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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읽다 보면 도저히 거북해서 받아들이기 힘든 표현들이 있습니다. 욕설을 섞어 만든 신조어도 있고 특정인의 죽음을 빗대 만든 유행어 그리고 웬만한 사람들은 잘 모르는 쌍욕이 범람하는 걸 보면 저도 모르게 눈쌀이 찌푸려지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또 스트레스까지는 아니지만 보면 불쾌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반도'와 '반도인'입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그 단어들을 몹시 싫어하셨고 80년대까지도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반도'라 부른다며 분노하시는 걸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일흔살 정도 나이차이가 나셨던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를 직접 겪으신 분입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한 면은 육지에 연결된 땅'을 뜻하는 '반도(半島)'라는 말은 영어 단어 'peninsula'를 한자로 옮긴 것으로 '거의 섬과 같다'는 어원을 갖고 있습니다. 반도라는 말은 근대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였습니다. 지형을 뜻하는 그 단어 자체에는 아무 뜻도 있지 않고 발칸 반도, 캄차카 반도처럼 지역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께서 분노하셨던 부분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반도'라는 단어가 어떻게 쓰였느냐는 사회적 쓰임새와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경술국치 이후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빼앗기고 한때 창씨개명과 일본어 사용을 강요당하는 수모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많은 한국어가 훼손되었고 국내 지명과 행정구역이 일본 중심으로 개편되어 오늘날까지도 알게 모르게 그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친일파 청산만 못한게 아니라 언어 속 일제의 잔재도 완전히 지우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은 알면서도 표준어이기 때문에 그냥 쓰는 말이 있는가 하면 고착화되어 모르는 새 한국어로 굳어버린 표현들도 많습니다.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강요하며 조선과 일본이 하나라고 외쳤던 일본은 자신들의 땅을 내지라 부르고 조선을 '반도'라 했습니다. 조선이란 국호는 완전히 사라졌으나 차별과 구분을 위해서라도 조선땅과 일본땅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던 일본이 '반도'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우리 나라를 '반도'라고 부를 땐 자신들의 '식민지'나 '속국'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70, 80년대까지도 대한민국을 '반도'라 불러 많은 한국인들이 분노한 사연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반도'가 조선땅을 뜻한다면 당연히 '반도인(半島人)'은 조선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공식적으로 일제강점기 때 발행된 신문을 보면 '반도'와 '반도인'이란 표현을 수없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센징'이란 단어하 비하적으로 사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반도인'은 일본의 식민지 사람이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각종 통계자료와 공문을 작성할 때도 '반도인'과 '내지인'을 구분했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역사적 기록물에도 똑같이 구분되어 적혀 있습니다.
'반도'라는 말이 아무 뜻없는 가치중립적인 단어라 해도 이미 일본인들에게 '한국'을 비하하는 말로 이용된 역사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기록이 남아 있고 일제강점기를 거친 그들의 언어 속에 '반도'라는 단어가 남아 있습니다. 아니 아직도 '한국'을 속국으로 부르기 위해 '반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는한 '반도'는 일본이 쓰는 비하 표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도 일본 우익과 네티즌 중에는 '대한민국'이란 정식 명칭을 두고 '조선반도'라는 표현으로 한국을 자신들의 속국처럼 호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몇년전부터 '반도'라는 표현을 두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논쟁이 자주 붙은 것을 보았습니다. 의외로 정확한 근거를 대는 사람이 드물단 사실에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막연히 '반도'가 나쁜 표현이다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또 무조건 '반도'는 삼면이 바다인 땅을 뜻하는 말이라고 단정할게 아니라 실제 역사에서 그 단어를 어떻게 써왔는지 또 일본인들이 그 표현을 어떤 상황에서 썼는지 충분히 파악하고 난 뒤 '반도'와 '반도인'이란 표현을 썼으면 합니다. 드라마 속에서 일본인들이 '반도'란 표현을 썼던 사례 3가지를 첨부해 봅니다.
