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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급공무원, 애달픈 국정원 직원들의 거짓말 대결

Shain 2013. 2. 1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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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권에서야 이미 예전부터 007같은 스파이 이야기가 인기였습니다만 우리 나라에서는 '국정원'이나 '안기부' 이야기가 금기 아닌 금기에 가까웠습니다. '7급 공무원'에서 김서원(최강희)의 아버지 김판석으로 출연중인 이한위씨가 예전에 '제 5공화국(2005)'에서 김용남이란 정치깡패 역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김용남은 안기부와 국회의원들의 사주를 받아 전국 각지에서 조직적으로 통일민주당의 정당 창당을 방해했습니다. 안기부가 이렇게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권력자'의 이미지이다 보니 국정원의 '스파이활동'을 코믹하게 연출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요즘은 '국정원'으로도 모자라서 NSS라는 가상 정보 기관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아이리스(2009)'도 있고 그 후속작인 '아테나: 전쟁의 여신(2010)'이나 지난주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아이리스 2'도 있습니다만 많은 부분 과장된 그들의 스파이 활동이 어색하게 느껴진다는게 솔직한 기분입니다. 미국 드라마나 007 시리즈를 의식한 듯한 CG와 액션 연기는 인상적인데 뭔가 이야기와 겉돈다고 할까요. 한 인간으로서의 슬픔을 숨긴채 첩보 활동에 열중하는 그들의 멜로는 어쩐지 너무 무겁게 연출되서 더 가볍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가짜티'가 심하게 난다는 말이지요.

가짜총을 들이대도 별로 이상하지 않은 '7급 공무원'의 연출.

반면 '7급 공무원'은 신분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하는 스파이들의 삶을 코믹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수백억을 쏟아부었다는 '아이리스2'에서 장난감 총을 쓴 티가 나면 어쩐지 김이 새지만 총기 지급도 자유롭지 못한 이 드라마 주인공들이 장난감 총을 꺼내면 어이없기 보다 웃음이 나올 것 같습니다. 국정원에 대한 코믹한 접근 자체도 흥미롭지만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를 오가는 절묘한 연출이 가끔 기가 막히다 싶습니다. 진짜 신분을 숨기고 사는 '7급 공무원'들도 저런 상황이 있지 않을까 싶은 재미난 상상까지 하게 됩니다.

본명이 김경자인 김서원은 한길로(주원)와 공도하(황찬성)에게 본명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한길로에게는 외교관 집 딸이라며 거짓말을 한 경력도 있습니다. 국정원을 그만 둔 한길로와 친해질 목적으로 국정원 요원이란 사실까지 숨겼습니다. 그런 그녀의 가면은 한길로가 김서원의 부모님과 만나자 마자 깨지고 맙니다. 아무리 김정원이라고 깜쪽같이 위장해도 옷장문만 열면 뚝 떨어지는 공도하처럼 들통 날 수 밖에 없습니다. 경자어머니 오막내(김미경) 여사가 '국정원다니는 경자야'하고 부르기만 하면 금새 탄로날 비밀입니다.

산업스파이 색출이라는 심각한 임무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하는 일은 거짓말 뒷수습.

경쟁방송국의 과장된 스파이활동 보다 블랙코미디같은 '7급 공무원'이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한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알콩달콩한 남녀의 로맨스를 그들의 직업과 연계시켰기 때문입니다. 모든 연인들이 솔직하고 적나라한 모습에 반해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고의적인 거짓말로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도 있고 연인에게는 차마 밝힐 수 없는 비밀을 감춘채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꺼풀을 하나 둘 벗고 진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김정원에게는 껍질이 남 보다 훨씬 더 많을 뿐이지요.

더욱 재미있는 건 등장인물 대부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007를 동경해 스파이가 되고 싶었던 한길로는 어렵게 국정원 시험에 붙어 합격했지만 아버지 한주만(독고영재)가 산업스파이로 밝혀지자 퇴출되고 맙니다. 자신의 퇴출 이유를 몰라 괴로워하던 한길로는 훈육관 김원석(안내상)의 지시로 한주만을 감시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김서원에게 밝히지 않은채 몰래 김원석과 연락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모르는 자신 만의 스파이 활동인 셈입니다. 김원석은 김원석대로 현장파견한 김서원과 한길로 모두에게 그런 사실을 숨기고 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 모두가 한가지 이상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애달픈 국정원 직원들의 사연들.

공도하는 공도하대로 자신이 어떻게 국정원 요원이 되었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위장 요원인 김서원과 달리 신선미(김민서)와 함께 현장을 뛰는 공도하는 특전사 출신 정예요원입니다. 오광재(최종환) 국장의 도움으로 총살 직전에 구해졌고 김원석의 작전을 몰래 오광재에게 보고하고 있지만 그런 사실은 남들에게 비밀입니다. 그들의 상관인 장영순(장영남)은 임무에 투입되기 위해 신혼부부로 위장했다가 사랑하던 사람과 마주쳐 연인을 잃고 말았습니다. 거짓말이 일상인 국정원 직원들의 애달픈 사연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김서원과 한길로의 아슬아슬한, 말 그대로 목숨이 걸린 사랑 싸움도 거짓말과 진심의 오락가락하는 한판 승부이고 한길로와 포옹하는 김서원을 본 공도하의 심정이나 공도하와 포옹하는 김서원을 본 한길로의 마음이나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 한복판일 것입니다. 자신들의 적인 김미래(김수현)나 JJ(임윤호)는 시시각각 국정원 요원들을 노리고 있는데 '조국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이 젊은 연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을까. 엎치락뒤치락 매일 허당을 짚는 그들을 보면 조국을 맡기기는 좀 힘들어 보입니다.

눈물없이 볼 수 없는 국정원 직원의 애달픈 사랑이야기? 재미있는 블랙 코미디.

'아이리스2'의 액션신이나 핵무기 개발같은 주제가 너무 거창해서 그 드라마를 보다가 '7급 공무원'을 보면 '너네들 지금 뭐하니?'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이리스2'의 스파이들도 거짓말을 하고 '7급 공무원'의 주인공들도 거짓말을 쏟아냅니다만 NSS 직원들의 거짓말과 사랑 보다는 '공무원'들의 거짓말이 훨씬 귀엽고 정감은 가네요. 물론 곳곳에서 짚어내는 신랄한 사회 풍자에 속시원한 웃음 보다 피식피식 쓴 웃음이 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7급 공무원'의 이야기를 한줄로 요약하자면 '눈물없이 볼 수 없는 국정원 직원들의 애달픈 사랑이야기'라 할 수 있을까요. 가끔은 주인공들의 첩보작전 보다도 구성지게 늘어놓는 김판석의 지론이 재미있게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정치권을 풍자하는 발언과 함께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국정원 직원이 내 딸이라며 경자의 직업을 욕심껏 자랑하는 판석이지만 그 딸이 기껏 하는 일이 거짓말로 다른 사람을 속이며 한길로와 공도하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나 있을까요. 오막내 여사님 말대로 원래 세상 이치가 다 그런거라면 할 말 없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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