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한국 드라마 보기

7급공무원,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자는 말의 진정한 뜻

Shain 2013. 3. 8. 14:21
728x90
반응형
드라마 시청률을 보다 보면 재미있는 수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대개 10시 이후 방영되는 드라마에 비교적 많은 제작비가 투자되고 그 시간대 드라마 시청률이 가장 높을 것이라 생각하곤 하지만 실제로 하루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는 매일밤 8시 30분에 방송되는 '힘내요 미스터김'으로 평균 시청률은 30퍼센트가 넘습니다. 방송 3사가 경쟁적으로 방송하는 수목드라마들 중 15%의 시청률을 넘긴 드라마는 단 한편도 없고 '아이리스2'와 '7급공무원'은 옴부즈맨 프로그램인 '우리사는 세상'이나 '6시 내고향' 보다도 시청률이 낮습니다.

그중 가장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7급공무원'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습니다. '추노(2010)'의 천성일 작가 드라마에다 요즘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주원과 연기자 최강희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드라마라 낮은 시청률이 안타깝더군요. 그래도 지난주 방영된 11회까지는 세 드라마 모두 비슷비슷한 시청률을 보이며 경쟁을 했었는데 이후 떨어진 시청률은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와 국정원의 결합은 생각 보다 궁합이 좋지 않았던 것일까요. 총 20부작이니 아직 3주나 남았지만 이대로라면 큰 기대를 걸긴 힘들 거 같습니다.

'7급공무원'에서 묘사되는 흥미로운 '권력'에 대한 풍자. 마을 이장이나 국정원 국장이나.

물론 시청률이 좀 낮다고 해서 이 드라마의 매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길로(주원)와 김서원(최강희)의 오락가락하는 사랑이야기 외에도 이 드라마는 권력과 국가기관에 대한 풍자가 아주 재미있는 코미디입니다. 특히 동네 이장일을 하면서 야금야금 뇌물을 받아먹는 서원아부지 김판석(이한위)과 마을 부녀회장 권력을 이용해 남편과 마을 사람들을 살살 구슬리는 오막내(김미경) 여사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알량한 국정원 직원의 가족이 쇠고기와 꿀을 알아서 가져다주는 엄청난 자리라니 권력에 대한 풍자가 자못 흥미롭습니다.

기껏해야 백명도 되지 않는 마을 주민을 상대로 최고권력자인양 유세를 떠는 김판석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바로바로 민원을 넣을 만큼 국정원 딸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합니다. 각종 농촌사업이 당연히 우리 마을에 낙찰될 것며 어떤 일이든 국정원 딸이 '사바사바'해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김판석의 '근거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온걸까요. '사바사바'로 안되는 일이 없고 국가 기관이 개입하면 뭐든 해결된다고 믿는 이 생각은 과거 우리 나라 권력자들 때문에 생긴 현상입니다. 그리고 극중 오광재(최종환) 국장은 아직도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같은 동료끼리 스파이짓까지 하면서 김원석이 1년간 공들인 작전을 가로챈 오광재.

아직까지 그 실체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오광재는 전형적인 속물 근성 권력자입니다. '조국을 위해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김원석(안내상)이 임무 자체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타입이라면 오광재는 출세를 위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는 타입입니다. 산업보안팀의 국장인 오광재는 권력을 이용해 같은 직원들끼리도 스파이 짓을 시키고 공을 가로채기 위해 김원석이 JJ(임윤호)와 김미래(김수현)를 잡기 위해 작업한 작전에 직접 팀장으로 개입합니다. 한길로의 작전지역 이탈이란 핑계가 있기는 했어도 오광재의 개입은 최소한 부하 직원을 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김판석이 마을 투표 결과를 보며 소수의 의견은 무시해도 된다는 반응을 보인 것처럼 오광재와 김원석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말을 달고 삽니다. 김원석에게 '대를 위해' 희생되는 '작은 것'은 거짓말을 하며 가족도 속여야하는 국정원 직원들의 삶이고 오광재에게 '작은 것'은 작전을 위해 희생되는 JJ와 최우혁(엄태웅)의 아버지 최흥수의 목숨입니다. 나아가서는 한길로의 아버지 한주만(독고영재)의 목숨도 오광재에게는 큰 목적을 위해 희생되는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산업스파이들의 악영향을 생각하면 얼핏 그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오광재에겐 한주만도 최흥수 사장 가족의 목숨도 '대를 위해 희생되는 작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심으로 마을 일을 처리하는 김판석이 소수파들의 의견을 무시한 것처럼 오광재 역시 공을 세우겠다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국정원 업무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거창한 말은 오광재의 사심을 채우기 위한 핑계일 뿐이고 그 덕분에 김미래와 JJ의 가족들은 죽어야했습니다. 한주만 역시 미끼가 되어 목숨의 위협을 받았고 김미래에게 협박을 당해 지금은 산업스파이 짓에 연루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쉽게 말해 내가 출세하자면 일개 서민 가정이 붕괴되든 사람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는게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말의 진정한 뜻이었던 것입니다.

미래와 JJ는 자신들을 '국가라는 폭력에 의한 희생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그럴싸한 핑계로 그들의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오광재같은 인물은 그들이 최종적으로 복수하고자 하는 마지막 목표입니다. 흥미로운건 수면가스에 당한 오광재가 어쩌면 '작은 것'이 되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신을 잃은 오광재는 살아남은 김미래에게 납치되어 '국정원 사과'를 위한 인질로 이용될 수도 있습니다. 국장급 요원 쯤되면 한 개인이라기 보다 국가의 많은 비밀을 알고 있으니 국정원에서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간부입니다.

과연 누가 '작은 것'과 '큰 것'을 결정하는가. 사랑까지 희생했던 두 주인공의 결정.

타인의 목숨과 안전을 '대를 위해 희생하는 작은 것' 취급하며 함부로 다뤘던 그가 국정원 사과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이용되면 쉽게 목숨을 끊을 수 있을까요. 오광재 국장은 자신들의 사랑도 가족도 모두 희생시켰던 김서원이나 김원석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며 동네 이장이라는 작은 권력으로 소고기나 받아먹는 김판석과도 급이 다릅니다. 뻔뻔하게 '희생'을 요구하던 그가 스스로를 희생할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국가라는 커다란 조직을 위해 개인이 죽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요.

오광재가 어쩌다가 최흥수 사장과 김미래 가족을 미끼로 이용했으며 그 과정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전모가 드러나면 꽤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원과 길로는 가족을 희생할 수도 있는 그 위험한 임무를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믿지 못해 갈등했습니다. 공도하(황찬성)는 명령에 의해 동료 조차 배신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불분명한 그 상황에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말은 그냥 거창한 구호에 불과합니다. 그 '작은 것'과 '큰 것'을 결정할 권리를 누가 가졌는지 고민해보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요.


728x90
반응형