여명의 눈동자 (MBC, 1991)
일제강점기 때 '정신대'라 불리웠던 위안부 문제로 화제가 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는 일본 유학생 장하림(박상원)이 등장합니다. 일본인 과부 가쯔꼬(김현주)와 사랑에 빠진 그는 일본이 벌인 태평양 전쟁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어떻게든 학도병으로 끌려가지 않으려 창씨개명도 하고 일본에 충성한다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지만 강압적으로 폭행하며 그를 군대로 보내려는 야마다 형사(이성웅)는 독하게 밀어부칩니다. 남의 전쟁에 끌려나가야하는 장하림이 내뱉은 대사가 끔찍합니다.
'일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내지인과 반도인은 한마음 한뜻으로 천황폐하께 충성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학생 장하림이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동안 최대치(최재성)과 윤여옥(채시라)은 전쟁터에서 '반도인으로서' 전쟁의 상처를 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최대치의 친구 동진(가네야마, 정호근)은 봉순(오연수)과 자신을 괴롭히는 오오에 대장(장항선)을 견디다 못해 대들었고 그로 인해 할복자살을 당합니다. 독립운동가의 딸이란 이유로 끌려온 여옥은 여옥대로 위안부로 끌려와 정신줄을 놓지만 오오와꾸(김홍석)같은 일본인들은 단지 그녀를 일본 여자들을 대신할 '반도 것'으로 취급합니다. '반도인'이라 불리던 사람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드라마였습니다.
국희 (MBC, 1999)
일제강점기와 광복 시기, 제과 기술은 커녕 변변한 건물 하나 없었던 그 시절에 싸고 맛있는 국산과자를 만들어 성공하는 한 여성 이야기인 '국희'는 독립운동가의 딸인 정국희(김혜수)와 임시정부에서 대한민국 정부로 돌아와 국희를 돌보는 최민권(손창민) 그리고 노래하는 가수로 최민권을 좋아했던 송신영(정선경)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였습니다. 국희의 아버지 민영재(정동환)는 친구 송주태(박영규)에게 딸 국희와 자신의 병원을 맡기고 독립운동에 헌신합니다. 광복된 조국에 돌아온 그는 국희를 만나지 못하고 재산을 뺏기기 싫었던 송주태는 음모를 꾸밉니다. 송주태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해주헌병대 대장 나카무라(송금식)의 제빵공장을 싸게 사들이는 대신 한국으로 돌아오는 민영재를 죽여달라 청탁합니다.
고아로 자란 국희가 제과기술을 배워 과자를 생산하고 송주태도 제과사업에 뛰어들어 국희는 송주태가 아버지의 원수인줄도 모르고 서로 경쟁하게 됩니다. 국희가 국내 기술로 과자생산을 성공한 반면 국내 기술로는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송주태는 일본 모리나가 제과에서 기술협조를 받기로하고 그때 입국한 사람이 바로 나카무라입니다. 나카무라는 한때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에 도착해 이렇게 말합니다. '반도 땅이 정말 오랜만'이라고 말입니다. 꽤 많은 일본인들이 20세기 동안 우리 나라를 '반도'라 불렀고 많은 한국인들이 무례한 일본인들의 '반도'란 단어를 참아야했습니다.
각시탈 (KBS, 2012)
이후에 변하기는 하지만 극중 채홍주(한채아)와 이강토(주원)는 뼛속까지 내지인이 되기 위해 기를 썼던 친일파였습니다. 이시용 백작(안석환)과 이화경(김정난)도 내지인이 되기 위해 일본에 충성하는 '반도인'들입니다. 드라마 '각시탈'을 시청한 사람들이 많아 딱히 내용 설명은 하지 않겠지만 '각시탈'의 시대 고증은 여러 면에서 깨알같은 구석이 있습니다.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일본이 조선에 병원과 학교를 설치하고 실력있는 자들을 경찰에 등용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반도인'들에 대한 차별은 끊임없습니다. 병원장 우병준(김규철)은 조선인들이 병원에서 치료받는 걸 거절하고 경찰 고이소(윤진호)도 공을 세운 이강토를 반도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힙니다. '반도'라는 말과 '반도인'이란 표현이 일제 강점기 때 어떻게 사용되었으며 '반도인'이라 불리던 조선인들이 어떤 고문과 처우를 받았고 어떻게 위안부와 학도병으로 끌려갔는지 조금쯤 엿볼 수 있는 드라마였습니다.
