 교도관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정부에서는 종종 수사를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영치금을 유용하는 행위, 재소자에게 담배나 쪽지 전달 등편의 제공후 금품을 받는 행위, 술, 담배 등을 판매하는 행위, 교도소의 각종 비용을 횡령하는 행위(썩거나 질낮은 음식이 제공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등이 단속 대상이었습니다. 부정물품을 전해주는 교도관을 '개꾼'이라 하고 돈많은 재소자를 지칭하는 '넥타이',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비둘기 날리기', 신입들에게 신고식을 시키는 왕개비(고참)나 '강아지와 개구리'같은 은어(담배와 술을 뜻하는 감방 은어)가 통용되는 그곳의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고 그렇지 않은 교도소는 흔치 않을 거라 봅니다. 사회와 격리되어 답답한 생활을 해야하는 사람들에게 바깥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느낌은 오히려 내재된 마음 속 독기를 키우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릅니다. 교도소 안에서 진정한 교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런 편의시설을 단절할 게 아니라 오히려 편의시설을 충분히 주고 정신적 감화가 되도록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문제는 재소자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이런 행위가 다른 범죄에 이용되는 것이겠죠.

조태수의 모든 불법을 눈감아주는 교도관.

79년에는 수원교도소에서 공범 한 명과 함께 교도소 담을 넘어 탈옥한 죄수가 상습절도를 하다 재검거되었습니다. 1970년에는 뇌물 10만원을 받은 한 교도관이 부산소년원에 수용중이던 한 수용자를 철조망을 넘어 탈출시킨 혐의로 수배되기도 했습니다. 77년에 서울서대문구치소에서 한 강도상해범이 탈옥했습니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구치소 북쪽담을 넘어 도망친 죄수와 함께 교도관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탈옥범에게 각종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7만원을 받았다는 혐의였습니다.

다시 잡힌 강도상해범이 자백한 내용은 실로 충격적이었는데 탈옥수는 교도관들에게 3만원에서 10만원 사이의 현금을 지불하는가 하면 내연녀를 시켜 롤렉스 시계(당시에 그런류는 밀수로만 구할 수 있는 귀한 물품이었으며 상당히 고가였습니다)를 건내주고 형이 확정되면 다른 교도소로 이감하게 해달라 청탁도 넣었다고 합니다. 그 대가로 교도관은 하루에 한번씩 담배를 피울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돈을 주면 '병보석'이 가능하다는 말에 다시 내연녀를 시켜 60여만원을 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뇌물수수혐의로 4명의 교도관이 파면되고 경찰 수사를 받게 됩니다.

교도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조태수. 돈이면 교도관도 매수 가능했다.

탈옥 당시에는 한 교도관에게 '병보석이 되면 입고나갈 옷을 사달라' 부탁해 그가 사다준 운동복과 운동화로 갈아입고 구치초 북쪽 담을 넘었습니다. 교도관에게는 탈옥을 방조, 협조한 혐의가 추가된 것입니다. 79년에는 재소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한 구치소 직원이 구속되고 12명이 파면됩니다. 구치소 내 생활 편의를 봐주는 조건으로 각각 10만원, 20만원 등을 받은 혐의였습니다. 이처럼 교도소 내의 부정부패는 한때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됩니다. 교도소의 열악한 환경이 오히려 범죄 발생율을 증가시킨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극중 강기태가 정말 탈옥을 하게 될까. 일부에서는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반응을 보이긴 합니다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교도관에게 흉기를 구해 포승줄을 끊고 환기구 구멍으로 도망친 조태수를 잡아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떤식으로 탈출할 길이 생기느냐가 관건이니 또다른 기회가 될 가능성도 있겠죠. 일각에서는 장철환과 차수혁의 동태를 감시하던 김부장이 아직 살아있는 한지평(문태원)을 숨겨두고 있단 의견도 있습니다. 경찰 수사가 그렇게까지 흐물흐물하진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역시 눈길이 가는 의견입니다.

조태수를 따라 같이 환기구 구멍으로 빠녀나간 강기태. 그의 운명은?


* 정혜와 수혁이 카페에서 만날 때 흐른 곡은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로 엘튼 존(Elton John)이 1976년 발표한 싱글 앨범이자 'Blue Movies' 앨범 수록곡입니다. 이별에 관한 이 노래는 많은 가수들이 다양한 장르로 리메이크하여 최근 세대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 조명국과 유채영이 만날 때 나온 팝은 'Pledging My Love'입니다. 원곡은 1955년 발표된 Johnny Ace가 부른 노래지만 이후에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 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부른 곡도 인기있습니다. 극중에서 들려나오는 곡은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의 버전으로 1984년 발표된 앨범입니다(시기가 맞지 않는 셈이죠). Pledging My Love의 여러 버전 중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곡 중 하나이고 빌보드 컨추리 싱글 차트 9위에 오른 곡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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