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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급공무원, 절대로 안 지워지는 임예진과 최강희의 화장

Shain 2013. 2. 2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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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어르신들 중에는 높은 사람에게 '사바사바'하면 안될 일도 된다고 믿고 있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은밀한 뒷거래나 로비로 쉽게 되는 일도 있고 친분을 빙자해 부정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여전히 있습니다만 최소한 일개 7급 공무원이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건 힘든 일이죠. 뭐 80년대까지는 급수 높은 공무원이 윗사람에게 연줄을 대서 입김 넣는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는데 요즘 세상에 그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되는 일은 아닙니다. 최근 밝혀진 7급 공무원의 '진짜 업무'를 들어보면 그만한 영향력이 있던 시절이 있긴 있었나 싶습니다.

국정원 직원 김서원(최강희)는 한때 자신의 국정원 동료였던 한길로(주원)를 대상으로 진심과 거짓말이 오가는 오락가락 첩보 업무를 펼치고 있습니다. 고향마을을 저탄소 녹색성장 시범마을로 선정하는데 '사바사바' 해달라며 다짜고짜 서원을 찾아온 서원 아버지 김판석(이한위)과 은근슬쩍 남편의 뜻을 딸에게 밀어부치는 오막내 여사(김미경)는 한길로가 서원의 작전 상대인줄도 모르고 예비사위를 본듯 반가워합니다. 한길로는 한길로대로 서원과 여행을 가겠다는 목적으로 어머니 고수자(임예진)에게 김서원을 소개시켜줬습니다.

드디어 나왔다 길로, 서원이 키스신. 못 믿을 상황 속에서도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본심이든 어쩔 수 없었든 간에 한길로에게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한 김서원을 믿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태껏 한길로는 김서원의 '진짜 진짜' 본명이 김경자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름만 거짓말만 한거면 모르겠는데 김서원 옆에는 김서원이 좋다며 때때로 진심을 고백하는 연적 공도하(황찬성)도 있습니다. 어떤 날은 서원이네 집 옷장에서 튀어나오고 우연히 마주치면 김서원과 포옹하고 있는 공도하를 봤는데 한길로는 어떻게 김서원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도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에서 통과한 타고난 거짓말쟁이 김서원을 말입니다.

하여튼 이 두 사람의 가짜같은 임무와 가짜같은 사랑은 정말 재밌습니다. 두 사람의 티격태격을 구경하다 보면 JJ(임윤호)가 한주만(독고영재)과 한길로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은 까맣게 잊게 됩니다. 산업스파이라는 범죄가 국정원이 감시할 만큼 엄청난 범죄라는 사실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동시간대에 방영되는 KBS의 '아이리스2'가 진지하게 첩보 업무를 묘사하는데 비해 '7급 공무원'은 가볍고 장난스럽게 모든 임무를 처리합니다. 애인과 가족에게도 거짓말하고 살아야하는 국정원 직원들의 애환이 코믹하고 애달픕니다.

로봇청소기와 화장품 PPL 때문에 열심히 마사지를 하는 임예진과 최강희.

어제 방영된 고수자와 김서원의 마사지 장면은 특히 재밌더군요.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김서원과 고수자가 '동그랗게 돌리면서 좌회전', '꾹 눌러서 우회전'이라고 할 때 마다 로봇청소기가 말귀를 알아듣고 왔다갔다 합니다. 이 로봇청소기는 국정원이 김서원에게 시켜 선물로 준 것으로 로봇청소기 덕분에 국정원은 한주만의 집을 몰래 감시할 수가 있습니다. 주인공의 대사에 따라 로봇청소기가 움직이는 건 웃기라고 연출한 장면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PPL일 뿐이죠. 멀리서 명령해도 알아서 움직이는 좋은 제품이다 뭐 이런 거 같습니다.

거기다 예비 며느리 김서원과 예비 시어머니 고수자가 뜬금없이 마사지를 하는 것도 사실 PPL일 겁니다. 이 드라마 '7급 공무원'에는 꽤 많은 화장품 회사가 협찬과 PPL를 제공하고 있고 드라마에 출연하자면 화장한 얼굴이 필수인 두 배우가 공들여 얼굴에 크림을 바르며 마사지를 하는 것도 '돈값'을 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참 '속보인다' 싶으면서도 저거 화장 지웠다가 다시 하려면 진짜 힘들텐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PPL하는 드라마 그동안 많이 봐왔지만 저 정도로 촬영에 타격가는 PPL도 드물거든요.

마사지를 해도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화장이 탄생하다, PPL하는 여배우들의 고생.

그런데 '7급 공무원'은 그 문제를 아주 간단하게 해결한 거 같습니다. 마사지 후의 에피소드를 마사지 에피소드 보다 먼저 찍어둔 것 같더군요. 마사지를 하고 티슈로 꼼꼼히 얼굴을 닦아내고 한길로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있는 고수자와 김서원의 얼굴은 다시 말끔하게 메이크업을 하고 있습니다. 마사지를 하고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는 대단한 메이크업이 탄생한 셈입니다. 원래 여배우들은 한번 촬영할 때 여러컷을 찍어야하기 때문에 침대에서 잠자는 장면에서도 화장을 지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장품 모델이라서 화장을 안 지우는 배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시간 문제로 못 지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가피하게 화장품 PPL 장면을 연출하려고 하다 보니 메이크업 상태로 마사지를 하고 그 메이크업이 지워졌다는 설정인데도 다음 장면에서 메이크업 상태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에만 관심있는 시청자들이야 메이크업을 자세히 보진 않을테니까 제작진이 시청자들한테 대충 '사바사바'해보려고 얼렁뚱땅 연출한 모양인데 요즘은 TV 화질이 워낙 좋아서 아무 생각없이 봐도 메이크업이 잘 보이더군요. 마스카라에 립스틱, 옅게 바른 파우더까지 아주 잘 보여서 마사지 장면 전에 찍었구나 싶었습니다.

김서원을 속터지게 하는 김판석 부부의 사바사바. 여러모로 명언이네..

드라마에 PPL이 너무 많은 건 솔직히 불만인 사람입니다만 그게 딱히 배우들 잘못은 아니고 또 갑작스런 PPL 때문에 부자연스러운 장면을 연출하려면 현장 배우들과 제작진이 제일 고생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물론 모델로 활약하는 화장품 협찬사 때문에 무리한 화장을 시도하는 여배우도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어떤 순간에도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화장을 보고 나니까 픽 하고 웃게 되더라구요. 대개는 촬영시간 때문에 집에서도 잘 때도 목욕하는 장면에서도 화장한 채로 등장하는 여배우들이 촬영하느냐 꽤 고생했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한길로와 김서원의 사랑은 나날이 깊어만 갑니다. 집을 나온 한길로가 김서원의 집에서 첫키스를 하는 장면은 로맨틱 코미디답게 정말 달달하고 예뻤습니다. 한주만이 아들을 위해 자꾸 떠나라고 하는 것처럼 한꺼풀만 벗기면 보이는 진실은 생각 보다 따뜻하고 간단한 것인데 서원과 한길로는 거짓말과 책임의 무게 때문에 점점 더 솔직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지금이야 '믿음'이라는 콩깍지로 '사바사바' 잘 넘어갈 수 있겠지만 두 사람 사이에 큰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을거라 봅니다. 타고난 거짓말쟁이와 007를 꿈꾸는 철부지의 사랑 힘들어보여도 참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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