이제는 일본어의 잔재를 의식할 수 없는 시기가 되었고 현대는 오히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의 한글 파괴를 훨씬 더욱 걱정하는 시대입니다. 지금은 '루저'라는 표현으로 대체된 것 같지만 과거 우리 나라에는 '엽전'이라는 자기 비하적인 표현이 있었습니다. 일설에는 '우리같은 엽전이 그런 큰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식으로 정체성을 부정하던 이 표현이 '반도인'으로 변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굳이 타국에서 우리 나라를 비하하는 표현까지 가져와서 자학해야하는 지는 의문이지만 '반도인'이란 표현을 우리 나라에서 먼저 쓴 것은 아닙니다.
8, 90년대까지만 해도 '반도'라는 말을 기억하는 어른들이 많아 굳이 '반도인'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습관적으로 쓰던 사람들은 있었지만). 저희 할아버지만 해도 그 표현은 옳치 않다며 야단을 치셨으니까요. 최근 '반도의~'란 표현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5, 6년전 일로 그 근원을 찾자면 일본 2ch 사이트에서 인터넷 극우들이 사용하던 표현이라 합니다. 원래 일본의 극우들은 한국의 정식 명칭보다 '반도'라는 표현을 훨씬 좋아했으니 그들끼리 그런 표현을 쓴 것도 당연합니다. 그들의 말이 우리 나라로 번역되어 퍼지고 유머처럼 사용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를 묘사한 드라마를 보면 그 시대의 아픔을 일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일제강점기의 '반도'와 '반도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어떤 상황에서 우리 나라를 '반도'라 불렀는지 생각하면 여전히 극성인 극우 일본 세력에 분노하게 됩니다. 고통받던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어렵게 만든 '대한민국'이란 좋은 이름을 두고 그 시대의 아픔이 담긴 '반도'라는 명칭을 꼭 써야하는 것일까요. 논쟁이 불거질 때 마다 미디어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한 면은 육지에 연결된 땅'을 뜻하는 '반도(半島)'라는 말은 영어 단어 'peninsula'를 한자로 옮긴 것으로 '거의 섬과 같다'는 어원을 갖고 있습니다. 반도라는 말은 근대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였습니다. 지형을 뜻하는 그 단어 자체에는 아무 뜻도 있지 않고 발칸 반도, 캄차카 반도처럼 지역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께서 분노하셨던 부분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반도'라는 단어가 어떻게 쓰였느냐는 사회적 쓰임새와 관계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기사를 찾아보면 우리 나라를 '반도'로 우리 나라 사람을 '반도인'으로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는 경술국치 이후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빼앗기고 한때 창씨개명과 일본어 사용을 강요당하는 수모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많은 한국어가 훼손되었고 국내 지명과 행정구역이 일본 중심으로 개편되어 오늘날까지도 알게 모르게 그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친일파 청산만 못한게 아니라 언어 속 일제의 잔재도 완전히 지우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은 알면서도 표준어이기 때문에 그냥 쓰는 말이 있는가 하면 고착화되어 모르는 새 한국어로 굳어버린 표현들도 많습니다.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강요하며 조선과 일본이 하나라고 외쳤던 일본은 자신들의 땅을 내지라 부르고 조선을 '반도'라 했습니다. 조선이란 국호는 완전히 사라졌으나 차별과 구분을 위해서라도 조선땅과 일본땅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던 일본이 '반도'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우리 나라를 '반도'라고 부를 땐 자신들의 '식민지'나 '속국'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70, 80년대까지도 대한민국을 '반도'라 불러 많은 한국인들이 분노한 사연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반도'가 조선땅을 뜻한다면 당연히 '반도인(半島人)'은 조선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공식적으로 일제강점기 때 발행된 신문을 보면 '반도'와 '반도인'이란 표현을 수없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센징'이란 단어하 비하적으로 사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반도인'은 일본의 식민지 사람이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각종 통계자료와 공문을 작성할 때도 '반도인'과 '내지인'을 구분했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역사적 기록물에도 똑같이 구분되어 적혀 있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반도'라 부르며 멸시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반도'에 정말 아무 뜻이 없는가?
