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한국 드라마 보기

백년의유산, 복받은 가족들의 흥미진진한 가업 전쟁

Shain 2013. 2. 17. 10:32
728x90
반응형
어제 방영된 '백년의 유산' 최고의 장면은 아름다운 꽃중년의 로맨스와 익살스런 노총각의 심술이었죠. 민채원(유진)의 이혼으로 유치장에서 풀려난 민효동(정보석)은 자신의 방면을 위해 애써준 양춘희(전인화)에게 꽃다발을 주며 고백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자석키스'를 하려는데 그 장면을 본 육십세 노총각 강진(박영규)이 '이게 무슨 막나가는 시츄에이션'이냐며 소리를 지릅니다. 옥탑방 오빠야는 양춘희에게 나한테 눈웃음 흘리며 유혹할땐 언제고 지금은 전봇대 오빠야랑 이러느냐며 두 사람이 사귀는 걸 효동의 장모인 김끝순(정혜선)에게 이르겠다고 노발대발합니다.

아이들 다 키워 결혼시킨 중년이라고 사랑하지 말란 법도 없고 환갑 다된 총각이 사랑에 설레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워낙 미인들이라 그런지 전봇대 오빠와 양마담의 달달한 로맨스는 보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할 만큼 아기자기한 면이 있습니다. 옆에서 심술부리는 강진도 얄밉지만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구요. 민채원에게 시집살이를 시키는 끔찍한 방영자(박원숙)와 지독한 마마보이 김철규(최원영)의 이야기를 잊게 할 만큼 보기 좋은 커플이 양춘희와 민효동 커플입니다. 두 사람은 곧 옛날국수집 가족이 되겠지요.

서로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커플이 된 민효동과 양춘희. '양마담'이 국수공장에 들어갈 날도 머지않았다.

'백년의 유산'의 시놉시스 설명을 보면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인 '노포(老舖)'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제작진은 3대째 국수 가업을 이은 서울 변두리의 오래된 노포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꾸며나가겠다는 내용을 미리 밝힌 적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잦은 전쟁과 경제상황 악화로 오랫동안 가업을 이어온 음식점이나 가업을 찾기 힘든 편입니다. 반면 일본은 침략을 한 적은 있어도 받은 적은 별로 없어 수백년동안 가업을 잇는 가게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자식에게 대대로 점포를 물려주는 경우가 많아 '노포(しにせ)'라는 표현에 익숙합니다.

일본에서는 검사를 관두고 가업을 잇기로 했다는 젊은이가 화제가 될 정도로 가업을 잇는 풍경이 흔했습니다만 요즘은 가업을 잇겠다는 젊은이가 줄어들어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도 드라마처럼 삼대가 함께 사는 가족을 흔히 볼 수 없고 대가족이 모여 사는 드라마 속 풍경을 판타지라고 할 정도인데 일본도 핵가족화 되었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겠죠. 고루하고 낡았다는 느낌을 주는 가업 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걸 선호하는 현대사회입니다. '백년의 유산'의 국수 할아버지 엄팽달(신구)의 고민도 바로 그것입니다.

가업을 잇는 자식에게 백억 유산을 주겠다는 엄팽달. 국수공장은 금새 북적대기 시작한다.

백년 동안 이어온 국수 사업을 물려주고 싶어도 가업을 물려받겠다는 자손이 없었던 엄팽달 할아버지. 일본처럼 수백년된 가업은 보기 힘들지만 우리 나라에도 백년, 50년 동안 가업을 이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으면서 꿋꿋이 한 분야를 지켜온 사람들 중에는 기업으로 크게 성공한 가족들도 있고 여전히 작은 가게에서 열심히 음식을 파는 가족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수백년 짜리가 아니라서 그런지 음식업을 가업이라 하면 비웃는 사람들도 있죠. 가업이 꼭 큰 돈을 벌고 유명해지는 일은 아니니 그런 반응이 나올만도 합니다.

극중의 국수공장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큰 식품회사의 간부로 일하던 큰아들 엄기문(김명수),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면서 아내와 다투던 엄기춘(권오중), 혼자서 작은 피아노학원을 하던 엄기옥(선우선)에 아내를 잃고 혼자서 처가살이를 하는 사위 민효동까지 모두 국수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위와 큰 아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있으니 가업 따위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둘째 아들과 딸은 하는 일이 변변치 않아도 국수 만드는 일은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백억 유산을 물려준다는 엄팽달의 선언이 없었으면 그들이 '국수'에 눈을 돌릴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가업에는 관심도 없던 자식들이 백억 유산이란 말에 극성을 떨기 시작한다.

백억이란 엄청난 재산에 눈 먼 자식들은 너도 나도 할 것없이 국수를 만들겠다며 '노포'로 몰려듭니다. 엄팽달과 김끝순이 사위 하나 데리고 살던 조용한 국수공장이 자식들로 북적대기 시작합니다. 누가 가업을 물려받을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서로 효도를 하겠다고 달려드는 모습이 나름 살벌하기도 하고 백억 재산이 생기면 하던 일도 그만둘 수 있다는 자세는 어딘가 불편한 부분도 있습니다. 어지간히 좋은 직업 아니고는 먹고 살기 힘든 때이니 돈되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현대인의 직업관을 잘 보여준 설정이기도 합니다.

엄팽달이 자식들에게 내세운 백억가치의 밀밭은 돈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가업을 물려줄 자식을 찾기 위해 엄팽달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체 '가업'이 뭐길래 아둥바둥 각자 직업을 갖고 사는 자식들을 불러들여야했을까 싶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뭔가 물려받을 것이 있는 드라마 속 가족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물질적인 것 이외에는 빈곤한 유산의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힘들었던 만큼 전통의 가치가 훼손되었고 '가업'이라 불릴 정도로 오래된 산업은 많은 부분 망가졌으니까요.

이혼한 민채원도 곧 국수공장에 합류할 것이다. 밉지만은 않은 국수공장 사람들의 가업잇기 전쟁.

극중 방영자의 가족처럼 '돈'을 절대가치로 여기고 자식에게 막대한 재산을 물려줄 사람들은 많습니다. 반면 정신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전통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유산으로 남겨줄 사람은 드물지 않나 생각됩니다. 돈 보다 중요한 가치를 가르치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인데 시대가 흐를수록 그 가치가 등한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업'을 보기 드물었던 시대를 살아와서 그런지 더욱 그런 모습이 부럽게 다가오네요. 국수를 별식으로 먹고 국수로 허기를 채우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음식이 그냥 음식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뭐 나쁘게 보면 엄팽달은 백억이란 돈으로 자식들의 인생을 휘젓는 나쁜 할아버지일 수도 있습니다. 또 국수공장이 어떻게든 물려줘야할 가치가 있는 사업이냐는 점은 개인 마다 의견이 다르겠습니다만 무형의 가치가 그리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가업'이 참 부럽습니다. 어떻게 보면 취업도 직업을 갖기도 힘든 요즘 시대에 가업을 물려받는다는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구요. 때로는 얄밉게 아웅다웅하기는 해도 악의는 없고 적당히 긴장감있게 티격태격하는 국수공장 사람들, 어쩐지 보기만 해도 흐뭇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