'반도'라는 말이 아무 뜻없는 가치중립적인 단어라 해도 이미 일본인들에게 '한국'을 비하하는 말로 이용된 역사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기록이 남아 있고 일제강점기를 거친 그들의 언어 속에 '반도'라는 단어가 남아 있습니다. 아니 아직도 '한국'을 속국으로 부르기 위해 '반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는한 '반도'는 일본이 쓰는 비하 표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도 일본 우익과 네티즌 중에는 '대한민국'이란 정식 명칭을 두고 '조선반도'라는 표현으로 한국을 자신들의 속국처럼 호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몇년전부터 '반도'라는 표현을 두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논쟁이 자주 붙은 것을 보았습니다. 의외로 정확한 근거를 대는 사람이 드물단 사실에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막연히 '반도'가 나쁜 표현이다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또 무조건 '반도'는 삼면이 바다인 땅을 뜻하는 말이라고 단정할게 아니라 실제 역사에서 그 단어를 어떻게 써왔는지 또 일본인들이 그 표현을 어떤 상황에서 썼는지 충분히 파악하고 난 뒤 '반도'와 '반도인'이란 표현을 썼으면 합니다. 드라마 속에서 일본인들이 '반도'란 표현을 썼던 사례 3가지를 첨부해 봅니다.
여명의 눈동자 (MBC, 1991)
일제강점기 때 '정신대'라 불리웠던 위안부 문제로 화제가 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는 일본 유학생 장하림(박상원)이 등장합니다. 일본인 과부 가쯔꼬(김현주)와 사랑에 빠진 그는 일본이 벌인 태평양 전쟁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어떻게든 학도병으로 끌려가지 않으려 창씨개명도 하고 일본에 충성한다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지만 강압적으로 폭행하며 그를 군대로 보내려는 야마다 형사(이성웅)는 독하게 밀어부칩니다. 남의 전쟁에 끌려나가야하는 장하림이 내뱉은 대사가 끔찍합니다.
'일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내지인과 반도인은 한마음 한뜻으로 천황폐하께 충성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도인'이기 때문에 겪어야하는 슬픔들. 학도병으로 정신대로 그들은 끔찍한 고통을 겪는다.
유학생 장하림이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동안 최대치(최재성)과 윤여옥(채시라)은 전쟁터에서 '반도인으로서' 전쟁의 상처를 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최대치의 친구 동진(가네야마, 정호근)은 봉순(오연수)과 자신을 괴롭히는 오오에 대장(장항선)을 견디다 못해 대들었고 그로 인해 할복자살을 당합니다. 독립운동가의 딸이란 이유로 끌려온 여옥은 여옥대로 위안부로 끌려와 정신줄을 놓지만 오오와꾸(김홍석)같은 일본인들은 단지 그녀를 일본 여자들을 대신할 '반도 것'으로 취급합니다. '반도인'이라 불리던 사람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드라마였습니다.
국희 (MBC, 1999)
일제강점기와 광복 시기, 제과 기술은 커녕 변변한 건물 하나 없었던 그 시절에 싸고 맛있는 국산과자를 만들어 성공하는 한 여성 이야기인 '국희'는 독립운동가의 딸인 정국희(김혜수)와 임시정부에서 대한민국 정부로 돌아와 국희를 돌보는 최민권(손창민) 그리고 노래하는 가수로 최민권을 좋아했던 송신영(정선경)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였습니다. 국희의 아버지 민영재(정동환)는 친구 송주태(박영규)에게 딸 국희와 자신의 병원을 맡기고 독립운동에 헌신합니다. 광복된 조국에 돌아온 그는 국희를 만나지 못하고 재산을 뺏기기 싫었던 송주태는 음모를 꾸밉니다. 송주태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해주헌병대 대장 나카무라(송금식)의 제빵공장을 싸게 사들이는 대신 한국으로 돌아오는 민영재를 죽여달라 청탁합니다.
광복 후 한국 땅을 다시 찾은 일본인은 우리 나라를 '반도'라고 부르고 있었다.
고아로 자란 국희가 제과기술을 배워 과자를 생산하고 송주태도 제과사업에 뛰어들어 국희는 송주태가 아버지의 원수인줄도 모르고 서로 경쟁하게 됩니다. 국희가 국내 기술로 과자생산을 성공한 반면 국내 기술로는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송주태는 일본 모리나가 제과에서 기술협조를 받기로하고 그때 입국한 사람이 바로 나카무라입니다. 나카무라는 한때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에 도착해 이렇게 말합니다. '반도 땅이 정말 오랜만'이라고 말입니다. 꽤 많은 일본인들이 20세기 동안 우리 나라를 '반도'라 불렀고 많은 한국인들이 무례한 일본인들의 '반도'란 단어를 참아야했습니다.
각시탈 (KBS, 2012)
이후에 변하기는 하지만 극중 채홍주(한채아)와 이강토(주원)는 뼛속까지 내지인이 되기 위해 기를 썼던 친일파였습니다. 이시용 백작(안석환)과 이화경(김정난)도 내지인이 되기 위해 일본에 충성하는 '반도인'들입니다. 드라마 '각시탈'을 시청한 사람들이 많아 딱히 내용 설명은 하지 않겠지만 '각시탈'의 시대 고증은 여러 면에서 깨알같은 구석이 있습니다.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일본이 조선에 병원과 학교를 설치하고 실력있는 자들을 경찰에 등용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반도인'들에 대한 차별은 끊임없습니다. 병원장 우병준(김규철)은 조선인들이 병원에서 치료받는 걸 거절하고 경찰 고이소(윤진호)도 공을 세운 이강토를 반도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힙니다. '반도'라는 말과 '반도인'이란 표현이 일제 강점기 때 어떻게 사용되었으며 '반도인'이라 불리던 조선인들이 어떤 고문과 처우를 받았고 어떻게 위안부와 학도병으로 끌려갔는지 조금쯤 엿볼 수 있는 드라마였습니다.
'반도인'이 '내지인'이 되기 위해서. 차별받았던 '반도인'들의 서글픈 삶.
이제는 일본어의 잔재를 의식할 수 없는 시기가 되었고 현대는 오히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의 한글 파괴를 훨씬 더욱 걱정하는 시대입니다. 지금은 '루저'라는 표현으로 대체된 것 같지만 과거 우리 나라에는 '엽전'이라는 자기 비하적인 표현이 있었습니다. 일설에는 '우리같은 엽전이 그런 큰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식으로 정체성을 부정하던 이 표현이 '반도인'으로 변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굳이 타국에서 우리 나라를 비하하는 표현까지 가져와서 자학해야하는 지는 의문이지만 '반도인'이란 표현을 우리 나라에서 먼저 쓴 것은 아닙니다.
8, 90년대까지만 해도 '반도'라는 말을 기억하는 어른들이 많아 굳이 '반도인'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습관적으로 쓰던 사람들은 있었지만). 저희 할아버지만 해도 그 표현은 옳치 않다며 야단을 치셨으니까요. 최근 '반도의~'란 표현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5, 6년전 일로 그 근원을 찾자면 일본 2ch 사이트에서 인터넷 극우들이 사용하던 표현이라 합니다. 원래 일본의 극우들은 한국의 정식 명칭보다 '반도'라는 표현을 훨씬 좋아했으니 그들끼리 그런 표현을 쓴 것도 당연합니다. 그들의 말이 우리 나라로 번역되어 퍼지고 유머처럼 사용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를 묘사한 드라마를 보면 그 시대의 아픔을 일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일제강점기의 '반도'와 '반도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어떤 상황에서 우리 나라를 '반도'라 불렀는지 생각하면 여전히 극성인 극우 일본 세력에 분노하게 됩니다. 고통받던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어렵게 만든 '대한민국'이란 좋은 이름을 두고 그 시대의 아픔이 담긴 '반도'라는 명칭을 꼭 써야하는 것일까요. 논쟁이 불거질 때 마다 미디어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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